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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강해 31. 새로운 세대, 새로운 리더십으로의 계승

2022-07-13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21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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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3 수요 성경 강해 ----------------------------- 민수기 27:1~23, 새로운 세대, 새로운 리더십으로의 계승 ​ ​ * 설교 음성파일 : 첨부된 파일을 내려 받으시면 설교 음성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량으로 인해 도입부와 종결부는 생략됐습니다. 원고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파일 220713 (mp3cut.net) .mp3 null 파일 다운로드 ​ ■ 지난주에는 민수기의 두 번째 인구조사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광야 40년 세월을 보내고,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數)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그리고 거기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가, 함께 생각해봤는데요, 민수기 맨 앞부분에 기록된 첫 번째 인구조사와 비교해서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백성들의 숫자가 아니라, 오히려 본문에 드러난 인구조사의 ‘목적’에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조사에서는 전쟁에 나가 싸울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세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었지요. 그래서 스무 살 이상의 남자를 셌습니다. 그런데 이번 두 번째 조사에서는, 그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을 어떻게 분배할 것이냐, 그 분배의 기준으로서 각 지파와 종족의 인구수가 사용되기 때문에, 그래서 백성들의 수를 세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비록 땅을 분배하는 일은, 전쟁에서 일단 이겨야 하고, 시간적으로도 한참 뒤의 미래 사건이지만,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는 이미 일어난 어떤 사건이요, 눈에 보이는 현실로 존재하고 있어서,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만을 믿고, 이미 이긴 줄 알고, 이미 살아있을 줄로 믿고, 백성들을 수를 세서, 그 수대로 땅을 분배하라, 그런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가 담긴 사건이 바로 이 두 번째 인구조사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민수기 27장은, 그러한 두 번째 인구조사의 후속조치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이제부터 가나안 입성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가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본문은 두 가지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므낫세 지파에 속한 슬로브핫이라는 사람의 딸들이, 아버지의 기업을 상속받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자신의 리더십을 이양하는 사건입니다.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동일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요. 옛 세대인 광야세대가 새로운 세대에게, 가나안 세대에게 유산을 물려주고, 또 새로운 세대는 그런 옛 세대의 신앙과 유산을 계승하고, 더 발전시켜 나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차례대로 함께 살펴보겠는데요, 우선 본문 전반부에 나오는 이 슬로브핫의 딸들 이야기부터 생각해보면요, … 므낫세 지파에 슬로브핫이라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모세나 아론 같은 출애굽 1세대이지요. 앞서 26장 인구조사에서, 므낫세 지파의 종족들을 열거할 때도 이 이름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우리는 뭔가 다른 점을 발견했지요. 다른 지파들과는 달리, 아들이 아닌 딸들의 이름이 죽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등장하는 다섯 딸의 이름, 말라와 노아, 호글라와 밀가, 그리고 디르사까지, 슬로브핫의 딸들 이름이 기록됩니다. 그리고 오늘 27장으로 넘어와서, 이 딸들의 사연이 밝혀집니다. 아버지 슬로브핫이 아들 없이 죽었으니, 슬로브핫의 종족에게 분배될 땅이 결국 다른 가문, 다른 지파로 넘어갈 수 있게 된 겁니다. 여기에 대해 딸들이 나서서 모세에게 필요한 조치를 요청하게 됩니다. 사실 한 가문의 가장이 아들 없이 죽게 되면, 원래는 그 아내가 남편의 가장 가까운 형제를 통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것이 당시의 규례입니다. ‘형사취수법’이라고도 하고, ‘고엘 제도’라고도 하지요. 그런데 슬로브핫의 경우는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 이미 아내도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딸 다섯만 낳고 남편과 아내 모두가 출애굽 1세대로서 광야에서 생을 마친 겁니다. 따라서 가문을 잇고 기업을 물려받을 아들을 낳을 방법 자체가 없지요. 이렇게 되면 결국 나중에 이 가문은 소멸하게 됩니다. 아들을 통해서만 대를 잇는 고대의 가부장적 체계 안에서, 딸들은 다른 가문으로 시집을 갈 거고, 결국 슬로브핫이라는 이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사실 당시에는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어요. 오늘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오늘 1절에 이 딸들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성경은 그 위 조상들의 이름을 길게 나열하거든요.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현손이고, 마길의 증손이요, 길르앗의 손자요,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 이런 식으로 기록하지요? 