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2020년 10월 18일 주일 설교

2020-10-19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16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 오순절 후 스무 번째 주일 메시지 ------------------------------------------------- 고린도전서 5:1~13,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 * 설교 음성파일 : 첨부된 파일을 다운로드 하시면 음성으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첨부파일 cor11 .mp3 파일 다운로드 ​ ​ (고린도전서 강해 11) 본문 13절의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를 오늘 말씀의 제목으로 삼습니다. 이 말씀의 가르침이 저와 여러분의 삶으로 고백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제목이 좀 무시무시합니다. … 본문의 내용도 무척 심각한데요, 몇 주째 계속해서 공동체의 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어서, 성도님들이 조금 불편하고, 또 부담스럽게 느끼고 계시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이 여러모로 어려운 시절이고, 그래서 어느 때보다 위로가 필요한 때인데, … 이런 메시지가 계속되는 것이, 설교자로서는 여러모로 마음이 쓰이는 게 사실입니다. ​ 그럼에도 요즘 저는, 올 한 해 우리에게 주셨던 말씀, ‘안전하리라’의 그 ‘안전’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수요성경강해의 출애굽기 말씀도 그러하고, 주일 고린도전서 말씀도 마찬가지인데요, … 믿음의 공동체,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안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의(義)를 구하고 이루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지켜내는 것에 있다고, 주시는 말씀마다 계속해서 권면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요즘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QT 본문은 계속해서 다윗의 시편인데요, 거기서도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은 일관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엊그제 금요일 본문이었던 시편 26편에서 그가 고백하기를, “3. …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4.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 하리이다. 5.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시 26:3~5)라고 했습니다. 진리 안에서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결코 죄의 사귐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으로, 이 또한 오늘 본문의 메시지와 정확히 일치하는 말씀입니다. ​ 사실 ‘안전하리라’는 2020년 표어, 그 실제 본문인 잠언 말씀 역시 실은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 29:25)는 말씀 앞뒤를 보면, 진리에서, 하나님의 의에서 멀어진 자들이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는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결국 불의와 함께 하는 자로서 올무에 걸리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의지하는 자는 끝까지 의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하나님의 안전을 경험하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 물론 우리가 건강하고, 우리의 일상이 무탈하며, 우리의 하는 일이 형통한 것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안전’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그것과는 다른 안전에 대해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로, 거룩함으로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가는 그것이 다름 아닌 성도의 안전이며, … 그렇게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그러면 그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은 지금 안전하십니까? 또 우리고백교회는 안전한 교회인지요? ​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고린도교회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성장하여 많은 성도들이 모이고, 또 성도들의 삶이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고, 교회 안에 많은 영적 은사와 신비한 능력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죄의 누룩이 교회라는 반죽 안에 들어와 삽시간에 온 반죽을 부패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 본문에 기록된 죄의 누룩, 고린도교회가 간과한 죄의 누룩은 다름 아니라 음행[포르네이아]이었습니다. 한 성도가 자기 아버지의 아내, 그러니까 아버지의 후처를 취한 것입니다. 이 아버지가 생존해계신지 아니면 돌아가셨는지 알 수 없지만, 계모와 아들이 관계를 맺는, 일종의 근친상간이 이루어졌습니다. 여기 ‘아내를 취하였다’는 본문 1절 끝의 동사[에케인]는, 어떤 단 한 번의 성적 일탈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완곡한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일종의 동거 상태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 이러한 행위는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일이라고 바울은 탄식합니다. 성적인 문제와 관련해서 당시의 교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자유분방했던 그리스로마 사회에서도, 그런 일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또 엄청난 성적 방종으로 유명했던 고린도 지역에서조차 비난받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구약의 율법도 이를 엄하게 금하여 저주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 그런 일이 벌어진 것도 충격적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은, 그 사건 앞에서 교회가 침묵했다는 사실이라고 바울 사도는 지적합니다. 