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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2015년 4월 16일 새벽 설교
2015-04-16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50416 목요일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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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2장 6~8절, 이사야 강해252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416.mp3
이사야서 이백쉰두 번째 말씀으로,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옛날 같으면 만인지상 일인지하라고 불리던 자리에 앉은 분을 둘러싼 의혹이,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어지고 있습니다. 이 땅 그 어디보다 존귀한 자리인 건 맞는 것 같은데, 그 자리에 앉아 있다고 모든 사람이 다 존귀한 건 아닌가 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큰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노력이란 결국 조금 더 존귀한 자리로 올라가고자 하는 노력인데,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존귀히 여김을 받으며 살고자 하는 것인데, 그렇게 자리만 옮기는 게 무슨 의미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히 하나님은 우리를 시작부터 존귀하다 말씀합니다. 예의 상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존귀하다 하십니다. 시편 16편 3절에,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왕이나 아주 높은 지위에 있는 귀족에게나 이 존귀하다는 말을 붙여주었는데, 하나님은 이 땅의 성도들 모두가 존귀한 자들이라 여겨주셨고, 주님의 모든 기쁨이 성도들에게 있다고 말씀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의 성도를 존귀하다 말씀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은 존재로 이 땅에 태어나기 때문이고, 그 말은 다시 우리의 존귀함이, 자유롭고 의지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인간만의 고유한 모습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의 ‘존귀하다’는 히브리어 ‘나디브’(בידנ)의 가장 기본적인 뜻이, 그래서 ‘자진하는’ ‘기꺼이 하는’ ‘즐겨 하는’이라는 의미입니다. 거기서 나중에 고결하다, 존귀하다는 말이 파생되어 나왔습니다. 많은 영어 성경이 이 단어를 ‘noble’이 아닌 ‘liberal’로 번역하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이 말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인간의 존엄은 스스로 존엄한 것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옴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억압적으로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존엄한 길을 기꺼이 선택하고, 그 길을 즐거이 갈 수 있는 그것이 인간을 가장 존엄하게 함을 강조하는 표현이 바로 이 존귀하다는 단어 ‘나디브’인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8절은 존귀한 자를 이렇게 정의내립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오늘 하루, 아니 우리가 평생 기억하고 읊조리며 살아내야 할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함께 읽어봅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존귀한 자는 존귀한 자리에 있는 자가 아니라, 존귀한 일을 계획하는 자, 스스로 존귀한 일을 분별하고, 그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계획하는 자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사람들의 관점에서 지금 혹 그다지 존귀한 자리에 있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그 일을 스스로 행하려 한다면, 그가 바로 ‘지금’ 존귀한 자이며, 또한 앞으로도, 항상 존귀한 일에 서 있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존귀함은 자리의 문제도 아니요, 다른 사람의 평가의 문제도 아니요, 오직 내가 지금 여기서 바라보고 계획하는 바, 거기에 달려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계획 가운데 있습니까? 존귀한 일을 마음에 품고 그 일을 위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사실 계획이라는 것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은 그런 시대 속에 우리들이 살아갑니다. 그저 오늘 하루 아무 일 없이 보내면 그만이어도 족한, 그런 어려운 시대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오늘 말씀이 쓰여지던 시대도 오늘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성도가 스스로 존귀한 길을 걸어가기 결코 쉽지 않았던 그런 전쟁과 혼돈의 시절이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존귀한 일을 지금 다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는 겁니다. 8절을 잘 보면, 존귀한 자는 지금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꿈꾸는 자이지, 이미 그 일을 이루는 자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존귀한 plan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를 하나님은 존귀한 자라 부르시고, 부르실 뿐만 아니라, 그가 결국에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존귀함의 시작은 오늘 우리의 계획에서 나오지만, 그 끝은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그것을 믿고 지금 여기서 존귀한 일을 계획하는 성도, 하나님은 그를 결국 존귀한 자리에 있게 하시는 겁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모든 사람이 다 존귀한 것은 아니라 분명히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어리석은 자, 악한 자, 존귀한 자 등이 함께 등장하고 있습니다만, 시편 49편 20절에는,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말씀하심으로, 그 존귀를 자각하고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은 더 이상 존귀와 상관없는 존재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존귀하지만 그걸 깨닫지 못하고 비루하게 사는 인생을 뭐라 비유하십니까? 멸망하는 짐승입니다.
다시 여러분께 여쭙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 무엇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존귀하게 빚으셨고, 존귀한 자리로 부르셨으며, 존귀한 일에 서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관심이 그저 존귀한 자리나 탐하여, 멸망하는 짐승처럼 비루해지는 삶이 되지 않도록, 다시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며 깊이 숙고하십시다.
존귀한 자리에 있으나 전혀 존귀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세상이 시끄러운 오늘, 그들의 이야기를 부디 반면의 교사로 삼아,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로 바로 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도록, 오늘 여기서 하나님 앞에 존귀한 일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고, 계획하며 살아낼 수 있는, 그래서 항상 존귀한 일에 서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잠깐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