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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직하거나 쌓아두지 아니하리니" 2014년 12월 23일 새벽 설교

2014-12-23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6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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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23 화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23장 17~18절,  이사야 강해189  간직하거나 쌓아두지 아니하리니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41223.mp3    이사야서 백여든아홉 번째 말씀으로, ‘간직하거나 쌓아두지 아니하리니’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저희 가정 같은 경우, 집의 살림과 가계부를 제가 맡아 하고 있는 관계로, 가정의 수입과 지출에 관한 항목을 제가 거의 외우고 있다시피 합니다. 요즘 나온 인터넷 상의 가계부들이, 그런 여러 분석이나 비교를 쉽게 만들어 주는 좋은 기능들을 제공해 주고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데요, 어디에 얼마가 들어가는지, 또 이번 달에는 어느 부분의 지출이 많았는지, 수시로 점검을 하곤 합니다. 돈지갑을 회개하기 전에는 아직 온전히 회개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비슷한 의미로, 저는 여러분이 말씀을 묵상하듯, 여러분의 가계부를 반드시 묵상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제 개인적으로 청년의 때를 돌아보며 후회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가계부를 쓰지 않았던 것에 대한 후회입니다. 그때는 이러저러한 핑계를 들어 가계부를 안 쓰고 살았는데요, 결혼을 해서 일일이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는 습관이 생기고 나니, 확실히 그게 잘못한 일이었다는 것을 실감하곤 합니다. 그저 돈을 얼마나 많이 쓰냐, 쓰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지출한 내역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전혀 만들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지출의 항목별로 정리를 해서 기록으로 남기게 되면 거기 내 삶이 보입니다. 사실 말로 이러네, 저러네, 아무리 신앙을 말하고 논해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그 가계부 통계를 딱 보면, 그 사람이 그대로 스태닝 되어 드러납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인지, 이 사람이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마치 몸속 X-ray나 MRA 찍듯이 그 사람의 삶과 신앙이 그대로 찍혀져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꼭 권면합니다. 소득이 얼마이든 간에, 또 지금의 재정 상황이 어떠하든 간에, 반드시 가계부를 쓰고, 그 내용을 주기적으로 정리해서 차분히 묵상할 것을 말입니다. 거기 비친 나의 인격과 삶의 실체를 잘 돌아보기만 해도 저는 여러분이 훗날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정말 잘했다고 칭찬듣는 그런 자녀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제 사견으로는, 우리 지체들 거의 대부분이 재정적인 부분에서 하나님 앞에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여러분 스스로가 한 번 꼭 실천하고 점검해 보시기를, 그래서 실제적으로 신앙에 있어서 유익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두로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세상에 등장하여 부를 축적하는 상황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주목할 부분이 18절의,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그것을 간직하거나 쌓아두지 아니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해석상의 어려움이 많은 본문이긴 합니다. 이렇게 쌓아두지 않는 행위가 과연 두로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인 헌신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강제적인 개입과 주도 속에 이뤄진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본문은 정확히 말해주지 않습니다. 17절 마지막 부분에 두로가 재개한 그 경제활동을 음란이라고 규정한 것이 특히 이 18절 해석을 어렵게 하는 이유입니다. 과연 두로가 스스로 그런 선택을 했다면 그래서 자신의 물질과 부요함을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기꺼이 사용한 것이라면, 왜 17절은 그런 행위를 음란이라고 규정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남는 것이지요. 그래서 새번역 성경 같은 경우에는 이 18절을 두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하시는 심판과 섭리의 의미를 담아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러나 두로가 장사를 해서 벌어들인 소득은 주님의 몫이 될 것이다. 두로가 제 몫으로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못할 것이다. 