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시험은 말씀으로 시작되어 말씀으로 끝납니다." 2014년 3월 10일 새벽기도회 설교 (사순절5)
2014-03-10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8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40310 월요일 새벽기도회
-----------------------------------------------------
창세기 2장 15~17절, 사순절(5) 시험은 말씀으로 시작되어 말씀으로 끝납니다.
* 설교 음성 : http://www.4shared.com/mp3/qjbXySLbce/20140310__5_.html (클릭)
사순절 다섯 번째 말씀으로, ‘시험은 말씀으로 시작되어 말씀으로 끝납니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어제 주일 말씀을 통해 시험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만, 오늘 본문에 기록된 유명한 선악과에 대한 금지 명령과 이에 대한 사탄의 시험은, 시험이 가져올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록 유명하여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본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주의를 요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선악과를 둘러싼 이 이야기는 신학자는 물론 역사 속의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다뤄져 온 주제였습니다.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해석과 설명이 지금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이야기는 차치하고 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그리고 하나님이 선악과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인류에게 주어진 이 첫 번째 시험이 훗날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는 시점에 주어진 시험에 반복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어제의 말씀 속에 기록된 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을 한 번 떠올려 보시지요. 40일 금식을 이제 막 마치신 예수님께 사탄은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을 걸어옵니다. 그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육체를 가진 사람이 먹고 마심으로 그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나, 인간의 진정한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당장 선악과를 향한 주님의 메시지가 오버랩 됩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에덴동산 중앙에 심으시며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선악과를 먹지 말아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사실 선악과가 어떤 과일이냐는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신비한 나무라는 사탄의 설명에 호기심이 생겨 수많은 사람이 그 수수께끼를 풀어보려고 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선악과 자체에는 삶과 죽음의 결과가 내포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슨 독이 있어 선악과가 사람을 죽이는 그런 나무가 아닌 것입니다. 문제는 선악과가 아니라, 그것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삶과 죽음의 기로는 선악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었습니다. 사탄은 하와에게 이 부분을 교묘히 어지럽혀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와 순종의 문제를 선악과 자체의 문제로 바꾼 것입니다. 마치 선악과가 정말 인간에게 중요한 나무인 것처럼, 그것에 어떤 놀라운 힘이나 능력이 있는 것처럼 꾸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초점을 흐리게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해서도 이와 같은 측면의 시험이 제시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합니다. 40일이나 금식하셨으니 이제 돌이 떡이 되는 사건은 단순히 기적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40일 금식을 하시다가 생명을 잃은 분들이 계실 정도이니 이제 떡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이제 죽음이 임박해 있으니 어서 돌이라도 떡으로 만들어 먹어라. 그래야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사탄,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요구입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 주님은 아담과 하와가 직면했던 그 시험의 실체를 그대로 간파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도, 또 생명을 유지하고 사는 것도 모두 떡이나, 기적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얼핏 동문서답 같이 보이는 이 대답에는 인간의 참된 생명이 어디에 달려 있는지에 관한 정확한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 그들은 육체적으로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오래도록 장수했지요. 하지만 육체만 살아 있을 뿐, 그들의 전인격적인 존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이미 불순종의 순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의 시험에서도 역시 초점은 떡이나 빵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비록 선악과보다 훨씬 더 강력한 필요, 더 시급하고 절실한 육체의 필요에 내몰려 더 어려운 시험이 되었지만, 난이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시험의 의도는 동일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불순종할 것인가, 생명을 택할 것인가, 죽음을 택할 것인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삶의 모습 속에서 처하는 시험의 상황과 어려움이 다르지만, 핵심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 거기 순종할 것인가, 불순종할 것인가, 그 갈림길의 선택입니다.
