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레위기 강해 26. 헌물에 대한 추가 규례
2021-09-01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18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210901 수요 성경 강해
-----------------------------
레위기 27:1~34, 헌물에 대한 추가 규례
* 설교 음성파일 : 첨부된 파일을 다운로드 하시면 음성으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량으로 인해 설교 도입부와 종결부 음성은 생략되었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리고 원고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첨부파일
lev26(1)
.mp3
파일 다운로드
■ 이제 레위기 마지막 장인데요, 그 내용으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특히 서원 예물에 대한 규례가 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의 전체 결론치고는 그 마무리가 조금 애매합니다. 만약 마지막 절에 해당하는 34절, 이것이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이니라, 하는 말씀이 없었다면, 여기 27장에서 레위기서가 끝난다고는 생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지난주 26장이었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복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징계를 받는다는 그 말씀으로 마무리되는 게 훨씬 자연스럽지 않나 생각됩니다. 26장의 마지막 절 역시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규례다, 하는 동일한 말씀이지요. 그렇게 말씀하시고서는 다시 또 이런 내용이 이어져 마무리되는 것은 분명, 조금 어색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이견이 많은 편입니다. 본래 위치가 여기가 아니었다, 이 부분만 나중에 추가된 거다, 이러저런 이야기가 많은데요, 저도 처음 설교를 준비하기 시작했을 땐 조금 의외의 말씀이다, 참 어렵다,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드는 생각은, 정반대입니다. 여기 27장을 통해서 레위기가 정말 멋지게 마무리됐다, 레위기에 담겨 있는 핵심적인 메시지를 이보다 더 잘 갈무리할 수 없을 만큼, 이 27장의 내용은 레위기의 결론으로서 너무나 적합하고 감동적이다, 생각됩니다. 어째서 그런지, 본문을 강해하면서 함께 확인해보고, 설교 말미에 다시 한 번 이 부분에 대해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크게 보면 본문은, 하나님께 내 소유의 일부를 드리는 것에 대한 규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것은 내게 속한 것이니, 반드시 나에게 드려라, 말씀하시는 것도 있고, 사람이 자원하여 하나님께 뭔가를 드리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럴 때 그 헌물을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본문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레위기 맨 앞에 나오는, 이른바 다섯 가지 제사와 한편으로는 연결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구별됩니다. 똑같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제사는 오롯이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그 제물이 모두 태워져서 드려지는 것이고(화목제의 일부만 예외), 본문이 말하는 이 예물은, 그 드려지는 제물의 가치를 그대로 보존해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용된다는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예배와 예물의 차이 정도). 이때의 하나님의 일이란, 주로 성막을 유지, 관리하고, 또 제사장들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것이겠지요. 아무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그리고 예물, 이 두 가지 내용으로 레위기는 시작되고 또 끝나게 됩니다.
이러한 헌물에 있어서 본문이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은, 이른바 서원 예물입니다. 서원은 다 아시지요? 예전에 화목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 번 다룬 적이 있습니다만, 어떤 절박한 상황이나 또 간절히 뭔가를 원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며 하는 일종의 맹세의 기도가 서원입니다. 이것을 이뤄주시면 제가 어떠어떠한 일을 하고, 이러저러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스스로 하나님께 약속하는 거지요.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서원은, 아마도 야곱의 서원일 겁니다. 형을 피해 도망가면서, 벧엘에서 했던 서원이지요. 만약 다시 안전하게 고향 집으로 돌아오게 해 주신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야곱은 서원합니다. 놀랍게도 그러한 내용이 오늘 본문에서도 다뤄지고 있지요.
