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막을 법이 없습니다' 2016년 2월 17일 수요기도모임 설교

2016-02-17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60217 수요 기도 모임 (5) --------------------------------------------- 갈라디아서 5장 22~25절,  막을 법이 없습니다. * 설교 음성파일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60217.mp3 “스스로 깨면 병아리가 되고, 남이 깨면 후라이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재밌는 이야기인데, 날카롭기 그지없는 말이기도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스스로를 깨는 일도, 나 자신의 손으로 해야만 의미와 가치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요즘 함께 묵상하고 있는 이 죄와 회개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스스로 죄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깨뜨리며 나아갈 때 소망이 생기지, 그 죄의 결과로 자신이 깨어지면, 한갓 후라이 같이 무너짐을 의미합니다. 어릴 적 교회에서 그런 두루뭉술한 기도들을 많이 했습니다.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모두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는 회개의 기도였습니다. 어떻게든 죄 없는 정결한 모습이 되고 싶은 간절함의 표현이겠으나, 죄는 그렇게 회개되고, 그렇게 용서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죄는 발견되고 고백되어 삶으로 고쳐질 때 비로소 소멸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나의 내면과 삶을 비추어갈 때 비로소 죄는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발견된 죄를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고백하고, 가던 방향에서 돌아서야만 죄는 죽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그 일이 있고난 후 최소 1년 이상이 지날 때까지, 자신의 죄에 대해 깨닫지 못했습니다. 깨닫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희미한 인식조차 없었습니다. 나단을 통해 “당신이 그 사람이라.” 하나님이 말씀으로 친히 다윗을 깨뜨릴 때까지 말입니다. 그렇게 깨어진 다윗의 말년은, 후라이 같은 인생까지는 몰라도, 존귀하고 아름다운 생명과는 거리가 먼, 그런 모습이 됩니다. 죄를 깨달은 다윗이 온전히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지만, 이미 엎지른 일의 상처는 평생을 이어졌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몸에 새겨진 상흔들이 보여주듯, 죄로 인한 삶의 상처는, 용서와 무관하게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끼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 앞에서 늘 두려운 마음이 앞서게 됩니다. 죄를 어떻게 발견하고, 어떻게 이기지, 고민합니다. 사실 저는 이런 다윗의 모습을 보며, 제 자신이 두려워졌습니다. 다윗의 발바닥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격과 신앙임을 저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그러했는데, 저는 또 얼마나 많은 죄를, 무감각하게 쌓으며 살아가는 삶일지, ‘낭패다’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성경은 전혀 다른 말씀으로 접근하고, 전혀 다른 길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여러분, 먼저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 신앙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목표가 어떤 것입니까? 죄 없는 깨끗한 삶이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뭔가 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풍성한 삶이 되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둘 다이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죄 없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사시며 행하신 선한 일들, 맺으신 의의 열매들을 풍성히 맺는 삶, 그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이기기 위해 죄 자체에, 율법 자체에 매몰되지 말기를 성경은 강조합니다. 죄에 관하여 주님이 가장 강조하신 것 중에 하나가, 죄를 이기는 것에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독감’이라는 글에서도 제가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항생제가 없어도 결국 우리의 몸이 독감을 이겨내듯이, 구원받은 우리의 영혼은 결국 죄를 이겨냅니다. 거듭난 우리의 영혼을 죄가 더 이상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죄와 맞서는 일상의 소소한 전투에서는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전체의 전쟁에서는, 반드시 우리가 이깁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행하신 일입니다. 죄에 대한 심판과 형벌을 다 치르시고, 성령을 부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죄에 지는 것 같아도, 실제로 우리는 많은 경우 또 이깁니다. 사탄은 패배한 우리 자신을 자꾸 각성시켜서 낙심하게 하지만, 성령 하나님은 그렇게 상처 입은 우리로 하여금 더 아름답고 존귀한 일을 꿈꾸게 하셔서, 결국은 그 죄마저도 이기게 하십니다. 그것이 죄를 이기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죄의 열매가 아닌 성령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과 기쁨, 화평과 인내, 친절과 선함, 신실과 온유, 그리고 절제. 이러한 열매들을 상기하면서, 그것들을 내 마음과 삶과 관계와 시공간 속에서 이루어가려고 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죄와 결별하고, 죄에 이끌리지 않는 온전한 주의 자녀들이 되어 갑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자,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기뻐하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자, 오래 참고 견디자,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선을 베풀자,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자, 겸손하고 순종하자, 그리고 나 자신을 멈추게 하는 용기와 결단을 갖자, 그렇게 결단하고 그것을 향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때, 열매를 간구하고 기도할 때, 그 열매들이 맺혀질 뿐만 아니라, 안 보이던 죄가 발견되고, 더 이상 죄의 열매들이 맺혀지지 않는 또한 보게 될 것입니다. 본문 23절은, 그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다고 강조합니다. 당연합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성령 하나님을 삶 속에서 인정하고, 그분과 교제하며, 성령께서 친히 나를 깨뜨려 주시기를 기다릴 때, 그 열매들로 가득한 우리의 삶을 보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깨면 병아리가 되고, 남이 깨면 후라이가 되지만, 성령이 우리를 깨뜨리시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모습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게 성령이 우리를 깨뜨리시도록, 날마다 성령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그래서 날마다 죄를 이기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 설교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