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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정하여' 2016년 6월 1일 수요 기도 모임 설교

2016-06-01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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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1 수요 기도 모임 (19) --------------------------------------------- 다니엘 1장 3~17절,  뜻을 정하여 * 설교 음성파일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60601.mp3 ‘뜻을 정하여’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고대 근동의 패권이 바벨론에게로 기울었던 주전 7세기, 유다는 사실상 바벨론의 속국으로 전락합니다. 바벨론은 세 번에 걸쳐 예루살렘의 지도층을 바벨론으로 끌고 가는데요, 다니엘은 그 첫 번째 포로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시는 대로 다니엘은 훗날 바벨론과 바벨론을 멸망시킨 근동의 새 주인 페르시아의 두 왕국에서, 네 명의 통치자와 함께, 약 70여 년 간, 근동을 다스리는 최고 통치자로, 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로 일하게 됩니다. 본문은 그런 다니엘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처음 바벨론에 끌려왔을 때,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왕이 내리는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하고, 채식과 물만 먹지만, 그럼에도 그 모습이 아름답고 그 지혜와 총명이 충만해졌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분들이, 8절에 나오는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는 구절 때문에, 다니엘이 바벨론의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지 않기 위해 뜻을 정했다고 생각하시지만, 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본문은 다니엘에게 주어진 음식이 왕이 먹는 것이라고 말할 뿐, 우상에게 제사로 드려진 음식이었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또 다니엘이 대신 먹은 채소 역시도 우상에게 드려진 음식이었을 수 있기에 더 그렇습니다. 또 어떤 분은 레위기 11장이나 신명기 14장 등에서 언급된, 율법적으로 부정한 동물의 요리를 먹지 않은 것이라고도 하지만, 그 역시 본문에서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음식과 함께 거부한 포도주 자체는 율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지요. 또 뒤에 10장에 가서 보면, 나중에는 그 역시 바벨론의 좋은 음식들을 피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데요, 그 또한 지금의 이 결단이 율법적 부정함의 문제가 아닌 다른 것과 연관되어 있음에 무게를 더합니다. 다니엘은 단지 왕이 먹는 좋은 음식과 좋은 포도주를 거부한 것입니다. 바벨론의 풍요에 굴복하지 않음으로, 지속적으로 압박해오는 이방의 문화와 정신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의 생명과 삶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고백하는 행위로, 그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했습니다. 나라는 망해가고 있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어린 포로 다니엘이 오직 하나님 앞에서, 홀로 뜻을 정한 겁니다. 목숨을 걸고 말입니다. 누가 한 아이의 결심을 관심이나 여길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다니엘을 주목하여 보셨고, 그의 기도를 들으셨으며,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셨고, 이방을 다스리셨으며,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할 계획을 준비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룩한 뜻을 세우는 일을 폄하하는 시대입니다. 자기계발과 건강, 비전을 위해 뜻을 세우는 것에는 의미를 부여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별된 삶을 살고자 뜻을 세우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먹을 수 있는 건 먹고, 누릴 수 있는 건 충분히 누리는 게 지혜요, 능력이라 합니다. 다니엘처럼 먹고 마시는 것에 목숨을 걸고, 그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별하는 신앙은, 무모하고 어리석다고도 말합니다. 심지어 그런 신앙이 자유를 잃어버린 연약함의 결과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본문 17절 말씀처럼, 다니엘이 스스로를 구별했던 그 일과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와 총명의 마음을 주신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아는 일을 하나의 묶음으로 증언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먹을 것, 마실 것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에 대하여 뜻을 정하여,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구별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믿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내가 먼저 뜻을 세우면 좋은 믿음의 벗들도 붙여주셔서 나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되게 하시고, 그 결심이 힘을 얻게 하십니다. 본문 8절에서, 환관장에게 뜻을 요구할 때는 다니엘 혼자였지만, 11, 12절, 감독관에게 말할 땐, 벌써 ‘우리’ 복수형이 됩니다. 여러분 스스로 뜻을 세우는 마중물이 될 때, 분명 더 많은 믿음의 동지들을 세워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뜻을 정하는 일에 아무런 방해와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분명히 못하게 막는 일도 생기고 문제도 생깁니다.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말했을 땐, 다니엘이 이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환관장에게 은혜를 입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거절을 당합니다. 다니엘은 아마 은혜를 입은 환관장이 내 뜻에 따라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작은 방해나 거절 앞에서, ‘이게 아닌가보다, 내가 지나쳤나보다, 하나님 뜻이 아닌가보다’ 여기지 않고, 다시 한 번, 이번엔 감독관을 찾아가고, 일단 열흘만 해보자고 제안합니다. 뜻을 정하면 장애도 생기지만, 하나님은 그에 합당한 해결책도 준비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6월 1일, 새 달의 첫 날입니다. 그리고 2016년 한 해의 전반기 마지막 달의 첫날입니다. 그렇게 또 한 해가 가고 있고, 또 한 달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뜻을 새로 정하기에 참 좋은 시간이고, 그래서 오늘 메시지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온 나라가 매주 고통스러운 소식으로 가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홀로 고통 가운데 신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은 더 좋은 것, 더 즐거운 것, 더 신나는 것, 먹고 마시고 누리겠다고 난리법석입니다. 우리에겐 어떤 계획과 정한 뜻이 있습니까? 저는 이 순간에도 자신을 구별하고, 먹고 마시는 일 가운데 뜻을 정하는 주의 백성을 통해서, 그의 연소함이나 그가 처한 상황과는 관계없이, 그렇게 뜻을 정한 주의 백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시작되고 있음을 믿습니다. 다니엘 9장에는, 다니엘이 늘 기도하며 주님의 음성을 구하는 자였다고 증언하면서, 그가 나라와 민족과 백성을 위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이 임했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음을 봅니다. 오늘 이 기도의 자리에서, 부디 저와 여러분에게 세워야 할 뜻을 분별하는,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뜻을 지켜 행함으로,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역사가 시작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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