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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은 쉼입니다." 2014년 1월 29일 새벽기도회 설교

2014-01-29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8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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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29 수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2장 12~22절, 이사야 강해31 (겸손은 쉼입니다.) 이사야서 서른한 번째 말씀으로, ‘겸손은 쉼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본문 12절에 기록된 여호와의 날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함으로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세상 가운데 교만하여 높아진 것들이 낮아지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오늘 본문 속의 여호와의 날은, 그럼에도 신약성경에 나오는 최후의 종말이나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하는 날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최후 종말의 날을 포함할 수 있는 보다 넓고 융통성이 많은 날이라 할 것입니다. 거의 모든 구약의 예언서에 등장하고 있는 이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온전히 선포되고 드러나는 날입니다. 하나님 홀로 높임을 받으시는 때이며, 온 우주의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역으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날은 모두 여호와의 날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비단 우주적인 날이나 전 세계적인 날로서의 여호와의 날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한 개인을 향한 여호와의 날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높아진 마음이 내려서고 하나님을 잊은 삶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날이라면 그에게 그날이 바로 여호와의 날입니다. 여호와의 날에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일에 대해 본문은 높아지고 솟아오른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스스로 자신의 통치자로 군림하던 이들이 다시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입니다. 그 통치의 심판은 너무나 압도적이고 강력하여 스스로 높아진 그 어떤 것도 감히 낮아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조금 덩치가 큰 강아지들이 그 무리 사이에서 왕 노릇을 하다가도 저 멀리 호랑이의 그림자만으로도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 숨을 곳을 찾게 되듯, 하나님의 임재와 심판은 세상의 모든 교만들을 모두 흩어버리십니다. 요즘 고백교회는 주일 예배 때에 사도행전 말씀을 함께 묵상하고 있습니다만, 성령의 임재가 나타나는 그때 오순절을 성경은 ‘마지막 날’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날은 이 땅에 성령의 임재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된다는 점에서 다시 오늘 본문의 여호와의 날과 같은 날로서 선포됩니다. 성령의 임재는 가장 급진적이며 가장 충만한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한 사람, 그리고 한 공동체 전부를 하나님의 영이 사로잡아, 그분의 말을 하게 하며, 그분의 뜻을 행하게 하십니다. 율법이 할 수 없었던 모든 통치를 그리스도의 사랑의 이름으로 성령이 친히 행하십니다.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한 사도행전의 장면을 기억해 보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한 이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마치 술에 취한 듯,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의 실체가 되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난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노력이나 의지라기보다는 철저하게 그를 사로잡은 성령의 강력한 이끄심의 결과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성도는 오늘 이사야 본문의 말씀에 기록된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구원을 받아 다시 새로운 삶으로 초대받은 유다의 남은 자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날을 통해 왕 되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자이며, 세상의 모든 높아진 것들이 하나님 앞에 낮아지는 것을 목도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자신의 영혼으로부터 가장 먼저 고백되는 것으로, “그리스도만이 나의 주인이시다”는 고백이 마음으로 믿어지고 입으로 시인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땅의 모든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날을 계속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들, 그들의 삶은 매순간 하나님의 실제적 통치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평안한 겸손함입니다. 누구보다 높아지려 하지도 않으며, 세상의 높음을 지향하며 스스로 애쓰지 아니합니다. 마치 고요한 물이 스스로 낮은 곳을 찾아 그곳을 향하여 흐르듯이, 성령의 임재를 누리는 영혼은 세상의 교만한 소리에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으로 언제나 낮은 곳을 지향합니다. 성령은 이처럼 우리로 하여금 너무나 평온하게 우리의 교만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합니다. 애써 높아지려 하지 않고 굳이 남을 이겨 군림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지도 않으며 무시를 당해도 상대를 불쾌해 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를 향해 매순간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자인지를 끊임없이 증언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의 값으로 치른 바 된 우리의 삶임을 성령이 우리에게 날마다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라고 선언하시며, 우리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고백하게 하십니다. 