이처럼 어떤 물건이나 물질을 하나님께 서원의 예물로 드릴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자기 자신이나 또 자녀와 같이, 사람을 하나님께 드릴 때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 아이를 가지지 못했던 한나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서원하여 기도하지요. 아들을 주시면, 그 아이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평생 세상과 구별된 ‘나실인’으로서, ‘하나님께 드려진 자’의 거룩한 삶을 살게 하겠습니다, 서원합니다. 태어나지도 않은 사무엘의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렇게 어머니의 서원기도를 통해 태어난 사무엘은, 젖을 떼자마자 어머니의 품을 떠나, 어릴 적엔 성막에서 봉사하고, 커서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가 되어 하나님과 백성을 섬기다가, 결국에는 사울 왕과 다윗 왕을 직접 기름 부어 세우는 제사장이요 또한 선지자로서, 끝까지 하나님의 충성된 종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사사는 물론 제사장과 선지자까지 감당했던,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종이 그렇게 서원 기도를 통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누가 서원으로 하나님께 드려졌다고 해서, 아무나 이렇게 성막을 섬기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사무엘은 말씀드린 것처럼 레위 지파의 사람이기에 그것이 가능한 일이고,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람 목숨을 바치는 건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본문은, 사람을 서원하여 드리려면 그 사람의 몸값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혹시 ‘입다’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삼손이나 사무엘과 같은 사사 중 한 명인데요, 그가 암몬과의 전쟁에 나가면서,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이번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시면, 집으로 돌아올 때 처음 영접하러 나오는 그것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이야기합니다(삿 11:34~40). 아마 그가 염두에 뒀던 것이 가축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사실 이것은 너무나 부주의하고 잘못된 서원이지요. 누가 나올 줄 알고 그런 서원을 하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돌아오는 자신을 가장 먼저 나와 맞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무남독녀였습니다. 물론 서원을 하긴 했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인신제사를 가장 가증하게 여기시는 분이시니, 당연히 오늘 말씀처럼 물질로 바꾸어 드렸어야 했을 텐데, 입다는 곧이곧대로 딸을 제물로 바치지요. 자기의 서원에 충실하려고 했던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요, 엄연히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숭배나 다름이 없는 일입니다. 물론 애초에 서원의 내용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지만 말입니다.
하나님은 만약 사람을 서원하여 드리게 되면, 그 사람의 몸값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본문은 이야기합니다. 그럼 얼마를 드려야 하느냐, 당시 통용되던 종의 몸값을 드려야 하는데요, 3절부터 7절까지 그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종의 몸값이기 때문에 당연히 노동력을 기준으로 값이 매겨져서, 나이와 성별에 따라 그 값이 달라집니다. 가장 왕성하게 일할 수 있는 성인 남성의 몸값이 가장 비싸서, 은 50세겔입니다. 1세겔이 노동자의 한 달 품삯이었으니까, 50세겔이면 오늘 기준으로 대략 4년 치 연봉 정도 됩니다.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지요. 서원이라는 게 본래 그렇지만, 특히나 사람을 두고는 쉽게 서원하지 말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다만 서원한 사람이 가난해서 그 값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기는데요, 그럴 땐 제사장이 나서서 그 형편대로 값을 정하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요즘에도 부모가 자녀를, 하나님의 종으로, 목사나 선교사로 서원하여 드리는 경우가 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에게도 자신이 선택할 자유가 있는 것인데, 만약 나중에 자녀가 그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고 하면, 부모는 하나님 앞에 거짓 서원을 한 셈이 되고 말지요. 구약에서처럼 대신 예물로 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입니다. 자녀든 뭐든 서원은 매우 신중하게 해야 하고, 일단 서원을 했다면 반드시 신실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메시지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가장 흔한 서원의 예물이라면 아마도 가축이었을 겁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제물로도 사용했으니 예물로도 안성맞춤이지요. 9절부터 13절이 그 내용인데요, 10절에 보면 “그것을 변경하여 우열 간 바꾸지 못할 것이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변경하고 바꾼다는 게 무슨 말일까 싶은데, 아마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시면 되겠습니다. 예컨대 임신한 소나 양의 새끼 중에서 한 마리를 서원 예물로 두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겁니다. 