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근거한 답변 · 고난과 소망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은 지금까지 한 수고가 모두 헛되었다는 뜻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수고와 인내를 아시면서도 다시 돌아보아야 할 지점을 말씀하십니다. 회복의 권면을 과거 전체의 부정으로 듣기보다, 어디에서 사랑을 잃어 갔는지 살피는 초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말씀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책망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 게으르지 않았던 모습을 먼저 아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을 그동안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판정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충실히 감당한 시간이 있었어도 다시 살펴야 할 부분은 생길 수 있습니다. 인정과 권면을 함께 들을 때, 자신을 전부 무너뜨리지 않고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 문단의 설교 근거
주님이 에베소 교회의 수고와 인내와 열정과 열매를 다 알고 계시다고 하십니다.
잘 못하기만 해서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온전케 하시기 위해 그 칭찬의 기회를 통해 책망도 함께 주시는 것입니다.
회복은 예전과 똑같은 감정을 당장 재현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어떤 어려움과 피로 속에서 말씀과 사랑의 길에서 멀어졌는지 차분히 돌아보고, 다시 순종할 지점을 찾는 일입니다. 모든 침체를 게으름 하나로 단정할 수 없듯, 자신을 향한 책망만으로 회복을 밀어붙일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이 지난 수고를 아신다는 사실을 붙들고, 지금의 삶에서 돌아설 한 걸음을 찾으십시오. 회복의 말씀이 절망의 끝이 아니라 소망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문단의 설교 근거
그저 게으름 때문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어려움이나 고난, 또 영적인 피로가 쌓여서, 우리 입장에서는 불가피하게 잠시 은혜로부터 멀어질 때가 생기곤 합니다.
주님의 경고와 권면이 소망 가운데 주시는 회복의 말씀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수고와 인내와 주님을 향한 사랑을 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적용 범위
- 감정의 변화나 피로를 곧 죄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예전 활동량의 복원을 회복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이렇게도 물을 수 있어요
- 처음 사랑을 버렸다면 지난 신앙은 다 가짜였나요
- 회복하라는 말을 들으면 그동안의 수고가 허무해요
- 열심히 섬겼는데 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나요
- 처음 사랑과 이미 한 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