오늘 본문의 초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 심각한 음행의 죄 자체보다도, 그 음행을 묵인한 공동체의 모습이 더 치명적이라는 겁니다. 이 편지를 쓴 목적이 그것입니다. 죄 지은 사람을 징계하는 건 당연한 거고, 실은 나머지 교인들을 꾸짖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사도는 말합니다. 그들의 침묵으로 인해서, 죄를 지은 그 사람은 영영 돌이킬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들 역시 영향을 받아 실족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 본문은, 이 남자를 교회에서 쫓아내야 했었다고 말씀합니다. 그 방법만이 그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이며, 고린도교회는 교회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비단 이렇게 음행하는 자만이 아니라, 탐욕을 부리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든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자와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사도는 엄히 명령합니다(11절). ​ 한편으로는 참 매정하게 느껴집니다. 이러면 누가 교회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교회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사랑하고 용서해야 하는 교회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경의 관점은 분명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단호하게 죄에 반응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교회의 모습이며, 지금껏 당신의 백성들을 안전하게 보존해 오신 하나님의 일관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 죄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고, 의인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시 1:1, 5).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그 몸의 일부가 찢어져 피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는 것이 바로 성도요, 교회입니다. 여러분, 아멘이십니까? ​ 성도가 스스로를 ‘나는 의인이야,’ 이렇게 여겨서, 나만 옳다고 믿어서, 죄에 대해 그리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내가 죄에 대해 연약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연약하며 언제든 죄의 미혹에 빠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 죄의 힘을 인정하기에, 죄가 무서운 줄을 알기에, 죄 문제를 사소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누룩이 온 밀가루반죽을 순식간에 곰팡이로 가득하게 만들 듯이, 우리가 묵인하고 외면한 죄가, 나와 우리 모두를 부패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 하는 것입니다. “진실이 신발을 신는 사이에, 거짓은 세상의 절반을 달릴 수 있다(A lie can travel half way around the world while the truth is putting on its shoes).”는 마크 트웨인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선하고 의로운 것은 참으로 더디게 퍼지지만, 죄와 불의는 너무나 쉽게 전염됩니다. 그걸 알고 두려워하기에, 성도는 악의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 죄를 좀 범하긴 했지만, 그냥 내버려두면 언젠가 좋아지겠지, 때가 되면 고쳐지겠지, 내가 좀 조심하면 괜찮겠지, 이건 개인 사생활 문제니 알아서 하게 내버려둬야지, 나도 똑같은 죄인인데 나나 잘해야지,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그를 심판하시겠지, … 이러한 모든 태도에 대해 오늘 사도는 분명하게 경고합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죄이며, 그 뿌리에는 교만이 있다고 말입니다(2절). 강력한 죄의 힘을 무시하고, 그것을 나와 우리가 언제든 감당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 그 마음이 곧 교만이라는 겁니다. … 교회가 여러 다른 것으로 충분히 잘 하고 있으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그 생각도 심각한 교만이라고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그 교만이 혹시 우리에게는 없는지, 생각해봐야하지 않겠습니까? ​ 우리가 교회에서 자주 들었던 말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사랑이 없다.”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저도 과거 다니던 교회에서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만, 여러분 우리는 정확히 어떤 사랑을 교회에서 원하고 있습니까? … 당신 몸에 지금 암이 자라고 있고, 당장 수술하여 그걸 제거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말하는 게 사랑이 없는 것입니까? 팔이 지금 썩어가고 있어서 그 팔을 자르지 않으면 결국 생명을 잃을 거라고 말하는 게 사랑이 없는 것입니까? ​ 너무 지나친 비유처럼 들리시는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죄의 문제가 본래 그렇습니다. 다름 아닌 예수님께서 친히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죄이며,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교회에서 나가야 한다는 말로, 그 죄를 잘라내고 돌이키게 해서 심판 날에 주님 앞에서 용서받도록 하는 것이 사랑입니까, 아니면 봐도 못 본 척, 있어도 없는 척, 잠시 눈감아주었다가 결국 영원한 죽음에 빠지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까? 여러분, 우리고백교회는 어떤 사랑이 넘쳐야 하겠습니까? ​ 여러분, 저는 지금 그저 내 눈에 거슬리고 나랑 잘 맞지 않는 어떤 사람, 어떤 모습에 대해, 비난하고 비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반드시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뭘 그렇게 크게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하는 행동이 맘에 안 들고,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고, 그래서 주는 것 없이 미운, 그런 사람이 교회에는 꼭 있기 마련입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그런 걸 가지고 문제 삼으라는 게 아닙니다. ​ 그런 문제들은 이 땅의 모든 교회, 모든 성도가 함께 감당해야 할 운명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내 가족도 그렇지 않습니까? 