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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39. 십계명 #4
2019-07-04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17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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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3 수요 성경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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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1장 8~11절, 31:12~18, 십계명(열 마디 말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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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습 먼저 하면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와 제2계명,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 그리고 제3계명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입니다.) 이번 네 번째 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인데요, 처음으로 부정형이 아닌 긍정형으로 된 명령(제4~5계명만 긍정)이기도 하고, 또 그 분량에 있어서 가장 긴 계명이기도 합니다. 단지 이곳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내용이 길다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읽은 31장의 말씀처럼, 앞으로 성경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고 설명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모세오경에서만 열한 번이나 반복되는 계명이니, 그 중요성이 어떠한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안식일 계명이야말로, 십계명과 모세 언약 전체에 있어, 일종의 언약적 표징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면 …, 하나님께서 언약을 주실 땐 일종의 표징을 주심으로써 그 언약을 가시화합니다. 예컨대 에덴 언약의 표징은 선악과라고 할 수 있겠고, 노아 언약의 표징은 무지개이지요. 또한 아브라함 언약의 표징은 …, 네 할례이고, 모세 언약의 표징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처음에 읽은 출애굽기 31장에 보면, 이것이 명확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1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3.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14.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15.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16.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17.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18.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아멘.
네, 하나님께서는 마치 십계명 돌판의 핵심이 이 안식일인 것처럼, 회막에 대한 말씀을 기록한 이 31장의 뒷부분에 이 안식일 계명을 언약의 영원한 표징이라고 따로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어겼을 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강하게 강조하시면서 말입니다(민수기 15장에는 안식일에 나무하러 간 사람의 죽음이 기록). 안식일과 그 규례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정말 특별한 것임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안식일에 담긴 의미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다시 20장 본문으로 돌아와서, 8절을 보시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에는 두 개의 명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기억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여기 기억하라는 동사는 [자카르]인데요, 여러분은 아마 창세기가 생각나실 겁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그리고 그들과의 언약을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는 말씀에 자주 등장하던, 의미 있는 동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안식일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기억은 의도적인 생각과 머묾을 의미하지요. 요즘 저는 일주일의 묵상 내용을 온전히 기억하려고 노력해보고 있는데요, 오늘이 수요일이니까 엊그제와 어제 말씀, 그리고 오늘 말씀을 함께 생각하며 잊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월요일은 본을 뜨게 되는 교회, 어제는 자비량의 유모와 같은 사역자, 오늘은 죄가 아닌 고난을 삶에 채우는 성도 등). 네, 기억하려고 할 때 우리는 거기 머물게 되고, 동시에 여러 가지 새로운 의미를 깨닫고 적용하게 됩니다.
주님은 그렇게 안식일을 기억하라 말씀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안식일이 찾아오니 사실 기억할 필요도 없이 습관적으로 보내도 되지만, 기억함으로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냥 일 하지 않고 쉬면서 보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날의 의미와 그것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는 것’이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출발점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안식일을 기억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언약들을 다시 생각하고 그 의미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다른 계명들을 지키는 토대가 바로 이 안식일 계명인 것입니다.
또 하나의 명령은 ‘거룩하게 지키라’[르카데쇼]입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명령은, 사실 문자적으로는, 단순히 ‘거룩하게 하라’입니다. 다시 말해서 히브리어 원문에는 ‘지키라’는 말이 없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라, 그리고 거룩하게 하라, 하는 두 가지 명령뿐입니다. 여러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뭔가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그 날을 구별한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하지만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는 것은, ‘거룩’이라는 단어의 의미, 곧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의미 그대로, 그것을 온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소유로서 대한다는 의미가 강조됩니다. 그래서 10절에 보면, ‘안식일’이라는 말 앞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참고로 성경에서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이 들어간 단 두 가지 항목이 바로 이 안식일과 희년입니다. 사실 안식일만큼 희년은 강조되고 있지 않은 현실인데,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11절 끝에도 하나님은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네, 따로 구별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셨고, 그 주권을 인정하라 명령하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거룩하게 하신 것이 바로 이 안식일, 곧 ‘시간’입니다. 공간이나 어떤 대상을 구별하시고, 그것을 거룩하게 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은 시간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이후에 에덴동산 안에도 하나님께서 구별한 하나의 대상이 생기지요. 네, 바로 ‘선악과’입니다.
