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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2014년 10월 3일 새벽 설교

2014-10-03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7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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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003 금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17장 4~6절, 이사야 강해140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 설교 음성 :  https://www.4shared.com/mp3/k6UZAIQAce/20141003_.html 이사야서 백마흔 번째 말씀으로,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어제 새벽 설교 시간에 저는, 여기 17장의 말씀 속에 왜 북이스라엘의 이름과 이방민족 다메섹, 곧 시리아의 이름이 함께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관해 미리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앗수르에 맞서 싸워 이기기 위해 일종의 연합 전선을 펴게 되면서,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이 유다에게 뜻을 함께 할 것을 권하게 되지요. 그러나 이를 유다가 거절하였고, 이에 분노한 두 나라가 유다를 협공하게 되는데, 약 3년 간 그 전쟁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두 나라는 유다의 뜻을 돌이키지 못한 채 물러가게 되고, 오히려 앗수르에 의해 두 나라 모두 거의 같은 시기에 처참하게 멸망을 당하는 운명에 처해지고 맙니다. 바로 그 상황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오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본문 5절과 6절은 이러한 북이스라엘이 이제 하나님의 심판에 처하게 된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하나는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삭을 줍는 모습을 통해서, 다른 하나는 감람나무의 열매를 거두는 모습을 통해서 비유적으로 설명합니다. 여기 르바임 골짜기는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평원인데요, 이 지역에서는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는, 그런 곡창지로 유명합니다. 이스라엘의 추수 과정은 보통 두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먼저 곡식 단을 낫으로 베어 추수를 하고, 이어서 그 과정에서 밭에 떨어진 이삭들을 직접 줍는 방법으로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떨어진 이삭은 나그네와 짐승들이 먹을 수 있도록, 추수 때에 줍지 말 것을 명령하신 바가 있지요. 어쨌든 지금 묘사하는 장면은 그러한 두 가지 방법의 추수가 모두 끝난 후의 모습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낫으로도 베고, 떨어진 것도 주웠으니, 아무리 기름진 르바임 골짜기라 해도, 남아 있는 이삭이 거의 없겠지요. 이스라엘의 형편이 그처럼 철저하게 어려워질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감람나무 열매를 거두는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를 흔들어 열매를 다 거두고 나서 이제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그저 새의 먹이로나마 남겨둔 두세 개의 열매밖에 없는 상황처럼, 그들의 처지가 가난하고 처량해질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우리 속담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일정 시간 경고의 메시지가 주어진 후,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그를 연단하시면, 이삭 몇 알 남지 않은 들판처럼, 따다 남은 열매 두세 개 남은 나무처럼, 이처럼 처참하게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택한 당신의 백성들도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민족입니까? 이방도 아니요,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택한 족속이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 이름에 새겨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다 소용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면, 자녀들의 실패와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이 손가락질을 당하고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의 삶을 고치시고야 맙니다. 그런 하나님과 밀당을 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러다 결국 이 지경이 된 것입니다. 혹 우리의 삶이 이와 같은 모습은 아닌지, 이삭 한 톨 찾기 어려운 처지가 되기 전에, 곱씹어 경계하고 또 경계할 일입니다. 아울러 여기 4절과 6절에 북이스라엘을 가리켜 지칭하고 있는 명칭이 두 개로 구분되어 있음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4절 처음에 야곱이라 나오고, 6절 마지막에는 이스라엘로 나옵니다. 사실 같은 말이지요. 아시는 대로 야곱이 형 에서와 외나무다리에서 맞닥뜨리기 직전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과정에서 그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말이지요. 그리고 결국 그 바뀐 이름이 그 백성의 이름으로 정해지게 되었지요. 옛 이름 야곱, 무슨 뜻입니까? 원래는 ‘발꿈치를 잡다’이지만, 그 히브리어 어원은 ‘속이다’ ‘속여 빼앗다’는 뜻입니다. 야곱의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름이지요. 쌍둥이 중 둘째이면서도 형의 발꿈치를 잡은 채 태어나, 형의 장자 명분과 축복까지 모두 속여 빼앗았고, 하란으로 도주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면서도 역시나 그와 같은 인간적 술수로 가득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고 얻은 새 이름 이스라엘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 대목의 성경 구절에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으로 나오지만, 실제 그 언어적 의미는 ‘하나님이 다스리시기를!’이라는 일종의 기원문입니다. 그 씨름으로 인해 평생 다리를 절게 된 야곱, 그래서 이제는 자신의 지혜나 능력을 의지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게 되는 그 상황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안에 담긴 삶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그 두 이름이 같이 등장합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다시 야곱이 된 것처럼,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는 삶에서 다시 자신의 능력과 재주에 기대어 살아가는 교만한 인생으로 퇴보한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야곱으로 바꾸어 부르십니다. 아마도 영적인 형이라 할 수 있는 유다를 공격하고, 다시 그의 발뒤꿈치를 붙잡고자 하는 오늘 이스라엘의 모습을, 옛 야곱의 모습을 통해 책망하시기 위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의 능력과 인간의 힘을 의지하는 야곱의 옛 태를 벗어버리고, 다시 하나님의 다스림을 신뢰하는 이스라엘의 새 모습으로 회복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새 이스라엘이 된 저와 여러분도 때로 은혜를 소멸하면서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갈 때가 참 많습니다. 그때마다 주님은 다시 우리의 옛 이름, 야곱으로 우리를 부르시며, 우리의 떨어진 믿음을 회복하기를 권면하시지요. 물론 그렇게 다시 야곱이 되는 데는 여러 이유와 나름의 원인이 있습니다. 그저 게으름 때문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어려움이나 고난, 또 영적인 피로가 쌓여서, 우리 입장에서는 불가피하게 잠시 은혜로부터 멀어질 때가 생기곤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그와 같은 우리의 형편을 주님이 온전히 알고 계심을 숨기지 않으십니다. 잠깐 요한계시록 2장으로 가봅니다. 요한계시록 2장 2절부터 5절까지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말씀 제가 봉독합니다. “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아멘. 주님은 5절에서 네가 어디서 믿음이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어쩌다가 다시 야곱이 되었는지, 그 지점을 잘 살펴서,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주님의 말씀의 핵심은 본래 책망이 아니었습니다. 2절에 보니 주님이 에베소 교회의 수고와 인내와 열정과 열매를 다 알고 계시다고 하십니다. 3절 끝에 보면 에베소 교회가 늘 열심이고 게으르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칭찬하십니다. 잘 못하기만 해서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온전케 하시기 위해 그 칭찬의 기회를 통해 책망도 함께 주시는 것입니다. 더 존귀한 이스라엘이 될 수 있기에, 주님 보시기에 넉넉히 그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삶을 살아왔기에, 어쩌다 야곱으로 되돌아간 모습들을 우리로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디서 여러분이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돌이키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경고와 권면이 소망 가운데 주시는 회복의 말씀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수고와 인내와 주님을 향한 사랑을 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정금과 같이 여러분을 빚어가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그 마음을 온전히 헤아려서, 여러분을 향한 이 권면의 말씀을 감사함으로 받아, 조금 더 온전히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다스림을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에 잇대어 살아가는, 정금 같은 이스라엘의 모습으로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루어져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십시다.
↑ 설교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