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봉함된 말씀" 2014년 6월 18일 새벽 설교

2014-06-18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6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40618 수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8장 16~18절, 이사야 강해77 봉함된 말씀 * 설교 음성 :  http://www.4shared.com/mp3/J-vG5hT1ba/20140618_.html 이사야서 일흔일곱 번째 말씀으로, ‘봉함된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아무리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해도, 들은 대꾸도 하지 않는 상대가 있을 때, 우리는 결국 하던 말을 그치고, 입으로 삼키게 되지요. 오늘 읽은 본문 속의 하나님도 그와 같은 모습으로 이사야를 부르고 계십니다. 16절에, 말씀을 싸매고, 봉함하라, 이렇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얼마 전만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큰 서판에 통용문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라고 이사야에게 명령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 하나님께서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말씀이 전해지지 않도록 봉함하게 하십니다. 말씀을 싸매고 봉함한다는 말은 말 그대로 지금까지 이사야를 통해 하셨던 모든 말씀의 내용을 더 이상 아무도 읽지 못하게 보관하라는 의미입니다. 당시의 관습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이 말씀을 들은 이사야는, 그가 기록한 하나님 말씀을 둘둘 말아서, 양초로 봉인하고, 이후 습기에 견딜 수 있는 어떤 도자기 항아리 같은 곳에 넣어 두었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이사야서는 66장까지 있고, 지금까지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앞으로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하시겠지만, 이제 그 말씀들은 다 봉함을 목적으로 한 말씀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 말씀을 읽을 수도 들을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런 구절은 우리에게 매우 낯선 장면입니다. 지치지 않으시는 하나님, 사랑이 끝이 없는 하나님, 포기를 모르시는 하나님으로 우리는 알고 있기에, 이렇게 증거의 말씀과 율법을 봉함하는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정확히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백성들을 향한 실망과 자포자기만은 아닐 것이라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의 가장 1차적인 이유가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유다의 왕과 백성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새벽마다 이사야의 말씀을 읽고 묵상한 저와 여러분이 이 모든 사태의 증인이기도 합니다. 아시는 대로 “이사야는 아람과 이스라엘이 유다를 위협하는 2-3년간의 기간 동안, 유다를 향해 집중적으로 말씀을 선포해 왔습니다. 아하스 왕과 백성들을 향해,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라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스알야숩, 임마누엘, 메헬살랄 하스바스 등 눈에 보이는 표적들까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반응은 너무나 냉담했습니다. 아무도 이사야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고, 끝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훗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이와 비슷한 당부의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마태복음 7장 6절 말씀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예수의 소식과 그 가르침을 처음부터 적대적으로 대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자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전하는 이를 향해 적개심을 품고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을 주님은 돼지에 비유하시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차라리 전해지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유다 백성들 역시 같은 처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도 없다고 여겨질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적대감을 증대시키는 도구가 될 뿐임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참된 회개의 길을 선택하기는커녕 하나님의 말씀을 발로 밟고 그 전하는 메신저도 찢어 상하게 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다시 하나님의 선택도 더 큰 징계와 더 혹독한 심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결국 오늘과 같은 불가피한 선택을 취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이러한 말씀의 봉인은 먼 과거에만 일어났던 일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 내내 반복된 일이고, 당연히 저와 여러분에게도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 역시 같은 상황을 맞는 일이 일어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고, 들리지 않게 됩니다. 물론 말씀의 두루마리가 봉인된 것도 아니며, 예언자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성경은 어디에나 가도 널려 있고 온갖 미디어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설교도 넘쳐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오늘 유다 백성들이 어째서 말씀의 봉인을 당했는지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것은 메시지가 없어서도 아니며, 그것을 전달할 스피커가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순종하지 않았으며, 그런 일이 오래도록 반복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 메신저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말씀에 대한 우리 자신의 반응과 모습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말씀에 관하여 극도로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내게 말씀이 봉함되었다고는 차마 상상조차 하지 않고 삽니다. 늘 말씀을 읽고 듣고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과연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안에 그 말씀이 심기워지고, 싹이 나서 자라고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아니면 단단한 마음의 땅을 뚫지도 못한 채 튕겨져 나가 길가 위에 흩어져 사라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저 여러분의 눈과 귀에 머물며 또 다른 하나의 지적 유희로 전락한 채 그렇게 여러분의 영혼과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상황은 아닙니까?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간혹 깨달아도 참되게 돌이켜 회개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여러분 스스로 말씀을 봉함해버리는 때가 오고 맙니다. 아니 이미 왔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저와 여러분처럼 늘 말씀을 듣고 묵상한다고 하는 이들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삶으로 써지지 않는 말씀은 우리 영혼에 더 단단한 굳은살을 박히게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들려지고 내 마음에 심겨졌을 때 돌이켜 회개하고 우리의 삶을 고쳤어야 합니다. 회개 없는 말씀의 자극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더 이상 말씀이 마음 깊은 곳에 이르지 못할 때,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내 감각 표면에 봉함되고 맙니다. 귀와 눈 안으로 단 1mm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의 삶 속 어디에도 말씀의 능력은 없습니다. 그저 봉인된 말씀의 두루마리들만 둥둥 떠다닐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더욱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합니다. 내 삶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가? 말씀이 진정 나를 진정 고치고 새롭게 하고 있는가? 두려운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약 오늘 유다 백성의 처지와 같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봉함되어 읽혀지지도 않고, 들려지지도 않으며, 아무런 영향력도 없이 그렇게 갇혀 있다면,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봉인을 풀어주시고, 다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간구하고 기다리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영적 재앙입니다. 사랑하는 고백교회 지체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열려져 있을 때, 그 말씀을 온전히 듣고 깨달아 삶을 고치십시오.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을 때, 더 많이, 더 열심히 먹고 더 풍성히 누리십시오. 그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 깊은 곳까지 이르러 머물 수 있도록, 촉촉한 땅이 씨앗을 품어 간직하듯, 그렇게 여러분 안에 깊이 품어두십시오. 그 진주가 결코 버려져 밟히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께 별과 같이 빛나는 보석이듯,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석처럼 귀히 여기십시오.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그리고 삶에 온전히 머물게 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씀이 살아 역사하여 여러분의 삶에 열매로 맺혀지도록, 온전히 가꾸고 돌보며, 사랑하십시오. 부디 주의 말씀과 그 은혜의 생수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언제나 풍성히 흘러넘치기를 그래서 여러분의 삶은 물론 주변의 모든 이들의 삶까지 적시고 살아나게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 설교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