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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계획을 숨기려 하는 자" 2015년 3월 16일 새벽 설교

2015-03-16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6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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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16 월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29장 15~16절,  이사야 강해234  자기의 계획을 숨기려 하는 자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316.mp3 이사야서 이백서른네 번째 말씀으로, ‘자기의 계획을 숨기려 하는 자’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다윗은 시편 139편에서, 하나님이 그의 모든 것을 밝히 알고 계심에 대해 깊은 감격으로 노래합니다. 그의 그 노래를 잠깐 귀 기울여 들어보면 이와 같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2.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3.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4.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5.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 7.내가 주님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님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 8.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9.내가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10.거기에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힘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11.내가 말하기를 "아, 어둠이 와락 나에게 달려들어서, 나를 비추던 빛이 밤처럼 되어라" 해도, 12.주님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며, 밤도 대낮처럼 밝으니, 주님 앞에서는 어둠과 빛이 다 같습니다. … 13.주님께서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 15.은밀한 곳에서 나를 지으셨고, 땅 속 깊은 곳 같은 저 모태에서 나를 조립하셨으니 내 뼈 하나하나도, 주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16.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주님의 책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 23.하나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나를 철저히 시험해 보시고, 내가 걱정하는 바를 알아주십시오. 24.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오늘 이사야를 통해 선포되고 있는 본문의 말씀의 내용이 그 방향만 바뀌어, 고스란히 다 담겨 고백되고 있는,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지으셨고, 나의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시기에, 내가 결코 하나님의 시선을 피할 수 없음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분의 그 시선 앞에 노출되어, 하나님의 지키심과 도우심 속에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그의 노래는, 성도가 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한 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의 말씀은, 정반대의 모습에 관한 하나님의 책망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 그들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아마도 역사적인 맥락을 생각해 볼 때, 앗수르의 침공을 대비하여 애굽에게 동맹을 요청하는 유다의 정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 앞에 묻지도 않은 채, 거기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듯, 하나님은 이 일에 대하여 도우실 방도가 없다고 여기는 듯, 그렇게 유다는 자신들의 계획을 하나님께 노출시키지 않은 채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하나님은, 그저 서운하다, 안타깝다,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15절 말씀처럼, 그것은 화다, 16절 말씀처럼, 그것은 패역이다,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의 계획을 깊이 숨긴다는 것, 물론 이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감춘다고 감춰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의 계획을 감춘다고 어디에 감출 수 있겠습니까? 마음 깊은 곳에 감춘다고 하겠지만,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고 계신 것을요. 우리의 생각을 감추려는 그곳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가장 밝은 곳임을 모른대서야 어찌 성도라 하겠습니까?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속이고, 하나님을 외면하는 어리석은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죄를 범하고,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반역을 꾀합니다. 이러한 어리석음이 어디서 나오는 것이겠습니까? 어차피 다 아시는데 왜 우리는 감추려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품은 계획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우리가 먼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이 계획과 이 발걸음이 하나님이 원치 않는 길임을 스스로 알고 있기에, 부질없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나무 그늘 사이에 숨어 죄에 오염된 자신들의 모습을 애써 감추려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범사에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묻고 듣는 경건의 훈련이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부모를 신뢰하고 모든 것을 오픈하여 대화하는 아이가 결코 곁길로 엇나갈 수 없는 것처럼, 삶의 작은 일에도 하나님을 찾고 묻는 성도가 죄를 선택하고 잘못된 길로 나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런 대화가 소멸된 성도의 삶은 십중팔구 이미 그 자체로 신앙의 위기임을 반증합니다. 내가 지금 생각하고 계획한 일들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그분의 주권 앞에 내려놓는 일을,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은, 그 길이 하나님이 원치 않는 길임을 내가 먼저 알고 있기 때문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죄가 이미 그를 하나님 앞에 서기에 두려운 자로 사로잡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일을 하나님 앞에 오픈할 수 없게 됩니다. 죄의 책망과 양심의 가책이 그를 하나님으로부터 기어이 떼어놓으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 앞에 우리의 삶이 늘 머물러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기에 그 선택은 더 신속한 결단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찾아온 신앙의 위기가 바로 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계획을 숨기는, 실행 불가능한 그 일이 수많은 성도에게는 일상이 되어 버린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처한 심각한 위기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바쁘고 급할수록 잠깐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이 과연 주님이 원하시는 길인지, 주님께 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때론 주님이 당장은 침묵으로 일관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계획을 드러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그 길을 주님의 인도하심에 맡겨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미 그것이 하나님의 빛 가운데 노출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마음을 주님이 샅샅이 살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내 것이지만, 나도 알 수 없는 것이 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우리가 가진 최선의 지혜는,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일입니다. 나의 계획을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오픈하는 것입니다. 어제 말씀에서 사울은 자신의 길에 대해 혈육이 아닌 하나님과 의논하였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의 삶과 사역 전부가 그러했음을 우리는 또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과 신앙 또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나누며 의논하기를 당연히 여기고 즐거워하는, 복된 모습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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