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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2015년 9월 2일 새벽 설교

2015-09-02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4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50902 수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41장 8~14절,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902.mp3  (이사야 강해 326)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가장 두려운 말 가운데 하나가 너에게 실망했다, 하는 말입니다. 실망이 실망으로 그치지 않고, 나를 향한 좋은 마음이, 이 일로 인하여 깨어지진 않을까, 혹시 나를 선택한 걸 후회하진 않을까, 염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에 끌려와 70년이나 종으로 살면서 느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도 그런 불안감이 있었을 겁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를 버렸구나, 우리를 더 이상 못 견뎌 하시고, 결국은 우리를 떠나셨구나,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 더 두렵고 힘들었을 겁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버린 세월이 수백 년이요, 하나님의 메시지와 경고를 수없이 무시해왔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실망이 혹 단절로 이어지진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첫 마디가 그래서 오늘 본문 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여전히 네 곁에 있다, 내가 너의 하나님이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풀어 하신 말씀이 9절 후반부,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입니다. 여기 싫어하여 버린다는 말은 두 개의 동사가 합쳐진 게 아니라, 본래 그냥 한 단어입니다. 싫어져서 버리다, 거절하다, 유기한다는 뜻의 ‘마아쓰’를 옮긴 겁니다. 시편에 보면 이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기를 간구하는 기도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유는 대동소이합니다. 나의 모습, 나의 삶이, 하나님이 싫어할 수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런 두려움을 믿음 없음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맺은 언약을 파기하지 않는 분이시기에, 그럴 리 없다고, 그럴 수 없다고 여기며 자신이 만든 안전지대에 몸을 숨깁니다. 그러나 착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버리실 것을 염려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몰라서나 의심해서 그런 염려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함을 알지만, 믿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로 인해 고통당하는 하나님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최소한의 사랑이 남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불의가 하나님께 미치는 영향력 앞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이나 행동에서 나오는 악취에 대해 유난히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불쾌한 고통에 대해 지나치게 무지한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다 괜찮겠지, 바다와 같은 이해심으로, 이 정도의 죄는 그냥 지나쳐주실 수 있을 거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예 느끼지 못하는 것과 느끼지만 참아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의 악취를 못 느끼시는 게 아니라, 지금도 참고 견디며, 우리 곁에 머물고 계신 것입니다. 소리나 냄새 등에 유난히 예민한 분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제 주변에 음악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작은 소음에도 대단한 불쾌감을 느끼곤 하시는 걸 경험합니다. 그 자극에 대한 감각이 분명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것이지요. 어떤 분은 소음이 많은 곳은 처음부터 아예 가지를 않는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든 고통인 겁니다. 충분히 상상할 수는 없지만, 죄에 대한 하나님의 감각은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 어떤 기준 이상일 것이겠지요. 세상에 난무하는 죄와 사망의 악취 속에서,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우리 각 사람의 그 지저분한 삶 속에서, 그 예민한 감각의 하나님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숨 막혀 하실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의외의 반응으로 주님을 대합니다. 주님의 무릎 아래 엎드리더니, 예수님께 말하기를,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주님이 떠나기를 원한 것은 아니지만, 죄에 대한 그의 감각이 새로워지는 경험이 그를 그렇게 말하게 만들었습니다. 죄에 대한 감각이 돌아오고, 그 악취가 멀리서도 느껴지며, 싫어지고 미워지는 것, 그것이 은혜가 우리를 지배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일입니다. 썩고 부패하여 온갖 더러운 것들이 득실대는 시궁창 냄새가 이제야 느껴지는 것, 회칠한 무덤 속 썩은 시체가 물이 되어 흐르는 굉음이 들리는 것, 그것이 생명에 이르는 진짜 회개이며,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우리는 두려워하며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오늘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 내가 너를 택하고, 너를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위안이 되기보다, 오히려 그 말 뒤에 숨은 하나님의 고통과 인내를 깨닫는 말씀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불의에 대한, 성령의 감각이 우리 안에 다시 회복되어, 우리의 모습이 바르게 보이고, 옛 사람이 행하는 죄의 습관들 앞에, 성령과 함께 고통스러워할 수 있는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 설교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