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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강해 10. 유월절과 구름기둥

2021-12-15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16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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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5 수요 성경 강해 ----------------------------- 민수기 9:1~23, 유월절과 구름기둥 ​ ​ * 설교 음성파일 : 첨부된 파일을 다운로드 하시면 음성으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첨부파일 num10 .mp3 파일 다운로드 ​ ■ 오늘 우리가 읽은 민수기 9장에서, 아마 가장 반가운 단어가 있다면, 이스라엘 백성이든, 민수기를 지금 읽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든, 제일 반가운 단어라고 한다면, 아마 ‘행진하다’라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이 ‘행진’이라는 단어가, 오늘 본문에 드디어 여러 번 등장하고 있는데요, 이제 곧 가나안 땅을 향한 행진이 임박해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은 또 아닙니다. 실제 광야를 행진해 나아가는 것은, 이 다음 10장부터인데요, 그러니까 오늘 9장은, 그 가나안 행진을 위한, 출발 전 마지막 점검이라고 볼 수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 본문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앞쪽에는 유월절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후반부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구름, 성막을 덮고 있는 구름을 보면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1년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머물러 있는 이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지막으로 유월절을 지켰고, 성막을 덮은 구름기둥의 인도하심을 따라 드디어 가나안을 향해 행진해나갈 준비를 마쳤다, 하는 것을 본문은 이야기합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기서 지킨 이 유월절은, 그들이 애굽에서 지킨 첫 번째 유월절 이후, 두 번째로 지킨 유월절이자, 광야로 나와서 지킨 첫 번째 유월절입니다. 여러분, 유월절은 다 아시지요? 출애굽 전날 밤, 하나님께서 마지막 열 번째 재앙으로 애굽의 장자를 치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실 꼭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어도 누구든 그 규례대로 지켰으면 다 살았겠지만, 어쨌든 히브리 민족을 지켜주시기 위해 특별히 명령하신 절기로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절기가 바로 이 유월절입니다. ​ 당시 유대 달력으로 1월 14일이 유월절인데요, 그날 밤 각 가정에서는,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는 뼈를 꺾거나 손질하지 않고, 통째로 구워서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습니다.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은, 제대로 된 음식을 해 먹을 겨를 없이 아주 급하게 애굽을 탈출해야 했던 그 긴박한 상황을 상징하는 떡이고, 또 쓴 나물은 애굽의 고통스러웠던 삶을 상징하지요. 출애굽이 임박했기 때문에, 그들은 여유 있게 이 절기를 지킨 게 아니라, 언제든 애굽을 나설 수 있도록, 허리에는 띠를 띠고, 발에는 신발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서, 급하게 식사를 했구요, 그 밤이 지나자 곧장 애굽을 탈출하게 됩니다. 그렇게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한 것은 다름 아닌 구름기둥이었지요. 낮에는 구름기둥이었고, 밤에는 그 안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어졌습니다. ​ 그러고 보면 두 번째 유월절에 관한 오늘 본문도, 바로 그 출애굽 시점의 모습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동체가 다 같이 유월절을 지키고 나니까, 구름이 성막에 덮였다는 거지요. 정확히 1년이 지난 시점에, 유월절을 통해 출애굽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됨으로써, 다시 한 번 그들의 구원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 물론 그때와 다른 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이제는 저 멀리 허공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완성된 성막 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지요. 하나님께서 친히 그 성막을 통해 그들과 함께하고 계심을 그 구름이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그 구름의 위치에 따라, 이제 백성들의 움직임도 결정되게 됩니다. 가나안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본격적인 행진은, 바로 이 유월절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과 함께 시작된 것입니다. ​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월절에 관한 내용이 조금 특이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두 번째 유월절을 지켰다, 이 내용이 아니지요. 사실 시간적으로 보면, 이 두 번째 유월절은 이미 다 지키고 지나간 상태입니다. …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백성들의 수를 세는 민수기 1장의 내용은, 출애굽 2년, 2월 1일에 있었거든요. 제가 아까 유월절은 몇 월 며칠이라고 했지요? 네, 1월 14일입니다. 그러니까 유월절을 지킨 후 보름 정도 지나서 그때 백성들의 수를 센 겁니다. 벌써 유월절은 다 끝난 상태인 거지요. 그래서 5절에 보면, “그들이 첫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다 따라 행하였더라.”고, 이렇게 과거형으로 나옵니다. ​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 겁니다. 이 두 번째 유월절을 부득이하게 지킬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거지요. 다름 아니라 율법적으로 부정해진 사람들, 시체를 만져서 부정해지고, 또 나병과 같은 피부병으로 인해 부정해져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영 안에 머물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밖으로 나가 있던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게 된 겁니다. 