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근거한 답변 · 기도와 예배
나를 해치는 사람이 망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도 되나요?
억울함을 하나님께 말할 수 있지만, 상대의 파멸을 기도의 최종 목적에 둘 필요는 없습니다. 해로운 일이 멈추고 공의가 이루어지기를 구하면서도,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기다림과 긍휼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가 잘못했다고 해서 그가 무너지는 모습을 즐기는 마음까지 옳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앗수르의 심판을 읽을 때에도, 먼저 그 백성을 아끼고 기다리신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적의 궤멸을 직접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은 기도의 방향을 돌아보게 합니다. 악을 악이라고 말하고 보호를 구하는 일과, 상대의 파멸 자체를 내 만족으로 삼는 일은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 문단의 설교 근거
저는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단 한 번도 적들을 궤멸시켜 달라고 직접적으로 기도하지 않은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지금 원수를 사랑할 마음이 없다면 그 상태부터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가져가십시오. 다만 내 분노가 하나님의 뜻 전부라고 단정하지 말고, 나를 지켜 주시며 상대의 악도 멈추고 돌이켜지기를 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기다림은 잘못의 책임을 지우지 않지만, 우리가 그 사람을 미움의 대상으로만 고정하지 않게 합니다. 보호나 책임 요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보복의 욕망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이 문단의 설교 근거
설사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되는 날이 온다고 하여도, 그래도 우리의 기도는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도여야 하지 않을까, 오늘 히스기야를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적용 범위
- 피해를 참거나 가해자와 다시 접촉하라는 요구가 아니며 특정인의 심판을 예언하지 않는다.
이렇게도 물을 수 있어요
- 원수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기도
- 미운 사람이 벌받게 기도해도 되나요
- 나를 괴롭힌 사람을 위한 기도
- 복수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