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하늘의 왕' 2016년 6월 22일 수요기도모임 설교
2016-06-22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60622 수요 기도 모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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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4장 34절 ~ 5장 1절, 하늘의 왕
* 설교 음성파일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60622.mp3
‘하늘의 왕’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아시는 대로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이 꾼 꿈과 그것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으로 인해, 하나님을 아주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의 왕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간 그런 왕이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드러내주셨습니다.
그럴 때 느부갓네살 왕이 하는 고백을 보면, 그가 그런 경험을 통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문 34절에 보면, 그가 '하늘을 우러러 보았을 때' 다시 총명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는 겁니다. 이어지는 고백은, 마치 하나님의 백성이 드리는 찬송 같습니다.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37절에도 보면,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진실한 찬양과 경배와 교훈까지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말들이 그저 입술의 고백일 뿐, 그것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놀라운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고 찬양도 하지만, 모든 것이 딱 거기까지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왕이긴 하나, 자신이 믿고, 의지하며, 순종할, ‘나의 하나님’은 아닌 겁니다. 그의 꿈을 다니엘이 맞추고 해석했던 2장에서 그가 반복해서 말하듯, 하나님은 언제나 ‘너(희)의 하나님,’ ‘다니엘의 하나님’일 뿐이었던 겁니다.
그런 그가 하는 모든 찬송과 경배는 일회적인 이벤트에 불과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어떤 순간에나 하나님 안에 거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놀라운 일이 생기면, 뭔가 깨닫는 게 생기면 잠시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의 고백은 하나 같이 세리모니 같고, 일 같고, 거창한 수사로만 가득합니다. 하나님과의 대화 같지 않고, 자신만의 일방적인 외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도, 순종할 의지도 없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사전에 순종이란 단어는 없습니다. 다니엘이 꿈을 해석해주면서 이런 충고를 더하지요. “제가 아뢰는 조언을 받아 주셔서, 지금이라도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왕의 평안이 장구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4:27) 그러나 열두 달의 유예 기간 동안 그가 그 말을 따랐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관계의 우선순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4장에서 5장으로 넘어가는 오늘 본문을 보면, 갑자기 다른 왕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벨사살이라는 왕으로, 느부갓네살의 손자입니다. 느부갓네살은 돌연 사라집니다. 그가 이렇게 사라지는 게, 마치 4장과 5장 사이에 있던 내용이 일부러 삭제된 것 같이 어색합니다. 이제 5장 이후에는 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그대로 드러납니다. 다니엘 전반부에 느부갓네살의 이름이 자주 나온다고 그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이루실 뿐이고, 당신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 과정을 밟아 가실 뿐입니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다니엘 6장에 보면, 다니엘의 기도가 나옵니다. 다니엘은 매일 자신의 집 다락방에 올라가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그 일로 목숨의 위협이 왔을 때도 그는 한결 같습니다. 건강을 위해, 직장을 위해, 공부를 위해, 삶을 위해, 기도를 줄이고 늘인 게 아니라, 기도를 위해 삶을 다시 정돈한 겁니다. 절대적인 우선순위. 그에게 하나님은 그런 존재였고, 기도는 그런 의미였습니다. 하늘의 왕이 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라고, 다시 말해, 누가 이름을 지어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말씀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하나님 스스로 당신의 이름을 소개하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게 내 이름이다. 이것이 나의 영원한 이름이고,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 말씀합니다. 꼭 누구 엄마, 누구 아빠로 불리는 그런 이름 같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말하는 ‘하늘의 왕’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 ‘현기의 하나님’ ‘한나의 하나님’ 그게 하나님의 이름이란 겁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느부갓네살의 하나님입니까, 다니엘의 하나님입니까? 여러분이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주일 Talk Bible 시간에 한 선교사님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런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신앙이 별 것 아닙니다. 하늘의 왕을 내 하나님으로, 나의 주로 인정하고, 범사에 부르며 사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시듯, 나도 그를 부르기 위해, 삶을 정돈하는 겁니다. 그 하나님을 참으로 내 편 삼고 사는 겁니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도, 내 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는 한 영화 대사처럼, 주님이 내 편 되고, 내가 주님 편 되어 사는 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나의 하나님을 당신의 이름으로 삼고 계시는 하나님을, 부디 너무 멀리에 두고는 살지 않게 되기를, 기도가 삶의 이벤트처럼이 아니라, 삶의 호흡처럼 가깝고 편한 것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찬송,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