그러자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찾아가서 물어본 거예요. 우리를 유월절까지 지키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 우리도 절기를 지키고 싶고, 하나님께 헌물도 드리고 싶다, 이거 좀 어떻게 해결해 달라, 요구한 겁니다. … 대단하지요, 여러분? 하나님이 그들더러, 너희도 유월절을 지켜라, 그런 게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가 찾아가서 물어본 거예요. 우리도 참여하고 싶다, 왜 우리는 고려해주지 않냐, 항변한 것입니다. 누가 억지로 지키라고 해서 지킨 게 아니라, 이 절기에 대한, 예배에 대한 사모함이 그들을 이렇게 행동하게 한 것이지요. 여러분, 그 마음으로 오늘도 저와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음을 믿습니다. 아멘. ​ 그러자 모세가 대답합니다. 그러면 잠깐만 기다려봐라, 내가 하나님께 가서 여쭤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오겠다, 말합니다. 성막으로 모세가 들어갔겠지요. 그리고 답을 가지고 나옵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부정해져서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 또 나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먼 이방 땅에 여행하고 오느라 유월절을 놓친 사람들, 그들은 원래 유월절인 1월 14일이 아니라, 그로부터 한 달 뒤, 2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도록 해라, 말씀합니다. … 어떻습니까, 여러분, 조금 의외의 말씀 아닙니까? 제 날짜에 딱 지켜야 된다, 그때 놓치면 절대 안 된다, 이게 아니라, 따로 날짜 정해서 한 번 더 지켜라, 그러신 겁니다. 놀라운 얘기지요. 엄연히 정해진 날짜가 있는데, 이걸 신축적으로 적용해서, 기회를 한 번 더 주신 겁니다. ​ 이미 추석 명절 다 지나갔는데, 여러분, 해외에 나갔다 온 사람들끼리 한 번 더 따로 추석을 쇠나요? 그러지 않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유월절을 그렇게, 아주 융통성 있게 지키라고 하십니다.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예외 없이 그 절기를 지키고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그들뿐만이 아니라, 설사 이방인일지라도, 만약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류하는 사람들, 잠시 함께 머물러 지내는 사람들이라면, 그들도 동일하게 유월절을 지키게 해라, 말씀합니다. 마치 출애굽 당시 있었던 그 마지막 재앙이, 히브리인이냐 아니냐를 따지고 임한 게 아니라, 유월절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았느냐에 따라 임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유월절 자체를, 어떤 민족적 테두리 안에만 가두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 그 언약을 함께 믿고 지키는 자들 모두에게, 그리고 자의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그 절기를 지킬 수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확장하여 참여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이 유월절이 중요하다는 반증이겠지요. ​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이 다 유월절을 지키고 나서야, 비로소 가나안을 향한 행진을 시작하게 됩니다. 마치 출애굽을 다시 경험하듯이, 다시 한 번 유월절의 그 밤을, 모든 사람들이 함께 경험한 후 출발한 겁니다. … 시내 산에 도착하여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를 받았고요, 그 주신 말씀대로 성막을 세워 봉헌했고요, 그 성막에서 섬길 제사장과 레위인을 구별하여 세웠구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이 유월절을 지키게 하심으로써, 미처 지키지 못한 사람들까지 충분히 다 지키도록 하심으로써, 가나안 땅을 향한 행진의 준비를 마무리하신 것입니다. ​ 유월절은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하나님에게 너무나 중요한 절기입니다. 하나님과 그들 사이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이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절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경험은 사실상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공동체 모두가 공유하는 일종의 집단적인 원형정신 같은 것입니다. 그 공동체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공동의 경험이고, 정신이고, 신앙고백입니다. 그 출애굽의 경험, 그 역사적이고 공동체적인 경험을, 지금 나의 경험으로 새롭게 하는 절기, 그래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누리는 절기가 바로 유월절인 것입니다. ​ ‘우리가 누구냐, 유월절을 지키는 백성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다. 야훼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고, 구원하신 백성이 우리다.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이 유월절 언약으로부터 우리의 구원이 시작됐고, 따라서 우리의 모든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언약에 달려 있다. …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창조하신 것도 하나님의 언약이었는데, 일찍이 하나님은 우리를 열방의 복으로 세우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그에게 하신 모든 언약을 이렇게 신실하게 이루셨다. 그는 본래 자녀를 낳을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 생명 없는 몸에서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해내셨고, 그들을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레와 같이 번성하게 하셨으며, 그 백성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원하사, 아브라함에 약속한 그 언약의 땅으로, 우리를 신실하게 인도하고 계신다.’ 이런 신앙의 고백이, 바로 이 유월절을 광야에서 지키는 이스라엘 모두의 마음과 정신에, 그리고 오늘날 모든 유대인들에게까지 동일하게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마다, 이 유월절을 지키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출애굽의 결정적인 순간에, 또 시내 광야에서 율법을 받고 가나안을 향해 행진하는 순간에, 그리고 여호수아가 정말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도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또 가나안 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히스기야나 요시야 왕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했던 시기에는 언제나 그 중심에 이 유월절이 있었습니다. 