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레위기 강해 7. 제사장들을 위한 제사 규정
2021-03-17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18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210317 수요 성경 강해
---------------------------------
레위기 6:8~7:38, 제사장들을 위한 제사 규정
* 설교 음성파일 : 첨부된 파일을 다운로드 하시면 음성으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량으로 인해 전반부 일부는 생략되었습니다. 원고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첨부파일
lev07
.mp3
파일 다운로드
■ 지난주로 다섯 가지 제사에 대한 말씀이 모두 마무리됐는데요, 오늘 저희가 함께 읽은 본문을 보면, 다시 그 내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세부적인 내용도 거의 비슷한데요, 그럼 왜 이렇게 같은 내용이 반복될까 생각해보면, 오늘 6장 8절과 9절(또 25절 등)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6장 8~9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라.” 여러분, 어떤 힌트가 좀 보이시나요? … 그럼 이번엔 다섯 가지 제사가 처음 언급되었던 레위기 1장으로 가 봅시다. 1장 1절에서 2절 말씀을 보면, “1.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이 두 가지 본문을 비교해보니, 여러분 그 차이가 발견되지요? 앞의 1장부터 5장까지는, 예물을 드려 제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고, 오늘 읽은 6장과 7장의 이 말씀은 직접 그 제사를 드리게 되는 제사장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같은 제사지만, 제사를 드리러 오는 사람과 그 제사를 직접 집례 하는 제사장은, 제사를 준비하는 과정이나 주의사항 같은 것들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비슷한 내용이지만 실은 그 안에 중요한 차이들이 발견되는 이유입니다. 오늘 본문은 제사장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거든요. 이 다섯 가지 제사들을 하나님께 드릴 때, 어떤 절차에 따라 드려야 할지, 제사장으로서 조금 더 신경 쓸 부분은 뭔지, 또 제물 가운데 어떤 부분이 제사장 자신의 몫인지 등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이 다섯 가지 제사에 대해 길게 말씀합니다.
어쨌든 이렇게 비슷한 내용을 한 번 더 반복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제사들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요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강해 때도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목적은, 결국 이러한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당신의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레위기는 그 목적을 이루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 … 레위기 강해를 처음 시작할 때, 이 레위기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사랑하며 살아갈 것인가, 바로 그 ‘어떻게’에 대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떻게’의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고, 그 예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헤아려 살아갈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오늘날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로 죄 사함의 은총을 받은 목적은, 결국 죄와 사망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이지요. 예배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실체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온전케 하십니다. 영과 진리로 참 되게 예배하는 자를 지금도 하나님께서 찾으신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이젠 성도 스스로 제사장이 되어 영과 진리로 예배드립니다. 더 이상 제사장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또 목사만 제사장인 것도 아니지요. 우리 모두가 역할만 다를 뿐 동일한 제사장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 이 다섯 가지 제사에 관한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합니다. 비록 더 이상 제사라는 형식은 아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제사 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우리의 예배와 삶으로 고백해내야 하는 제사장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는 이 레위기 말씀을 통해서, 그 제사장의 삶을 잘 살아낼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풍성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비록 그 내용은 거의 비슷하지만, 하나님께서 거듭 중요하게 다루시는 내용이니만큼, 저희도 한 번 더 다섯 가지 제사를 전체적으로 정리하고, 또 앞에 나오지 않았던 내용들에 대해서는 제가 조금 더 강조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본문을 보면, 이 다섯 가지 제사의 설명 순서가 앞에서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앞에서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의 순서였다면, 여기서는 중간에 있던 화목제가 맨 뒤에 배치됩니다. 