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살려 주옵소서' 2015년 7월 7일 새벽 설교
2015-07-07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6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50707 화요일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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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8장 15~20절, 이사야 강해 304 살려 주옵소서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707.mp3
이사야서 삼백네 번째 말씀으로, ‘살려 주옵소서’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오늘 히스기야와 같은 기도, ‘주님, 살려 주옵소서’라고 기도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살면서 이런 절박한 상황이 가능하면 생기지 않아야 하겠지만, 사람의 삶이란 내가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오늘 죽음 앞에 서 있는 히스기야처럼 말입니다. 비슷한 기도를 해보신 분은 아마, 이 말을 가슴 깊이서부터 꺼내어 하나님께 외칠 때, 그때의 간절함과 처절함을 잘 아실 겁니다. 절박해서 기도했는데, 이 말을 하나님께 하고 나면 더 절박해지고, 더 간절해지는, 그런 기도가 오늘 ‘살려 주옵소서’라는 간구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대로, 하나님은 이 기도에 대해, 당신의 뜻을 돌이키면서까지, 온전히 응답해 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원하는 대로 치료되었고, 또 살아났습니다. 병에서만 치유된 것이 아니라, 계획에도 없던 15년의 생명이 보장되었습니다. 누가 봐도 기도의 응답이요, 하나님의 복이요,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단지 15년의 추가적인 삶이었지, 15년의 온전한 삶, 15년의 의롭고 신실한 삶, 15년의 정말 제대로 된 삶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15년을 주셨으니 히스기야는 아마도 그 삶이 일종의 보너스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겁니다. 죽을 고비를 기적적으로 넘겨 건강하게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종종 듣게 됩니다만, 많은 분들이 그런 삶을 감사함으로, 귀히 여기며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애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히스기야는 어떠했을까? 히스기야도 덤으로 얻은 인생, 은혜로 여기며 겸손하게 남을 위해 살았을까? 그의 삶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성경이 말씀하는 대답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삶을 기록한 구약의 성경은, 본문 이사야와 열왕기하, 그리고 역대하, 이렇게 세 개의 책인데, 그 중 히스기야의 치유 이후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는 역대하의 말씀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역대하 32장, 구약성경 701쪽, 32장 24절부터 26절까지입니다. “24.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25.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26.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25절 말씀처럼, 히스기야는 이 일 이후 교만의 길로 급격하게 빠져듭니다. 우리가 다음에 살펴 볼 이사야 39장의 내용 역시 그러한 히스기야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요, 물론 26절과 같이, 히스기야가 뉘우치게 되긴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내리지 않는, 말 그대로 집행유예에 불과한 상태가 이어지게 됩니다. 이후 히스기야의 삶은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고, 선하게 행하던 그 히스기야는 사라지고, 말 그대로 민폐 캐릭터로 전락합니다. 덤으로 15년을 얻은 자신은 행복했을지 모르지만, 백성과 나라, 그리고 후손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복으로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영적 몰락의 결과물이 바로 그의 아들 므낫세 왕입니다. 유다 왕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타락의 모습을 보여준 므낫세. 그에 대한 기록이 오늘 역대하 33장에 바로 이어서 등장하는데요, 잠깐만 살펴봅니다. 1절부터 9절까지, “1.므낫세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 동안 다스리며 2.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3.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4.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원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제단들을 쌓고 5.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6.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으며 7.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하나님이 이 성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8.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내가 명령한 일들 곧 모세를 통하여 전한 모든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의 조상들에게 정하여 준 땅에서 옮기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9.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아멘.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벅찬 내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6절에서 보듯이, 자신의 아들들을 불에 태워 이방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가증한 일을 행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신 암몬의 우상 몰렉에게 하는 제사였을 것입니다. 그런 그의 삶을 9절이 한 마디로 정리합니다. 므낫세로 인해 행한 죄악이, 다른 모든 이방나라보다 더욱 심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결론입니다.
물론 므낫세는 므낫세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훌륭해도 자식까지 그렇게 기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경우가 조금 다릅니다. 역대하 33장 1절을 다시 보면, 므낫세가 왕위에 오를 때 나이가 십이 세라 했습니다. 열두 살에 왕위에 올랐다면, 그는 히스기야가 덤으로 산 15년 동안 나은 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그 세월, 하나님은 왕위를 이을 자녀도 히스기야에게 주셨습니다. 그가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았다면, 그리고 그 삶 속에 므낫세를 향한 온전한 신앙의 양육이 있었다면, 분명 그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다시 이사야 38장으로 되돌아가 봅시다. 38장 19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산 자라면, 주로 인해 살게 되었다면, 주께 감사하고, 주의 신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해야 한다고 히스기야가 말하는 장면입니다. 우리가 므낫세의 실패를 단지 므낫세만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히스기야 스스로 하나님이 주신 덤으로 사는 이 인생을 자녀에게 가르쳐야한다고 노래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노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갔음을, 그렇게 그의 아들 므낫세, 자그마치 55년이나 되는 세월을 그 숱한 죄악들 속에서 유다의 왕으로 살아간 그 므낫세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간절히 간구하고 결국 그 응답까지 받았다고 생각하는 성도들, 그리고 그것이 복이요, 하나님의 축복이라 여기는 저와 여러분이 새겨들어야 할 반면교사가, 바로 오늘 히스기야의 이 기도, ‘나를 살려 주옵소서.’라는 그의 고백임을, 온전히 경성할 일입니다. 남의 말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돌아볼 따름입니다. 내일 마저 말씀을 맺겠습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