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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죄를 더하도다(2)" 2015년 3월 20일 새벽 설교

2015-03-20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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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0 금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30장 1~5절,  이사야 강해238  죄에 죄를 더하도다(2)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320.mp3 이사야서 이백서른여덟 번째 말씀으로, (어제에 이어서) ‘죄에 죄를 더하도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죄의 힘과 권세가 아무리 대단하고 거세어도, 성도가 내부에서 마음의 빗장을 열어주지 않는 이상, 우리를 제멋대로 끌고 다니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탄이 성도를 밀 까부르듯, 자신의 손아귀에 집어넣고 쥐락펴락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분명 우리 스스로 결정적인 틈을 보였기 때문이고, 그 틈을 보수하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어제 다윗의 예를 들어 죄 앞의 우리 현실이 얼마나 엄중하며, 또 그럼에도 우리가 얼마나 무기력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는데요, 다윗의 경우에도 분명 죄가 들어와 자신을 사로잡을 수 있는 틈을 다윗 스스로 먼저 제공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분별할 수 있습니다. 잠깐 구약성경 사무엘하로 가보시겠습니다. 사무엘하 11장입니다. 구약성경 477쪽입니다. 1절부터 2절까지 천천히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1.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2.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아멘. 밧세바 사건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이 대목에서 이미 다윗은 여러 결정적인 문제를 노출합니다. 먼저 1절이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다’는 말로 시작됨에 주목하게 됩니다. 여기 ‘그 해가 돌아왔다’는 말은, 새 해가 되었다는 히브리어 관용구입니다. 유대 달력으로 새해는 우리 3~4월인데요, 우리는 이때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느라 가장 바쁘지만, 근동 지역은 다릅니다. 농사에 적합한 겨울 우기가 지나고, 이때는 사람들이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노동력들이 전쟁을 위한 군사로 징집이 가능해지고, 왕들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참전하는 대규모 전쟁이 이 시기에 주로 발발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다윗은 그 전쟁에 스스로 나서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유는 적고 있지 않습니다. 몸이 안 좋았을 수도 있고, 전쟁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오직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고 적고 있을 따름입니다. 자신의 백성들과 부하들은 모두 전쟁에 나가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타국의 왕들은 평소처럼 모두 전쟁터로 나와 싸움을 독려하는 상황에서, 다윗은 자신이 있어야 할 그 자리를 벗어나 있습니다. 나중에 다윗이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전쟁터의 우리아를 궁으로 소환하여, 집에 가서 편히 쉬고 즐기라고 권면했을 때, 우리아는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1절인데요,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여기서 우리아는 하나님의 언약궤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합니다. 전쟁이 중하고 위급할 때, 다윗은 늘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을 상징하는 언약궤를 늘 전쟁터에 함께 가지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언약궤와 다윗의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하나님의 말씀과 다윗의 영적인 거리도 벌어질 대로 벌어진 상태입니다. 일개 장수에 불과한 우리아도 그것을 심중에 각인한 채 전쟁에 임한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중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만약 다윗이 평소처럼 전쟁터를 누볐다면, 그냥 열심히 싸우지는 않더라도 단지 자신의 자리만이라도 지켰다면, 아마 이러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자리에서 벗어난 거기서 모든 문제가 촉발되었음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2절에 나오는 다윗의 모습은, 그러한 선택이 얼마나 다윗의 경각심을 해이하게 만들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저녁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났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밤이 아니라 저녁입니다. 해가 질 무렵을 의미하는 ‘에레브’입니다. 오후 내내 늘어지게 잠을 자고 저녁이 다 되어서 일어난 다윗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국운을 건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사가 풀려도 몇 개는 풀려 빠져 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이사야 29장에서 마음이 혼미한 자들의 분별없음에 대해 경고한 바가 있지만, 오늘 다윗의 몸과 마음은 이미 혼미해질 대로 혼미해진 상황입니다. 빗장은 열렸고, 남은 것은 죄가 그를 사로잡아 제 멋대로 놀아내는 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지체 여러분, 성도가 자신이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를 벗어나는 일이 이토록 중하고 위험한 일임을 우리 마음에 꼭 담아두십시다.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이 있는 자리에서 멀어지면 우리 마음의 빗장이 무너집니다. 성도가 지켜야 할 여러 자리들, 여러 상황들, 그리고 사명의 자리들,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지키는 보루가 된다는 것을 오늘 다윗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 마음에 새겨놓으십시다. 그 자리만 지킬 수 있어도 성도가 시험에 드는 일은 쉽게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가 중요하기에 결코 사탄도 그걸 쉽게 지키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무슨 일과 핑계거리를 만들어서라도 우리를 그 자리로부터 빼내기 위해 애쓸 것입니다. 그래서 삶의 우선순위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타협하지 않는 자리, 양보하지 않는 자리,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자리를 위한 삶의 우선순위가 반드시 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일해야 할 때 일하고, 쉬어야 할 때 쉬며, 하나님 앞에 머물러야 할 때, 머물 수 있는 게 성도의 힘입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간과하기 쉬운 말씀, 오늘 다윗의 모습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에도 우리가 있어야 할 이 자리에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평생 이 자리를 떠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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