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잠잠하여' 2015년 5월 29일 새벽 설교

2015-05-29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50529 금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36장 18~22절,  이사야 강해280  잠잠하여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529.mp3    이사야서 이백여든 번째 말씀으로, ‘잠잠하여’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제가 개척교회를 섬기고 있다고 하면,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여러 말로 충고를 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곤 합니다. “요즘 기성 교회들도 어려워서 자꾸 교회 문을 닫는데, 그냥 교회에 있지, 왜 어려움을 자초하느냐. … 지금 이 나라에 교회가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더 교회를 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 개척은 아무나 하느냐, 당신은 개척할 스타일이 아니다. ….” 참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듣다 보면 할 말은 산더미인데, 그냥 입을 닫고 맙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을 하고, 설명을 해야 할지, 저 자신도 막막하고, 이상하게 그런 이야기에 일일이 대꾸를 하다 보면 힘이 생기고 의욕이 넘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운이 빠지고 마음도 무거워지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개척한 이상 어차피 들을 이야기, 그냥 듣는 수고를 감수하고 조용히 있는 게 저 자신에게 최선의 선택임을 진즉에 배우게 되었습니다. 성도가 믿음의 길을 걸으며 겪게 되는 많은 고난 속에서, 주변의 사람들은 여러 조언과 반응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거기에는 마음이 담긴 진실한 위로도 있고, 또 좋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충고도 있습니다. 현실을 정말 제대로 분석한, 경우 바른 소리도 있지요. 하지만 남이 당하는 고난만큼 할 말이 많은 것도 세상에는 없습니다. 자신의 일에는 모두가 한치 앞도 모르는 나약한 인간이지만, 남의 일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전문가요, 지혜자가 됩니다. 그런 말들에 일일이 대꾸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문제 덩어리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싯구처럼, 때론 아무 말 안 하는 게 가장 우렁찬 대답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36장의 거의 대부분은 랍사게의 도발적 웅변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성경에, 하나님과 그 백성을 저주하는 이방인의 이야기가 뭐가 이리 길게 기록되어 있는 건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반대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유다 백성들은 일언반구 아무 말도 없습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아무 말도 대답하지 말라고 히스기야가 이미 명령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랍사게가 일어서서 유다 백성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그에 대해, 성 안의 수많은 백성들과 군사들이 함께 침묵으로 일관했을 당시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그 자체로 더없이 엄숙하고 비장한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침묵은 얼마 안 가 상대의 침묵으로 이어지는 법입니다. 아무 대꾸 없는 이에게 여러 말 할 수 없기에, 랍사게의 도발도 결국 도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채 그렇게 맥없이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랍사게는 이런 반응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자신의 말에 대해 이러저러한 반응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러면 자신은 더욱 강력한 표현들로 사기를 꺾으려 했을 겁니다. 아울러 많은 잡다한 이야기들 속에서 백성들이 스스로 무너지기를 원했습니다. 믿음의 반응과 불신의 반응이 서로 뒤엉키며 결국은 자중지란에 빠지리라 예상했습니다. 말이 말을 부르고, 불평과 불신은 순식간에 그 말을 먹고 자라게 되어, 끝내 하나님을 향한 작은 믿음과 인내마저 소멸되리라 산헤립은 기대했을 겁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다른 선택을 내립니다. 받아야 할 욕, 감당해야 할 수치를 그대로 끌어안은 채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사람의 소리가 내 안에 더 큰 갈등의 씨앗이 되지 않고, 그저 공중의 소리로 흩어져 사라질 때까지, 단 한 마디 말도 섞지 않은 채, 잠잠히 기다리고만 있었습니다. 성도가 고난의 자리에 섰을 때 가장 먼저 챙겨야 할 무기, 그것은 다름 아닌 침묵임을,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결박되어 끌려온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 섰을 때, 주님은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십니다. 말씀을 하셔도 거의 다 단답형의 대답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침묵에 대한 빌라도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4.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왜 주님이 할 말이 없고, 대꾸할 이야기가 없겠습니까? 이유 없는 고난 속에서 성도가 어떻게 할 말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해야 할 모든 말을 다 쏟아놓은 뒤였습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 앞에 해야 할 말들을 다 토해냈기에, 주님은 사람에게 할 말이 더는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잡음과 불필요한 이야기들 속에서 성도가 어디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예수님은 침묵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순종 중의 하나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침묵하라는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러나 그때 침묵하는 그것이 진정한 성도의 힘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억울하고 화날 때, 말로라도 이기고 싶을 때, 상대의 도발이 정말 말도 되지 않을 때, 오늘 히스기야의 선택을 기억합시다.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그 절대적인 침묵만이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잡음을 구별하는 유일한 길임을 잊지 마십시다. 무엇보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말하는 습관, 그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도록 합시다. 하나님께 하는 말이 별로 없으니 이곳저곳 쓸 데 없는 말만 늘어놓는 겁니다. 정말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는 지혜, 그 지혜를 주님께 구합시다. 그리고 잠잠히 여호와의 하나님 되심을 지켜보십시다. 우리의 침묵이 어떻게 세상의 소리를 이기게 되는지, 성도의 침묵을 하나님이 어떻게 되갚아주시는지, 잠잠히 주님의 위로를 기다리며 주님 안에 머물러 있으십시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 하다 쫓겨나와 지은 시편 34편에서, 다윗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멘.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는 다윗의 이 노래가, 훈계와 교훈이 넘쳐나는 시끄러운 이 시대 속에, 잠잠히 주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의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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