성경이 그 이유를 따로 설명하지는 않고 있지만,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 화목제가 일단 좀 특별한 제사이지요. 모든 제사 중에서 가장 자발적인 제사, 비의무적인 제사라는 점에서, 다른 네 가지 제사와는 명확히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드린 제물 중에서 태우지 않고 남은 것을 처리하는 방식이 가장 독특하지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부분이 가장 많고, 또 그 남은 부분을 먹는 그것에 이 제사의 본질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도, 화목제는 다른 제사와 많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으로서 신경 쓸 부분도 그만큼 많은 게 사실이지요. 오늘 읽은 본문 중에서 화목제가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텐데요, 아마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화목제는 아예 맨 뒤에서 따로 길게 다루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먼저 화목제부터 살펴보면요, … 여러분 화목제[쉘렘], 그러면 뭐가 제일 먼저 생각나십니까? … 그렇지요.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제사가 화목제인데, 그 수직적인 감사를 수평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제사, 그게 화목제였습니다. ‘화목’ 그러면 ‘샬롬’인데요, 우리의 삶에 샬롬을, 평화를, 안녕을,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 감사의 제물을 내 가족, 이웃, 제사장들과 함께 나눔으로써, 그 샬롬을 수평적으로 확장시키는 제사가 화목제입니다. 하나님께는 기름과 콩팥, 간의 꺼풀(이것도 기름)만 태워서 드리고, 남은 모든 고기는 사람이 함께 나눠먹게 되는데요, 중요한 건 반드시 하루 혹은 이틀 안에 먹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오늘 제가 드린 화목제물인데, 제사를 드리면서 당신이 생각나서, 평소 고마운 마음을 전할 겸 이렇게 가져왔습니다. 맛있게 잡수시고,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뭐, 이렇게 함께 나누며 먹었을 겁니다. 이게 화목제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앞에서 다뤄지지 않은 내용 한 가지가 자세히 언급되어 있는 걸 보게 되는데요, 7장 뒷부분에 나오는 내용인데, … 비록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부분은 기름과 콩팥이지만, 태우지 않고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따로 있고, 그 방법도 특별히 정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직접 바쳐지는 것을, 7장 30절에 보면, ‘여호와의 화제물’이라고 부르는데요, 화목제에 있어서 이 화제물은,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이라고 나옵니다. 기름만 화제물인 것이 아니라, 가슴 부분도 화제물입니다. 여기서 기름은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지요. 하지만 가슴은 어떻게 합니까? 네, 태우지 않고, 다만 하나님 앞에 흔들어서 올려 드립니다. 그래서 흔들 ‘요’(搖)자를 사용하여 이러한 제사를 ‘요제’라고 합니다. 이렇게 가슴은 흔들어서 드리기만 하고, 그대로 제사장의 몫이 됩니다.
사실 화목제에서 제사장에게 돌리는 몫은, 하나의 부위가 더 있습니다. 네, 오른쪽 뒷다리 부분입니다(32절). 그런데 이때는 앞의 가슴처럼 ‘여호와의 화제물’로서 따로 하나님께 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요제’라고도 하지 않고, 다만 ‘거제’라고 해서 가슴과 구별합니다. 거제의 ‘거’는 들어올릴 ‘거’(擧)인데요, 아마 제사장이 이 제물을 받은 다음에 일단 하나님 앞에 들어 올려서 감사한 후에 자신의 것으로 취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제사장은 화목제를 통해 제물의 많은 부분을 받습니다. 소나 양, 염소의 가장 살이 많은 부분,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이지요. 보통 뒷다리는 앞다리보다 무게가 거의 두 배가 나간다고 합니다. 물론 오늘날은 그 맛이나 식감 때문에 앞다리가 조금 더 비싸기는 하지만, 어쨌든 가장 풍성한 부분을 제사장의 몫으로 받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의 생활은 전적으로 백성들의 삶, 또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과 잇대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화목제에 대해 본문에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부분은, 제물의 많은 부분을 사람이 먹는 이 화목제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은 사람이 절대로 먹지 말아야 할 부위를 두 곳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어떤 것은 먹으면 안 됩니까? 네, 기름과 피는 먹지 못합니다. 기름은 그 생명의 가장 좋은 것을 상징한다고 했지요. 그래서 제물의 기름은 모두 온전히 태워야 합니다. 물론 일상적으로 그냥 도살한 경우에는 얼마든지 기름을 먹거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피는 어떤 경우에도 먹을 수 없습니다. 피는 곧 생명 자체를 의미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피를 많이 흘리면 모든 생명이 죽습니다. 피가 곧 그 생명이고,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니, 피는 먹지 말라고, 고기를 먹을 때에도 피는 모두 제거하고 그러고 나서 먹으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지금이야 먹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만, 그러나 그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만큼은 우리가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 겁니다.)