주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이, 두로가 벌어 놓은 것으로, 배불리 먹을 양식과 좋은 옷감을 살 것이다.” 의미의 차이를 이해하시겠는지요? 다시 말해 두로가 비록 자기를 위해 돈을 사용하고 쌓아두려고 애를 써도 그렇게 되지 않게 하나님이 막으셔서, 그 모든 부요함이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될 텐데요,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사용되도록 만드신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해석이 어떻든 간에, 우리는 이 18절에서 물질에 관련된 두 가지의 상반된 관점, 혹은 결과를 보고 있습니다. 내가 소유한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거룩한 소비 한 가지와, 그것을 간직하고 쌓아두는 음란한 소비 한 가지, 이 두 가지 차이를 말이지요. 사실 여기 쌓아둔다는 말의 의미는 단지 쓰지 않고 모아두고 저축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나라를 위해 사용되지 않는 모든 소비 일체를 성경은 이 땅에 쌓아두는 물질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5장 2절의 말씀처럼, 그렇게 자신을 위해 쌓아둔 물질들은, 쌓이는 그 순간, 이미 좀 먹고 썩은 물질로 전락한다는 것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땅에 쌓아두는 물질, 자기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소비되는 모든 물질은, 나중에 썩고 부패해지는 게 아니라, 그렇게 쌓이고 소비되는 순간 이미 썩은 물질이 된다는 것, 그것이 성경의 단호한 가르침입니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저는 여러분이 물질의 문제 앞에 조금 더 정직하고, 조금 더 예민하며, 조금 더 부지런하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저 아껴 쓰고, 헌금 많이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물질이 과연 이 땅에서 썩어 사라지는 물질이냐, 아니면 저 주님 나라에 쌓이는 물질이냐, 이 극명한 차이에 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고민을 해 나가기를 권면합니다. 그저 세상의 재테크를 뒤쫓아 가다가는, 그저 먹고 살기 힘든 우리네 삶에 쪼들려 정신없이 살아가다가는, 그저 조금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만 생각하며 살아가다가는, 주님 나라에 가기는 가지만, 완전히 거지꼴로 가게 되는, 그래서 그 나라에서조차 빌리러 다녀야 하는 혹은 남들의 넉넉함에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그런 신세를 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영국의 종교개혁가이자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가 돈과 물질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바르게 사용하는 원리 네 가지를 제시한 바 있는데요, 거기 첫 번째 원리가, “나는 소유주가 아닌, 청지기로서, 그러니까 잠시 맡아 관리하는 관리자로서 돈을 사용하려고 하는가?”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내 돈이 내 돈이라 생각하는가, 아니면 나의 주인이신 주님의 돈이라 생각하는가, 그 관점이 모든 경제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우리 신앙의 첫 단추가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가진 소유 그것이 정말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당연히 그 물질은 그 주인의 뜻대로 소비되고 있어야 할텐데, 내가 맡은 그 물질이 정말 그렇게 쓰여져 하늘에 쌓이는 물질이 되고 있는지, 차분히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2014년의 마지막 시간과 2015년 새해의 첫 시간을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이 시점에, 오늘 말씀은 더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여겨집니다. 내게 맡겨 주신 하나님의 물질을,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하나님나라에 쌓일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수많은 생명의 결실을 낳는 그런 물질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이 땅에서 썩어 사라지는 물질이 되고 있는가, 여러분의 영수증과 가계부를 잘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의 주인 되는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분별하는 노력 없이 돈 앞에 설 때 우리는 돈을 소유하는 자가 아닌, 돈에 소유된 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고, 참으로 자유한 삶을 향한 바른 결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사람과 오징어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둘 다 반짝이는 것을 쫓아가다 망하는 삶을 산다고 합니다. 내가 혹시 어둔 밤 자신을 잡으려 환하게 켜둔 등불인지도 모른 채, 그저 반짝거리는 것을 향해 달려들다 결국 삶을 마감하는 저 오징어잡이 배 위의 오징어 꼴은 아닌지, 연말 다시 우리의 삶을 차분히 하지만 냉정히 돌아보는 그런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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