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출애굽기 강해 43. 십계명 #8

2019-08-22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16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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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1 수요 성경 강해 --------------------------------- 출애굽기 21:15, 십계명 #8. 도둑질하지 말라. * 설교 음성파일 :  첨부된 파일을 다운로드 하시면 음성으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음질이 양호하지 못함을, 용량으로 인해 설교 도입부와 종결부가 생략되어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원고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복습 먼저 하면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와 제2계명,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 그리고 제3계명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와 네 번째 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제7계명, “간음하지 말라.”입니다. 네, 여러분, 말씀대로 잘 지켜내고 계신지요? 확실히 말씀을 듣고 난 후의 삶의 태도가 달라지지요? 그것이 말씀의 권능이구나 싶은데요, 오늘도 그 말씀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충만히 역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여덟 번째 계명으로, “도둑질하지 말라.”[로 티그노브](가나브)입니다. 여러분, 도둑질하십니까? … 사실 다른 계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죄책감이 덜한 것이 바로 여덟 번째 계명인데요, 저도 처음에 이 짧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런 마음이 좀 있었습니다. ‘도둑질은 어릴 때나 했지, 지금이야 안 하고 살지 않나? 다들 비슷할 텐데 …, 어떻게 설교를 해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도둑놈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집 앞에 큰 슈퍼마켓이 있었는데, 거기서 여동생에게 망을 보라고 시키고, 저는 이것저것 여러 번 훔치기도 했고, 그러다 한 번은 제대로 걸려서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집에서 쫓겨났던 적이 있습니다. … 또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난 것이 …, 초등학교 3학년 때인 걸로 기억하는데, 저하고 단짝이었던 친구, 아직 그 이름도 생각나는데, ‘조**운’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집이 좀 ‘잘 살았습니다.’ 사실 어폐가 있는 말이지요. 그냥 좀 넉넉한 형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약사셨는데, 약국 뒤편으로 좋은 가정집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방과 후에 거기서 자주 놀곤 했는데, 그때 제겐 그 부잣집 특유의 여유 있는 분위기도 좋았고, 집안 가득 퍼진 그 알싸한 약 냄새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그 집에는 책이 참 많았습니다. 이미 몇 번을 다 읽은 동화책과 위인전이 전부였던 저희 집하고는 컬렉션 자체가 달랐습니다. 보기만 해도 소장하고 싶어지는 두꺼운 역사책과 칼라로 인쇄된 잡지들, 또 수십 권이 모여 한 질을 이루는 국내외 문학전집까지, 수백, 수천 권의 책들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책장에 꽂혀 있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저도 모르게 그 책들에 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가 잠깐 약국을 비울 일이 생기면 친구가 약국을 보곤 했는데, 바로 그 틈을 타 한 권, 두 권, 책을 제 가방에 넣어가지고 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린나이였지만, 저는 용케도 알고 있었던 것이,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 왜 도둑이 아니겠습니까? 도둑이 맞지요. 하지만 그땐 별로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집에서 책 몇 권 없어진다고 그게 무슨 대수랴 싶었고, 나중에 다 읽고 나서 제자리에 돌려놓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실제로는 그리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친구에게 미안했습니다. 나를 신뢰하고 그래서 늘 좋은 걸 나눠주는 친구였는데, 그를 속였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미안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나중에 만난 적이 한두 번 있었는데, 그때도 끝내 그 이야기는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이젠 만나서 용서를 구하려 합니다.) 아마 저처럼, 어릴 적 기억 속에 도둑질이 있는, 그런 분들이 나름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지갑에 손을 댄다든지, 저처럼 책이나 먹을 걸 훔쳐본 경험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도둑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으실 겁니다. … 정말 혹시라도, 여전히 그 죄의 습관을 벗어버리지 못하신 분이 계신다면, 오늘을 기점으로 회개하시고 돌이키시기를 바랍니다만, … 사실 우리는 대체로 이 말씀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여덟 번째 이 계명은, 사실 그 명령이 너무나 단순해서, 많은 생각의 여지를 남기고, 그래서 더 무섭게 다가옵니다. 누구의 것을 도둑질하느냐, 또 무엇을 도둑질하느냐, 하는 내용이 다 빠진 채, ‘로 티그노브’라고 동사하나만 등장합니다. 여기 사용된 동사 ‘가나브’는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을 그의 동의나 인지 없이 가져가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 외에는 어떤 구체적인 조건이나 상황이 전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이 계명이 커버하는 범위(boundary)는 제한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알게 된 것이, 성경은 매우 다양한 형태의 도둑질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고, 또 그 모든 다양함은, 다른 계명들과 마찬가지로, 본질상 우리 자신의 보이지 않는 깊은 내면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선악과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인간의 죄 된 본성 가운데 가장 뿌리 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탐욕과 교만이 다름 아닌 겉으로 드러난 도둑질의 뿌리임을 생각해본다면, 이 말씀 앞에 우리가 그리 당당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됩니다. 