이런 화목제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었지요? 네, 감사제와 서원제, 자원제, 이렇게 세 종류로 구분됩니다. 감사제는 특별히 감사한 일이 생겼을 때 드리는 화목제이고, 서원제는 내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바라고 서원한 일이 이루어졌을 때, 그때 드리는 화목제입니다. 또 자원제는, 그냥 감사해서 드리는 제사였지요.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중에서 감사한 일이 생겨서 드리는 화목제의 경우에 대해, 앞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내용이 한 가지 언급되는데요, 이 감사의 화목제에서는, 무교병만이 아니라 누룩이 들어간 유교병까지도 같이 예물로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유교병까지 드리게 되는 아주 특별한 제사가 바로 이 감사의 화목제인데요, 이 제사가 가장 즐겁고 밝은 제사, 정말 감사의 축제 같은 제사였을 테니, 이러한 예외적(?)인 모습도 있었을 겁니다. 또 한 가지 이 감사제의 중요한 특징은, 하루 만에 그 제물을 다 먹어야 하는 제사입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풍성하게, 가장 즐겁게 나누는 제사가 바로 감사로 드리는 화목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올 한 해 저와 여러분의 삶에도 이런 감사의 제사가 드려질만한 그런 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하게 넘치기를, 그래서 많은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이번엔 다섯 가지 제사 중에서, 죄에 대한 속죄 의미가 담긴 속죄제[하타트]와 속건제[아샴]를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 제사는 본문에서 가장 간단하게 다뤄집니다. 앞의 레위기 4장과 5장에서 설명된 내용을 요약한 정도인데요, 기억나시겠지만, 둘 다 고의가 아닌, 부지중에 지은 죄에 대한 속죄를 목적으로 드리는 제사였지요? 네, 그래서 두 가지 제사의 규례가 거의 비슷한데요(7:7), 다만 속건제는, 나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이웃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드리는 제사, 그래서 그 피해에 대한 배상과 함께 드리는, 특별한 속죄의 제사였지요. 지난주 말씀이었으니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속건제는 몇 %를 배상해야 했지요? 네, 120%를 배상하고, 그 후에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립니다.
어쨌든 속죄제와 속건제 둘 다,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사입니다. 죄를 속죄하고,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여,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제사이지요. 속죄는, 내가 죄를 깨닫고 고백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과 절차대로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속죄의 방법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속죄제와 속건제는 드려졌지요. 더 이상의 제사는 필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자백하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배상이 필요할 땐 먼저 그것을 갚는, 온전한 배상의 과정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죄의 자백과 배상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고, 그래서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고백하지 않고, 목이 곧은 채로 돌이키지 않을 때, 그 죄는 우리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했습니다. 제물의 피를 성소 곳곳에 발라야만 했던 속죄제를 통해서 우리가 이미 확인했던 부분이지요.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물론, 우리의 삶에도 실제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와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던 내용인데요, 속죄제에서도 그 고기를 제사장이 먹을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사장 본인의 죄가 아닌, 평민이나 족장들의 죄를 위한 속죄제일 땐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때 그 고기를 삶을 때 사용한 그릇마저도 하나님은 씻거나 깨뜨리라고 말씀합니다. 고기를 토기에 삶으면 그 그릇을 깨뜨려야 하고, 또 유기, 곧 놋쇠로 만든 그릇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잘 닦고 물로 씻어내야 합니다. 다른 제사에는 없는 조치이지요. 비록 부지중에 지은 죄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죄를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살펴보면, 그 죄가 우리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끼치는지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를 깨닫는 은혜를 주실 때, 속히 돌이키고 자백함으로써,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늘 확증하는, 그런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번제[올라]와 소제[민하], 두 가지 제사만 남았는데요, 이 둘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사입니다. 기본적으로 날마다 함께 드려져야 하는 그런 제사지요. 뭐,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날마다, 하루에 두 번씩, 아침저녁으로 제사장이 무조건 이 번제와 소제를 드려야 합니다. 번제가 주된 제사이고, 소제가 함께 드려지는 것인데요, 이렇게 매일 드려지는 번제를 상번제, 항상 드리는 번제라 칭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 제사 안에는, 우리의 일상과 삶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번제에는 어떤 특징이 있다고 했는지 기억나시는지요? 네, 제물의 모든 것을 태워서 드리는 유일한 제사가 번제입니다. 가죽만 남겨서 제사장에게 주고, 모든 것을 전부 다 태웁니다. 번제를 드리면서 제사장은 무엇을 생각했겠습니까? …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 전부를, 나의 모든 삶과 인격 전부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그런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번제에 담긴 의미입니다. …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고, 맡기고, 의지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의 백성으로 사는 것은, 나의 생명과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왔으며, 하나님에게 의존되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번제를 통해, 그것을 날마다 확인케 하십니다. 내 전부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all or nothing이지요.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선 때론 긴가민가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이것을 기억하라고, 제사장들에게는 특히나 날마다 이 번제를 드리게 하심으로써, 늘 깨어 있으라, 요구하십니다.