기도에 응답해주시면,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송아지 혹은 가장 건강한 새끼 양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셔서, 이제 서원대로 하나님께 한 마리를 드리면 되는데, 보니까 서원한 그 송아지나 새끼 양이, 너무 탐이 나는 거지요. 가장 예쁘고, 건강하고, 상태도 좋아서, 순간 서원자의 마음이 흔들린 겁니다. 그래서 그것 대신 다른 걸로 하나님께 드리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성경은, 원래 서원했던 것은 물론 바꿔서 드리려고 한 것까지, 두 마리 모두 거룩하게 된다고, 둘 다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본인만 알게 서원을 했다고 한다면, 스스로 돌이키지 않는 한 이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그냥 바꿔서 드리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겠지요. 결국은 드리는 사람의 중심의 문제입니다. … 그런데 반대로 내가 정한 그 서원 예물이 부정한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태어나서 보니 몸의 어느 부분이 잘못되어 있거나, 혹은 서원을 할 때 처음부터 하나님께는 드릴 수 없는 부정한 짐승, 예컨대 나귀나 낙타 같은 짐승을 드리기로 서원할 수도 있지요. 제물로는 안 되지만, 서원 예물로는 드릴 수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제사장이 보고 그 값을 매겨서 돈으로 대신하여 드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13절에 보면, “만일 그가 그것을 무르려면”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무르다’라는 말, 기억나시지요? 히브리어 동사 ‘가알’인데요, 이 단어가 희한하게 우리말과 용례가 같습니다. 이미 행해진 일을 이전 상태로 되돌리거나 취소한다는 뜻도 있고, 일정한 값을 치르고 그것을 되찾아온다는 뜻(속량)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서원 예물도 무를 수 있다고 말씀하는데요, 서원 자체를 취소하는 게 아니라, 드리기로 한 것을 다른 것으로 대신 무르는 것, 속량하는 걸 의미합니다. 예컨대 처음 나온 송아지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했는데, 어떤 이유로 인해서 그걸 반드시 직접 길러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이렇게 마음이 바뀌게 되면, 그 송아지 값의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돈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그 예물을 무를 수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이것은 가축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서원 예물에 다 해당하는 공통의 기준인데요, 어떤 것을 무르기 위해서는 오분의 일을 추가해서, 120%의 값을 치르면 됩니다.
14절 이하에 보면, 이번에는 집이나 밭을 하나님께 서원하여 드리는 경우에 대한 말씀입니다. 자신의 기업 가운데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건데요, 사실 토지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해도, 소유권만 잠시 넘어가는 것뿐이지, 그 토지를 제사장이 직접 경작한다든가, 다른 누구에게 되판다든가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제사장들은 성막에서 다 따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었겠지요. 아마도 제 생각에는, 토지를 드린 그가, 일단 그 땅에서 계속해서 농사를 짓고, 마치 소작농처럼, 그 땅의 소출 가운데 일정 부분을 매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어쨌든 본문을 보면, 이 부분은 특히 조금 더 복잡하고 내용도 긴데요, 이유가 있지요. 밭과 같은 토지를 서원하여 드릴 때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토지의 매매가 무효화되고, 각각의 땅이 본래의 주인에게로 되돌아가는, 희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희년은 하나님이 가장 중시하는 절기 중 하나이지요. 심지어 하나님도 희년을 존중하셔서, 설사 누가 하나님께 토지를 예물로 드렸을지라도, 희년이 되면 본래의 주인에게로 소유권을 넘겨주라고 하십니다. 아울러 원래 내 것이 아닌 땅,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서 내가 돈을 주고 사서 가지고 있는 땅, 희년이 되면 다시 본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그런 땅을 하나님께 서원 예물로 드릴 수도 있을 텐데, 이 경우에도 희년이 되면 하나님께 드린 그 사람이 아니라, 본래의 주인에게도 되돌아갑니다.
사실 토지를 매매할 때 그 땅값이라는 것도 결국 희년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말씀드린 것처럼, 어느 토지든, 얼마의 값을 받았든, 희년이 되면 다시 원래 주인에게 소유권이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크기의 땅이라고 해도, 희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면 그 값도 더 비쌀 것이고, 희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면, 그만큼 그 땅의 가치는 줄어들 수밖에 없겠지요. 하나님께 예물로 드린 토지의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으로 토지의 값은, 보리 한 호멜을 뿌릴 수 있는 크기, 이걸 성경은 ‘호멜지기’라고 표현했는데요(16절), 그 정도 크기의 땅이 은 오십 세겔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한 호멜이면 대략 150~200kg 정도라고 하는데요, 이 정도 씨를 뿌릴 수 있는 땅의 크기가 당시엔 어느 정도였는지, 지금으로선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어쨌든 한 호멜지기 땅의 온전한 가치가 은 오십 세겔이고, 다음 희년까지 얼마나 남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감가상각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서원 예물로 드린 땅을 무를 때에도 20%의 가치를 더하여 드려야만 가능한 것은 동일합니다.