우리는 도둑질을 해서 도둑놈이 되는 게 아니지요. 도둑놈이기에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여러분 혹시 학교 다니실 때 컨닝(cheating) 하신 적 없으십니까? 저도 그런 경험이 많은데요, 생각해보니 그것 또한 무형의 재산, 소유에 대한 도둑질이 됩니다. 남의 기술이나 실력을 몰래 훔치는 것이니까요. 대학교에서 보고서나 과제를 할 때 인터넷에서 소위 짜깁기를 하는 표절의 문제도 심각한 도둑질이지요. 목사가 설교문을 몰래 표절하는 것도 그렇고, … 정당한 값을 치르지 않고 타인의 지식과 글을 사용하는 것 역시 심각한 도둑질일 겁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 한때 비행기 담요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되던 기억도 납니다. 유독 한국 사람들이 담요 절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집으로 가져왔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집집마다 항공사 담요 하나씩은 있다고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는데, 그것 역시 명백한 절도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흔하게 하는 일이어서 우리의 양심이 무뎌진 도둑질도, 찾아보면 무척 많을 겁니다. 최근에는 인천공항에서 다른 도시로, 예컨대 분당이나 광주 같은 그런 곳으로 운행하는 택시 기사님들이 미터기를 출발지점에서부터 할증에 놓고 요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한 유튜버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는데요, 소위 ‘시계(市界) 외 할증’에 관한 룰을 잘 모르는 사람들, 외국인은 물론이고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거의 다 바가지요금을 내게 되는 셈입니다(서울, 부천, 광명, 김포, 고양 등은 아예 할증 대상에서 제외). 이런 미터기 조작은 성경이 가장 강력하게 금하고 있는 도량형을 속이는 것, 곧 저울추와 척도(尺)를 속여 도둘질하는 것에 해당합니다. 신명기 25장에 보면, “너는 네 주머니에 두 종류의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라 … 16.이런 일들을 행하는 모든 자, 악을 행하는 모든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25:13)고 말씀합니다. 살 때와 팔 때의 저울추를 다르게 하여 자기에게 이익에 되는 쪽으로 사용하는 일이 그때도 대단히 흔했던 모양인데, 이것은 여호와께 가증한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찬양 악보 뒷면에 보면, 그림 하나가 있는데요, ‘Tipping the scales’(저울 기울이기)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오래 전 미국의 Saturday Evening Post라는 잡지에 실린, 레슬리 트래셔라는 사람의 만평입니다[아래 그림]. 닭고기를 사고 파는 남녀 두 사람 모두 점잖고 아주 친근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 저울 아래 물 밑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부정한 노력이 멈추지 않음을 재밌게 풍자했습니다. 네, 작은 이익에 대한 욕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일상 곳곳에, 이러한 모습이 스며들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고용주, 그러면서도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행위 역시 심각한 도둑질이겠지요. 또 반대로 맡은 일에 꾀부리는 노동자 또한 도둑질을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한 직업소개소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고용주는 노동자로부터 보통 매주 평균 4시간 정도를 도둑맞는다고 합니다. 제대로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에 관심을 쓰며 업무 시간을 보내는 목사도 예외가 아닐 겁니다. 같은 관점으로, 세금을 부정직하게 납부하는 사람도, 이자를 제때 갚지 않는 채무자도 다 남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다들 점잖게, 나는 아닌 척, 웃는 얼굴로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말 그대로 도둑질과 강도짓을 일삼는 것입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정말 궁핍으로 인해 하는 도둑질은 오히려 덜 위험합니다. 배고픈 사람이 훔치면 얼마나 훔치겠습니까? 잠깐 성경으로 눈을 돌려보면 …,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은, 창세기에서 라헬이 야곱과 함께 아버지 라반의 집을 나올 때, 아버지의 드라빔, 곧 이방 신상을 도둑질 했을 때입니다. 신 도둑, 우상 도둑이 성경의 첫 도둑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이 기록된 31장에는 ‘가나브’라는 단어가 다르게 한 번 더 사용되는데요, 야곱이 라반 몰래 가만히 떠났다는 장면을, 성경은 “라반의 마음을 야곱이 도둑질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사람 마음을 배신하고,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성경은 사람의 마음을 도둑질한 것이라 말씀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도둑질한 것의 또 다른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압살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의 왕권을 ‘가나브’ 하기 위해, 성문에 있다가 다윗 왕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환대하여 그들의 마음을 얻는데요, 그걸 성경은 사람의 마음을 ‘가나브’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잘못된 목적을 위해 사람의 환심을 사는 것, 그래서 다른 이에게 가야 할 마음을 훔치는 것 또한 도둑질인 셈입니다. 또 한 가지 성경을 찾아보다가 새삼 놀라게 된 것은, 자녀가 부모의 것을 도둑질하는 경우에 대한 말씀이 있다는 것인데요, 잠언 28:24에 보면, “부모의 물건을 도둑질하고서도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 받게 하는 자의 동류니라.” 그런데 이것은 그저 부모님 지갑에서 몇 천원 슬쩍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다섯 번째 계명을 다룰 때 말씀드린 것이기도 한데, 자녀가 마땅히 부모를 봉양하고 섬겨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고르반’이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핑계로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부모의 것을 도둑질한 것으로 규정함을 알 수 있습니다. … 이 정도 되면 이 여덟 번째 계명 앞에 우리가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알게 됩니다. 더군다나 이 계명이 무서운 것은, 단지 무엇을 훔치느냐의 문제만이 아니라, 누구의 것을 훔치느냐의 문제도 열려 있다는 점입니다. 