그럼 소제는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네, 곡식으로 드리는 곡식 제사였지요. ‘소제’의 ‘素’가 희다는 뜻으로, 붉은 피 없이 하얀 곡식으로만 드리는 유일한 제사이지요. 소제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까? … 곡식은 내가 땀을 흘려 노동을 한 결과물이지요. 그것을 곱게 갈아서 드리는 제사이니까, 소제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순수한 희생과 봉사를 올려드리는 제사입니다. 앞의 번제가 내 인격과 삶 전부를 드리는 헌신을 상징했다면, 소제는 거기에 나의 땀과 노력과 행위의 헌신을 상징합니다. 소제라는 히브리어 명사 ‘민하’의 의미가 본래는 ‘선물’, 특별히 신하가 주군에게 바치는 선물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내 땀과 노력이 온전히 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인정하는 고백이 소제인 것입니다.
소제는 우리의 순수한 마음을 담는 제사이기 때문에, 여기에 넣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네, 보통 떡이나 전병을 구울 때 넣는 누룩과 꿀을 넣지 말아야 합니다. 부풀리는 누룩, 더 좋게 만드는 꿀, 이런 것 넣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 순수하고 깨끗한 그 마음을 가식 없이 드리라고 하십니다. 정성이 담긴 예배여야겠지만, 정성스럽게 보이기 위한 장식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내 모습 그대로, 내 형편 그대로 하나님께 드리면 됩니다. 속건제를 제외한 모든 제사의 제물은, 자기 형편에 따라 고를 수 있도록 되어 있지요. 비둘기밖에 드릴 형편이 안 되면 그 비둘기가 하나님께는 곧 황소의 예물이 됩니다. 불필요한 책임감이나 혹은 인색함으로가 아니라, 정말 순수한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리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제사장은 이렇게 소제와 번제를 매일 두 번씩 드려야 한다고 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중요한 규례 하나가 본문에 기록되어 있어서, 이 부분을 마저 살펴보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번제에 대한 본문의 설명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6장 9절과 12절에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고, 또 13절에서도 한 번 더 강조하여 말씀합니다. 제물을 태우는 번제단의 불은, 제물이 거기 있든 없든,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져야 하고, 그 불은 절대 꺼지지 않게 해야만 합니다.
왜 번제단의 불을 꺼뜨려서는 안 된다고 하실까, 생각해보면 … 우선은 이런 실제적인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번제물을 아침까지 밤새 제단 위에 올려두라고 하시니까, 그 제물이 완전히 다 타서 재가 될 때까지 충분한 시간 동안 태우라는 말씀일 겁니다. 제물 전부를 받으시는 번제의 특성상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지요. 또한 언제 번제가 드려질지, 백성 중 누군가가 언제 번제물을 가져와 제사를 드리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제사장은 늘 그렇게 언제든 제사를 드릴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하지만 단지 그러한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이렇게 강조하시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말씀의 어조는 그보다 훨씬 더 단호합니다. 불 자체가 아예 꺼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그 불을 돌보고 살피는 것이 제사장의 책무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실용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뭔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의미일까요? 왜 하나님은 굳이 제사를 드리지 않는 때에도 번제단의 불을 꺼뜨리지 말라고 강조하실까요?