여기까지가 서원 예물에 관한 내용이고, 26절부터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기서는 아예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것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씀합니다. 예컨대 26절은, 가축의 처음 난 것에 대해 언급하는데요, 그것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서원을 한다거나 해서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이미 출애굽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지요. 애굽의 마지막 재앙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심으로써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 그 생명과 구원의 주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행위로서,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처음 난 것을 하나님께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정결한 짐승이든 부정한 짐승이든 모든 생명의 처음 것은 하나님의 것인데요, 사람은 은 다섯 세겔을 드림으로 대속합니다. 짐승은 모두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데요,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부정한 짐승, 예컨대 나귀 같은 경우에는 어린 양으로 대속하여 드립니다. 어쨌든 이미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을 구별하여 드릴 순 없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것이요, 이미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하나님께 드린다, 이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예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가리켜 히브리어로 ‘헤렘’이라고 합니다. ‘온전히(특별히) 바쳐진 것’,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처음 난 생명’처럼 본래부터 ‘헤렘’인 것도 있겠지만, 뭔가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이것이 ‘헤렘’입니다,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되면 어떤 경우에도 그것은 무를 수 없게 됩니다. ‘헤렘’으로 드릴 땐 더욱 신중해야 하겠지요. … 이러한 ‘헤렘’의 특별한 경우 중 하나가, 거룩한 전쟁에서 획득한 전리품이나 포로 같은 것입니다. 모든 전쟁의 전리품이 다 ‘헤렘’인 것은 아니고, 그 땅이 하나님의 거룩한 땅임을 선언하고, 기존의 우상과 그것을 섬기는 민족을 쫓아내는, 이른바 거룩한 전쟁의 경우에만 해당이 되는데요, 예컨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전쟁을 치를 때, 하나님이 친히 그 전쟁의 모든 전리품을 ‘헤렘’으로 선포하십니다. 이러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돼서 사람은 가질 수 없게 되는데요, 여리고 전투에서 승리한 후 아간이라는 사람이 이 ‘헤렘’에 손을 댔다가 결국 죽임을 당한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수 6:17~19).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진 것, ‘헤렘’으로 구별된 것들은 어떤 경우에도 팔거나, 돈으로 바꾸어 드리거나 혹은 무르지 못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끝으로 30절 이하에는 십일조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요, 땅에서 거둔 소출이나 기르는 가축의 십분의 일이 하나님의 것이니, 성물로 구별하라고 하십니다. 소나 양처럼 가축의 십일조를 드릴 땐, 자의로 열 마리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지나가게 해서, 그 통과하는 열 번째 것마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지요. 하나님께 드릴 것을 우열 간에 가려서 스스로 선택하지 말고, 그냥 임의로 순서에 따라 정하여 드림으로써,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만약 굳이 그것 아닌 다른 것으로 드리고 싶으면, 앞에서와 같이 오분의 일의 값을 더하여 드리면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어지는 34절이 레위기 전체의 마지막 절입니다. 이 모든 말씀이,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이라는 말로, 레위기가 마무리되는데요, 어떻습니까, 여러분. 레위기의 전체 말씀이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서원의 예물, 그리고 ‘헤렘’이라고 하는, 본래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지극히 거룩한 예물에 대한 내용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어떻게 느껴지시는지요? 뭔가 어색하고 애매하게 끝나는 것 같습니까? 아니면 뭐라고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레위기 전체의 주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십니까? 네, 아마 제가 느낀 것처럼 후자일 것입니다. 결국 레위기의 주제는 거룩, 다시 말해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존재와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 27장 본문의 내용 자체가, 바로 그렇게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예물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하나님의 것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드려진 일종의 서원 예물 같은 존재라고 할 수도 있겠고,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진 백성, 그래서 다시 무르거나 취소할 수 없는, 하나님의 ‘헤렘’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예물인 셈이지요. 비록 태워져 하나님께 올려지는, 그런 제물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제물, 산 제물,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거룩한 산 제물로서, 이미 하나님께 드려져 있는 존재들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저와 여러분처럼 말입니다. … 그렇게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자들이 살아내야 할 삶의 규례, 믿음의 규례가 바로 레위기입니다. 