아마 다른 성경 구절에서도 많이 보셨을 겁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우리의 ‘성(姓)’ 대신에 이런 식으로 선조들의 이름을 자기 이름에 죽 붙여 썼습니다. 예컨대 ‘고준석,’ 이게 아니라, 아무개의 현손, 아무개의 증손, 아무개의 손자, 아무개의 아들 준석, 이렇게 이름을 기록한 겁니다. 성 대신에 조상 이름을 죽 열거했어요. 그 돌아가신 선조들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그 후손들을 통해서 자신의 이름이 기억되고 불려짐으로써, 계속해서 나의 존재가 이어지게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슬로브핫은 이것도 불가능하게 됐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각 지파마다, 종족마다, 가문마다 기업을 분배받을 텐데, 슬로브핫 가문은 아예 시작부터 땅을 분배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와 이스라엘 회중에게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참 운이 없고 복이 없는 팔자인가보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우리도 가나안 세대이고, 우리 부모도 출애굽 세대인데, 왜 우리한테는 기업을 주지 않느냐, 우리고 광야를 걸었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 가나안 땅을 분배받을 자격이 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요청합니다. 인구조사를 위해 회막에 모여 있던 이스라엘 온 회중을 향해서 대담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피력했지요. 우선 그녀들은, 아버지 슬로브핫이 다른 출애굽 세대와 마찬가지로 광야에서 평범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않고, 자기 죄로 죽었다는 3절의 이야기는,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을 받지 못할만한 잘못을 한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은 게 아니라, 광야에서 自然死했으니, 우리 가문도 땅을 분배받을 자격이 있다는 겁니다. 비록 아버지가 아들 없이 죽었지만, 딸인 자신들이 낳을 아들들을 통해서, 그러니까 외손자가 되겠지요, 그 아이들을 통해서라도 슬로브핫의 땅과 이름을 이어받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요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은, 만약 이렇게 외손자에게 땅을 분배하게 되면, 이 딸들과 결혼한 남자들에게도, 또 그 가문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슬로브핫의 딸 호글라가 유다 지파의 남자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다고 하면, 그 아들은 당연히 유다지파에 속하는 게 맞지요. 그리고 그 땅 또한 유다지파로 넘어가게 됩니다. 사실상 슬로브핫의 외손자들에게 땅을 분배하는 의미가 사라지지요. 결국 슬로브핫 가문이 소멸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물론 슬로브핫의 딸들은, 그러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다 지파 출신 남자들이지만, 결국 그들이 므낫세 지파로 흡수되어야만 하고, 땅도 유다 지파가 므낫세 지파의 땅으로, 슬로브핫 가문의 땅으로 계속 남아야 한다는 주장이지요. 그러니까 유다 지파와 거기 속한 남자로서는 이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겁니다. 이처럼 오늘 이 문제는, 출애굽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어떤 한 가문의 이름과 기업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과, 남자만이 유업을 물려받는다는 기본 규례가 서로 충돌하는 그런 문제이고, 현실적으로는 이 딸과 결혼하는 남자 가문, 남자 지파의 희생이 필요한, 아주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께 여쭤보지요. “하나님,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습니까? 아들에게만 땅을 주는 규례를 따르려고 하니, 므낫세 지파의 슬로브핫 종족이라는, 이 하나의 출애굽 가문 자체가 땅을 분배받지 못한 채 소멸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고, 반대로 그 딸들에게 기업을 주어서 그 지파와 종족의 땅을 지키려고 하니, 딸에게도 땅을 분배한다는 예외를 둬야 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다른 지파, 다른 종족의 남자가 므낫세 지파, 슬로브핫 가문으로 귀속되어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께 질문한 겁니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은 뭐라고 대답하시지요? 네, 기본적으로 슬로브핫의 딸들의 말이 옳다. 그녀들에게도 땅을 분배해라, 말씀합니다. 그 가문과 기업을 지켜줘야 한다고 하시지요. 그러면서 이것을 하나의 정식규례로서 일반화 시키십니다. 이번만 예외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다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아들 없이 부모가 죽으면, 딸에게 기업을 주고, 딸도 없다면, 아버지의 형제들이 대신 기업을 받고, 아버지의 형제도 없으면 가장 가까운 친족을 찾아서, 그 사람이 기업을 이어 받게 하라, 하나님은 명령합니다. 아들이 땅을 상속하는 관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지파에게 속한 기업, 그 가문에게 주어진 토지의 소유권이, 다른 지파, 다른 가문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라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판결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단순히 딸에게도 기업을 물려줘라, 하는 것 이상의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 얼핏 생각하면, 그냥 아들에게로만 기업을 물려주는 그 대원칙을 지키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편리합니다. 뭐, 가문의 땅은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그냥 딸들은 다른 가문 남자에게 시집가서 그 지파, 그 가문의 땅에 기대어 살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 딸들의 실제 삶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남게 되는 거지요. 