단지 사람의 것을 훔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문제가 성경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여리고성을 정복한 후 전리품을 훔친 아간에 대하여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다고 언급하는 것, 기억하실 겁니다. 또한 말라기의 말씀에는 십일조와 예물을 온전하게 드리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다고 기록하지요. 더 나아가 예레미야의 말씀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나브’했다는 기록도 나옵니다. 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것만을 도둑질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의 사유재산에 대해 하나님은 그 주권이 우리에게 있지 않음을 강조하신다는 것,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그것을 맡아 관리하고 다스리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아간처럼 구체적인 물증이 잘 드러나지 않는 도둑질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본질적으로 사유재산이라는 말에 한계가 있습니다. 세상의 법대로만 한다면야 다 내 소유, 내 것이지요. 그러나 성도는 자신을 주인이 아닌 청지기로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물질을 다스리고 사용할 사명을 인정하는 자들입니다. 단지 명백한 절도의 범죄만 아니면 괜찮다고 할 수 없는, 보다 근본적인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험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도대체 만족을 모릅니다. 남과 비교하며 어떻게든 더 가지고 싶어 하고, 그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말씀(딤전 6:10)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차지하려는 이들에게 화 있을진저(사 5:8), 선포하지만, 집으로 집을 사고 땅으로 땅을 사는 일을 요즘은 소위 재테크라고 말합니다. 오늘날에는 당연하고 지혜로운 삶의 태도인데, 하나님 앞에는 그저 탐욕이며, 그저 도둑질일 수 있음을 성도는 늘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라는 전제 아래에 보면, 경제적 문제와 관련된 성경의 가르침은 오늘날과 매우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돈을 빌려줄 때에도 이자를 받지 말 것을 명령합니다. 당시 근동의 법은 최소 20~50%의 이자를 받도록 규정하지만, 율법에서는 이자를 아예 받지 못하게 금지합니다. 채무로 인해서 사람이 더 심각한 가난에 빠지지 않도록, 그래서 결국 노예가 되는 일이 생기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담보를 설정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동의 법은 인간의 몸을 담보로 할 수 있지만, 율법은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맷돌이나 의복과 같은, 생활필수품도 담보가 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여지는 남겨둘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설사 돈을 갚지 못하여 결국 종이 되더라도, 종으로 사는 세월은 최대 6년으로 제한됩니다. 다름 아닌 안식년 규례 때문이지요. 7년째에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자유민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더구나 풀려날 때 주인은 종을 빈손으로 내보내지 말고,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후히 챙겨주도록 율법은 규정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15.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16.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신 15:15~16)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은,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모두가 종이었으며, 따라서 그 은혜를 힘입어 자유를 얻은 백성답게, 결코 서로를 종으로 대우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법은 당시 근동에는 이스라엘에서만 유일했습니다. 심지어 종이 그 주인에게서 도망가면, 다시 그 주인에게 돌려주지 말 것을 율법은 이야기합니다. 당시 근동의 법은 그런 종을 사형에 처하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물질과 관련하여 성경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지요. 여덟 번째 계명 역시, 도둑질이라는 행위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또 누군가의 사유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을 버리고,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려, 이웃의 생명과 삶을 보호하려는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 역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내가 도둑놈이 아니어야 한다는 취지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간음이, 나의 상황이나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이 기준이 될 수 없고, 오직 그것이 이웃에게 미치는 결과가 기준이었던 것처럼, 도둑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얼마나 빼앗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소유와 삶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얼마나 보장되고 보호되었는가, 그것을 위해 우리가 맡은 재물이 바르게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기준인 것입니다. 애굽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민의 삶을 얻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그 자유를 빼앗거나 상실되지 않도록, 모든 이들이 자신의 물질을 다스릴 것을, 하나님은 주문하고 계십니다. 실제로 정말 배가 고파서, 가진 게 없어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의 것을 훔치는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성경은 너그럽게 규정하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하게 됩니다. 사실 당시 근동의 다른 모든 민족의 법들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가 이 부분인데요, 성경은 탐욕에 의한 도둑질과 가난과 결핍에 의한 도둑질을 분명히 구분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결핍에 의한 도둑질도 처벌을 받습니다만, 근동의 다른 법들과 비교할 때, 그 처벌은 대단히 미약한 수준입니다. 