그리고 이제 출애굽기에 선포되는 율법을 통해 또 다른 거룩한 곳이 설정되는데요, 바로 회막의 성소와 지성소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공간적 성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공간을 범한 자는 선악과 때와 마찬가지로, 또 안식일을 범한 것과 마찬가지로 죽이라고 명령하십니다. 바로 그런 차원에서 안식일은 ‘시간의 성소’입니다. 실제로 레위기 19:30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귀히 여기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안식일과 성소가 같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됩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을 지키는 가장 기본은,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거기 담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아무 것도 안 하고, 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쉼을 통해 그 날을 거룩하게 하는 것, 곧 그 날과 나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훗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 곧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거나, 제자들이 밀밭에서 이삭을 훑어 먹는 것을 변호하시는 모습 등에서 확인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9절 이하의 내용은 바로 그런 하나님의 주권의 근거에 대한 이야기이자, 또한 안식일에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에 관한 말씀이기도 한데요, 핵심은 11절입니다. 함께 11절 다시 읽겠습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아멘.
여기서 안식일을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강조하시는 내용, 상황이 어떤 것입니까? 네,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온 만물을 창조하시던 상황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안식일은 출애굽 하고 난 다음 하나님이 생각하신 계명이었던 것이 아니라, 실은 창조 그 자체의 원리에서 시작된 계명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우주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을 따로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주일을 주께서 일하신 6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또 세상을 7일 동안 조금 더 여유 있게 창조하심으로써, 그렇게 일주일을 7일로 만들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신 6일과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하루를 더 거기 추가하셔서, 주 7일로 만드셨습니다. 6일간 일하신 하나님이 하루를 쉬신 건 분명 하나님이 힘 드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쉼은 창조를 완성하는 쉼이었고, 목적이 있는 쉼이었으며, 그 날을 복 되게 하시는, 축복의 쉼이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피조물 안에 하나님의 쉼이 포함되도록 세상을 의도적으로 그렇게 창조하셨으며, 그 하나님의 쉼에 인간을 동참케 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룩하게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그 쉼에 참여하는 그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복임을 성경은 강조합니다. 11절에 보면, 그 날은 거룩한 날이자, 복 되게 하신 날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사실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되어 거룩하게 되는 그것이 곧 그것을 복 되게 하는 것임을 믿으십니까? 네, 사실은 그것이 가장 중요한 신앙의 기초인데요, 구원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돼서, 그래서 복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그 자체,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된 그것이 가장 큰 복이라는 것,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 믿음 있기를 원합니다.
사실 지금이야 일주일 모두 일하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들 일주일에 하루 혹은 이틀은 반드시 쉽니다(어쩔 수 없이 그럴 수 없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것이 필요함을, 그것이 좋다는 것을 지금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네, 쉼 그 자체가 인간에게는 복이며, 쉬면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참으로 귀한 은총입니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이 계명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지던 때만 해도, 그 어떤 민족도 하루를 온전히 구별하여 쉼을 의무화 한 기록이 없습니다. 여호와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만이, 매일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살아갔습니다. 당시 다른 민족들이 하루를 쉬지 못한 여러 이유가 있지만 …, 땅의 생산성이 낮아 삶이 그만큼 넉넉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근동의 많은 유목민들은 일의 특성상 날마다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고, 종과 노예를 부리던 당시로서는 그들에게도 완전한 쉼을 보장한다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만은 쉬어야 했습니다. 본문 10절 말씀처럼 인간은 물론 짐승까지 쉬어야 했습니다. 사실 현대의 복지보다도 더 나은 그런 계명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데요, 이스라엘은 바로 그 쉼으로 세상과 구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정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나는 너희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단다. 너희는 하루를 온전히 쉬되, 너에게 속한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쉬어야 한다. 내가 너희와 만물을 그렇게 창조했고, 특별히 너희는 내가 구별하여 세운 내 거룩한 백성이니, 반드시 나와 같이 쉬어야 한다. 네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그건 전적으로 내 계획과 내 뜻 안에 있단다. 너희는 그걸 지킴으로써 세상과 구별되는 나 여호와의 백성임을 증언하는 거란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쉼의 명령 속에는 어떤 약속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까? 네, 너희가 쉬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늘 버거운 노동과 일상에 지친 백성들을 향해 쉼을 명령하시는 것은, 그 쉼의 시간을 하나님이 채워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기 전부터 이 계명을 제시하시고,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언제였습니까? 네, 광야에서 만나를 주실 때였습니다. 16장의 내용을 반추해보면, 이미 그때 ‘안식일’이라는 명칭이 등장합니다. 비록 계명과 규례는 없었지만, 날마다 내리는 만나가 안식일을 앞두고 두 배로 내림을 약속하셔서, 안식일에 따로 수고하고 땀을 흘릴 필요가 없게, 그 쉼을 하나님의 평강으로 보존해 주셨습니다.
