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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광의 찬송' 2017년 사순절 재의 수요일 설교
2017-03-02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8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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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된 설교 원문
20170301 재의 수요일, 성회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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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4:11~18, 마태복음 5:16~22, 에베소서 1:1~14, 그의 영광의 찬송
* 설교 음성파일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70301.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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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소서 1장 12절에 나오는 ‘그의 영광의 찬송’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의 제목으로 삼습니다. 주의 말씀이 우리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부터 사순절이 시작되는데요, 사순절이면 보통 그 정확한 의미는 모르더라도, 대개는 뭔가를 절제하고, 조심하는 절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고 광야에서 금식하시고, 또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그 40일을 기념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묵상하는 시간이 사순절이기 때문입니다.
금식이라고 하면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조금 엄격한 교단, 예컨대 동방정교회에서는 40일 동안 저녁 식사 한 끼만 허용이 됩니다. 그 식사 또한 육식은 물론 생선과 달걀마저도 40일 내내 금하고 있지요. 하도 그 금식의 과정이 힘이 들기 때문에, 사순절 직전 화요일, 그러니까 어제 같은 날은 대대적인 잔치를 벌이는 날이 되기도 했는데요, 그런 화요일을 ‘기름진 화요일’(Mardi Gras)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 금식까지는 아니어도, 여러분의 신앙적 결단에 따라 필요하시면 금식에 참여하시기를 권합니다. 금식에는 분명한 영적 유익이 존재하고, 예수님이 직접 본을 보여주시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말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거나, 어려운 문제의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또 예수님처럼 무언가 인생의 의미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할 때, 예수님이 보여주신 대로, 일정 기간 육체의 소욕을 끊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은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번 사순절에 모두가 다 꼭 그렇게 하시기를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의 힘든 일상을 살아가야 하고, 그 일상생활 역시도 우리에겐 거룩하고 소중한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금식으로 인해 여러분이 일하는 곳에서, 여러분이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일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금식을 하더라도 아무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할 때, 누군가의 배려를 기대하며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초점을 어디에 둘 지 고민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다만 과도하게 먹고 마시는 일은 반드시 삼가시기 바랍니다. 과식, 과음을 한다든가, 지나치게 여흥을 즐긴다든가 하는 일은 되도록 피하십시오.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함을,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일 가운데 얽매이지 않음을, 우리가 물질에 다스림 받는 존재가 아니라, 다스리며 통치하는 존재임을, 우리가 우리의 육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고 있음을, 경험하는 귀한 기회가 바로 사순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구약의 말씀이자, 지난 월요일 묵상 본문이기도 했던 시편 34편에서 다윗은,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여러분 누군가 여러분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질문한다면 여러분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쉽지 않은 질문이지요? 그런데 다윗이 오늘 그것을 가르쳐주겠다고 나섭니다.
여러분 6쪽의 시편 말씀을 다시 한 번 봐 주시기 바랍니다. 11절.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12절.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그는 대답합니다.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우리의 혀로 악한 말을 하지 말고, 우리의 입술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악한 말, 거짓된 말을 버리는 그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시작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6쪽 아래에 이어지는 복음서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의로움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그러니까 당대의 가장 의로운 사람으로 자타가 공인하던 사람들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그러한 의로움의 가장 첫 머리에, 다름 아닌 ‘언어의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이 있지만, 나는 너희에게 이른다. 형제에게 노하지 말고, 형제를 욕하지 말고, 비방하지 말아라. 그것이 지옥에 가는 죄가 된다.” 강조하십니다. 주님 역시, 우리가 하는 말이 고쳐지고 달라지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회개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에베소서의 말씀은 우리가 왜 그리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하신 자들로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음으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이미 존귀해졌으며, 이미 가장 거룩한 존재로 새로워졌다고 말씀합니다. (*)
여러분, 그런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에게 악한 말과 거짓된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런 말들이 어울리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지요.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이 땅을 살고, 주님의 말과 같은 언어로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부름 받은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한 부르심의 가장 온전한 모델 중 한 사람이 오늘 다윗입니다. 우리가 읽은 시편 34편 후반부에 보면,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19.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20.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신다,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않는다는 다윗의 이 고백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훗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서 그대로 성취되는, 하나의 예언의 말씀이 됩니다.
