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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함을 받으리라" 2015년 5월 1일 새벽 설교
2015-05-01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50501 금요일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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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3장 23~24절, 이사야 강해262 사죄함을 받으리라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501.mp3
이사야서 이백예순두 번째 말씀으로, ‘사죄함을 받으리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본문 23절은 쉽게 해석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돛대 줄이 풀리고, 돛대의 밑이 견실하지 못하며, 그래서 결국 돛을 달지 못한 배로 비유되는, 23절 첫머리의 ‘너’가 과연 누구인지, 그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립니다.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위해 출항을 준비하는 앗수르의 배를 의미한다는 해석 하나와, 그 자신은 부족하기 그지없어 누군가를 공격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못한 예루살렘의 모습을 의미한다는 해석 두 가지입니다.
이것을 앗수르로 보는 견해의 근거는, 본문 21절과의 관계입니다. 21절에 보면, 예루살렘을 공격하려는 앗수르의 시도를 하나님이 막으시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앗수르의 군사들을 태운 배들에 대한 이야기가, ‘노 젓는 배’ ‘큰 배’ 등으로 이미 표현이 되어 있기에, 지금 23절의 돛대는 당연히 앗수르의 배에 속한 돛대라는 주장입니다. 이 관점의 약점은 23절 하반절과 24절의 내용에 자연스럽게 연결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23절 하반절은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의 때가 이를 때 많은 재물을 탈취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인데, 앞에서 앗수르의 배 이야기를 하던 상황에서, 너무나 급작스런 전환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이 배를 예루살렘, 유다의 배로 보는 근거는 지금 말씀드린 대로, 이어지는 뒤의 내용들과의 연관성입니다. 비록 출항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못한 예루살렘이지만, 그럼에도 주님의 때가 이르면, 그들의 능력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을 통해, 결국 이방의 재물을 취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과 잘 어울리는 해석이 됩니다. 23절, ‘때가 되면’이라는 말 앞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를 넣어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하지만 이 해석에도 문제는 남습니다. 예루살렘의 배라는 이 비유가 너무나 갑작스러운 등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내용들과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두 번째 이 해석이 저는 더 합당하다고 여겨집니다. 33장의 결론이 결국 23절, 24절이기에, 그것과 더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방식으로 그 부분을 해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도 결론은 동일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의 허물을 사해주시고, 그들의 편에 서실 때에는, 비록 우리의 모습이 연약하고 보잘 것 없어도, 넉넉히 이기고, 넉넉히 누리게 될 것이라는 약속, 그것이 오늘 33장의 결론입니다.
이 결론을 뒷받침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23절 마지막 말씀, “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며”라는 부분과, 24절 처음 말씀, “그 거주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부분입니다.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도 탈취한 재물을 취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승리는 철저하고 풍요롭습니다. 건강하고, 실력 있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만 누릴 수 있는 풍요가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 은혜 가운데 사죄함을 받은 자 모두가, 넉넉히 누릴 수 있는 풍요가 약속된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 몸을 간수하기도 어려운 사람들조차, 충분히 승리의 열매를 맛볼 수 있을 만큼, 하나님나라의 기업은 풍성하고, 그 처소는 넉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 거하는 이들은 내가 병들었노라, 탄식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이 말씀을 병약한 사람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아픈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굳이 강조하여 말할 필요가 없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몸이 불편해도 그에게 족한 은혜가 부어지며, 공의의 위로가 임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나라입니다.
성도가 세상이 원하는 건강이나, 성공이나, 승리를 굳이 구하고 갈망하지 않아도, 풍성한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승리가 그와 같은 것들에 의존하여 이뤄지는 승리가 아니기에, 성도의 능력이 거기 있지 않기에, 오히려 성도의 그 약함이 세상의 강함을 넉넉히 이기기에, 성도는 비록 병들고, 가난하며, 실패하는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는 시온을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실상 저에게 참 큰 도전이 됩니다. 몸이 불편하고 힘들다고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주님 강조하십니다. 이미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선포하십니다. 몸이 조금 불편하고 움직이기 어려워도, 하나님은 능히 그것으로도 당신의 일을 이루시고 계시다고 말씀합니다. 오히려 그 연약함이 제게 있어, 더 큰 주님의 일이 이뤄져가고 있다고, 그 질병이 더 큰 건강이라고, 주님은 위로하십니다.
분명 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 말씀에 저는 ‘아멘’으로 고백합니다. 그 은혜가 실로 제 안에 있고, 저의 삶이 그것을 증언해주고 있음을 제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도 같은 고백이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죄사함 받음의 의미가 이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주님 안에 거하도록 용납되었으며, 이제 그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이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주님의 승리가 곧 나의 기업으로 풍성이 누리게 하신다는 그것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죄사함의 은혜인 것입니다.
비록 우리 인생의 배가 형편없이 흐트러지고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도, 하나님은 그 배를 통해 하나님나라의 승리를 이루시고, 그 승리의 전리품을 실어오실 것입니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겨우 움직이는 그 인생도 넉넉히 그 승리를 맛볼 수 있도록 주님의 공의가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부디 그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며 주님 주시는 깊은 평강을 누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