그렇게 딸들만 있는 가문의 그 땅은, 그럼 누구 소유가 되느냐, 하는 겁니다. 이제 그 기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요. 이것은 다르게 말하면, 이젠 누구든 그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됐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이제부터는 경제 논리가 통하겠지요. 돈만 있으면, 능력만 있으면 그런 주인 없는 땅을 취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로 치면 경매 형식으로, 단지 조금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겠다는 사람만 나타난다면, 땅의 소유권이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토지는, 하나의 거래 대상이 되지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값없이 주신 기업이 아니라, 그냥 인간들의 소유물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땅을 절대 사고 팔지 말라고 율법에 명시해 놓으셨지요. 토지는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고, 인간은 그저 청지기로서, 사용자이면서 관리자로서만 그 땅을 누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만약 아들 없는 집의 토지가 이렇게 거래되기 시작하면, 그런 본래 율법의 취지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사고 팔 수 있는 거래의 대상으로 토지를 생각하게 되고, 당연히 부를 축적하는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라 내 소유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자리 잡게 되지요. 땅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면, 여러분, 그때부터는 누구나 땅을 부동산으로만 봅니다. 삶의 터전이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잠깐 사용하는 어떤 은혜로운 선물이 아니라, 그냥 부를 축적하는 하나의 수단이 됩니다. 당연히 교묘한 방법이나 어떤 강압적인 힘으로, 남의 토지를 빼앗는 일들도 생기겠지요.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에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습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토지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게 되고, 반대로 기업을 잃고 소작농으로 전락한 사람들이 속출합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일들을 원천적으로 금지하십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땅을 제 맘대로 사고 팔지 못하도록 하시지요. 땅이란, 오직 그걸 분배받은 가문의 ‘기업’으로서, 그 후손에게 물려주는 방식으로만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 이번 사건도 하나님은 이 원칙을 지키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그 기업을 돌려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여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내용만이 아니라, 각 가문과 지파에 속한 토지가 하나님의 기업으로서, 온전히 보존되고 상속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한 지파가 다른 지파의 땅을 빼앗으려고 해선 안 되고, 더 나아가 한 개인이 토지를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매매할 수 없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앞에서 말씀드린 문제가 발생합니다. 슬로브핫의 딸들과 결혼하는 남자들이 자신의 가문과 지파와 기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거지요. 이것도 너무나 큰 문젭니다. 현실적으로 그걸 받아들일 남자가 없겠지요. … 그래서 나중에 민수기 36장, 민수기 맨 마지막 장에 가서 보면 이 문제가 다시 언급됩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슬로브핫의 딸들은 오직 므낫세 지파 안에서만 결혼해라. 그래서 그 기업이 므낫세 지파의 소유로 계속 보전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러면 문제가 많이 완화되지요. 각 지파가 분배 받은 땅에 변화가 생기지 않게 되고, 결혼할 남자도 부담이 별로 없습니다. 실제로 슬로브핫의 딸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숙부의 아들들과 결혼하는데요, 그렇게 슬로브핫 가문의 기업이 그 딸들을 통해, 그 딸들이 낳은 아들을 통해서, 보존되고 상속되게 됩니다. 지금도 요단 강 서편의 여러 지명이 이 슬로브핫 딸들의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성경에도 계속 그 지명들이 등장하는데요, 노아, 호글라, 디르사 등의 이런 지명들은, 그녀들이 분배받은 기업과 연관이 있다고,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이처럼 이번 사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을 분배하고, 그것을 기업으로 보존하는 문제를 담고 있고, 그 과정에서 당시 절대적 약자에 해당하는 여성들의 권리와 생존이 달린 문제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토지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문제가 개입되어 있지요. 그래서 성경도 여기에 대해서 두 번이나, 두 장에 걸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 우리도 여기서 중요한 메시지들을 잘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 우선은 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토지는 모든 생명이 살아가기 위한 근본적인 조건이지요. 땅이 존재하지 않으면 어떤 생명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이나 공기, 햇빛과 똑같은 성격을 가진 것이 토지입니다. 이것들을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지요. 땅도 마찬가집니다. 사람 스스로 더 땅을 만들 수 없습니다. 제한되어 있고, 오직 주어진 것일 뿐입니다. 