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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네 어머니라" 2015년 3월 31일 새벽 설교
2015-03-31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6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50331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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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9장 23~27절, 보라 네 어머니라
* 설교 음성파일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331.mp3
‘보라 네 어머니라’는 제목의 고난주간 세 번째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마리아를 예수님의 이 땅의 어머니로만이 아니라, 교회의 어머니로까지 생각하고 있는 가톨릭에서는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을 그 중요한 근거로 제시하곤 합니다. 단지 요한에게만 부탁하신 말씀이 아니라 요한으로 대표되는 모든 사도와 교회를 대상으로 이 말씀을 하신 것으로 이해하여, 교회가 마리아를 성모로 존중하고 섬겨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 상황에서 주님의 의도가 정말 그런 것이었다면, 아마 주님은 사전에라도, 제자들의 수장이요, 교회의 대표인 베드로에게 분명 그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에 담긴 주님의 마음은 그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계신 이 순간에,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어머니 마리아였을 겁니다. 아담부터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땅 위에 존재한 모든 인간들 가운데, 아마 마리아만큼 주님의 고통을 공감한 사람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어머니의 마음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마리아는 거의 모든 제자들이 다 도망가고 없는 그 십자가 곁을 가장 가까이에서 끝까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수치와 조롱 가운데 죽어가는 아들을 그렇게 지켜봐야 했던 마리아, 인간적으로는 너무나 안타깝고 불쌍한 어머니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교회의 전승이 남편 요셉이 예수님이 장성하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합니다. 일평생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고생했던 어머니의 삶과 그 마음을 주님이 아시기에, 이제 홀로 남을 어머니에게,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가리키며,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본문은 주님이 어머니를 부탁한 제자의 실명을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 스스로가 그 대상이기 때문인데요, 아시는 대로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자기 자신을 ‘주님이 사랑하는 제자’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것은 요한만의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자타공인, 주님이 특별히 생각하는 제자가 바로 요한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는 주님과 제자들의 유월절 마지막 만찬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거기서 주님이 제자들을 향해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이 서로 보며 수군거리는 장면에서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그때 베드로가 요한을 향하여 머릿짓을 하지요. “요한, 네가 한 번 주님께 물어보라.”는 일종의 몸으로 하는 사인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의미를 알아들은 요한이 주님께 묻습니다. “주님 누가 주님을 파는 그 사람인가요?” 그러자 주님이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리고 곧 떡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유다에게 건네주시는 장면이 이어지지요. 요한과 주님과의 정서적인 거리를 말해주는 좋은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요한에게 주님은 주님의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합니다. 이 일을 주님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는, 이어지는 28절에서 잘 나타납니다. 28절,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이제 이것으로 주님이 하실 일은 끝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 ‘그 후에’는 당연히 바로 앞의 내용, ‘주님이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신 일 후에’입니다. 이 문제를 주님이 얼마나 마음 깊이 담아두셨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이 말씀은 주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 중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하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이후의 나머지 네 말씀들은 모두 독백이거나 아바 아버지를 향한 말씀인 것을 고려하면, 오늘 어머니를 부탁하는 이 말씀이 주님의 실질적인 마지막 유언인 셈입니다.
이 말씀을 사도 요한은 깊이 가슴에 새기고, 순종하여 실행합니다. 본문 27절에,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마리아를) 모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냥 멀리서 돌보고 삶을 보살폈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고, 요한이 돌보며 함께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렇게 행하는 요한을 보면서, 요한에게 부탁하시던 그 주님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조금은 가늠이 됩니다. 그만큼 요한을 믿고, 편히 의지하신 주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그 부탁을 하실 수 있으셨을까. 앞뒤 다 자르고, 마리아에게는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이요, 딸이라고, 또 우리에게는, 마리아가 이제부터 네 어머니라고 그렇게 편히 말씀하실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여기 말씀은 부탁이 아니라 그냥 선언입니다. 그만큼 요한은 주님께 마음 편한 제자였던 겁니다. 무엇을 부탁해도 좋은, 아무리 편하고 쉽게 말해도 괜찮은, 그런 제자, 그런 친구였습니다. 내가 그렇게 평소 주님과 가까운 사이인가, 내가 그렇게 주님께 늘 편하고 쉬운 제자인가, 주님이 아무 걱정 없이 가족을 맡길 수 있는 그런 믿을만한 사람인가, 너무나 죄송하고 아픈 마음이 앞섭니다.
주님은 당신의 친동생들이 있음에도 굳이 요한에게 부탁하십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이 있지만 요한입니다. 부탁하고 싶어도 그들이 주님의 곁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요한만이 그 자리에 머물며 주님의 어머니 옆에 함께 서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고난 그 자리에 함께 있어야 주님의 간절한 마음이 들립니다. 그 자리에 없는데, 주님의 말씀이 들릴 수가 없지요. 오늘 이 본문이 다른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주를 따르는 모든 사람이 같은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머무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주님의 간절한 부탁을 들을 수 있는, 십자가 가까이에 우리가 머물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고난은 외면한 채, 저 멀리서 내 원하는 삶을 살기에 바쁜 삶은 아닙니까?
결국 요한은 이 땅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살며, 가장 은밀하고 신비로운 주님의 말씀인 요한계시록을 기록합니다. 출애굽기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십계명의 약속이,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신 요한에게도 그대로 성취됩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고, 주님께 너무나 편하고 쉬웠던, 그리고 믿을 수 있었던, 요한 사도만의 은혜요, 축복이었음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십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이] 고통에 잠긴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십자가 곁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마음 편히 부탁하고 맡길 수 있는 그런 편한 일꾼이 되십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주님의 어머니요, 형제요, 자매라 했습니다. 부디 이 땅, 이 시대의 마리아를 주님 부탁하시기에 거리낌 없는 그런 주님의 사랑하는 제자가 되는, 그리고 그 사명 잘 감당하여 요한과 같이 주님의 귀한 은혜와 위로를 얻는, 저와 여러분, 우리 고백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