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근거한 답변 · 은혜와 회개
은혜를 받았다면 잘못에 대한 마음도 편해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은혜가 모든 잘못을 대수롭지 않게 느끼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 잘못과 그로 인한 관계의 아픔을 더 분명하게 알아보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니 이 정도 잘못은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그 아픔을 아시면서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시는 것은 다릅니다. 용납을 잘못이 사라졌다는 선언으로 바꾸지 않아야 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견디고 붙드시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이 문단의 설교 근거
그러나 아예 느끼지 못하는 것과 느끼지만 참아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의 악취를 못 느끼시는 게 아니라, 지금도 참고 견디며, 우리 곁에 머물고 계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난 뒤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을 알아가는 일이 자신을 무조건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게 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전에는 넘겼던 불의가 싫어지고 자신의 습관이 새롭게 보이는 것도 변화의 한 모습입니다. 그 깨달음을 하나님에게서 도망갈 이유보다 정직하게 돌아설 기회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문단의 설교 근거
정말 주님이 떠나기를 원한 것은 아니지만, 죄에 대한 그의 감각이 새로워지는 경험이 그를 그렇게 말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로 은혜의 크기를 측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드러난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잘못된 습관을 바르게 보려는 방향입니다. 하나님의 인내를 핑계로 계속 같은 길을 가기보다, 그 사랑 안에서 새 감각과 변화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은혜가 주는 평안과 죄를 가볍게 여기는 무감각은 구별해야 합니다.
이 문단의 설교 근거
죄에 대한, 불의에 대한, 성령의 감각이 우리 안에 다시 회복되어, 우리의 모습이 바르게 보이고, 옛 사람이 행하는 죄의 습관들 앞에, 성령과 함께 고통스러워할 수 있는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적용 범위
- 감정적 괴로움의 강도나 죄책감의 지속 여부로 은혜·구원·건강 상태를 판정하지 않습니다.
이렇게도 물을 수 있어요
- 은혜를 받았는데 죄가 더 보여요
- 용서받았으니 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나요
- 은혜와 죄의식은 반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