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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에 근거한 답변 · 교회와 증언

은사가 풍성한데도 공동체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은사가 다른 사람의 유익보다 자기표현에 초점을 맞추면, 특별한 능력이 있어도 소통과 사랑은 약해질 수 있습니다. 함께하는 사람이 이해하고 도움을 받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은사가 드러난다는 사실만으로 공동체가 함께 유익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깊은 경험이지만 함께 있는 이들은 이해하지 못한 채 바깥에 남을 수도 있습니다. 은사의 초점이 남을 돕는 데서 자기 경험을 드러내는 데로 옮겨가면, 연합을 이루어야 할 선물이 소통을 막는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만 묻지 말고, 그것을 사용하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이 실제로 위로받고 함께할 수 있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이 문단의 설교 근거
조금만 부주의하면 오히려 공동체의 소통에 방해가 되고, 연합을 이루는 게 아니라 소외를 만듭니다.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 (2021년 3월 28일 주일 설교) · 2021-03-28 설교 전문에서 이 대목 읽기 →

공동체 안에서는 상대가 깨달을 수 있는 짧은 말이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말보다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은사는 높고 다른 은사는 낮다는 순위를 세우는 일이 아닙니다. 어떤 은사든 자랑으로 사용될 수 있고, 사랑을 담으면 이웃을 섬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은사의 이름이나 화려함보다 그 자리의 사람들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함께 알아듣고 위로받으며 세워지는 말과 행동을 택하는 것이 은사를 사랑으로 사용하는 길입니다.

이 문단의 설교 근거
결론적으로 사도는, 일만 마디 방언보다 다섯 마디 예언이, 깨달은 마음으로 하는 다섯 마디 말이 더 낫다고 이야기합니다. 은사를 서로 비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예배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권면하면 될 것을 굳이 그걸 방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어로 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 (2021년 3월 28일 주일 설교) · 2021-03-28 설교 전문에서 이 대목 읽기 →
적용 범위
  • 방언이나 예언의 진위를 판정하거나 은사의 보편적 우열을 정하지 않습니다. 공동체의 소통과 유익이라는 원문의 적용 범위를 유지합니다.
이렇게도 물을 수 있어요
  • 좋은 은사가 왜 공동체를 나누나요
  • 예배에서 이해 가능한 말이 중요한 이유
  • 일만 마디 방언보다 다섯 마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