당시 근동의 법들은 보통 열 배에서 서른 배까지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배상할 수 없는 경우 뭐 팔을 자르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게도 하지만, 율법은 그런 생명과 육체의 훼손을 일체 금지합니다. 끝내 갚을 수 없다면 종이 되게 하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그 종살이의 기한을 정함으로써 그가 다시 정상의 삶으로 돌아오게 하지요. 무엇보다도 성경은, 결핍으로 인한 도둑질이 일어나지 않는 예방의 차원에 초점을 맞춥니다. 사흘 굶으면 포도청의 담도 뛰어넘는다는 우리 속담도 있습니다만,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들의 도둑질에 대해 성경은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그 사회와 구성원들의 책임도 함께 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적어도 이런 건 도둑질이 아닙니다. 남의 밭이나 포도원에 들어가 과일과 곡식을 먹는 것, 괜찮습니다. 남의 밭에 들어가 배불리 먹고 나오는 것까지는 문제가 안 됩니다. 단, 들어가서 낫을 사용하여 스스로 ‘추수’를 한다든가, 아니면 그릇을 들고 가서 포도를 담아서 나온다든가, 하는 건 안 됩니다. 또 나그네나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추수 때 밭모퉁이에 있는 곡식 단은 아예 거두지 말 것을 율법은 말씀하지요. 밭에 떨어진 이삭들도 추수하면 안 되고, 포도원 열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언제든 가져갈 수 있도록, 일부러 먹을 것을 남겨두라 하십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가난한 이들의 몫임을, 그것조차 내 것으로 알고 가지는 그것이 다름 아닌 도둑질임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는 법으로 절도죄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시는 죄가 있을 것이고,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는 심한 도둑질일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을 잘 봐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분의 성품과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관점이 총체적으로 집약된 것이 안식년과 희년의 제도일 것입니다. 모든 부채가 면제되고 노예와 종이 자유를 얻게 되는 안식년이나 모든 사유재산이 원래의 주인에게로 되돌아가는 토지해방이 이루어지는 희년은,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은 채 사유재산만을 인정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지켜질 수 없는 계명일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우리의 삶에서 적용해 나갈 것인가,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물론 성경은 게으르고, 땀 흘려 일하지 않는 자를 결코 죄 없다 하지 않으시지요.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에베소서 4장에 있는 말씀인데요,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4:28) 말씀합니다. 도둑질의 정반대편에 자기 손으로 일하는 것, 그리고 그 돈으로 하는 구제의 삶이 있습니다. 네, 도둑질의 반대는 구제입니다. 여덟 번째 계명을 긍정의 말씀으로 온전히 지키려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여기까지,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계명 역시,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웃의 삶과 몸을 내 것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온전히 지켜낼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땅에 떨어진 돈을 주우면서 제일 먼저 그 돈을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이웃의 물질과 삶을 귀히 여기는 것, 아마 그것이 이 계명을 지키는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겁니다. 또한 그 삶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역시 우리의 탐욕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을 믿고 신뢰하지 못하면 탐욕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지켜낼 수 없습니다.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며, 욕심 부리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재물을 사용하고 살아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 없이는, 결코 자족하는 마음, 절제하는 마음은 불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디 주님을 신뢰함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여러분의 소유를 다스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론 손해를 각오하고 도둑들의 악행 속에서도 순결함을 지켜 가십시다. 우리는 때마다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탐심을 이기는 것,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힘으로 어렵습니다. 정말 기도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기도하면 할수록, 결국 내 욕심 내려놓는 게 가장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것 해 주시고, 저것도 해 주시고, 이런 기도가 아니라, 내 욕심 내려놓을 수 있는 힘주시기를 간구하게 됩니다. 그것만이 주님 주신 진정한 자유와 생명을 누리는 길이라는 걸 깨달아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디 열심히 일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일으키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소유와 소비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될 것을 기억하시고, 돈을 벌고 쓰는 과정에서 정의와 공의를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주님 다시 오실 때, 우리가 얼마나 충성된 종이었으며, 정직한 청지기였는지, 주님의 공의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넉넉한 소유는 아니지만,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감사와 자족함으로 선한 양심을 지켜내며, 검소함과 절제함으로 가난한 이웃을 향한 섬김이 끊어지지 않게 하십시다. 이웃의 몸과 삶을 내 것처럼 여기는 긍휼의 마음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되기를, 그래서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보물을 쌓고 사는, 미래의 부자들, 영원의 부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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