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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2015년 4월 27일 새벽 설교

2015-04-27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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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27 월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33장 14~16절,  이사야 강해259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427.mp3 이사야서 이백쉰아홉 번째 말씀으로,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적에는 아파트가 거의 4층에서 5층이 많았고, 그때만 해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아파트도 거의 없었습니다. 당연히 4층이나 5층, 제일 꼭대기 층은 별로 인기가 없었는데요, 요즘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지요. 1, 2층보다는 고층으로 갈수록 더 비싸지고, ‘펜트하우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가장 꼭대기에, 아주 특별히 비싼 집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 오피스텔도 마찬가지인데요, 저희가 1층이 없는 15층 건물, 2층에 살고 있는데, 2층이 가장 싸기 때문입니다. 여기도 올라갈수록 더 비싸집니다. 외부인의 방문을 비롯한 안전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조망권이 중요해지는 그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살아보니 확실히 좀 더 높은 곳에 살면 더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높은 곳에서 멀리 보면 확실히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괜히 생각도 깊어지는 듯한 느낌 때문인가 봅니다. 성경 안에서도 ‘높은 곳’은 더 안전한 곳과 동의어로 보통 사용됩니다. 아마도 전쟁이 잦던 시기에, 적으로부터 안전한 요새가 다 높은 곳에 건설되었기 때문일 텐데요, 그래서 많은 고대 도시들이 언덕이나 산 위에 세워졌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라는 누군가에게 축복의 말씀을 하시면서, 그가 높은 곳에 거하게 될 것이고, 아울러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어 그를 보호하게 됨을 말씀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높은 곳에 양식이 공급되고 식수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부연됩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과 도우심을 통해, 그의 안전과 풍요가 보장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높은 곳에 거하는 이가 그럼 누구인가? 본문 15절이 그의 정체에 대해 밝히고 있는데요, 대략 여섯 가지 정도의 특징을 보입니다. 먼저 공의롭게 행하는 자인데요, 원문을 직역하면, ‘의롭게 걷는 자’입니다. 이로운 길이 아닌 곧고 바른 길을 택하고 걸어가는 자를 뜻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며 사는 삶을 의롭다 말씀하지요. 두 번째 모습은 정직하게 말하는 자입니다. 더 설명이 필요 없는, 명료한 자격입니다. 세 번째는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입니다. 내가 가진 힘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얻은 재물에 대해 아예 관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럽고 천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네 번째는 뇌물을 뿌리치는 사람이고, 다섯 번째는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인데, 누군가를 해하는 음모나 뒷담화에 가담하지 않는 모습을 말합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악한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은 물론, 그것을 보지도 않으려고 눈을 감아, 유혹의 빌미도 허락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높고 견고한 안전을 허락하심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은 14절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선언되자, 시온의 사람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 있던 죄인들, 그리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이 두려워하며 이렇게 말한 겁니다. 우리 중 누가 타오르는 불을 견디어낼 수 있겠는가? 여기 타오르는 불이 나온 것은, 앞선 단락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불로 묘사되었었기 때문인데요, 실상 그 불은 앗수르와 같은 학대자를 향해 선포된 재앙인데, 지금 여기서는 시온에 거주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그 심판을 걱정하는, 기이한 모습이 묘사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반문합니다. “우리 중에 누가 하나님의 불 심판 앞에 거할 수 있겠는가.” 시온의 백성 모두가 다 똑같은 것 아닌가. 다 어느 정도의 불의와 불경건으로 살아가는 것 아닌가. 하나님을 향한 이 반문의 의도는 명백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을 의심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불의를 인정하고 회개하지 않는, 그저 인간의 나약함 때문이라고 합리화하기에 급급한 내면의 부패한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죄인이 스스로 물었으니 하나님은 답해주십니다. “그래 네가 말 잘했다. 앗수르만이 아니라, 너희도 그 심판의 대상이다. 시온에 몸이 살고 있다고 그것이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하나님의 백성이면 백성답게, 의롭고 정직하며, 스스로 조심하는 참 백성만이 하나님의 견고한 요새에 거한다. 나의 참 백성만이 나의 요새에 거할 것이다.” 주님은 단언하여 말씀하십니다. 다시 한 번 주의해야 할 것이, 15절은 ‘오직’이라는 한정사로 시작합니다. 아무리 시온의 죄인들이 모든 주의 백성을 싸잡아 자신을 합리화해도, 하나님의 기준은 변함이 없습니다. 공의를 행하고 정직을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멀리하고 뇌물과 아부를 거절하는 자. 은밀히 남을 공격하는 데 함께 하지 않고, 아예 악에는 눈을 감아버리는 자. 그들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는 자임을, ‘오직’이라는 이 말 한 마디가 분명하게 구분 짓고 있습니다. 그들은 견고한 바위로 둘러싸인 높은 요새에 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직접 공급하시는 양식과 물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왕 예수를 믿고, 주의 길을 쫓아가는 성도가 된 마당에, 거기서 제대로 한 번 살아봐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는지 이제라도 제대로 말씀 앞에 삶을 정돈하고 살아봐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다시 한 번 기억해 보십시다.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바로 이들입니다. 하나하나 마음의 밑줄을 긋고, 다시 시작되는 오늘 하루, 이 한 주, 겸손하게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그래서 주님 예비하신 그곳에서 함께 거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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