네, 그 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기에 꺼뜨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서 결코 떠나지 않으시고, 밤새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그 백성을 돌보시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기억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성소의 여러 성물 중에서, 역시나 그 불을 꺼뜨리면 안 되는 다른 한 가지가 또 있는데요, 혹시 생각나시는지요? … 네, 성소에 있는 등잔대 등불입니다. 일곱 개의 등잔으로 이루어진 살구나무 모양의 등잔대, 그 등불 역시 절대로 꺼뜨리지 말라고, 제사장이 아침저녁으로 기름(관유)을 채우고, 늘 그 불을 정성껏 관리하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것이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빛을 의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번제단의 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차이가 좀 있다면, 번제단의 불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 예배를 위한 불입니다. 다시 말해서 단순히 하나님의 임재의 불꽃이라기보다 그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우리의 예배의 불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나님께서는 그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을 늘 기억하고,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산 제물로서 드려질 수 있도록, 사람이 보든 안 보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늘 하나님 앞에서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꺼지지 않는 불’은 성경에서, 특별히 신약에서, 어떤 의미로 주로 사용되는지 기억나십니까? ‘꺼지지 않는 불’ 그러면 뭐가 생각나세요? … 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의 불을 의미합니다.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는 말씀 다 아시지요?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에 대해 말씀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항상 ‘꺼지지 않는 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막 9:43, 눅 3:17). 반드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고, 그 종말의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직접 이 ‘꺼지지 않는 불’의 이미지로 생생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그렇게 ‘소멸하는 불’ 되시는 하나님을 늘 잊지 않고 살아가라는 뜻일 겁니다. 비록 지금은 이 땅에서 내가 주인인 것처럼 살아가지만,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그 심판 앞에 서게 됩니다. 그것을 얼마나 잘 인식하고 살아가느냐에, 지금 우리 삶의 모습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미래에 있을 심판을 바로 지금 내 앞으로 가지고 와서, 바로 여기서 그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사는 것, 이른바 ‘종말론적 삶’이라고 하는 그 깨어 있는 삶을 통해서만,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종말론적 삶은 당연히 거룩하고 정결한 모습으로 먼저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 번제의 규례를 설명함에 있어서, 제사장의 의복에 대해 말씀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6장 10절이지요,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합당한 의복이 세마포로 만든 옷이라고 말씀합니다. 제사장은 세마포로 된 긴 겉옷을 입고, 또 그 안에 세마포로 된 속옷을 입습니다. 제사장이 입는 옷 전부가 세마포인 셈입니다. 깨끗하고 심플한 옷이지요. 그것이 제사장의 옷이요, 성도의 옷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세마포 옷은 예수님의 재림 때 입는 옷으로 나옵니다(계 19장). 성도만 입는 것이 아니라, 천사도, 하늘의 군대도 다 하얀 세마포 옷을 입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옳은 행실, 정결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제사장들은 세마포 옷을 입고, 그렇게 그 종말의 삶, 하나님의 임재의 불꽃 앞에서의 삶을 날마다 살아냈던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저와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이제는 목사만 제사장이고, 뭐 그런 거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며, 성령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삶의 모든 자리가 성소이고, 성막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도 결국 세상과 구별된 삶이고, 정결하고 단순한 삶의 모습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 세마포, 그 성도의 옳은 행실이면 족한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다. 정결한 옷이면 족한데도, 자꾸만 우리는 화려한 장식과 액세서리에 마음이 갑니다. 남보다 더 잘 나가야 하고, 더 인정받아야 하고,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그것이 세마포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는지, 과연 우리의 마음과 관심이 어디에 쏠려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다섯 가지 제사에 대해, 제사장의 입장에서 살펴야 할 부분들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말씀을 나눴는데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는 제사장임을 늘 잊지 마십시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제사장의 세마포이고, 우리 삶의 매순간이 성막이요, 번제단 앞임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정의를 행하고, 친절한 사랑을 베풀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최고의 삶이라는 말씀을 믿고, 우리를 부르신 어느 곳에서나, 온전한 예배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