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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에 근거한 답변 · 공동체와 돌봄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은 과거 모습과 직업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않나요?

익숙한 정보가 그 사람의 현재를 모두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오래 알았다는 확신 때문에 지금의 생각과 고민, 변화에 귀를 닫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나이와 직업과 가족 배경을 안다고 해서 지금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아픔을 겪는지까지 아는 것은 아닙니다. 익숙한 사람일수록 이미 정해 놓은 틀 안에서 그의 말과 행동을 해석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을 목수와 이웃 가족의 이름으로만 규정한 고향 사람들의 모습도 그런 질문을 남깁니다. 과거의 정보가 틀리지 않더라도 그것이 현재의 모든 이야기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알고 있다는 확신보다 다시 들을 자리를 먼저 열어야 합니다.

이 문단의 설교 근거
이미 익숙하기에 상대방을 진지하게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이런저런 정보만 갖춰지면, 우리는 그를 다 안다고 착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정한 그 틀 안에서 그를 이해해버립니다.
'마리아의 아들 목수' 2019년 8월 11일 주일 설교 · 2019-08-11 설교 전문에서 이 대목 읽기 →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상대를 낯선 사람처럼 멀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오늘을 진지하게 묻고 존중할 이유가 생깁니다. 지금 어떤 꿈과 고민을 품고 있는지, 예전과 달라진 생각은 없는지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알아야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억지로 캐낼 필요도 없습니다. 익숙함 때문에 결론부터 내리지 않는 태도가 오래된 관계 안에서 사랑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문단의 설교 근거
서로에 대해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만 있고, 기억하고만 있어도, 우리는 서로를 더 온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아들 목수' 2019년 8월 11일 주일 설교 · 2019-08-11 설교 전문에서 이 대목 읽기 →
적용 범위
  • 과거에 확인된 위험이나 책임의 기록을 지우라는 뜻이 아니다. 개인의 사생활 공개를 요구하지 않고 현재의 말을 다시 들을 태도를 다룬다.
이렇게도 물을 수 있어요
  • 오래된 친구를 다 안다는 착각
  • 과거로 사람 판단하기
  • 가족의 변화를 못 보는 이유
  • 직업과 배경으로 사람 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