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민수기 강해 13. 다 선지자가 되기를 원하노라
2022-02-09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17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220209 수요 성경 강해
-----------------------------
민수기 11:10~29, 다 선지자가 되기를 원하노라
* 설교 음성파일 : 첨부된 파일을 다운로드 하시면 음성으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량으로 인해 마지막 단락은 음성이 생략되었습니다. 원고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첨부파일
num13(2)
.mp3
파일 다운로드
■ 지난 시간에도 저희가 함께 나눴던 것처럼, 여기 민수기 11장은, 오랫동안 머물고 있던 시내 광야에서 드디어 가나안을 향해서 행진을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 가지 않아서, 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장면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출애굽을 하고 또 그 속에 같이 섞여서 살아가고 있던 다른 민족, 다른 인종들이 먼저 하나님을 원망했고, 그것이 이스라엘 전체에 영향을 끼쳐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자기 집 앞에 앉아서 통곡을 했다고 성경은 말씀하지요. 작은 곰팡이가 일단 한 번 생기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음식이나 옷 전체에 퍼져나가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불신과 원망의 영적 곰팡이가, 이제 막 하나님의 군대로 새롭게 태어난 이스라엘 전체를 뒤덮게 됐습니다.
처음엔 그냥 고기 먹고 싶다는 단순한 불평에서 시작됐습니다. 광야라는 힘든 환경 속에서, 여러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데다가, 늘 먹는 똑같은 만나도 지겨워진 거지요. 문제는 그러한 필요에 대해서 하나님께 구하고 찾기 전에, 악한 말로, 하나님을 멸시하고 불평부터 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 불평들이 하나둘 모여서 원망이 되고, 백성들은 금방 자기연민에 빠졌지요. 자기연민에 빠지면 지금의 현실에 대한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내 팔자야, 내 팔자야! 광야에서 이게 무슨 고생이냐? 차라리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가 더 좋았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탄식을 하게 되는 거지요. 꿈에도 그리던 자유를 얻어서, 그 고된 종살이를 다 뒤로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금의 이 복 된 과정을 송두리째 부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불만의 책임을 하나님과 모세에게 넘기면서, 단체로 눈물의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 그들이 원하는 고기를 주시긴 주셨지요? 그런데 적당히 주신 게 아니라, 과도하게 많이 주셨습니다. 수많은 메추라기들을 바람으로 모아다가, 아예 그 고기로 산을 쌓다시피, 작정하고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다는 말이냐, 어째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지 못하고, 하나님을 멸시하기부터 시작하느냐? 이미 지금껏 충분히, 넘치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경험하지 않았느냐?” 항변하시면서, 하나님은 그렇게 마치 무덤처럼 쌓인 메추라기 더미를 통해서, 그들의 믿음 없음과 탐욕을 책망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시 106:15)라는 시편의 말씀처럼, 바라던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오히려 그들에게 복이 아니라, 재앙이요, 심판이 될 수 있음을, 하나님은 직접 보여주신 겁니다.
여러분, 저를 따라서 천천히 말씀을 한 구절을 함께 읽어보십시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아멘. … 여러분, 기도를 하고,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구할 때, 어떻게 아뢰라고요? 네, 감사함으로 아뢰라. 감사함으로 아뢰라.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하나님이 계시고 그 기도를 들으심에 감사하고, 그분이 나의 아바 아버지이시며, 만왕의 왕이 되심에 감사하고, 주님이 내 모든 필요를 이미 알고 계셔서 나를 위해 준비하고 계심에 감사하고, 혹여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것이 도리어 더 큰 하나님의 은혜일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하나님 앞에 너희 구할 것을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사람으로서는 감히 다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낙심과 절망과 죄로부터 지켜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샬롬이 그렇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면, 우리는 두려움과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지금의 현실에 대한 분별력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게 돼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피해야 할지 깨닫게 되고, 지금 나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생명을 빼앗기지도 않게 된다, 그러니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러면 된다. …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어떠하시겠느냐? 여호와의 손이 짧지 않다, 가장 좋은 것을 너희에게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를 지켜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사람이 아무리 많은 걸 가져도 평강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 모든 것이 다 무의미해집니다. 평강을 잃으면 다 잃어버린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많이 가지고 살면 그것 자체가 복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돈도 많고,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지만, 평안과는 거리가 먼, 정말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목사인 저는 그런 이야기를 주변에서 수없이 듣고 삽니다. 부족한 게 하나도 없는데, 평안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돈이 전부가 아닙니다. 평강을 잃어버리면 그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간절히 원하는 거, 그거 가지게 되면 여러분 며칠 동안이나 행복합니까? 처음엔 엄청 좋다가도 금방 시들해지지요? 