가족이지만 다 맘에 듭니까? 하는 행동이 다 이해가 되십니까? 너무 맘에 안 들고, 그래서 이것만 좀 고쳤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고쳐집니까? 아닙니다. 도저히 안 고쳐져서 그냥 서로가 평생 그 부대낌을 안고 함께 살아갑니다. 나의 운명이려니, 받아들이고, 그렇게 함께 견디며 길들여져서 우리는 가족이 되고, 어른이 됩니다. ​ 교회에서의 관계 역시 그렇습니다. 단지 나와 잘 맞지 않아서,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충고하고 다투고 그러라는 게 아닙니다. 그런 건 그냥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려니’ 하고 용납하십시오. 한 번 저를 따라해 보십시오. ‘그러려니!’(*) … 그런 거 말고, 정말 누가 봐도 죄의 문제인 것, 오히려 나한테는 그것이 아무 피해도 주지 않는 일이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고, 그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 되고, 공동체엔 부패의 누룩이 되고 마는, 그런 것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 여기에는 그 방법과 절차가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영혼과 공동체의 안전이 여기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예수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 분명한 기준과 절차를 말씀하셨는데요, 마태복음 18장 15~17절 말씀입니다. (제가 천천히 읽어드리면 …) “15.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 예수님은 죄를 범한 형제에게, 총 네 번의 과정을 통해 권면하고 기회를 주라고 말씀합니다. 명백한 죄의 문제를 발견했을 때, 그것이 어떤 실수에 의한 일탈이 아니라 고의로 행한 죄일 때, 그냥 무조건 정죄하고 내쫓는 게 아니라, 한두 사람의 견해로 정죄하는 게 아니라, 무작정 수치를 주고 무안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 그가 돌이키고 회복하여 결국 그를 다시 얻을 수 있도록, 바른 절차대로 신중하게 권면할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 처음엔 누군가의 죄를 발견한 사람이 직접 그에게 권고해야 합니다. 혼자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들추어내서는 안 되며, 그가 회개하여 공동체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사적으로 권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공동체가 죄를 다루는 데 있어서 여기가 제일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이 되면 그 공동체는 안전합니다. ​ 사실 우리는 남의 잘못을 보면 다른 이들에게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합니다. 가족에게도 말하고, 목사에게도 말해서, 그래서 결국 이 심각한 죄의 문제를 한갓 스캔들보다 못한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러면 그가 회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미 수치를 당해버린 사람은 죄를 스스로 고백하고 돌이키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여기서 필요합니다. 그의 회복을 위해, 그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내가 그의 영혼에 책임을 진다는 마음으로, 그를 위해 기도하며, 정말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합니다. ​ 만약 그렇게 권면했는데도 돌이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 그땐 다른 한두 사람을 대동하여 다시 가서 말해야 합니다. 한 번 더 돌이킬 좋은 기회를 주는 것이자, 훗날 이 문제에 대한 증인으로서, 이것이 사사로운 감정으로 인한 정죄나 보복이 아님을, 같이 간 그 사람들로 보증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때 함께 해야 할 한두 사람은 나와 친한 사람이 아니라, 가능하면 교회의 영적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한 성도의 허물을 끝까지 무겁게 간직할 수 있는 사람, 개인적 친밀함을 떠나 공의로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목회자나 직분자, 순장과 같은 영적 리더십이 우선 여기 해당하겠지요. ​ 만약 이렇게 했는데도 그가 돌이키지 않는다면, 이제는 교회에 말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공식적인 문제로 삼아서 심사와 책벌의 대상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걸 교회 용어로 ‘치리(治理)’라고 합니다. 죄의 여부와 그 무게를 다뤄 공정하게 판결하고 책벌합니다. 이때의 책벌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단순히 주의를 촉구하고 재발을 방지하도록 충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견책, 또 정직과 면직, 그리고 수찬정지(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와 출교, 곧 교회에서 내쫓는 것까지, 죄의 무게와 고의성, 또 그 반복 여부에 따라 교회는 공식적으로 판결하고 명령하게 됩니다. ​ 물론 당사자가 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여전히 죄를 인정하지 않고 교회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고,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냥 교회 다니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땐 어떻게 합니까? … 네, 그냥 이방인처럼, 세리처럼, 불신자처럼 여기라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공동체의 지체로 인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물론 그가 굳이 예배드리러 오는 것까지 교회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공동체라 부르는 어떤 그 보이지 않는 교제의 영역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귀지도 않고, 함께 먹지도 않습니다. 이것 역시 사실상의 출교인 셈입니다. ​ 이 네 번의 과정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먼저는 혼자 가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는 것. 만일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모든 사실을 확증하여 다시 한 번 권면하는 것.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는 것. … 어떻습니까, 여러분. 