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내가 기도하노라(2)' 2016년 2월 3일 수요 기도 모임 설교

2016-02-03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60203 수요 기도 모임 (4) --------------------------------------------- 빌립보서 1장 8~11절,  내가 기도하노라(2)  * 설교 음성파일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60203.mp3 그를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탄성이 나오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를 위해 기쁨으로 기도하는 되는, 그런 놀라운 관계 속에 있었던 바울과 빌립보 교회 성도였고, 그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예수님의 심장으로 사랑한다 하고, 하나님이 그 사랑의 증인이 된다고 할 정도였던 바울이었기에, 우리는 오늘 그가 빌립보 교회를 위해 드리는 이 기도에 깊이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이 바로 그 기도의 내용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바울은, 그들에게 없는 대단한 무언가를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들 안에 하나님이 주신 것, 곧 성도들 간의 깊은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져서, 흘러넘치는 데까지, 마치 강이 범람하여 주변의 모든 땅을 비옥하게 만들듯, 그렇게 풍요로워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희 고백교회 성도들 간의 사랑도, 그렇게 날마다 조금씩 더 충만해져서, 흘러넘치는 데까지 이를 수 있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기 위해서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음을 말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본문 9절 말씀처럼, 사랑을 풍성하게 하는 그것은, 다름 아닌 지식과 모든 총명입니다. 지식과 총명. (헬라어로는, 에피그노시스 카이 아이스데시스) 얼핏 의아하게 여겨질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식과 총명이 사랑을 풍성하게 하다니요. 오히려 지식과 총명은 사람을 교만하게 해서, 그 있는 사랑마저 소멸시키는 것 아니었나요?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럼 IQ가 높을수록 더 사랑을 잘 한다, 그런 말인가요? 지난 번 설교 때 잠시 언급했던 대로, 여기 9절에 언급된 사랑에는 ‘아가페’라는 헬라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남녀 간의 열정적인 사랑 에로스도 아니고, 친구 간의 우정의 사랑 필리아도 아니며, 가족이나 부모의 사랑 스트로게도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 아가페가 지금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랑이고, 바울이 더 충만하기를 간구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존재하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부어진’ 사랑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5:5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여기 쓰인 단어가 아가페인데요, 아가페라는 사랑이 우리 안에 존재하게 되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성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이 여러분 안에 함께 계시다는 증거이며, 더 나아가, 여러분 안에도 아가페의 사랑이 부어졌다는 것을 또한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 아가페의 사랑은 지식을 통해 풍성해집니다. 그러면 어떤 지식일까요? 여기 9절에 나오는 지식은, 단순히 사물의 이치를 아는 일반적인 지식, 그것은 헬라어로 ‘그노시스’라고 하는데요, 여기에서 영지주의라는 ‘그노시즘’이라는 말이 나온, 그런 지식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이고 영적인 지식을 의미하는 ‘에피그노시스’라는 단어입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뒤에 빌립보서 3:8에서 바울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여, 그 지식 외에 자신이 배우고 익혀 온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에피그노시스’는 다름 아닌 예수님의 알고 그 은혜를 믿는 지식이며,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나누는 깊은 교제 속에 얻어지는 영적인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아는 만큼, 그런데 이 앎이란, 단지 내가 박근혜 대통령을 안다고 할 때의 그런 지식적으로 아는 앎이 아니라, 직접 만나고 교제하며 소통하여 아는 그런 지식입니다. 그 지식만큼, 아가페의 사랑도 풍성해지며, 그럴 때 비로소 우리도 서로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내 능력 이상의 힘으로,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강조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염된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랑일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존재하고, 그래서 그 사랑이라는 것에 빠지기 때문에, 그 누구도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려 하거나, 제대로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지식도 없고, 그 지식에 기초한 총명, 곧 통찰력(‘아이스데시스’)도 없이, 그저 모두 제 멋대로의 욕망을 따라 자기 소견대로의 사랑에 충실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사랑의 기준과 방법을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 요한 사도는 요한일서에서 사랑은 바로 여기 있다, 이것이 사랑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베드로 사도는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베드로후서 3:18)고 권면했습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비례하여 풍성해지고, 그 아가페의 사랑과 함께 우리의 신앙도 자라가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 사이의,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수평적인 사랑은,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존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사랑은 나와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하는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향해 베풀어주신 사랑을 우리도 함께 나누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다. 갈라디아서 5장 말씀처럼, 성령의 열매 그 중 첫 번째가 사랑입니다. 사랑은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심고, 가꾸어, 맺어가야 할 열매라는 사실을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그 사랑은 우리 안에 이미 주어졌지만, 더 풍성해져야 하며,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랑이 우리에게 충만하기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더욱 채워주시도록,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직접 경험하고 만날 수 있도록, 그리고 주님을 아는 그 지식이 우리의 사랑을 바르게 자라게 하시도록,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만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연약한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습에까지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강조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미약하고 부족하지만, 그 길을 향하여 날마다 조금씩 우리가 자라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성령의 날카로운 분별력으로 우리의 사랑이 날마다 풍성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설교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