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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2015년 3월 4일 새벽 설교

2015-03-04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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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04 수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28장 14~19절,  이사야 강해226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304.mp3 이사야서 이백스물여섯 번째 말씀으로,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꽤 오래 전 아내와 함께, 깨끗한 바다가 있는 한 휴양지에 놀러갔을 때의 일입니다. 워낙 바다가 깨끗한 곳이어서, 관광객 거의 대부분이 잠수를 통해 바다 속 아름다운 광경을 즐기는 스노쿨링이나 스킨수쿠버 다이빙과 같은 수중 스포츠를 즐기고 있었기에, 저희도 한 번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노쿨링은 이미 다 해 본 것이니 이번엔 좀 새로운 걸 해보자고 해서 무턱대고 시도해 본 것이 스킨스쿠버 다이빙이었는데요, 아시는 대로 산소통을 직접 메고 비교적 깊은 바다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저도 아내도 당연히 처음 해보는 것이었는데요, 이게 보기보다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육지에서 꽤 긴 시간 수업을 듣고, 모의 훈련도 하고, 그렇게 잘 준비를 해서 바다에 들어갑니다. 그것도 혼자 들어가지 않고 전문 강사와 반드시 함께 들어가서, 그 강사의 인도를 따라 모든 과정이 진행이 됩니다. 그래서 육지에서 미리 그 강사분과 몇 가지 약속된 시그널을 서로 익힙니다. 손가락으로 이렇게 하면 괜찮다는 뜻, 저렇게 하면 안 되겠으니 물 밖으로 올라가자는 뜻, 또 이렇게 하면 숨을 못 쉬겠다는 뜻 등, 여러 시그널을 익히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바다로 들어가게 되는데, 사실 육지에서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바다 속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장비 자체도 대단히 무겁고 낯설 뿐 아니라, 평소 단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던 수심 속 바다는 생각하지 못한 공포감과 당황스러움을 주게 되는 것이지요. 저희는, 저와 아내 그리고 강사 분,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바다에 들어갔는데요, 시간적 차이만 있을 뿐, 저와 아내 모두 한 번은 위험한 고비를 겪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그 바다 속 그 낯선 어둠과 답답함을 견뎌내지를 못할 것 같은 그런 상황이 찾아온 겁니다. 곧바로 강사에게 시그널을 보냈지요. “못할 것 같다, 수면 위로 올라가자.” 그런데 그 강사분의 반응이 참으로 의외였습니다. 겁을 잔뜩 먹은 저희를 데리고 바로 올라가지를 않고, 아주 조금만 위로 가더니, 자기 자신만 바라보라고 계속 손짓을 하는 겁니다. “Just look at me, please.”라는 말과 함께 손가락으로 계속해서 자신을 가리킵니다. 저희가 시키는 대로 그분을 쳐다보는 데 집중하자, 이번에는 자신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해 보라고 하는 시그널을 보냈습니다. 육지에서 배웠던 것이지만, 다시 천천히 가르치면서,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우리가 따라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렇게 그분을 응시하고 행동을 흉내 내기를 몇 분, 대단히 놀라운 변화가 저희 몸에 일어났습니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던 마음이 진정이 되고, 호흡도 안정을 되찾으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정심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사물과 그 사물을 보게 해 주는 충분한 빛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상황이 조금 전과 바뀐 게 없는데, 저희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의 상태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우리의 회복을 확인한 그 강사 분은 저희 둘을 이끌고, 마치 엄마가 두 아이 손을 잡고 바닷가를 산책하듯, 그렇게 바다 깊은 곳까지 저희를 인도하며, 그때까지 맛보지 못했던 그 바다 속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오늘 읽은 이 다소 어려운 이 본문을 묵상하다가 문득 그때 일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표면적으로는 어려워 보이지만, 그 의미는 단순합니다. 이사야서에서 계속해서 강조되는 메시지, 하나님 아닌 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잠잠히 믿고 기다리는 말씀입니다. 유다의 지도자들과 제사장들은 이미 턱밑까지 차오른 앗수르라는 이 파도 앞에서 평정심을 다 잃었습니다. 평정심을 잃은 모든 사람이 다 그러하듯, 오직 살아야한다는 생각 하나에 매몰되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이미 시야에서 놓치고 있었습니다. 뭐가 진실이고, 뭐가 진리인지 분별할 수 없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극복하고 도망쳐 온 애굽에까지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게 오늘 15절의 이야기입니다. 15절에서 그들이 언약을 맺었다고 말씀하는 대상들, 곧 사망, 스올, 거짓, 허위 등이 다 애굽의 신들의 이름들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역사적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우리가 믿음의 왕으로 잘 알고 있는 유다의 히스기야 왕입니다. 그가 평정심을 가지고 잠잠히 이 상황을 볼 수 있었다면 분명 택하지 않았을 선택이었지만, 이미 그는 믿음의 의연함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 이 상황에 대해 아뢰지도 않고,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믿음의 습관이 몸에 충분히 배어 있었을 그였지만, 위험에 노출되어 당황하고 나니 그마저도 다 무용지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나의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는다. 이것은 이미 시험이 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초석이다. 이것을 믿으면 너희의 다급함이 사라질 것이다.” 여기 시온은 아시는 대로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장소입니다. 많은 상징과 의미들이 포함된 구절이지만, 단순하게는 그저 하나님을 응시하고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앞서 바다 속에서 경험한 저희의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주변의 상황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응시하고 그분의 말씀 앞에 잠잠히 주목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의연해지며, 충분히 강해질 수 있음을, 그래서 다급해지지 않고 본래의 평정심과 믿음을 회복할 수 있음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계십니다. 살다 보면 반드시 이런 위기가 우리를 덮쳐옵니다.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안심이 되는 그런 상황. 하지만 그때에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봐라. Just Look At Me! 나를 응시하고, 나를 주목해라. 내가 너의 앉고 일어섬을 다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네가 당한 어려움을 다 알고 있다. 그저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모든 상황을 주관하고, 이끌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잠잠히 나를 보라. 그리고 성도의 평정심을 회복하고, 믿음의 의연함으로 맞서라.”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다만 우리의 시선을 그분께로 향하고 그분의 음성에 주목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우리가 가진 성도의 의연함과 기개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깊은 바다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바 아버지가 되십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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