다시 또 뭔가에 대한 갈증으로 인해서 마음의 샬롬이 깨집니다. 그러면 다시 소중한 내 마음, 내 시간을,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생명을 놓치게 되지요.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게 되고, 내게 주신 것들을 즐거워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우리 인생을 허비하면 안 되지요. 가능한 순간순간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것을 풍성히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 그래서 여러분, 성도는 내가 가진 바를 족한 줄로 알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며 사는 법을 날마다 배워야 합니다. 성경은 그 출발점이 감사라고 했고, 그 감사로 하나님께 구하고 아뢰는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샬롬을 누리는 비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 지금 이렇게 힘든데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할 수도 있고, 그게 너무 어리석은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이 거기부터라고 하십니다. 감사함으로 아뢰는 것,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서 평강을 빼앗기지 않는 것, 분별력을 지키는 것, 소망을 가지는 것, 그래서 인내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누리는 것, 그 모든 것의 출발이,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임을 여러분 믿으시고, 모든 구할 것을 늘 감사로 아뢰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단적인 원망과 시위로 인해서, 역시나 아주 심각한 타격을 입은 모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세를 다시 일으켜주시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이지요. … 본문을 보면 모세가 대단히 심각한 탈진 상태에 빠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다 자기 장막 문 앞에서 우는 것을 본 모세는 충격에 빠졌고, 결국 모세도 하나님께 탄식하며 토로하게 됩니다. “하나님, 왜 종을 괴롭게 하십니까? 왜 이 백성을 내게 떠맡기셔서 무거운 짐을 지게 하십니까?”라고 항변하지요. “이 백성이 제 백성입니까? 제가 배 아파서 낳은 자녀도 아닌데, 하나님이 낳은 하나님 자녀인데, 하나님이 품고, 먹이시고, 양육하고, 그러고 가셔야지, 왜 저더러 이들을 품고 가나안 땅에 가라고 하십니까? 저 혼자서는 도저히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으니, 그냥 제 생명을 거두어 가 주십시오.” 모세마저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 많은 백성들을 이끌고 지난 1년 넘게 여기까지 와야만 했던 모세의 그 무거운 짐이 어느 정도였는가, 조금은 헤아려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지요. “너를 도와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 70명을 모아서 내 앞으로 데려와라. 회막 앞으로 데리고 와서 너와 함께 서게 해라. 그러면 내가 그들에게도 너처럼 성령을 부어주겠다. 그래서 너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도록, 그들과 함께 짐을 나눠 질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겠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 참 잘 느껴지지요? 모세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하나님께 이야기했는데, 하나님은 잔잔한 음성으로 그의 중심을 헤아려주십니다. 어쨌든 모세가 하나님을 찾고 아뢰었기 때문이고, 그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인내하며 여기까지 왔는지, 하나님이 다 아시는 거지요. 여러분,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 그게 굳이 목사나 선교사가 아니어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호의가 어떠한 것인지, 우리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감당할 만한 힘과 위로와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이십니까?)
그래서 24절 이하로 가면, 모세가 이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장로 70인을 모아서 회막 앞에 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정말로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강림하시지요. 모세에게 임했던 성령이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했고, 그들이 성령에 사로잡혀 자기도 모르게 예언하기 시작합니다. 정확한 예언의 내용은 본문에 나와 있지 않지만, 아마도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이었을 수도 있고, 또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였을 수도 있고, 혹은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이었을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하나님은 그 70명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셔서, 모세의 짐을 덜어주시겠다는 분명한 사인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이 되는 거지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이 사건은, 훗날 모든 믿는 백성에게 이루어질 성령의 임재에 대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에 대한 예표가 됩니다.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 2:28)라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있게 되고,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그 예언이 현실이 되지요. 어쩌면 오늘 본문이 그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됩니다. … 사실 성경에서 이 70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요셉이 총리로 있던 애굽 땅으로 이주한 야곱의 후손의 수가 70명이었습니다. 야곱의 새 이름이 이스라엘이니까, 첫 이스라엘의 숫자가 70인 거지요. 또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묶어 여러 지역으로 파송하시면서, 모두 합해 70명을 따로 세우셨다는 말씀도 나옵니다. 