십자가 위에서 고통당하는 사형수가 조금 더 빨리 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당시 병사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죄인의 무릎 뼈를 망치로 부러뜨리곤 했는데요, 주님은 이미 운명하신 상태여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성경은 증언하지요. 그런데 그 부분을 묘사하면서, 사도 요한은 그것이 바로 오늘 시편 34편의 다윗의 그 고백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다윗의 찬송과 기도는 그 외에도 여러 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의 언어는 단순히 인간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입술에 놓인 권세와 능력이 어떠하며, 그 말이 얼마나 거룩하고 존귀한지, 그보다 더 분명히 보여주는 이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 딸들에게는, 우리에게는, 악한 말이나 거짓된 말이 결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언어가 하나님의 능력이 되도록 예정하셨고, 그 언어대로 신실하게 이루심을 이미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소위 막말은 가당치 않습니다. 우리에게 비방하는 말, 뒤에서 속삭이는 말은 얼토당토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기 위해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
언어보다 더 우리를 얽매는 강한 습관도 없습니다. 우리는 습관대로 욕을 하고, 습관대로 거짓을 말합니다. 내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언어로 살인을 하고, 간음을 하고, 거짓 증언을 반복합니다. 우리가 힘을 기울여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보다 깨닫고 바꾸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언어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거기서부터’라고 말씀합니다. 불필요한 말을 줄이는 것, 말하기보다 듣는 것, 그리고 습관적인 악한 말들을 분별하는 것, 나도 모르게 나오는 거짓말들을 그치는 것, 거기서부터 우리의 거룩함이 시작된다고 말씀합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삼가고 절제하며 조심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중하고 시급한 문제가,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절제하고 주의하는 것’임을 주님은 강조하십니다.
여러분, 말을 줄이고, 내가 내뱉는 말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다윗과 바울이 알려주는 대로, 우리의 입에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뻐하는 말들을 채워서, 우리의 삶 자체가 찬송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목적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배 순서지 마지막 10쪽에 보면, 한 시인의 ‘입’이라는 시 全文이 나와 있습니다. 그 시를 잠깐 같이 보시겠습니다. 제가 천천히 낭독하겠습니다. <입>
내 입을 없앤다/ 봄날에 핀 꽃도/ 화려한 입을 없애기 위해 낙화하고/
낙산사 동종도 산불에 불타면서 입을 없앤 뒤/ 동해에 더 맑은 새벽 종소리를 울린다
거짓의 혀를 감싸고도는 내 입을/ 탐욕의 목젖을 애써 숨기는 내 입을/
설악산 관음폭포에 가서 잘라내어/ 폭포에 힘껏 내던진다/ 설악산 산정 높이 파묻는다
이제 나는 내 입의 무덤 앞에서/ 구멍 없는 피리로 피리를 불며/
줄 없는 거문고로 거문고를 켜며/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낮은 곳에 엎드려/ 입맞춤 한번 해본 적 없을지라도/ 낮은 곳이 높은 곳이라고/
눈물이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어로 일을 하는 시인이 자신의 입을, 잘라내고 내던지고, 파묻는다는 말이 대단히 낯섭니다. 그리고 그 입의 무덤 앞에서, 비로소 사랑을 노래하고, 아픔을 위로하는 말이 시작된다고, 거짓과 탐욕의 말이 그칠 때, 비로소 구멍 없는 피리로 피리를 불고, 줄 없는 거문고로 거문고를 켜며, 사랑과 위로를 전할 수 있다고 노래하는 것이 참으로 신선하고 아름답습니다.
성도의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악하고 거짓된 혀와 입술의 무덤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고백하던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제단에서 타고 있던 숯을 이사야의 입술에 닿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지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성령의 불이 임하셔서, 우리의 부종한 입술을 태워주시기를 우리가 함께 소망합시다. 그러할 때 비로소 우리도, 누군가를 위로하는 진실한 입술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을 지내는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목적, 목표가 있습니다. 1)평소의 말을 줄이고, 정성을 다해 타인의 말을 듣는 데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악하고 거짓된 우리의 언행을 삼가는 것입니다. 3)더 나아가 우리의 입술에 주님을 향한 찬송을 채우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이번 사순절을 지내며, 우리의 언어와 삶이 새로워지고, 우리의 언행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과 능력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