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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에 근거한 답변 · 믿음과 성경

구약의 심판 이야기는 사랑의 하나님과 다른 모습 아닌가요?

심판의 거센 표현이 낯설 수 있지만, 구약의 심판과 신약의 사랑을 서로 다른 하나님의 모습으로 갈라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과 인내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불의와 죄를 판단하신다는 점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이사야의 심판에는 진멸과 살육처럼 거센 표현이 나오므로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불편함을 숨기거나 구약에만 있는 이야기라며 밀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이사야 34장은 나라들과 피조 세계를 하나님의 판단 앞에 세웁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만으로 본문을 지우기보다, 무엇을 향한 심판인지부터 살펴야 합니다.

이 문단의 설교 근거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 앞에서 일단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당장 저부터도 하나님의 이런 모습이 무척 낯설게 느껴지는데요, 과연 이 하나님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 맞는가, 싶은 그런 모습입니다.
"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2015년 5월 4일 새벽 설교 · 2015-05-04 설교 전문에서 이 대목 읽기 →

로마서 12장은 박해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하면서,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라고 합니다. 사랑의 요청은 불의가 아무 문제도 아니라는 선언이 아닙니다. 직접 보복하는 일을 내려놓는 것과 죄에 대한 판단 자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릅니다. 신약의 사랑도 하나님의 공의와 함께 읽어야 합니다.

이 문단의 설교 근거
하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인내하시고 사랑하시되, 또한 동일하게 하나님의 자녀들을 징계하시고, 이 땅의 불의와 죄악들을 심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2015년 5월 4일 새벽 설교 · 2015-05-04 설교 전문에서 이 대목 읽기 →

심판의 말씀은 우리가 대신 누군가의 운명을 선고할 권한을 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죄와 불의를 보시는 하나님 앞에는 읽는 우리도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이유로 잘못을 가볍게 여기지도, 심판을 이유로 개인적인 보복을 정당화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판단을 맡기며 자신의 삶도 그 빛 아래 돌아보도록 부릅니다.

이 문단의 설교 근거
하나님의 법정은 오늘도 열리고 있고, 수많은 피고들을 여전히 소환하고 계심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저와 여러분도 예외는 아닙니다.
"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2015년 5월 4일 새벽 설교 · 2015-05-04 설교 전문에서 이 대목 읽기 →
적용 범위
  • 개별 재난이나 고통을 특정인의 죄에 대한 심판이라고 판정하는 답변이 아닙니다.
이렇게도 물을 수 있어요
  • 구약 하나님은 무서운 분인가요
  • 사랑의 하나님이 왜 심판하나요
  • 신약에는 심판이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