열두 제자도 있지만 예수님은 따로 70명을 세우셔서 새로운 이스라엘 공동체의 시작을 알리신 겁니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숫자가 70이고, 이게 지금은 70명이지만, 언젠가 모든 믿는 백성에게 임하실 성령의 임재를 예표하면서, 하나님은 모세를 도울 70인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25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이 70명이 예언을 하다가 (멈추더니) 다시는 예언하지 않게 됐다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예언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건데요, 본래 구약의 다른 성령의 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위해 부름 받은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그것도 한시적으로만 성령의 임재가 나타났다고 구약 성경은 일관되게 말씀하지요. 이것이 신약과 구약의 가장 큰 차이, 너무나 중요한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늘 계시느냐, 우리를 위해 늘 기도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게 하시는 성령께서, 늘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 때로는 우리가 그분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잘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그 성령을 소멸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이루신 가장 큰 은혜임을 우리는 기억하고, 또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어쨌든 여기 70명에게서는 그 성령의 임재가 일시적으로만 나타났습니다. 비록 모세처럼 그들도 잠시나마 예언자로, 선지자로 세워졌지만, 그것은 그들 모두를 모세와 같은 영적 지도자로 인정하신 사건이라기보다는, 모세를 돕고 그 짐을 나눠지기 위한 조력자로서 그들을 세우신 사건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친히 드러내신 것입니다. 비록 일시적이기는 했지만, 그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 백성들과 그 장로들은 분명하게 알게 됐겠지요. 이 70명 역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리더구나. 모세의 짐을 덜어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구나,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26절 이하에 보면, 이때 일어난 또 한 가지 특별한 사건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원래 모세가 세운 70인 장로에 속한 사람들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회막으로 나오지를 않고, 그냥 자기 장막에 머물러 있던 두 사람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들의 이름이 엘닷과 메닷이라고 나오지요. 사실 이것도 참 재밌는 이야기, 요즘 말로 웃픈 이야기입니다. 백성들의 모범이 되는 리더로서, 모세를 도울 장로로서 세워진 사람들인데, 정작 하나님 앞에 나오라는 그 첫 번째 명령에 대해서조차 순종하지 않은 겁니다. 당시 모세의 권위가 백성들 안에서 어떠했는가, 얼마나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중에 12장으로 넘어가면 이게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데요,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그 다음에 벌어집니다. 회막으로 나오지 않은 이 두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다는 겁니까? 네, 회막 앞에 모여 있던 다른 모든 장로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셨고, 그래서 그들도 예언을 하더라는 겁니다. 자기 집에서 혼자 따로 예언한 거지요. 어떻습니까, 참 놀라운 이야기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이렇게 되면 모세의 권위가 더 약해질 게 뻔한데, 말입니다. 여호수아도 당장 그 걱정을 하는 거지요. 모세를 도우라고 구별하여 세운 사람들이 이렇게 모세에게 순종하지 않았는데, 만약 그들이 예언까지 하게 된다면, 앞으로 그들이 모세를 대적하여 어떤 말을 하든, 그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예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말려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미 성령이 임해버리셨는데, 모세가 그것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것은 모세의 영향력 밖에 있는 일이지요. 여호수아가 염려하는 것을 모르실 리 없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허락하셨다면, 비록 그 뜻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건 이미 모세의 주권을 넘어선 일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러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그리고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 알려주고자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은, 그리고 그 성령을 부음으로 택하시고 세우시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허락되는,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세에게, 사람에게 달린 일이 아닙니다. 성령은 누가 막거나 혹은 누가 주거나, 뭐 그렇게 사람이 주관할 수 있는 분이 아니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기준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오직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아울러 모세는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을 택하신 하나님의 부르심, 자신을 백성들의 지도자로 세우신 그 부르심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총인지를 새삼 느끼게 됐을 겁니다. 내가 어떤 대단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 하나님이 사람이 모자라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사람이 부족해서 나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정말 나를 귀히 여기셔서, 나를 충성되게 여기셔서, 나에게 복을 주시고자, 나를 택하시고, 이 일을 맡기시고, 성령을 부어주셨구나. 이것이 은혜구나. 그뿐 아니라 힘들어하는 자신을 위해서, 여러 사람들을 함께 세우시고, 붙여주시고, 그 짐을 덜게 하시는구나, 너무나 섬세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세는 분명 깨닫게 됐을 것입니다. … 어쩌면 모세는 자신 외에는 하나님께 대안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더 더욱 강하게 하나님 앞에 항변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홀로 여기까지 백성들을 이끌고 온 마당에,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이 백성을 이끌고 가야 하는 건 모세 자신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하고 싶은 대로 할 말 못할 말 다 했을 겁니다.