뭐 간척사업을 해서 일정 부분 땅을 더 넓힌다고는 하지만, 거기에 사용되는 토양 역시 본래의 땅에 속한 것일 뿐이고, 또 그 크기도 너무 제한적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토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선물로 주신 땅을, 오늘날 우리는 마치 내가 주인인 것처럼 맘대로 사용하고 거래합니다. 누구는 수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고, 누구는 평생 단 한 평의 땅도 없이 살아가지요. 그게 당연한 자본주의의 논리인 것처럼 다들 생각합니다만, 성경에 따르면, 사실 이것만큼 비신앙적이고 비인간적인 일도 없습니다. 공기나 햇빛을 그렇게 소유하자고 하면 아마 다들 난리가 날 겁니다. …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모를까,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땅은 내 소유가 아니요, 나는 잠시 그 땅을 사용할 권리를 물려받은,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생명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듯, 우리가 누리는 햇빛과 공기와 물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듯, 우리가 딛고 살아가는 이 땅 역시도, 결코 내 소유물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는 이런 가치관 자체가 용납될 수 없지요. 다들 매매하고 거래하고 축적하는데, 이제 와서 그걸 다 무시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에 의지하여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땅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야 겁니다. 단지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땅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나타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대상으로 토지를 대하게 될 겁니다. … 부동산을 사고 팔아서 막대한 이윤을 남기는 것이 마치 대단한 능력이요, 하나님의 축복인 것처럼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거기서 나오는 이윤 역시, 하나님의 뜻대로, 누군가로부터 땅을 빌려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게 되겠지요. 자기 땅이 없이 누군가의 땅에 기대어 사는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생명을 누리기 힘든 일인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토지가 오직 하나님의 것임을 누누이 강조하십니다. 땅을 사고 팔지 마라. 어쩔 수 없이 사고 팔더라도, 때가 되면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라. 그게 진짜 주인의 뜻이다. 여러분, 이게 희년이지요? 은혜의 해요, 기쁨의 해, 희년은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결정체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생명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토대를 원래대로 되돌려주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회당에서 읽으셨던 이사야 말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이 ‘주의 은혜의 해’가 바로 희년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희년을 선포하고, 그것을 전파하기 위해서라고, 주님은 직접 말씀합니다. 비록 본래 희년의 법 그대로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어떻게 하면 그 희년에 담긴 메시지를 살아낼 수 있을까, 깊이 고민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한 번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그 땅은 너희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서, 그 은혜로 받아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니냐? 그건 내 것이다. 너희는 다만 그 은혜에 깃들어 사는 청지기일 뿐이다. 너희는 본래 애굽의 종이었고, 광야를 떠도는 백성이었다. 땅은 내가 은혜로 주는 기업이지, 너희의 소유가 아니다. 잠깐 그 땅에 딛고 사는 동안, 네 것인 양 주인 노릇하지 마라. 청지기답게 주인의 뜻에 따라 사용하고, 다음 세대에게 잘 넘겨줘라. … 소유권이 바뀌고 땅이 함부로 거래되는 그런 일들을 최대한 피해라. 인간의 경제적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과 분배 원칙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해라. … 하나님은 이번 슬로브핫의 사건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강조하십니다. 오늘 이 사회 속에서 이 말씀을 살아내야 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의 지혜와 믿음을 더하여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출애굽 세대가 아니라, 가나안 세대이고, 이제 하나님의 주된 관심이 바로 그들의 신앙과 삶인 것처럼, 이어지는 오늘 본문의 두 번째 사건,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그 리더십을 넘겨주는 것 역시 다음 세대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관심이 담겨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간단하게만 살펴보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떤 산에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 산이 ‘아바림 산’이라, 이렇게 12절에 나옵니다. 원래 모세가 숨을 거둔 곳은 느보 산인데요, 이 아바림 산은 그 느보 산이 속한 산맥의 이름입니다. 아바림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느보 산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모세가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 오늘 본문에서 이미 말씀합니다. 모세가 가데스바네아, 므리바 물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의와 분노를 드러냈으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지요. 