시 127:1~2의 말씀입니다. “1.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여기 2절 후반부의 말씀,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는 사실 “잘 때에도 배불리신다.”(공동번역)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새번역)처럼 번역이 가능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온전한 안식을 누리는 삶이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부분에서 조금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쉼에 동참하게 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시간 속에 참여한다는 것 말입니다.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묵상 내내 이것이 안식일의 가장 아름답고 존귀한 영적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쉼에 참여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는 것, 하나님과 같은 호흡과 보폭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안식일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복임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을 통해 우리는 말 그대로 하나님과의 ‘동기화’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동기화’라는 말 아시지요? ‘synchronization’, 단어의 의미상으로 같은 시간에 발생한다, 시간적 관계를 일치시킨다는 뜻인데요, 예컨대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동기화 되면 어떻게 됩니까? 서로의 정보가 공유되고 같은 일들이 동시에 벌어집니다.
여러분, 안식일을 구별하는 것이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기화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일상에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영원에 계신 하나님께서 창조를 통해 시간과 잇대고 계신데, 그 하나님의 영원에 동기화 되는 계기가 바로 안식일입니다. 하나님과 무관한 땅에 속한 시간, 자기 욕심과 자기 죄에 동기화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기화 되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거룩함 속에 들어가 다시 시간을 다스리고 살아내는 것, 그것이 안식일에 이루어집니다.
저는 묵상하면서 문득 수영 종목 중 하나인 ‘synchronized swimming’이 생각났습니다. 여러분 다 아시지요? 코에 집은 빨래집게가 먼저 생각납니다만, 음악에 맞추어 헤엄치면서 마치 춤을 추듯 기술과 아름다움을 겨루는 수영 종목입니다. 최고의 선수들은 정말 움직임 하나하나가 거의 완벽하게 똑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가 동기화 되면서 정말 아름다운 모습으로 조화를 이루지요. 저는 안식일이 우리의 삶에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싱크로나이즈’ 되도록 만드는 계기가 바로 안식일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기화 되어, 하나님과 호흡을 맞춰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말 그대로 영원과 잇대어 사는 것이며, 임마누엘 하나님을 온전히 누리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곳곳에, 그렇게 아버지와 동기화 되신 모습이 나타납니다. 베데스다 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8) 말씀하시지요. 하나님이 일하실 때, 나도 일하고, 하나님 쉬실 때, 나도 함께 쉬는 것, 하나님과 같은 템포와 같은 호흡으로 살아간다는 것, 주님의 시간에 나의 시간을 조율하는 것, 여러분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그것으로부터 모든 다른 은혜가 들어오는 것 아닙니까? 안식일이야말로 축복의 통로인 것입니다.(*)
결혼해서 부부가 함께 살아보니, 저희는 가장 힘든 것이 이것입니다. 아내도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일과 쉼의 시간이 서로 다르고, 그래서 서로 동기화 되는 게 참 어렵습니다. 금요일 오후부터 주일까지, 제가 긴장의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가 사실 아내는 가장 편안하게 이완되어 있는 상태이고, 또 제가 이완되는 주일 저녁부터 아내는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서로의 삶의 호흡이 다른 것이 처음엔 너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서로가 많이 노력하고 적응을 했습니다만, 여전히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하나님과 그 호흡을 조율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과의 더 온전한 일치감을 누리는 것, 그것은 정말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그 동기화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온전히 자유로워진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과 동기화 되지 않으면 결국 내 탐욕과 죄와 동기화됩니다. 이 땅의 썩어질 것들만을 위해 살게 됩니다. 영원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이 땅의 것들만을 갈망하며 살아갑니다. 이 땅에서 영원을 살 것처럼, 모든 보화를 이 땅에 쌓아놓으려 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조율되지 않은 채 살아갈 때, 우리는 어느새 탐욕의 노예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욕심에 사로잡혀 서로서로를 수단화하지요. 이웃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경쟁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갑질과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그런 비극적 역사의 결론이 바로 다름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 종살이였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애굽의 주인들과 동기화 되어, 오로지 애굽과 바로의 탐욕의 수단으로 살았습니다.