사실 에덴동산에 있던 두 사람에게 여러 가지 계명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오늘 본문의 단 하나의 계명이 있었을 따름입니다. 그 계명만 지키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에덴의 모든 것들을 누리면서, 단 한 가지 선악과만 먹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어떤 적극적인 일을 해야 하거나 어려운 사명을 주신 것도 아닙니다. 그저 나무 열매 하나만 먹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주어진 명령도 아닙니다. 풍성함을 허락해 주시고 그 가운데 선악과가 있었습니다. 선악과가 어디 찾기 힘든 곳에 다른 나무들과 혼동이 될 만한 그런 모습으로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동산 한 가운데,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시험의 범위 안에 선악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어처구니없게도 바로 그것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하와의 왜곡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는 날 반드시 죽겠다고 했습니다. 여기 ‘먹는 날’이라고 번역된 표현은 사실 ‘먹는 순간’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단호하고 엄중한 명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드시’라는 표현은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옵니다. 어떤 예외도 없이, 먹는 순간, 누구나 죽게 될 것을 하나님은 강조, 또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엄중한 명령을 하와는 ‘죽을 수도 있다고’ 자기 멋대로 바꾸어 해석해버렸습니다. 표현은 비슷해 보여도 그 차이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차이입니다. ‘숨 쉬지 않으면 당장 반드시 죽습니다.’를 ‘숨 쉬지 않으면 언젠가 죽을까 합니다.’로 바꾸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받아들이면 이미 시험의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말씀을 경시하는 이러한 하와의 모습은 그녀의 평소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말씀드린 대로 선악과는 에덴의 중앙에 있습니다. 그 어느 곳보다 자주 마주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오며가며 일하며 쉬며 늘 마주치던 나무였을 것입니다. 만약 하와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그 하나님의 명령을 조금이라도 경청하고 마음속에 주의를 기울여 담아 두었더라면, 선악과를 마주치는 그 많은 순간마다, 하나님의 명령이 더 깊이 마음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 결단했을 법도 합니다. “그래, 하나님이 저건 먹지 말라 하셨어. 다른 모든 것을 주시며 누리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죽을 것이라 하셨으니 그래 분명 정말 중요한 문제일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음을, 그러지 않았음을, 하와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신의 반응으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말씀을 이해하고, 멋대로 적용하면 결코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죄다 바꾸고 곡해해야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오늘 뱀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이단은 결국 아주 작은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시작은 같았는데, 끝이 다르다는 것이 이단 아닙니까? 부사 하나를 바꾸고, 문장 끝에 물음표 하나를 더했을 뿐인데, 결과는 삶과 죽음을 갈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 다르고 ‘어’ 다른 정도가 아닙니다. 삶과 죽음처럼 극과 극의 차이를 빚어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곡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내 멋대로 곡해하지 마십시오. 내가 원하는 대로 이해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석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사탄에게 틈을 줍니다. 하와가 처음 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단호한 어조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야기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말씀의 틈을 보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유혹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간직하고만 있어도 사탄이 제멋대로 설치지는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말씀을 받아 순종하려는 노력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시험 받는다고 여겨질 때, 여러분이 시험에 직면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다시 말씀에 대한 순수한 마음, 정직한 마음, 겸손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듣는 것입니다. 삶의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최우선적으로 점검할 부분이 바로 말씀에 대한 나의 태도와 자세입니다. 지금 나에게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 자세를 바로 하면, 시험으로 다가온 어려움들도 쉽게 지나갑니다. 모든 시험의 목적이 결국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더 온전히 신뢰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되어 말씀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순종으로부터 시작되어 결국은 다시 그 말씀의 능력으로 시험을 이기게 됩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도 하나님은 분명 우리 각 사람에게 하시고픈 말씀, 전하고픈 말씀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아마도 그 말씀은 우리가 평소에 가장 간과하고 또 무시했던 내용일 것이며, 우리가 늘 넘어지는 시험,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시험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말씀일 것입니다. 이제 그 말씀의 광야로 나아가십시오. 성령이 이끄시는 그 말씀의 광야에서 여러분의 믿음을 직시하고, 다시 말씀 앞에 바로 서십시오. 그 시험 너머에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사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