설교에서 길을 묻다

질문과 답변

믿음과 일상의 질문을 설교와 함께 읽습니다.

348개의 질문과 답변

  1. 믿음과 성경

    주님을 위해 포기하면 재산이 백 배로 늘어난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백 배의 약속은 헌신한 금액에 대한 투자 수익률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며 누리는 하나님나라의 풍성함과 새로운 관계를 가리킵니다.

  2. 교회와 증언

    좋아하는 설교자가 다르다는 이유로 교회 안에서 편이 갈려도 괜찮나요?

    배우는 설교자와 선호가 다를 수는 있지만, 그 선호로 서로의 소속과 신앙의 우열을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중심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3. 삶과 일

    사순절에 금식을 하지 못하면 신앙 훈련을 제대로 못 하는 건가요?

    금식을 했는지 하나로 신앙 훈련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맡은 일상을 소중히 감당하면서 먹고 마시는 일과 말의 습관을 절제하는 것도 그 훈련에 속합니다.

  4. 교회와 증언

    우리 교회에도 꼭 필요한 사람을 다른 사역으로 보내야 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만으로 모든 결정을 끝내지 말고, 하나님이 공동체 밖에서 이루실 일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보내는 일이 곧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아니며, 함께 기도하고 분별하며 한 사람의 새로운 섬김을 지지할 수 있습니다.

  5. 삶과 일

    능력이 있으면 남들이 보여 달라고 할 때 꼭 증명해야 하나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도 그 방법이 옳지 않다면 거절하고 절제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6. 교회와 증언

    다른 종교를 존중하려면 예수님에 대한 내 믿음도 내려놓아야 하나요?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신앙을 존중하는 일과, 내가 믿는 복음을 모두 같은 것으로 바꾸는 일은 다릅니다.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믿는 고백을 지키면서도 상대를 무시하지 않고 정직하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7. 삶과 일

    쉬는 시간도 다음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준비로만 생각해야 하나요?

    쉼은 다음 노동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일하는 도구가 아니라 존귀한 존재임을 기억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8. 교회와 증언

    전도한 사람이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내 전도는 실패인가요?

    사람이 교회에 나온 수만으로 당신의 증언을 실패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받은 복음을 정직하게 전하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힘썼는지 돌아보되, 상대의 반응을 내 신앙의 성적표로 삼지는 마십시오.

  9. 믿음과 성경

    설교를 잘 듣고 있으면 직접 성경을 읽는 시간은 없어도 괜찮나요?

    설교를 듣는 유익이 직접 말씀을 읽고 살아내는 수고를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좋아하는 구절에만 머물지 않고 성경 전체를 만나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10. 공동체와 돌봄

    부모를 공경하려면 부모의 모든 요구에 따라야 하나요?

    부모의 존재와 말을 무겁게 여기는 공경은 중요하지만, 모든 요구가 곧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말씀을 경청하면서도 잘못되거나 해로운 요구에는 분별이 필요합니다.

  11. 믿음과 성경

    말을 잘하고 큰 감동을 주는 설교이면 내용도 믿을 만한가요?

    전달력이 좋다는 사실만으로 내용의 진실함이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듣기 좋은 소리와 바르게 전해진 말씀을 구별하고, 감동 이후의 순종까지 살펴야 합니다.

  12. 공동체와 돌봄

    부부가 서로에게 속한다는 말씀은 배우자를 내 뜻대로 해도 된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그 말씀은 상대를 소유하고 지배할 권리를 주기보다, 자신의 유익만 구하지 않고 서로를 섬기라는 요청입니다.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같은 책임이 있으며 강요나 폭력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13. 믿음과 성경

    하나님에 대해 이미 많이 배웠는데 계속 새롭게 알아가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은 과거에 배운 지식을 보유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지금 더 알고자 하며 내 이해가 고쳐질 가능성을 여는 관계입니다.

  14. 정의와 이웃

    잘못하는 지도자를 비판하는 것과 비방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잘못된 판단과 행동은 분명히 비판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을 모독하거나 파멸을 저주하는 말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15. 삶과 일

    받은 은혜를 기록할 때 좋은 결과만 적으면 될까요?

    좋은 결과와 감사뿐 아니라, 그 전에 겪은 어려움과 탄식도 정직하게 남길 수 있습니다. 기록은 시간이 지나 은혜를 내 능력의 이야기로 바꾸지 않도록 기억을 도와줍니다.

  16. 정의와 이웃

    다른 뺨을 돌려 대라는 말씀은 모욕과 폭력을 그냥 받아들이라는 뜻인가요?

    그 말씀은 폭력에 무조건 굴복하라는 요구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같은 폭력으로 보복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경멸받아도 되는 존재가 아님을 드러내고, 악에 맞서는 방식을 바꾸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17. 은혜와 회개

    순종은 늘 억지로 해야 하는 의무이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과는 별개인가요?

    순종과 기쁨은 반드시 반대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주로 인정하며 말씀에 응답하는 가운데, 받은 선물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배울 수 있습니다.

  18. 고난과 소망

    피할 수 있는 고난을 피하면 믿음이 약한 건가요?

    고난을 피했다는 사실만으로 믿음이 약하다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고난 자체가 신앙의 목적은 아니며, 정당한 권리를 사용해 자신을 보호하면서 맡겨진 길을 계속 가는 선택도 가능합니다.

  19. 삶과 일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존귀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나요?

    높은 지위가 먼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귀하게 여기고 어떤 일을 계획하느냐가 중요하며, 아직 그 일을 다 이루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작을 미룰 필요도 없습니다.

  20. 고난과 소망

    누군가 아프다는 이유로 숨은 죄가 있다고 말해도 되나요?

    그렇게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질병이나 고난을 보았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죄와 신앙 상태를 알 수는 없습니다. 원인을 판단하는 말보다 고통받는 사람을 존중하고 필요한 돌봄을 살피는 일이 먼저입니다.

  21. 은혜와 회개

    크게 실패했다면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뜻도 취소된 건가요?

    나의 실패를 곧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이 취소되었다는 증거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후회에 갇혀 자신을 포기하기보다, 지금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며 복이 되는 길을 선택하도록 부름받습니다.

  22. 고난과 소망

    고생을 오래 한 사람은 저절로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나요?

    겪은 고생의 양이나 나이만으로 성숙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고, 그분과의 관계 안에서 인내와 소망을 배우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23. 은혜와 회개

    회개할 마음이 잘 생기지 않는데 내 의지로 억지로 만들어야 하나요?

    회개는 내가 응답해야 할 일이지만, 내 의지의 힘만으로 만들어 내는 성과는 아닙니다. 마음을 바꾸시는 성령의 은혜를 구하며, 그리스도를 따라갈 방향을 다시 바라볼 수 있습니다.

  24. 고난과 소망

    나도 아픔을 겪은 사람인데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나요?

    그럴 수 있습니다. 당신이 겪은 아픔과 그 가운데 받은 위로가 비슷한 어려움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강한 사람만 다른 이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