여기서도 다시 한 번 그 말씀을 반복하십니다. 저는 모세가 이번 슬로브핫 사건을 처리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졌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나한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너도 가나안에 들어가서 잘 해보라, 이런 뜻은 아닌가, 모세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요,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너는 여기서 생을 마감할 거다, 말씀하지요. 그러자 모세는 곧바로 이렇게 반응합니다. “하나님, 제 다음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이 백성이 목자 없는 양처럼 되지 않도록, 후계자를 직접 세워주십시오.”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지명하셔서, 모세가 그에게 안수하여 회중 앞에서 후계자로 임명하고, 리더의 존귀함을 그에게로 돌려서, 명실상부한 온 회중의 지도자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그대로 순종하여 여호수아를 세우게 되지요. 어떻습니까, 여러분, 이런 모세의 마음이 참 곱고 귀하지 않습니까? 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그는 백성을 먼저 생각합니다. 이 백성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훗날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며 하신 말씀이기도 하지요.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6) 그러니까 모세의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었던 거지요. 백성들을 위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세는 끝까지 품고 있었습니다. 항상 백성들만 생각한 리더였어요. 백성들의 안녕과 온전한 믿음과 승리가, 삶의 목적이었고, 삶의 중심이었던 거지요. 모세는 그것만 바라보고 산 겁니다. 사람이 무엇을 그 삶의 본질로 놓고 사느냐, 무슨 생각을 내 삶의 중심에 놓고 사느냐, 그게 우리의 인생을, 또 우리 삶의 모습을 결정할 겁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는 어떤 생각이 자리하고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생각을 가득 채우고 있는지요? … 얼마 전에 미국의 반클라이번 콩쿨에서 우승한 임윤찬 군, 여러분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피아노 콩쿨인데, 열여덟 살 우리나라 임윤찬 군이, 대회 역사상 최연소로 우승을 했습니다. 저도 요즘 날마다 그 콩쿨 연주 영상을 계속 돌려보면서, 정말 너무나 감동을 받고 있는데요, … 이 친구가 마지막 수상 결과 발표를 앞두고 인터뷰 한 내용을 제가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이제 곧 심사 결과가 나오는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그랬더니, 이 친구가, “결과는 어떻게 돼도 상관이 없고, 콩쿨 입상보다 내년에 연주 프로그램을 뭘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바흐 골드베르크 연주곡을 칠 생각에 결과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 한국인 가운데 유일하게 결승에 올라가서 떨리지는 않았느냐고도 물으니, 자신은 결승에서 연주할 두 곡, 라흐마니노프와 베토벤이 남긴 음악적 유산을 잘 연주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어서, 다른 걸로 부담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 다 그런 식이에요.) … 그럼 앞으로 어떤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원하느냐, 물으니, 저는 사실은 커리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고, 제가 원하는 것은, 사실은 다 단절하고 (피아노만 치며) 사는 것인데, 그러면 수입이 없다보니, 그래도 활동은 해야 돼서 한다. 그래서 나는 그냥 잘 나가는 그런 피아니스트가 되기는 정말 싫고, (그러면 너무 바빠지니까), 그냥 어떤 좋은 곡들을 더 많이 연주하는 게 더 중요하다, 뭐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럼 도대체 콩쿨에는 왜 나온 거냐, 물어보니까, 내년이면 자신이 성인이 되는데, 내가 지금 음악적으로 얼마나 성숙해져 있는가,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라는 겁니다. … 그 외에도 황당한 답변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그 답변들은 하나 같이, 그의 유일한 관심이 오직 음악, 오직 연주, 누가 날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해주고, 그걸로 얼마나 유명해지고 돈을 벌고, 이런 게 아니라, 오직 피아노, 오직 더 깊은 음악의 세계, 그거 하나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임윤찬 군의 얘기를 들으면서, 평생 예수의 길과 말씀을 생각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또 목회자로서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모세의 관심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그 다음 세대, 그들에게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 그래서 신명기의 그 긴 이야기가 민수기 다음에 또 이어지는 거지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죽는다, 이미 다 결정된 상황이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모세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모세가 숨을 거두기까지. … 그리고 여호수아를 온전하게 세우는 일, 백성들 가운데 여호수아가 어떻게든 존귀하게 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입니다. 사실 모세의 후임자로 일한다는 것, 너무나 힘든 일이지요? 하나님과 대면하여 얘기하던 모세와 달리, 여호수아는 제사장을 통해서야 겨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평범한 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내 전임자가 모세라니, 아마 그보다 더 어려운 사명이 없을 겁니다. 