유월절을 온전하게 지킴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구원과 은총을 다시 한 번 기억했고, 또한 그들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확인하면서, 다시 한 번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속에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던 것입니다. ​ 우리는 이러한 유월절 언약의 모든 내용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고 성취되었음을 믿는, 새 언약의 백성이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바로 그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이라고 믿습니다. 실제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유월절에 이루어진 사건이었지요. 당신의 죽음이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이라고,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먹고 마시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지요. …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들 가운데 거류하는 이방인들도 이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도 예수님을 통해 완성됩니다. 그저 어느 민족, 어느 태생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지금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와 있느냐, 누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냐, 그것이 문제임을 유월절이 보여주듯이, 예수님의 구원은 유대인만이 아닌 모든 이방인에게까지 미치게 되었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 또한 만민에게 부어졌습니다. ​ 또 본문 12절에 보면,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하나도 꺾지 말고 먹으라는 말씀도 나오는데요, 사도 요한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지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았다, 다른 모든 십자가 죄인들이 그 죽음을 앞당기고 확인하기 위해 무릎 뼈를 부러뜨린 것과 달리, 주님의 뼈는 온전히 보존되셨다, 주님은 온전한 유월절 어린양이시며, 친히 우리의 생명이 되신다, 사도 요한은 증언합니다. … 그런데 저는 이번에 본문을 읽으면서 이 부분이 참 여러 가지로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왜 뼈를 부러뜨리지 말고, 손질하고 해서 먹지 말고, 그냥 전체를 다 먹으라고 했을까? 물론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조금만 일찍 준비하면 얼마든지 각 부위별로, 나눠서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저는 이것이, 우리가 유월절 어린양 예수를 먹고 누림에 있어서, 예수의 일부가 아니라, 예수의 온전한 전체를 믿고 먹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 주님의 어떤 한 부분이 아닙니다. 그분의 하나님 되심과 사람 되심, 그분의 사랑과 심판, 그분의 축복과 저주까지, 우리는 모두 다 믿고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고 또 좋아하는 예수님의 모습만이 아닙니다. 주님의 전부를 믿고 먹어야 합니다. … 우리는 대부분 주님의 사랑과 희생과 용서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전부는 아니지요. 주님은 누군가를 향해 독사의 자식이라 부르며 분노하셨고, 또 종말의 주님으로 오실 땐 그 모든 어둠의 일들을 심판하실 심판의 주로 오십니다. 우리는 그 예수를 전부 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고 질병이 낫고, 위로와 평화를 얻는다는 그런 복음만 있는 게 아니지요. 예수 믿으면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고, 고난도 받아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겨야 하고, 우리도 주님처럼 믿음이 약한 이들에게 오래 참는 사랑을 주기도 해야 합니다. 그게 예수가 전한 전체 메시지입니다. 그 뼈를 꺾어서, 내가 원하는 부분만, 내가 익숙하고 좋아하는 부분만 먹으면 안 됩니다. 유월절 어린양 전체를 다 먹어야 했던 것처럼,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부위도 그대로 다 먹어야 했던 것처럼, 여러분은 그리스도 전체를 다 잡수셔야 합니다. … 말씀드린 것처럼 부정하다고 해서 유월절을 못 지키는 게 아닙니다. 부정한 것보다 더 하나님 앞에 심각한 것은, 내 맘대로 그 절기를 지키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을 선택하여 믿으려는 모습입니다. 조금 늦게 지켜도 좋고, 때론 멀리 나갔다가 되돌아와서 지켜도 되지만, 중요한 것은 주님 말씀대로 바르게 지키는 것, 예수의 말씀, 성경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부 다 먹고 누리는 것입니다. … 예수를 온전히 알고, 온전히 먹고 믿을 때, 그 구원과 생명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심을 믿고,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고, 온전한 말씀 그대로를 먹고 행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하나님은 이렇게 유월절을 통해서, 가나안으로 출발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합니다. 너희가 누구이며, 누구의 백성인가, … 또한 이 여정이 어디서, 누구에 의해 시작된 여정인가, … 누가 이 길을 인도하는가, 그것을 확인하고 되새겨라, 이것이야말로,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준비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해했을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며, 우리의 생사화복이 오직 하나님께 달렸고, 애굽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친히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신다. 사람이 아니다, 모세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모든 존재와 삶의 여정을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신다, 다시 한 번 기억했을 것입니다. ​ 성막을 덮은 구름기둥은 바로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그들을 또한 친히 인도하신다, 그것이 구름기둥에 담긴 메시지입니다. … 이 부분은 이번 가나안 여정에 있어서 누가 그 발걸음을 인도하는가, 누구에게 주도권이 있는가, 이것을 분명하게 강조합니다. 