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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하나님' 2016년 4월 27일 수요 기도 모임 설교

2016-04-27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4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60427 수요 기도 모임 (13) --------------------------------------------- 사도행전 14장 8~15절,  살아계신 하나님 * 설교 음성파일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60427.mp3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우리가 예배나 기도를 드릴 때 자주 생각 없이 하는 잘못된 표현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표현이 있습니다. 물론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표현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이고, 성경 여러 곳에도 하나님을 그렇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에서도, 바울은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정확히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2인칭의 관계에서 사용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직접 부를 때는, 얘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직 정정히 살아계신 어머니, 아버지 앞에서, 살아계신 어머니, 살아계신 아버지, 이렇게 부른다면, 뭔가 이상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해보니, 저도 기도할 때 ‘지금도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종종 썼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이건 더 이상한 표현입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잘 살아계셨지만,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른다는 듯한 뉘앙스도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진심을 담아, ‘나의 하나님’ 혹은 나의 주님‘ 하고 부르는 그것이, 훨씬 더 주님의 살아계심을 온전히 고백하는 말이 될 것입니다. 사실 언어의 문제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실제 삶이 문제지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살아계시지 않은 것처럼 대하고 살 때가 참 많습니다. CCTV는 두려워해도, 하나님의 시선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고, 죄를 범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죽은 것처럼 절망하고, 낙심하며, 한숨을 쉽니다. ‘나의 주님,’ ‘내 하나님’ 하고 부르며 주님과 살가운 대화를 하지 못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열심히 말은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유신론자이지만, 우리는 어쩌면 삶의 실제적인 차원에서는 무신론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절절하게 느끼십니까? 저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기도할 때 느낍니다. 하나님, 하고 부르며 주님께 나아가면, ‘그래 우리 아들, 나 여기 있다.’하는 주님의 음성이 느껴집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러실 겁니다. 그래서 기도는, 짧든 길든,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가장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다만 문제는, 우리의 기도가 늘 너무 늦은 시간에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늦게, 보통 내가 생각한 방법이나 수단이 다 잘 안 되었을 때, 비로소 최후의 카드로 기도에 의지하곤 합니다. ‘그래, 이젠 어쩔 수 없네, 한 번 기도라도 해 봐야겠다.’는 모습일 때가 참 많습니다. 물론 기도를 생각하지도 않고, 스스로 어쩔 수 없다고 심판해버리는 경우도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그럴 때 보면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말도 다 헛것입니다. 그냥 무지할 뿐이며, 단지 어리석을 뿐입니다. 정말 나에게 유익한 것, 이익이 되는 것, 정말 나에게 급한 것을, 하나님을 믿는다는 성도들조차, 실행에 옮기지 않습니다. 어떤 목사님 말마따나, 이 세상에선 나도 내 편이 아닌 겁니다. 사탄은 그런 우리가 참 고마울 겁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스리고 통치하는 권세를 가지고도,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도, 옛 아담과 하와처럼, 늘 사탄 자신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우리를 보면서 즐거워할 것입니다. 꾸짖을 수 있고, 내쫓을 수 있는 자신을 오히려 숭배하고 섬기며, 염려하는 우리를 보면서, 사탄은 다행스러워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 여전히 아파하고 계시겠지요. 이 시간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해 조금 더 가까이 나아가십시다. 하나님을 최후의 수단으로 삼지 말고, 가장 편한 친구로 사귀어 사십시다. 이 시간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어떤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낼지 기대하며, 기쁨으로 간구하십시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주님이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이 시간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주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모두 행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잠깐 기도합시다.
↑ 설교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