모세는 그래서 더 열심히 여호수아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애썼던 거겠지요. 저는 이런 모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든 신앙의 공통된 사명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항상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그들을 위한 삶이어야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서 슬로브핫의 딸들 이야기도 결국 다음 세대에 대한 말씀이지요. 여호수아를 세우는 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누리지 못하고, 나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그러나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하는 삶, 그게 믿음의 본질이겠다, 싶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했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믿음으로 바라보고, 준비하지만, 그 실상은 다음 세대가 보는 것이지요. 그렇게 믿음의 공동체는 보존되고 발전합니다. 국가도, 회사도, 한 가정도 마찬가집니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국민들이 있어야 그 나라가 계속 온전할 겁니다. 이것이 반대가 돼서 그냥 지금 나만 생각하면 미래가 없지요. 기후위기, 환경위기, 연금제도 등등 산적한 문제가 많잖아요. 지금 우리 자신만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겠지요. 그런 공동체의 미래는 암울할 겁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좋은 교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 교회들이 어떻게 되었지요? … 전부 다 그 터만 남아서 관광지로 존재할 뿐입니다. 에베소 교회, 빌립보 교회, 뭐 데살로니가교회, 다 마찬가지지요. 그렇게나 훌륭하고 좋은 교회들이 그리 오래 가지 못한 채 역사의 유물로 사라졌습니다. 우리고백교회는 어떨까요? 저와 여러분 다음 세대에도 이 교회가 건강하게 자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고백교회가 건재해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그런 교회로 우리고백교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지금 저와 여러분이 무엇을 생각하며 사느냐, 어떤 고민과 기도를 하느냐, 무엇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하느냐, 거기에 달린 문제일 겁니다. 우리 자신의 삶, 우리의 신앙만이 아니라, 그 다음 세대의 신앙과 삶을 위해서 항상 기도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청년들과 학생들, 더 어린아이들이 이 교회 안에서 마음껏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준비와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게 오늘 민수기 27장의 메시지이지요.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 가나안의 미래에 대한 얘깁니다. 저는 본문의 슬로브핫의 딸들을 보면서, 문득 요즘 MZ 세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주 당당하고 지혜롭고, 그러면서도 공정의 문제를 중시하는 우리의 다음 세대 모습이, 이 슬로브핫의 딸들 모습과 많이 오버랩 됩니다.… 모세와 온 회중 앞에서 그 용기가 대단하지요. 그 견고한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공의를 향한 담대한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공동체가 잘 경청하고, 얼마나 리더십들이 잘 반응하느냐, 얼마나 기성세대가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들이 제기한 문제를 풀기 위해 얼마나 하나님께 기도하느냐, 거기에 공동체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기도해야지요. 무슨 일을 하든, 기도가 먼저입니다. (목사는 물론 모든 리더는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모세가 문제를 들고 기도하니, 하나님이 이전엔 없던 새로운 길을 보여주십니다. 율법과 전통이 이미 존재하지만, 하나님이 새로운 말씀을 하십니다. 뜻밖의 상황이 생겨서 옛 전통으로, 옛 부대로는 하나님의 뜻을 담아낼 수 없을 땐, 그 율법을 재해석하는 융통성이 있어야 함을,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주십니다. 모든 법과 전통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지요. 하나님의 법 역시도 인간 현실에 대한 심사숙고 속에 선포되고 새롭게 조율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의 운영과 방향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다음 세대를 먼저 생각하고, 열린 마음과 유연한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모세도 모르는 게 있을 땐 늘 하나님께 질문하지요? 자기 맘대로 판단하지 않고, 기도하면서, 신중하게 다음 세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여기 계신 저와 여러분 모두가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그런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제 가나안 땅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모세의 마음이 동일하게 한 곳으로 모입니다. ‘다음 세대,’ 그들이 아무 어려움 없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 들어가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기업을 누리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내는 것. 그 일을 위해 끝까지 준비하지요. 다음 세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문제를 해결해갑니다. 그리고 그들을 존귀하게 세워주지요. 어떻게든 믿음의 유산, 진리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고, 우리고백교회의 미래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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