그와 같은 존귀한 자로 거듭난 우리가 굳이 높아질 이유도 다시 존귀히 여김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그 존귀한 구원을 겸손히 누리면 그만인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겸손은 비굴함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낮다고 여기는 이는 결코 겸손할 수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높이려 할 뿐, 다른 누군가 위에 군림하여 자신의 비루함을 애써 감추려 할 뿐, 본질적으로 겸손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높일 필요가 없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겸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TIME』이 선정한 2013년 올해의 인물이 프란치스코 교황이었습니다. 『TIME』은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며 특별히 그의 겸손한 행적에 주목하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고귀한 자리에 앉아 몸소 겸손함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뒤 추기경들과 인사할 때에도 교황 자리에 앉는 것을 거부하고 추기경들과 같은 높이로 서서 인사한 것은 물론 이번에 새롭게 선출된 모든 추기경들에게도 서한을 통해 겸손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교황은 교황이 되시기 전에도 그런 모습이셨다고 하지요. 부에노스 아리레스 대주교로 일하면서 대주교 관저를 돈이 없는 선교단이 쓰게 하고 버스 타고 출퇴근한 그는, 결코 다른 사람 앞에 군림하거나 고압적인 모습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그가 겸손한 성자로 불리며 존경을 받게 된 까닭은 결국 그분이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얼마나 존귀한 자인지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교황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낮아지려 하기 때문에 겸손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그만큼 성령의 통치를 인정하고 그분의 사랑 안에 자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자인지를 스스로 깨닫고, 거기서 평안히 쉴 수 있는 존재입니다. 누구라도 조금만 기도하고 조금만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 곧 깨달을 수 있는데, 교만이란 결국 낮은 자존감의 징표입니다. 스스로 존귀하지 못하며 높지 못하다 여기기에 끊임없이 교만의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산 위에 다 오른 사람은 그저 거기 누워 쉴 뿐입니다. 스스로를 존귀하다 여기지 못하는 자의 겸손 역시 겸손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겸손을 가장한 비굴함일 뿐이지요. 자신의 존귀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참으로 겸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연약한 자들의 종이 되셨던 것은, 그분이 온전히 세상의 왕이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비루함과 구차함 속에서도 감춰지지 않는 거룩한 존귀함이 주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 그의 핏값으로 구속한 바 된, 저와 여러분에게 비굴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높아진 여러분의 그 존귀함 가운데 쉬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옳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야 교황이 존재하고 어린 소자가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나, 천국에서는 누구라도 다 가장 존귀한 자입니다. 스스로 존귀하다 여기는 그 누구보다도 더 존귀한 자로 저와 여러분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의 존귀함을 누리는 깊은 안식입니다. 더 높아질 필요가 없고 더 인정과 칭찬을 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모습을 되새기며 그분의 쉼을 배우면 그만입니다. 주님은 세상의 거친 싸움에 지친 저와 여러분을 향해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다.” 혹 여러분의 마음이 세상의 온갖 염려와 일들로 분주하며 참된 쉼이 없어 고단하십니까? 주님의 겸손함을 배우십시오. 그리고 그 겸손함 속에서 쉼을 누리십시오. 여러분을 향한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여호와의 날이 이미 우리에게 임했으며, 지금도 우리는 성령이 다스리시는 여호와의 날을 이어 살고 있습니다. 그분을 인정하고 여러분의 마음과 삶으로 초청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이 주시는 겸손과 온유함의 쉼을 누리십시오. 누군가가 나의 존귀함을 인정해주지 않아도 내가 누군가를 섬겨 하루를 살아야 해도, 그리스도의 자녀 된 존귀함을 잃지 마시고, 마치 알이 꽉 찬 곡식이 스스로 고개를 숙이듯이, 여러분의 내면에 가득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조용히 고개를 숙이십시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의 존귀함을 드러내실 때가 곧 오실 것입니다.”(베드로전서 5:6)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겸비함을 배우고 누리기 원합니다. 스스로 더 높아져야 한다는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들 속에서 이미 구원을 이루시고 우리를 존귀케 하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기 원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그 쉼을 맛보기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평안에 거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여호와의 날이 되게 하시며, 거기서 주님과 함께 거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내일부터 설 연휴 기간 동안에는 새벽기도회가 없습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기도하시며 평안하고 행복한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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