성도와 교회가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겠습니까,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 어떤 교회가 원리원칙대로 이렇게 한다면 아마 그 교회는 인기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어려움과 핍박에 노출될 수도 있을 겁니다. 성도 개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첫 번째 권면의 단계부터, 많은 수고와 어려움을 감내해야 할 것입니다. ​ 실제로 우리는 이런 책벌이 바른 절차대로 이루어져서 교회가 거룩함을 지켜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냥 얼렁뚱땅 넘어갔다더라, 하는 말들은 많이 들을 수 있었겠지요.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믿음으로 권면하여 그렇게 죄를 돌이킨 사람, 그래서 다시 찾은 여러분의 지체나 형제가 있습니까? … 그냥 뒤에서 흉을 보거나, 소문이나 내고, 하는 것 말고, 정말 그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 영적 책임을 지고 기도하며, 조용히 다가가 권면하는 일들을 통해, 그가 결국 회개하고, 죄를 이기게 된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요? (우리가 다 죄 없는 의인이어서 그런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텐데요.) ​ 사실 한국교회 안에 그런 온전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이러한 지경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수군거리기는 하되 사랑의 절실한 권면은 없지요. 사소한 일에 대한 불평은 많아도, 죄의 문제 앞에는 침묵하지요. 그러다 보니 결국 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신세가 됐습니다. 음행하는 사람, 도둑질하고 사기 치는 사람, 술이나 마약에 찌든 사람, 남을 늘 비방하는 사람, 우상 숭배하는 사람 등등, 온갖 죄에 대하여 교회가 침묵하고 방관했기에, 결국 모두가 함께 그 죄의 힘 아래 신음하고 있습니다. ​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경은 그것이 우리의 교만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만, 죄를 무서워하지 않는 교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아도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는 그 무서운 교만으로 인해,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는커녕, 그저 세상의 친교 모임보다 못하게 전락했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우리의 진짜 안전, 공동체의 진짜 안전은, 죄에 대한 지금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결코 죄를 만만하게, 대충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공동체가 함께 사랑 안에서 죄와 싸워야 합니다. 사랑의 책임을 외면하면서 그런 행위가 저절로 없어지기를 바라면 안 됩니다. 내가 눈감은 그 죄가 많은 사람을 실족하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인 책임을 성도는 감당해야 합니다. ​ 물론 교회에 오면 따뜻하고 뭔가 위로가 되고, 힘을 얻게 되고, … 그래서 정말 내 가족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지지와 편 들어줌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죄를 지으러 가는 지체에게, ‘그래, 너도 다 계획이 있구나!’ 그렇게 반응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나님이나 되는 양, 그렇게 죄 앞에 교만을 부리면 안 됩니다. ​ 세상에서는 그래도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괜찮습니다. 좀 눈감아주고 이해해주고, 그러려니 해야 합니다. 아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그들을 받아들이고, … 복음을 전해야 하니, 그들과는 적극적으로 사귀어야 한다고 사도는 말합니다. 그들의 죄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불신자들의 심판자를 자처하면 안 됩니다. ​ 하지만 교회에서는 다릅니다. 교회는 다스리고 심판할 수 있는 권세를 그 머리 되신 예수께로부터 부여받았습니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땅에서 매고 푸는 것이 교회의 권세이며, 그 권세로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 말씀드린 것처럼 이 일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두렵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그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우리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철학자 스피노자가 말한 것처럼) 두려움 없는 희망이 없고, 희망 없는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항상 반응할 수 있다면, 우리는 끝까지 교회의 희망과 안전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의 가르침이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고백교회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혹시 남몰래 죄를 범하고 있다면 여러분 그만 돌이키십시오. 죄를 멈추고, 죄의 가능성을 잘라내고, 여러분의 생명을 선택하십시오. … 여러분 스스로가 죄의 누룩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교회는 결코 그 죄를 방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 혹시 누군가의 죄를 여러분이 보고 있고 알고 있다면, 오늘 주님 말씀대로 기꺼이 사랑으로 권면하십시오.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지만, 우리는 바로 그 짐을 함께 져야 하는 진리의 공동체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우리의 안전이 오직 하나님이 우리와 화평 가운데 함께 하시는 것임을 기억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 우리고백교회 되기를, 그래서 장차 올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시고, 모든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능히 지키시는, 그 하나님의 참 된 안전을 온전히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기도합시다. ​
↑ 설교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