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들' 2016년 6월 8일 수요기도모임 설교

2016-06-08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60608 수요 기도 모임 (20) --------------------------------------------- 다니엘 2장 10~13절,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들 * 설교 음성파일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6008.mp3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들’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며칠 전 뉴스에서, 여름철 노면 열기로 자동차 타이어가 운행 중 갑자기 터졌을 때, 어떻게 해야 최대한 안전하게 차를 세울 수 있는가,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고속으로 운행 중에 타이어가 터지는 사고는, 일반 사고의 4배에 해당하는 치사율을 보일 만큼 위험한 데요, 차를 원하는 방향으로 조향하기가 어려워지고, 전복될 위험도 생기게 됩니다. (참고로 타이어가 터질 때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절대로 브레이크를 밟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을 가리키는 헬라어 단어가 ‘프뉴마’인데요, 이태리 같은 유럽에서는 간혹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점에 이 단어가 붙어 있는 걸 봅니다. 바로 타이어 가게입니다. ‘프뉴마’의 다른 뜻이, 타이어 안에 꽉 차 있는 바람, 공기, 숨이기 때문입니다. 타이어 속, 바람이 다 빠져버린 자동차가 운전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움직이다 큰 사고를 내는 것처럼, 성령이 없고, 성령을 소멸된 인간의 삶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이지만 가야할 방향도 모른 채 흔들리고, 또 주변의 사람들에게까지 큰 위험과 해를 끼칩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바람 빠진 타이어들이 여럿 보입니다. 본인이 꾼 꿈이지만, 그 내용을 알 수도 없고, 어디 물어볼 곳도 없어 번민에 흔들리는 느부갓네살 왕. 그러다 괜한 사람들을 불러다 그 꿈을 한 번 맞춰보라, 그리고 그 뜻도 해석해보라, 화를 내고 목숨까지 빼앗습니다. 이름만 지혜자일 뿐, 그저 얕은 지식과 경험에 따라 적당히 이야기를 끼워 맞춰, 듣기 좋은 해석을 지어내는 게 전부인,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들 역시, 바람 빠진 타이어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왕의 질문 자체가 말도 안 되는 황당한 것이라 말하면서, 11절 말씀처럼,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그러니까 인간이 아닌, 진짜 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일이라 말합니다. 그들 자신은 바람 빠진 타이어에 불과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 11절을 다른 우리말 성경은 이렇게 옮기기도 했습니다. “왕께서 물으시는 것은 신이나 여신이 알려 주지 않는 한, 답을 알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신들은 우리 같은 인간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들은 우리 같은 인간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하는 말입니다. 그들이 믿는 신이 어떤 존재인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고백입니다. 인간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 신, 그게 바벨론이 믿는 신인 겁니다. 그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스스로 인간의 모습이 되시는 하나님. 인간과 어울리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들 스스로가 어울리려 하지 않는, 가장 부족하고 겸손한 이들과 더 가까이 어울리시는 하나님. 우리 가운데 들어오셔서, 아예 우리와 동거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듣기 원하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기를 즐겨하시는 대화의 하나님, 맞습니까? 그런데도 실제 우리는 마치 본문 11절을 고백하던 점술가들이 믿던 그런 신을 믿고 사는 건 아닙니까? 우리와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하나님은 그냥 우리의 말일 뿐, 실제 삶 속에서는,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을 믿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믿지는 않습니까?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성령을 소멸하고, 그저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이리저리 헤매는 삶은 아닙니까? 이어지는 본문에서, 다니엘은 이 문제 앞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집으로 돌아가 주저 없이 기도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벗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합니다. 최대한 기도의 기회를 만들고, 최대한 하나님 앞에 머물려고 애씁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답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경험했을 그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이, 아마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현실일 겁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공의는 멀고, 얼토당토않은 말도 안 되는 요구들만 계속됩니다. 내 인생인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지지 않고, 정말 문제는 내가 원하는 그 방향도 이젠 희미해져갑니다. 우리 안에 바람이 다 빠져서 그렇습니다. 거룩한 성령의 숨이 다 소진돼서 그렇습니다. 또 다 빠졌는데도 채우려 하지 않고 그냥 무작정 앞으로만 가려하니 그렇습니다. 마치 육체와 어울리지 않는 신을 믿듯, 늘 하나님과 내외하며 서먹하게만 사니 그렇습니다. 형식적으로만 기도하고, 정말 간절히 성령을 갈망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바람 빠진 자동차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해보신 분은, 얼마나 차에 바람 넣기가 쉬운지, 잘 아실 겁니다. 자전거처럼 내가 일일이 힘을 써가며 펌프질을 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공기 주입구를 타이어에 꽂고 버튼 한두 번 누르면 끝납니다. 우리의 영혼, 우리의 삶에 성령을 채우는 것은 더 쉽고 더 간단합니다. 그분을 진심으로 사모하고, 내 마음으로 진실하게 고백하면 됩니다. “주님, 저를 채워주소서. 저를 가득히 주님으로 채워주소서.” 기도하면 됩니다. 오늘 다니엘과 그 친구들처럼, 믿음의 벗들이 함께 기도하면 됩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듣겠다.”(이사야 65:24) 하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다시 간절히 기도함으로, 성령의 바람이 가득 채워진 삶으로 회복돼서, 오늘 다니엘과 같이 존귀하게 쓰임 받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설교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