출애굽은 바로 그 동기화를 깨뜨리시는 하나님의 reset 작업입니다.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은 그들을 자유롭게 하시고, 그들에게 쉼을 허락하시며, 말씀합니다. “지금의 이 자유가 끝이 아니다. 그 안식이 참된 쉼이 아니다. 내 안에서 쉬고 자유를 누리지 못하면, 너희는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욕망의 도구로 대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모두가 탐욕의 종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러니 참된 나의 안식에 들어오기를 힘써야 한다(히 4:11). 일을 멈추고, 나를 봐라. 나와 같은 호흡으로, 나의 쉼 안에서 영원하고 온전한 자유를 누려라.” 주님 말씀합니다.(*)
그래서 똑같이 십계명을 기록한 신명기 5장(12~15절)에 보면, 바로 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강조하며 이 안식일 규례를 말씀하십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안식일의 초점이 여기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쉼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얽매고 억압된 삶으로부터의 자유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는 나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또한 타인과 이웃의 것이어야 함을 강하게 주장하십니다. 안식일과 안식년(빚은 7년마다 소멸되어야 하며), 그리고 희년(reset, 잃어버린 땅은 50년마다 되돌아가야 한다) 등이 모두 같은 관점, 즉 하나님의 쉼에 참여함으로써 나와 이웃을 자유케 하는 복음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함께 안식할 수 있는 공동체가 바로 하나님나라, 그 백성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많은 경우, 그들은 온전히 이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수많은 규칙과 전통을 만들어 지키는 척 했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하나님과 온전히 동기화 되지 못했습니다. 아모스서에 보면,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안식일을 거리껴 하는 모습이 등장하는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에 속으로 이렇게 말했답니다. “5. … 곡식을 팔아야 하겠는데 초하루 축제(월삭)는 언제 지나지? 밀을 팔아야 하겠는데 안식일은 언제 지나지? 되는 작게, 추는 크게 만들고 가짜 저울로 속이며 6.등겨까지 팔아먹어야지. 힘없는 자, 빚돈에 종으로 삼고 미투리 한 켤레 값에 가난한 자, 종으로 부려먹어야지.”(암 8:5~6) 그저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만 몰두할 뿐,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하지도 않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아무 일도 안 하며 하루를 내 멋대로 보내야 함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모든 피조물과 시간을 만드신 주님이시며, 그 모든 피조물에 쉼과 구원을 허락하시는, 자유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과 동기화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결국, 이러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일하심을 기억하는 것, 곧 창조와 구속의 하나님 되심을 기억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구약의 안식일은 정확하게 신약의 주일로 그 의미와 형식이 대체됩니다. 창조와 구속의 관점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다시 태어나고,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자유하게 된 성도들에게 있어서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이야말로 참 된 안식일인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처음에는 성도들이 안식일도 지키고, 주일도 지켰다고 하지요. 그런데 차츰 안식일의 의미가 모두 주일 안에 담겨 있음을 이해하면서, 주일만 지키게 되었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네, 여러분 주일이든 안식일이든, 중요한 것은 그 날이, 나의 날이 아니라, 주님의 날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냥 단순히 노는 날이 아닙니다. 이사야 말씀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13.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58:13~14) 주님 안에서 절제된 즐거움을 누리는 것, 그것이 안식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멋대로의 쉼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의 쉼, 결코 쉽지 않지만 너무나 우리에겐 중요한 그 쉼의 자리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마치 그 날이 나의 것인 양, 내게 속한 날인 것처럼, 내 마음대로 정하고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만드시고, 또한 구속하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날의 주권을 하나님께 온전히 넘겨드리며, 주님과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에 회당에 모여 부르는, 이른바 ‘안식일 맞이 노래’라는 것이 있는데요, 그 후렴 가사에 보면 “친구여, 가서 신부를 맞아들이자. 우리 앞에 온 신부를 영접하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을 일컬어 ‘신부’라고, 그래서 마치 혼인 잔치처럼 그 시간의 기쁨을 생각하는 관점이 참 놀라운데요, 저와 여러분에게 주일이 그렇게 되기를, 그래서 주님의 참된 안식과 기쁨을 함께 표현하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