그런데 웬걸요. 나오라는 말도 안 듣고 집에만 머물러 있던 엘닷과 메닷에게도 성령이 임한 겁니다. 마치 지금 불순종하고 불평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것과 같은, 그런 두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래 모세야, 네가 말한 대로, 이들은 내 백성이다. 내가 기뻐하고 사랑하는 내 택한 자녀다. 너는, 그들을 섬기라고 내가 세운 나의 종이다. 그게 너를 세운 목적이 아니냐. … 네가 아니어도 나는 얼마든지 내 영을 다른 누군가에게 부어서 백성을 섬기는 자로 세울 수 있고, 이 돌들로도 능히 하나님의 백성을 세울 수도 있다.” … 한편으로 모세를 일깨워주시고, 그러면서 동시에 그가 받은 부르심이 얼마나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인지, 또 하나님이 얼마나 모세를 깊이 생각하시고 그의 곤고함을 헤아리고 계시는지,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한꺼번에 여러 가지 메시지를 모세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엘닷과 메닷의 이야기를 전해주었을 때, 모세는 분명 적잖이 놀라고 충격을 받았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듣고 계시고, 그들을 책망하고 계시는 상황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엘닷과 메닷에게, 대놓고 불순종하는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신 겁니다. 모세가 이 상황을 허투루 받아들였을 리가 없습니다. 자신의 처지와 부르심을 두고 하나님께 토로한 자기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됐을 것이고, 이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게 됐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수아의 걱정 어린 이야기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지요.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 이 공동체의 질서가 다 깨질 고고, 내 주 모세의 권위는 더 흔들릴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염려하지만, 모세는 오히려 뭐라고 합니까? 네가 나를 위해서 시기해주느냐? 나는 하나님이 모든 백성에게 다 그 영을 부어주시고, 그들도 다 선지자가 되면 좋겠다. 내가 지금 누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누렸으면 좋겠고, 그래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이 아니냐, 모세는 오히려 백성들의 편에서, 하나님의 편에서 이야기합니다. … 본래 모세의 모습,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을 이미 되찾은 거지요. 자신의 간구를 들으시고, 고생하는 자신을 위해 70명이나 되는 조력자들을 따로 세우시는 하나님. 그러면서도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그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시는 하나님. 모세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느꼈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온유하고 겸손한 모세 본연의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오게 됩니다.
저는 모세가 말한 이 고백,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나처럼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한다, 이 말 속에서, 정말 모세의 온유함과 진실함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누구보다 더 하나님께 인정받고 높아지고, 남과 다른 권위를 가지게 되는 그런 것에 마음을 두고 있지 않은 거지요. 다시 말해 마음의 평강을 빼앗기지 않은 것입니다. 사실 누가 내 말 무시하면 기분 나쁘지 않습니까? 대놓고 안 나오고, 대놓고 거부하면 마음이 상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거기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뜻을 헤아렸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넉넉한 인정과 은총을 받아서 누리고 있기에, 마음의 평강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맡기신 그 부르심에만 집중합니다. 나를 세우신 것은 그들을 위해서다, 그들을 섬기라고 나를 부르신 것이지, 내가 높아지고, 내가 드러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졌다면, 나를 부르신 목적이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 …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긴 그 부르심 자체에 온전히 충성된 모습으로, 말 그대로 종의 모습으로 내려가는 겁니다. 이미 그 마음이 하나님으로 인해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받을 때 나타나는 변화가 이런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가 인정을 받고, 그래서 높아지고, 어떤 권위를 가지게 되고, 이런 것들에 별 의미를 두지 않게 되고, 오히려 진실하게 누군가를 섬기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넉넉한 사랑과 인정을 받고 있기에, 그만큼 사람의 인정이나 칭찬에서는 자유로워집니다. 나만의 어떤 특별함을 고집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누구나 다 나처럼 되기를, 모두가 나처럼 하나님을 깊이 누리게 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 여러분에게도 그런 바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들 나처럼 하나님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다들 이렇게 하나님을 누리고 살면 좋겠다, 만약 그런 마음이 여러분 안에 있다면, 이미 여러분은 하나님으로 인해 너무나 부요한 삶을 살고 계신 거겠지요.
반대로 은혜가 떨어지면 어떻습니까? 자꾸만 내가 높아져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남들이 인정해주기를 바라고, 남과는 다른, 남에게는 없는 뭔가가 내게 있어야 할 것처럼 조바심을 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인정을 그만큼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는 겁니다. 내가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아져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특별해야 한다는 마음은, 실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샬롬을 잃어버린 우리 인간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오늘 모세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고백교회가, 오늘 이 모세의 이 고백으로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나처럼 하나님을 누리기 원합니다. 다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모두가 다 선지자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고백으로 넘치는 교회가 된다면, 모두가 서로를 시기하지 않고, 기쁘게 서로를 섬기게 될 겁니다. …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겠지만, 모두가 다 성령으로 충만해진다면, 성령이 우리를 하나님의 뜻 앞에 온전히 하나 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높이면서, 진실하게 섬기는, 진짜 구원의 방주를 이루어가겠지요. 오늘 모세가 받은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 우리고백교회 가운데 충만히 임하시고, 모세가 했던 이 고백이 우리 가운데 넘치게 되고, … 또 우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온전히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