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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2)" 2015년 1월 5일 새벽 설교

2015-01-05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6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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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05 월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24장 1~3절,  이사야 강해196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2)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105.mp3 이사야서 백아흔여섯 번째 말씀으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2)’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말씀을 나누면서, 이사야가 굳이 이 대목, 그러니까 설교의 제목이기도 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족에 불과한 이 말이 굳이 여기 들어가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라면, 이 말은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그리고 그럴 것이라 믿어질 수도 없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가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을, 그리고 저 하늘을 만드신 분이 하신 말씀이기에, 우리는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식대로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새로워지게 될 것이라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또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늘 심드렁하고 무던해지기가 일쑤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또 그렇게 하실 수도 있는 분임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또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분인지를, 그래서 이러한 죄와 악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결코 빠르고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영악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분명 하나님은 심판에 더디고, 긍휼에 빠르신 분입니다.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직접 하신 말씀처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십니다. 죄에 대한 심판도 늘 그 죄가 사람과 그 사람이 살아가는 땅 안에 가득해질 때까지, 주님은 참고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읽는 개정 성경에서는 사라졌지만, 바로 이전 개역 성경에는 등장했던 표현 중에 ‘죄가 세상에 관영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관영. 貫盈. 온통 가득하다는 의미의 이 관영이라는 말이, 노아의 홍수 직전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하신 탄식 가운데 등장합니다. 창세기 6장 5절이지요.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죄가 땅에 가득할 때까지, 참으시며, 마지막 순간까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신 겁니다. 영화 ‘엑소더스’ 많이들 보셨습니다만, 애굽에서 고통 받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 자그마치 430년 동안이나 애굽에 머물며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해야 했는데요, 왜 그 긴 시간이 필요했는가, 어째서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백성들을 더 빨리 구해주시지 않았는가? 그 백성들도, 그리고 오늘 그 역사를 보고 있는 우리도 한 번쯤 질문하게 됩니다.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창세기 15장 13절부터 16절까지의 말씀에 있습니다. 한 번 찾아가 보실까요? “13.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아멘. 아직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내려가기 훨씬 전부터 이미 하나님은 이러한 말씀을 이스라엘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전해두고 계셨습니다. 듣는 아브라함이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낯선 이야기였겠지만 말입니다. 하나님은 왜 ‘사 대’ 약 400년의 시간이 필요한 지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지금 가나안 땅에서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땅의 백성들도 이유 없이 심판받아서는 안 되며, 그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기회를 충분히 가져야 하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고난도 허락하시고 기다리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그들이 돌아올 가능성은 결코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예상하시는 대로 그들은 결국 죄가 관영할 때까지, 죄가 그 땅을 완전히, 가득 채울 때까지, 회개하지도, 또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분명 기회는 필요하다고 여기셨고, 작은 가능성이지만, 그 가능성에도 희망을 거셨습니다. 늘 죄의 유혹 앞에 연약한 저와 여러분을 향해 오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계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의 가장 첫 번째 속성이 ‘오래 참는 것’(고전13:4)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지요. 그렇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참는 데 선수이십니다. 주님이 그런 분이 아니셨다면, 지난주 새벽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오늘날 80세까지 살고 있을 수도 없었을 겁니다. 오늘도 우리의 연약함과 죄에 대하여 한없는 긍휼로 인내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우리가 이 아침에 여기 있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내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성도들이 견뎌야 할 고난도 있음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하나님의 백성도 하나님과 함께 인내하도록 초청받습니다. 내가 싫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역시 그 또한 하나님의 사랑하는 한 영혼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 주님이 생명 주셔서 구원하실 사람입니다. 우리랑 똑같은 주님의 아들, 딸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의 기회가 있어야 하고,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님의 인내가 베풀어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때로 먼저 믿은 우리에게 주님의 그 고난에 함께 하자고 부르실 때가 있습니다. 죄를 바라보시며, 죄에 눌린 백성들을 안타깝게 바라보시며, 그들을 기다리시는 그 주님의 기다림에 우리도 같이 머물러 주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금방 심판하실 수도 있지만, 금방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일하실 수도 있지만, 주님은 그 심판의 때를 조금 더 미루시면서까지, 그래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속히 끝나지 않게 하시면서까지, 주님은 가능하면 모든 백성이 구원을 얻는 자리로 나아올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를 주님의 그 기다림에 참여케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돌아 온 동생 탕자를 보며 아버지에게 원망하는 큰 아들을 향해,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지 않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이 항상 나와 함께 계시며, 주님의 모든 것을 다 내게 함께 누리도록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고, 지금 내가 당하는 고난 앞에 하나님의 심판이 더디고 지체되어 임할지라도, 부디 주님의 마음 헤아려 그 주님의 인내 안에 머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그리고 이번 한 주의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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