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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2015년 1월 27일 새벽 설교

2015-01-27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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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27 화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25장 9~12절,  이사야 강해208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127.mp3 이사야서 이백여덟 번째 말씀으로,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지만, 여러분 최근에 누군가를 진정으로 기다려 본 경험이 있으신지요? 기다림이 우리의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그럼에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떤 인격인 존재를 마음 깊이 기다리는 일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저 내 차례를 기다라고 거기서 오는 유익을 기다리는 경우는 많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그 사람으로 채워지는, 진짜 기다림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은 것이지요. 하나님을 기다리는 일 또한 실은 우리에게 매우 낯선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실 좋은 것들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기다린다, 우리의 직관이나 상식에도 잘 어울리지 않는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 25장의 감사시를 기록한 사람은 분명하게 이 기다림에 대해 언급합니다. 본문 9절인데요,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문장을 조금 세밀하게 살펴보면, 그들이 기다린 것이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었고, 여호와 하나님, 그 자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를 기다려서 그가 우리를 구원하셨고, 또 그를 기다려서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한다, 이런 것이지요. 그들이 기다린 건 지금 상황과 형편의 긍정적인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였다는 것을 분명히 강조합니다. 9절 후반부의 말씀은 우리에게 더 와 닿는 말씀입니다.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그를 기다렸기에, 그가 주신 구원을 기뻐한다. 이 말은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우리의 경험을 상기해 볼 때, 이 고백은 분명 정확하고 또 의미 있는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들이 기쁨이 될 까닭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게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지조차 분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감격하고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기다린 사람만의 특권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와 상관없이 우리의 소원들을 이뤄주실 때도 많습니다. 기도에 게으른 사람들은 더 잘 알겠지요. 내가 기도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평안한 길로 인도하시더라, 충분히 그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간절하게 하나님을 구하고, 또 응답을 구한 사람이 느끼는 기쁨은, 비록 그것이 같은 응답이라 할지라도, 분명 차이가 있는 겁니다. 자신을 향한 더 깊은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을 향한 더 온전한 신뢰를 더불어 받게 되지요. 더구나 기다리지 않은 사람은 거의 대부분의 은혜와 사랑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지나쳐버리기 일쑤입니다. 구하고 기다려서 누리는 은혜는 반드시 내 삶에서 발견이 되고 확인이 됩니다. 그래서 감사의 고백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믿음의 관계가 시작이 되지요. 하지만 기다림 없는 은혜는 은혜로서 느껴지기조차 어렵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지 뭔지, 이게 정말 하나님이 하신 게 맞는지 아닌지, 분별할 수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다리는 일이 어색하고 힘든 일이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의미 있는 것을 드리고 준비하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임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다림은 타자를 통해 시작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론 우리 자신 안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릴 때 우리가 더 흥분되고 그 기다림이 더욱 깊어지는 경우가 언제입니까? 내가 그 사람을 위해 뭔가를 준비했을 때, 선물이나 이벤트를 계획했을 때, 그때 더 깊은 기다림을 맛봅니다. 정말 특별한 요리로,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는 주부에게, 일하고 돌아오는 배우자는 훨씬 더 큰 기다림으로 다가옵니다. ‘어서 와서 이걸 맛있게 먹었으면…. 어서 와서 이걸 보고 기뻐했으면….’ 하는 마음이 기다림을 만들고, 그리움을 만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좋은 것을 주셔서 내가 그분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때론 내가 그분을 위해 뭔가를 준비하고, 헌신하고, 결단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기다리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말은 역으로, 나는 지금 하나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을 설레게 하고 기쁘시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도 계획도 없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하나님이 말 안하고 몸으로 행하지 않아도 내 마음 다 아시겠지, 내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하나님은 어차피 다 가지고 계신 분인데, 혹 이런 마음이 우리 안에 있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을 그저 입에 발린 칭찬으로 변질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우리 고백교회 지체 여러분,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의 필요가 소망들을 직접 여러분의 입술로 하나님께 간구하고 그분을 기다리는 믿음의 자리, 기도의 자리가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조금 더 나아가, 그 선물만이 아니라, 그 선물을 준비하고 베푸시는 하나님 자체를 기다리며 기뻐할 수 있는 조금 더 깊은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거기서도 조금 더 나아가, 내가 받고 누리기 위해 기다리는 것을 넘어, 내가 드리고 헌신하고 고백하고 주님께 기쁨이 되기 위해 주님을 기다릴 수 있는, 복 된 자리에까지 여러분의 마음이 나아갈 수 있기를, 그래서 오늘 시인의 고백처럼, 그의 구원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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