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서 길을 묻다
질문과 답변
믿음과 일상의 질문을 설교와 함께 읽습니다.
348개의 질문과 답변
은혜와 회개
작은 잘못을 하면 하나님이 곧바로 벌을 주실까 봐 두렵습니다.
하나님을 잘못할 때마다 곧바로 벌을 내리는 분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며 말씀과 권면으로 깨우십니다. 그 인내를 신뢰하면서도 잘못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돌아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삶과 일
믿지 않는 배우자와 함께 살면 제 신앙도 부정해지는 건가요?
배우자의 믿음이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함께하는 삶이 부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관계를 단지 신앙의 오염원으로 보기보다, 내 믿음이 사랑과 거룩한 삶으로 드러날 자리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믿음과 성경
설교를 많이 듣는데 점점 익숙한 말처럼만 들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듣는 양만 늘리기보다 이미 들은 말씀이 내 삶에서 어떤 응답을 얻었는지 살펴야 합니다. 익숙한 내용을 더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마음에 걸렸던 말씀을 다시 붙들고 삶을 고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공동체와 돌봄
제가 돌볼 수 없을 때를 생각해 가족의 돌봄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도 될까요?
돌봄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 곧 사랑이나 믿음의 부족은 아닙니다. 내가 계속 감당할 수 없을 때에도 가족이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관계를 이어 주는 일 역시 책임 있는 사랑입니다.
믿음과 성경
이미 일어난 일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나요?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일을 하나님이 원하신 선한 일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악한 상황에서도 선을 이루실 수 있다는 믿음과, 그 사건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판단은 구별해야 합니다.
기도와 예배
예배 마지막의 축도는 예배가 끝났다는 인사일 뿐인가요?
축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사귐이 우리의 삶에 함께하기를 비는 말씀입니다. 예배의 끝에서 듣지만, 그 은총을 누리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살아갈 시간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고난과 소망
악한 사람이 당장 심판받지 않으면 하나님도 그 일을 괜찮게 여기시는 건가요?
심판이 늦어진다는 사실이 악을 승인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돌이킬 기회를 주며 오래 참으신다는 관점에서 그 시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인내를 악을 덮거나 피해자에게 기다림을 강요하는 이유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삶과 일
저를 자극하고 깎아내리는 말에도 일일이 대답해서 이겨야 하나요?
모든 도발에 즉시 대꾸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로 이기려는 흐름에서 잠시 물러나 하나님께 마음을 말하고, 정말 필요한 말을 분별하는 선택도 할 수 있습니다.
은혜와 회개
설교가 내 잘못을 건드릴 때 화부터 나는 마음을 어떻게 돌아봐야 하나요?
화가 난다는 감정만으로 결론 내리기보다, 그 말씀이 무엇을 드러냈고 내가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찌르는 말씀 앞에서 방어만 하기보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실제로 돌이킬 길을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의와 이웃
위험을 알고도 방치했다면 직접 해치지 않았어도 책임을 돌아봐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내가 직접 해친 것이 아니라는 말만으로 이웃의 안전에 대한 책임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위험을 알고 막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면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 살펴야 합니다.
믿음과 성경
레위기의 부정한 짐승은 오늘도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인가요?
이 규정을 오늘의 음식 금지 목록이나 위생 기준으로 그대로 옮기기보다, 당시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가는 제의적 정결의 규정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달라진 제사의 형식과 여전히 배울 삶의 원리를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의와 이웃
어려운 사람에게 이제 자유롭게 살라고 말하면 자립을 돕는 책임은 끝난 건가요?
자유를 선언하는 말만으로 다시 살아갈 조건이 마련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같은 어려움으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새 출발에 필요한 실제 기반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믿음과 성경
레위기가 월경이나 출산을 부정하다고 말하는 것은 여성이 죄를 지었다는 뜻인가요?
여기서 제의적으로 부정하다는 말과 도덕적인 죄를 지었다는 말은 같지 않습니다. 본문은 남녀의 유출과 출산 뒤의 상태를 제사의 규정 안에서 다루며, 여성의 몸이나 출산 자체를 죄라고 정죄하는 설명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와 증언
나를 비난하던 사람들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지도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들의 어려움을 내 옳음을 증명할 기회로 삼기보다, 생명을 지키고 돕는 책임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잘못을 분별하는 일과 상대가 무너지기를 바라지 않는 태도는 함께 갈 수 있습니다.
믿음과 성경
레위기에서 비슷한 제사 규정이 두 번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같은 제사라도 예물을 드리는 백성과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이 알아야 할 책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반복처럼 보이는 부분을 읽을 때는 누구에게 주어진 말씀인지 먼저 확인하면 차이가 보입니다.
공동체와 돌봄
함께 섬기는 사람을 일을 잘해 주는 인력으로만 평가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동역자는 사역의 성과를 위해 소비하는 수단이 아니라 함께 받은 선물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해 주는지뿐 아니라, 서로가 어떤 관계로 연결되어 있고 어떻게 함께 서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삶과 일
일을 맡길 사람은 실력만 뛰어나면 정직함이 부족해도 괜찮을까요?
공동체의 중요한 일을 맡길 때 정직함은 실력과 별개인 부가 조건이 아닙니다. 맡은 권한을 바르게 사용할 사람인지, 불의한 이익을 거절할 사람인지까지 함께 살펴야 합니다.
공동체와 돌봄
아이가 왜 예배하고 절기를 지켜야 하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답해야 하나요?
질문을 버릇없다고 막기보다, 우리가 누구이며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설명해 주세요. 예배의 행동만 시키는 것과 그 뜻을 함께 배우는 것은 다릅니다.
삶과 일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결정했다면 나쁜 결과에 대한 제 책임은 없나요?
의견을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결정한 사람의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소통은 바른 결정을 위한 과정이며, 그 권한으로 실제 무엇을 선택하고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도 돌아봐야 합니다.
공동체와 돌봄
저도 신앙이 부족한데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려면 먼저 완벽해져야 하나요?
완벽한 부모가 된 뒤에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녀에게만 요구하지 말고, 부모 자신도 말씀 앞에서 배우고 삶으로 응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삶과 일
하나님께 드릴 헌신이라면 가족과 상의하지 않고 약속해도 될까요?
가족의 시간과 재정, 돌봄에 영향을 주는 헌신이라면 함께 책임질 사람과 상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이유가 그 약속을 감당하게 될 가족의 뜻과 형편을 지우지는 않습니다.
공동체와 돌봄
교회의 다음 세대를 위해 계획한다면서 정작 청년들의 의견은 듣지 않아도 될까요?
다음 세대를 위한다면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를 먼저 들어야 합니다. 어른들이 정해 준 자리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의 신앙과 삶을 위한 준비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공동체와 돌봄
상처받은 사람이 아직 용서하지 못할 때 교회가 믿음으로 용서하라고 재촉해도 되나요?
재촉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가 감당할 힘과 선택을 존중하고, 공동체는 잘못을 분명히 다루며 용서가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책임을 먼저 져야 합니다.
공동체와 돌봄
부모님이 나이 들어 같은 말씀을 반복하실 때 공경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요?
부모의 말이 예전처럼 유능하고 유익하게 들릴 때만 귀하게 듣는 것이 공경은 아닙니다. 힘과 권위를 잃어 가는 시기에도 그 존재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들을 시간과 돌봄을 내어드리는 데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