이 행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걸음과 보폭을, 그 속도와 방향을 다 정해주시는 그런 행진이라고 말씀하지요.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를 때 행진하고, 만약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다면, 행진을 멈추고, 그곳에 진을 쳐야 합니다. 구름이 다시 떠오르면, 하루 만에 다시 짐을 챙겨 떠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이틀이든, 한 달이든, 심지어 일 년이든, 구름이 성막에 머물러 있으면, 그들도 꼼짝없이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가고, 멈추고, 머물고, 다시 일어서 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렸으니, 거기에 주목하고 거기에 반응해라, 그러면 가나안 땅을 밟을 것이다, … 너희의 구원이 그렇게 이루어졌듯이, 너희 삶의 여정도 그렇게 나에게 맡겨라,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 이제 당연히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됐지요. 구름을 잘 지켜봐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바쁜 일이 생기든, 그들은 끊임없이 성막에 드리운 구름에, 그들의 시선을 고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에 주목하는 삶인 것입니다. …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의 영적 훈련이고, 훗날 가나안 땅에서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내야 할 어떤 삶에 대한 일종의 예행연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가나안 땅에 가기 위한 어떤 광야의 네비게이션이 아니지요. 가나안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삶 전체를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그들은 광야의 행진을 통해 지금 미리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 실은 가나안 땅이 더 중요한 곳이요, 더 어려운 곳입니다. 광야보다 가나안 땅이 더 위험하고 순종하기도 더 어려운 곳입니다. 더 이상 구름이 그들을 인도하지 않는 곳이고, 눈에 보이는 어떤 하나님의 임재가 더는 나타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거기서도 그들은 하나님께 주목하고, 반응하며 살아야 합니다. 구름이 더 이상 그들을 인도하지 않는다면, 그럼 뭐만 남겠습니까? 무엇이 그들의 인생을 인도하고, 그들의 삶을 주관합니까? …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만 남는 거지요. 오직 그 말씀이 그들에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니, 그 말씀을 온전히 먹어야 산다고, … 그들이 좋아하는 부분, 먹기 쉬운 부분만 먹는 게 아니라, 조금 힘들고 질긴 말씀들까지도, 그들이 다 먹어야만 참으로 산다는 것을, 하나님은 광야에서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 그런 삶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바쁜 일상에서 하나님께 주목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만약 그들이 광야에서 구름을 주목했던 것처럼만 살 수 있다면, 늘 구름을 보며 광야를 걸었던 것처럼, 가나안에서도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고, 주목하고,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그들은 결코 부족함이 없을 거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도 마찬가지지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구름을 바라보듯, 우리도 일상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주목하고, 성령의 임도하심에 귀 기울여 살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주님의 생명을 깊이 누리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만족하고 즐거워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광야의 여정을 걸어가는 데 옆에 있는 지체들도 너무나 큰 힘이 될 겁니다. 내가 잠시 구름 보는 것을 놓쳤어도, 그것에 주목하고 있던 사람이 곁에 있다면 정말 힘이 되겠지요. 봐봐, 구름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어서 일어나, 나와 함께 가자, 곁에서 말해 준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힘이 되겠습니까?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주님의 몸 된 교회로 부르셨고, 그래서 함께 그 길을 걸어가게 하신 뜻을 잊지 말고, 서로에게 그런 든든한 믿음의 이웃이 되어주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 오늘의 이 말씀을 그저 막연하고 상투적인 설교의 내용으로 받아들이지 마시고, 조금 더 진지하고, 진정성 있게, 여러분의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무슨 일을 하든, 특히 어떤 중요하고 특별한 일을 시작할 때는, 늘 주님께 먼저 아뢰고 주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그런 믿음의 습관을 꼭 기르시기 바랍니다. 과연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내가 이 순간 어떻게 행하기를 원하시는지, 이 일이 과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맞는지, 잠시 멈춰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모세가 독단적으로 유월절 규례를 해석하고 답변하지 않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묻고 듣는 그런 겸손한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 물론 모세가 들었던 그런 분명한 음성이 아닐 수도 있고, 구름처럼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누구를 통해서든,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친히 인도하시리라는 것을 믿으셔서, 중요한 일 앞에 설 때마다,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한 순간마다, 잠잠히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시편 37편에서 고백한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 37:23~24) 다윗의 이 고백이 우리 삶의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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