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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2015년 5월 4일 새벽 설교

2015-05-04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6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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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04 월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34장 1~4절,  이사야 강해263  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504.mp3 이사야서 이백예순세 번째 말씀으로, ‘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시며’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긴 마라톤의 반환점을 돈 마라토너의 마음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제 이사야서 강해의 절반을 지나 34장을 묵상하는 저와 여러분의 마음은, 분명 새로운 각오와 열정일 것입니다. 적어도 제 마음은 그렇습니다. 지나온 절반보다는 분명히 더 바르게, 더 잘 해야지, 하는 각오가 생깁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니 성령이 주시는 새 열정도 끓어오릅니다. 이 새벽의 자리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도 그러함을 믿고, 더욱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신을 정돈하여 하나님의 말씀 앞에 기도로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이사야서에는 곳곳에 하나님의 강한 심판의 메시지가 등장합니다. 13장에는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길게 선포되고 있고, 24장에서는 한 국가를 넘어, 인간의 죄로 인해 더럽혀진, 땅 전반에 대한 하나님의 전면적인 심판이 길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34장 역시 같은 맥락의 심판이 등장하는데요, 차이가 있다면, 그 심판의 규모와 범위가 훨씬 더 넓어졌다는 것과, 그 강도가 더욱 격렬해졌다는 것 정도입니다. 1절에 보면, 열국, 곧 나라들과 민족들 전반은 물론 땅과 거기 있는 피조물들 전부를 하나님이 호출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2절과 3절에는, 바로 그 나라와 민족들을 향한 구체적인 심판의 모습이 그려지고, 4절은 땅은 물론 하늘의 만상까지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 놓임을 묘사합니다. 말 그대로 전 세계와 우주 만물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오늘 읽지 않은 34장의 나머지 뒷부분은 이 열방들 가운데 한 나라인 에돔에 관한 심판의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왜 이뤄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한지, 에돔이라는 한 나라가 일종의 표본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사야 35장은 그런 심판의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떤 운명을 맞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순서대로 천천히 살펴나가 보십시다. 오늘 1절은 열국과 민족을 어딘가로 부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구도로, 하나님이 열방을 하나님의 법정으로 소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의와 판결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피고들을 그 선고의 법정 안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먼 훗날 주님이 다시 오실 때의 최종적 심판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우리의 삶 순간순간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개입과 판단을 떠오르게 만들기도 합니다. 4절에 보면 하늘의 만상도, 하늘 그 자체도 그 법정에 소환되는데요, 아래 주석에 보면 만상은 우주에 거하는 모든 별들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만상이라는 단어는 그저 별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고대의 별이라는 것은 하나의 신앙적 대상이요, 신비의 메타포였기 때문에, 그것은 곧 하나의 왕조나 국가, 그리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가리키는 단어인 것입니다. 이 말씀들을 종말론적 선언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본문의 2절과 3절은 하나님의 대대적인 심판의 모습을 가감 없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더없이 강하고 심각한데요, ‘진멸’과 ‘살육’이라는 말이 2절에 나오고, ‘사체의 악취’ ‘피에 의해 녹는 산들’이라는 표현이 3절에 등장합니다. 심지어 살육당한 시신도 온전치가 못합니다. 정상적인 장례는 꿈도 꿀 수 없고,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르는지, 산들이 그 피에 녹을 정도입니다. 4절에 사용된 동사들도 무시무시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만상이 사라진다고 할 때 ‘사라진다’는 단어 ‘마캌’은 곪고 썩어 없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공동번역이 이를 ‘썩어 문드러진다’고 옮겼는데, 지금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분위기, 어떤 상황인지,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 앞에서 일단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당장 저부터도 하나님의 이런 모습이 무척 낯설게 느껴지는데요, 과연 이 하나님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 맞는가, 싶은 그런 모습입니다. 혹자는 이런 하나님의 모습은 그저 구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모습이라고 치부해버리기도 하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심판의 무게를 다 대신 받으셨다고, 그러니 이제 이런 심판은 더 이상 우리와 관계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지 않느냐고, 그런 하나님이 이렇게 심판하실 리는 없다고, 주님 다시 오시는 최후의 때까지 이 심판은 모두 연기되었다고, 그럴듯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성경을 조금만 자세히,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순전히 우리의 착각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인내하시고 사랑하시되, 또한 동일하게 하나님의 자녀들을 징계하시고, 이 땅의 불의와 죄악들을 심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로마서 12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신약성경 로마서 12장, 신약 257쪽입니다. 아시는 대로 여기 로마서 12장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기록한 너무나 유명한 본문입니다. 로마서를 둘로 구분할 때, 앞의 로마서 11장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본질에 대해 설명하고, 이제 12장부터는 성도의 삶의 지침이 이어지지요. 그것을 기억하며, 14절부터 18절까지 제가 읽겠습니다. “14.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아멘.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주님의 말씀과 같은 내용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19절부터 21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아멘. 여기서 성도의 초점은 물론 원수를 갚지 말라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해 오히려 선으로 갚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말씀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 원수 갚음을 누가 행하신다고 합니까? 숯불이 누구의 머리 위에 쌓여진다고 말씀합니까? 원수 갚는 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한없이 유예되고 지체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이 땅의 죄악과 불의를 하나도 남김없이 지켜보고 계시며, 돌이키게 하시고, 동시에 심판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법정은 오늘도 열리고 있고, 수많은 피고들을 여전히 소환하고 계심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저와 여러분도 예외는 아닙니다. 시간 상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말씀을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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