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피어 즐거워하며" 2015년 5월 13일 새벽 설교

2015-05-13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50513 수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35장 1~4절,  이사야 강해269  피어 즐거워하며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513.mp3 이사야서 이백예순아홉 번째 말씀으로, ‘피어 즐거워하며’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34장의 어둡고 황량한 분위기에서 완전히 전환된 오늘 35장인데요, 34장과 연결하여 생각하면, 에돔의 심판으로 인해 폐허가 된 땅에 대한 회복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아니면 35장 후반부의 내용을 고려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땅 곧 유다의 회복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그런 본문입니다. 1절부터 대전환의 강한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광야, 메마른 땅,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하겠다는 말씀은 우리를 참으로 놀라게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 광야, 메마른 땅, 사막은 그 의미상으로는 거의 비슷한 말들이지만, 실제 히브리어는 다 각각 다른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광야에 해당하는 ‘미드바르’, 메마른 땅이라는 뜻의 ‘치야’, 그리고 사막인 ‘아라바’ 등, 생명 없는 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를 죄다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선포되는 하나님의 회복이 얼마나 완전하며 전면적인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한 메마른 땅들이 백합화처럼 피어난다고 1절은 노래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백합화가 사막에 피는 게 아닙니다. 보통은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이해하기가 쉬운데, 본문은 그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사막에 백합이 피는 게 아니라, 사막 자체가 백합처럼 피어나는 것입니다. 광야에 무슨 꽃 몇 개가 활짝 핀다는 뜻이 아니라, 생명 없는 땅이 생명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상상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난다, 그것도 2절 말씀처럼 무성하게 피어난다, 참으로 우리의 이해가 미치기 힘든 표현입니다. 그래서 꽃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운 제가 이 백합화에 대해 아주 자세히 검색을 해봤습니다. 백합화처럼 핀다는 것이 무엇인가. 나중에 홈페이지에 새벽 설교를 업로드할 때 검색한 사진도 함께 올려드리겠습니다만, 저는 백합(百合)이 흰 꽃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백합의 ‘백’이 희다는 의미의 한자 ‘백’이 아니라, 숫자 일백을 의미하는 ‘백’인 겁니다. 백합이 필 때, 땅 속에 있는 수많은 줄기 조각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뿌리가 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물론 백합 중에는 흰 꽃도 있지만, 살펴본 결과 팔레스타인에서 자라는 백합들은 주로 붉은색 꽃을 가진 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진 속 백합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순수하고 순결한 이미지의 그런 꽃이 아니라, 아주 화려하고 정열적인 그런 느낌입니다. 아래 관주에 이 백합이라는 단어, 하바쩰레트’를 장미라고 옮겨도 무관하다고 되어 있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당시, 먹고 마시는 문제에 우리가 염려하지 말 것을 당부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요,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이때 주님이 백합화를 언급하면서 솔로몬의 영광과 비교하시는 것도, 백합이 가진 화려한 영광의 느낌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백합화가 활짝 만개하듯,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이 무성하게 피어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이라고, 주님이 오시는 그때가 되면, 주님이 위로하시고 갚아주시는 그 날이 오면 그리 될 것을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고 계십니다. 봄에 피는 꽃 백합, 그것처럼, 우리의 삶이 봄이 되라고 주님 축복하고 계십니다. 사실 제 개인적으로 이 말씀은 저에게 참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몸이 무겁고, 마음도 목회적인 큰 짐으로 무겁게 짓눌린 요즘, 저는 광야, 메마른 땅, 사막, 이것들이 정확히 저의 모습이라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벗어나보려 몸부림치고 있지만, 그게 제 뜻대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깊음의 시간이 주님이 주시려는 새로운 지평의 준비임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그러나 그런다고 이 황량한 모래바람 같은 마음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과 얼굴이 함께 구겨지고 있을 때, 오늘 본문은 저에게 오아시스 같았습니다. 본문 4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오사, 하나님이 오사, 이 구겨진 모습을 활짝 펴 주시기를, 얼마나 반복하여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내 안에서 회복의 여력이 없음을 알기에, 하나님이 오셔야만 함을 기도하고 항변했습니다. 백합화 같이 피어나게 될 것을 선언하시는 이 말씀이 저는 그래서 더욱 큰 위로와 은혜가 됩니다. 밝고 환한 위로만으로 감사한데, 그것을 넘어 만개한 백합처럼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새롭게 피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사막이 기뻐하고 광야가 즐거워하게 될 것이라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 주님의 오심을 바라보며 기다립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 속에서 하나님이 오고 계십니다. 그 깊음의 자리에서 나를 구원하시며 그간의 눈물을 갚아주실 보복의 하나님이 지금 이곳으로 오고 계십니다. 그분은 인생이 아니시며, 근본적으로 우리와 다른 분이십니다. 내게 없는 소망과 우리에겐 없는 답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십니다. 사막에 꽃을 심는 분이 아니라, 사막이 꽃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메마른 우리의 삶을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빽빽하게 울창한 숲으로 대변되는 레바논의 그 청량한 영광, 이스라엘의 가장 비옥한 땅 갈멜의 풍성함, 그리고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땅 사론의 아름다움으로 삶을 뒤바꿔놓으시는 분. 그분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4절처럼,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약속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아니 믿어야 합니다. 마른 먼지 날리는 사막의 인생이 아니라, 누구라도 취하게 할 것처럼 향기를 토해내는 백합과 같은 인생으로 주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이 땅을 덮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봄이 이 땅에 반드시 찾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님 오심을 바라보십시다. 모든 인간의 판단과 편견을 내려놓고, 잠잠히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십시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될 그 날이 곧 다가올 것입니다. 약한 손을 강하게 하고,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주님의 오심을 마중 나가십시다. 마라나타, 주님을 함께 부르십시다.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