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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곳이 있을까' 2016년 7월 6일 수요기도모임 설교

2016-07-06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60706 수요 기도 모임 (24) --------------------------------------------- 사도행전 16장 11~18절, 기도할 곳이 있을까 * 설교 음성파일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60706.mp3 ‘기도할 곳이 있을까’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마게도냐로 넘어가라는 주님의 메시지를 '인정'하고, '즉시로', '직행하여' 빌립보에 도착했지만, 바울 일행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최소한 유대인 남성 열 명 이상이 있어야 세워지는 회당도 없을 만큼, 빌립보는 유대인들에게는 낯선 곳이었고, 그렇다고 로마의 속주인 빌립보에서 아무 곳에서나 노방전도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며칠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바울 일행은, 안식일이 되자, 기도할 곳을 찾아 나섭니다. 기도야 여관이든 어디에서라도 상관이 없지만, 지금 바울 일행은 조금 더 기도에 집중할 수 있는 한적한 곳을 찾고 있습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은, 율법에 정한 정결예식을 행할 수 있는, 물이 있는 곳 근처를 기도처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이 강이나 샘 근처에 위치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13절에 보면,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갔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여기 ‘문 밖’은 빌립보 성문 밖을 의미하고, ‘강가’는 빌립보 외곽(성문에서 약 2km 거리)으로 흐르던 ‘강가이트’라는 이름의 강변을 말할 겁니다. 생각했던 대로, 기대했던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그들은 곧바로, 복잡한 도시에서 다시 밖으로 나와, 기도의 자리로 retreat 한 것입니다. 주일에 잠깐 말씀을 나눴던 그 루디아라는 여인을 만난 것이 바로 이곳 강가였습니다. 자주 옷감을 파는 상인이었으니 복잡한 시내에서, 어디 쇼핑몰에서 만날 것 같은데, 아니었습니다. 조용히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물러난 자리에서, 하나님은 예비하신 사람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사실 빌립보의 사역은 다 기도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물론 기도가 중요하지 않은 사역이 있을 수 없지만, 누가는 특별히 이 16장을, 기도의 흐름 안에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기도처를 찾다가 루디아를 만난 것도 그렇고, 빌립보의 두 번째, 세 번째 회심의 사건 역시도 다 기도의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여종을 사로잡고 있던 귀신을 내쫓는 일 역시, 성경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일어났다고 명확하게 기록합니다. 나눠드린 본문에는 없지만 16장 후반부에 나오는, 옥을 지키던 간수의 가족이 구원을 받는 사건 역시도 바울과 실라의 기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빌립보의 사역 전체가 모두 기도와 연관이 되어 있고, 특별히 기도하는 장소와, 그리고 그 장소를 구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아주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본문을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장소, 그리고 그 장소를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또 그 일에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만이 아니라, 기도할 시공간을 구별하는 과정과 우리의 노력까지도, 주목하고 계십니다. 또한 주목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찾는 과정을 통해서,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본문은 그들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또 무슨 기도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냥 기도하는 곳을 찾았고, 기도하는 곳에 가고 있었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둡니다. 기도를 구하고, 기도로 향하는 우리의 모습 자체를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주목하시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단지 주목만 하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은 그 과정 속에,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응답들을 감춰두고 계십니다.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 우리를 도와줄 사람, 또 우리가 도와야 할 사람, 우리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될 사람, 그들 모두 기도라는 여정 속에 숨겨진 보물찾기와도 같습니다. (여러분, 수요기도회 오실 때 앞으로 눈을 더 크게 뜨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오늘 새벽에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여기 오는 길에, 좋은 믿음의 짝을, 그쪽 역시 기도하러 가는 그런 믿음의 짝을 만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우리의 삶에 기도의 장소를 찾는 것, 내가 매일 생활하는 자리 속에 기도의 시공간을 구별하는 그것을 대놓고 도전합니다. 여러분,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늘 기도의 자리를 구하고 찾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뭔가 막히고 답답하다면, 그때야말로 새로운 기도의 계기를 만들 기회라 생각하고, 여러분의 평소 기도의 지경을 넓히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뜻밖의 횡재를 했을 때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라는 표현을 하는데, 호박이 그만큼 버릴 게 하나도 없이 유용한 식재료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열매만이 아니라, 호박잎사귀, 호박순, 줄기까지 모두 먹을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러고 보면, 기도야말로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영혼의 복덩이입니다. 기도의 응답, 기도의 열매도 맛이 나지만, 기도 자체가 하나님과의 사귐과 교제이고, 기도하기 위한 과정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가 되니, 그렇습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의 삶에, 기도가 넝쿨째 굴러 들어오게 되기를, 그래서 우리의 소중한 시공간에 박혀 있는, 그 아무 쓸모없는 돌들을 다 뽑아내고, 기도가 떡, 하니 자리를 잡게 되기를, 그런 결단이 이 말씀을 듣는 오늘 여러분에게 꼭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 설교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