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유혹에 빠지지 않게' 2016년 1월 13일 수요기도모임 설교
2016-01-13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4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60113 수요 기도 모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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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2장 39~44절, 유혹에 빠지지 않게
* 설교 음성파일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60113.mp3
맹추위가 이어지고 있는 오늘, 기도하러 오시는 길, 그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으리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 세상은 기도하지 못할 조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래서 기도할 수 없고, 저래서 기도할 수 없고…. 핑계를 대자면 온통 기도하지 못할 이유뿐입니다. 반대로 기도할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습니다. 더 정확히는, 기도할 이유를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이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시는 것에 대해, 성경은 39절에서, ‘습관을 따라’라고 말합니다. 늘 하시던 대로,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주님이 기도의 자리를 지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도 기도하기 어려운 조건이 너무나 많았을 겁니다. 늘 수면이 부족했던 주님과 제자들이니, 기도보단 잠이 더 필요했을 겁니다. 43절에 기도하는 예수님을 천사가 와서 힘을 더하여 도왔다는 말씀은, 그만큼 주님이 기도하기에 힘에 부쳐하셨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런 주님이 습관을 따라 기도의 자리로 가십니다. 기도하지 못할 이유야 셀 수 없이 많기에, 그런 이유가 아닌 오직 하나의 이유, 기도의 습관을 따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습관을 따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습관을 따라 숨을 쉬듯, 습관을 따라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그리고 오늘 이 기도를 주님의 천사가 도우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본문에는 기도하러 ‘제자들’이 따라갔다고 39절이 밝히지만, 다른 복음서에 보면, 주님이 기도의 자리까지 함께 데리고 간 제자는, 단 세 명,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머지 제자들은 더 멀리서 그저 앉아 쉬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겁니다. 고독한 사명의 길을 잘 보여줍니다. 40절에 보면 주님은, 데리고 간 이 세 사람에게는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한 가지 기도의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유혹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때 하신 주님의 기도가 기록된 본문 42절이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기도는, 앞으로 제자들이 빠지게 될 유혹, 그리고 주님의 유혹과 우리의 유혹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또 그것을 위해 애쓰게 되는 유혹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 거칠게 요약한다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내 멋대로 살고자 하는 유혹이라 하겠습니다.
순서지의 두 번째 말씀, 누가복음 21장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내 멋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빠지게 되는 여러 유혹들에 대해 주님은,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공동번역은 이를,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고 옮겼는데요, 삶이 좋을 땐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유혹에 빠지게 되고, 반대로 삶이 어려울 땐, 생활의 염려라는 유혹에 빠지게 됨을 경고하셨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기도 못할 이유로 가득합니다.
그러한 유혹에 빠진 상태를 주님은, 마음이 둔하여졌다고 말씀합니다.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관한 감각이 무뎌지고, 유혹에 빠진 자신의 상태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속적으로 선포되고, 꿈이나 주변의 소리를 비롯한 갖가지 sign을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주셔도, 둔감해진 영혼은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그때 필요한 영혼의 각성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해야만 자신의 상태를 바라볼 수 있고, 기도해야만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피곤하고 지친 제자들은 결국 그 밤에 기도하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집니다. 피곤해서 그랬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3년 간 함께 했던 주님의 마지막을,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던 주님의 그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했고, 그 주님을 버리고, 외면하는 것도 모자라,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일이 있기 바로 전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위해 기도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베드로가 한 말은, 저는 주님과 함께 옥에도 가고, 죽는 자리도 가기로 ‘각오’했다는 거였습니다. 베드로는 각오했고, 주님은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은 올 한 해를 시작하며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각오하지 말고, 기도하십시다. 우리의 삶이 각오로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의 믿음의 싸움이 각오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다. 유혹에 넘어지고, 마음이 둔해지고 난 뒤에 기도하지 말고, 주님처럼 기도로 유혹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이루는 삶을 습관으로 삼으십시다.
기도하기 힘든 삶임을 저도 잘 압니다. 그래도 기도하십시다. 천사가 예수께 힘을 더하시듯, 저와 여러분의 기도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잠시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