하나님은 이 레위기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며, 하나님을 닮은 백성임을 세상에 드러내라고,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며, 세상을 복 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특별히 ‘성별(聖別, 코데쉬 라도나이)’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거룩하게 구별했다, 하는 뜻인데요, 그렇게 드려진 물건이라는 뜻의 ‘성물’이라는 표현도 자주 나옵니다. ‘성별’이라는 단어는 본문 전체에 걸쳐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만(12, 14, 16, 17, 18, 19, 22, 26절 등), 사실 이 표현은 레위기 전체에서 여기 27장에만 등장하는 아주 특별한 표현입니다. ‘구별’ 자체가 ‘거룩’이라는 뜻인데, ‘거룩하게 구별했다’고 해서, 한 번 더 그것을 강조한 셈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존재와 삶이 정확히 그렇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속량하사, 하나님의 것으로 성별한 백성이지요. 그런 그들이 살아내야 할 거룩한 삶의 모습을 가장 분명하게 기록한 책이 바로 레위기입니다.
그리고 그 책은 다시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강조하는 오늘 말씀으로 마무리됩니다.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 26장의 말씀이 아니라, 지금 그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 27장의 말씀으로 레위기는 끝납니다. 그렇게 성별된 그들의 삶 자체가 가장 큰 복이요, 그것을 믿고 순종하는 삶이, 곧 세상을 복 되게 하는, 복의 근원 된 삶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구별하심으로, 반드시 우리를 지키시며, 세상의 복이 되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했다는 것은 그리 가벼운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운명을 하나님이 친히 주관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며, 우리의 삶을 생명의 충만함으로 채우시겠다는 약속이, 하나님의 소유 된 우리에게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고, 경외함으로, 세상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 27장은 레위기를 마무리하는 장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정말 완벽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인 ‘거룩’의 의미가 무엇인지, 구별된 서원의 예물과 ‘헤렘’의 예물을 통해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의 시작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였지요. 제물을 도살하고 태워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했다면, 레위기의 끝은 어떻습니까? 살아있는 제사, 구별된 삶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단지 제사장들만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살아있는 제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자로 산다고,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이 또한 우리가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레위기 전체를 짧게 갈무리하면서 설교를 마칠까 합니다. 레위기는 본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로 내려오셔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며, 그들 안에 두루 행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인간이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그 두려운 임재 앞에서 살아가는 삶,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을 닮아갈 것인가, 하는 말씀들이 레위기를 통해 선포됐습니다.
물론 레위기의 모든 규례는, 수천 년 전 고대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한 말씀이고, 그래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고, 또 직접적으로 우리 삶의 자리에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저도 많이 부족해서, 여러분이 충분히 이해하고 은혜를 받으실 수 있도록 잘 설명하지 못한 부분도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레위기를 이제 마치면서, 여러분 안에 이런 마음이 든다면 설교자로서 저는 충분히 감사할 것 같습니다. 레위기가 그냥 어렵고 힘든 말씀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이해하면 할수록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마치 보화와 같이 놀랍고 귀하게 다가오고, 그래서 그 어떤 성경보다 우리의 신앙과 삶에 대해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그런 고백이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존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였기를 소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지만, 우리 역시 이 부분을 자주 놓치고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내 삶의 주인이 결국 나 자신이고, 내 뜻대로 이루어지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성도들 역시 비슷하지요. 단지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고, 그렇게 하나님이 원하는 제사만 잘 드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삶 전부가 이미 하나님께 드려진 거룩한 산 제물이라고 말씀하시고, 우리가 그 부르심 앞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가장 자유하고, 가장 영광스러운 삶을 누리게 된다고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믿어지고, 기억되고, 살아져서, 하나님이 약속한 모든 은혜와 복을 만족하고 즐거워하도록 충만히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