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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강해 32. 예배와 쉼에 조율된 삶으로의 초대
2022-07-20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18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220720 수요 성경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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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8:1~29:40, 예배와 쉼에 조율된 삶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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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민수기 강해도 막바지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하고 나면, 대여섯 번 정도의 강해만 남게 되는데요, 민수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를 세는 일이 이미 다 끝났고,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그 리더십을 물려받는 일도 다 마무리가 됐습니다. 이제는 정말 가나안으로 진격하는 일만 남아 있는데요, 거기에 앞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지막으로 모세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출발하게 됩니다. 그 말씀이 바로 남아 있는 민수기와 신명기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이 되는 오늘 본문, 민수기 28장과 29장은, 우리가 함께 읽은 것처럼, 한 해 동안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정규 제사에 관한 율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번제와 안식일 제사, 그리고 월삭 제사, 또 유월절과 무교절, 초실절,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 등 모든 주요 제사가 한 눈에 볼 수 있게 본문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제사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다 다룬 바가 있지요? 출애굽기와 레위기를 통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살펴봤습니다. 그런데도 또 이렇게 성경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은 놀라운 일인데요, 아마도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다음 세대,’ 광야 세대에게는, 이것이 여전히 낯선 내용일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처음 이 규례가 주어졌을 때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 번 그들이 누구인지,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하는지, 그 궁극적인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는 것으로 모든 메시지를 시작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게 목적은 아니지요?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고 말씀하기도 하셨지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서, 그 땅을 거룩한 하나님나라로 다스리고 섬기게 하시기 위해 시작된 여정입니다. 예배에 대한 규례가, 모든 메시지의 출발점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본문에 나오는 모든 절기와 제사들을 여기서 자세히 다 다룰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미 앞에서 반복적으로 다뤄졌기 때문에, 큰 틀에서만 확인해보고, 또 앞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거기에 담긴 전체적인 메시지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그 전체 말씀을 시작하는 본문 2절을 잠깐 한 번 다시 보시면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들여다보면, 하나님이 이런 제사들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또 귀하게 여기셨는지가 잘 드러납니다. 온 우주와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는 겁니다. 너희의 예배와 제사를 원하고, 그것으로 기뻐하신다고, 심지어 “나의 음식이다.”라고까지 하시지요. 아무 먹을 것이 필요 없는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정한 시기’에, ‘삼가’ 드려라, 하십니다. ‘삼가’는 본래 ‘지키다’라는 뜻인데요, 그러니까 정해진 시기에 잘 ‘지켜서’ 드려라,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본문은 사람이 원해서 드리는 제사, 사람이 정해서 드리는 제사를 얘기하는 게 아니지요? 하나님이 정하신 날에,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으로, 바르게 지켜 드려라. 이것이 본문의 기본 메시지이고, 실은 모든 예배의 본질입니다.
그러면서 본문에 가장 먼저 나오는 제사는 상번제입니다. 상번제, 항상 드리는 번제라는 뜻입니다. 날마다 드립니다. 매일 두 번씩,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번제입니다. 이것이 모든 이스라엘 제사의 기본이고, 기초가 됩니다.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숫양 한 마리씩 저녁과 아침에 번제로 드리는데요, 상번제만이 아니라 모든 번제에는 소제와 전제가 함께 드려집니다. 소제는 곡식을 곱게 갈아서 기름과 섞어서 드리는 제사고, 전제는 포도주를 번제단 아래에 부어서 드리는 거지요? 번제는 이게 하나의 세트입니다. 번제와 소제와 전제, … 번제는 존재 자체의 헌신을 의미하고, 소제는 내 행위와 노동의 열매로 드리는 헌신을 뜻하고, 전제는 내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거룩한 희생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나의 번제 세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들은 이 상번제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 상번제를 드리지 못하게 된다는 건 곧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생각할 정돕니다.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상번제는 드려져야 하기 때문에, 그걸 드릴 수 없게 됐다는 건,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어지간한 자연재해나 전쟁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무리 비상상황이어도 상번제는 드려졌습니다. 전쟁에서 패했을 뿐만 아니라, 성소까지 침탈당하고, 완전히 성전이 파괴돼서 더 이상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된 지경이 됐을 때, 말 그대로 세상의 종말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그런 때에만 상번제가 중단되는 거라고, 유대인들은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이 본 환상 중에 예루살렘 파괴의 가장 중요한 장면이, 이 상번제를 그냥 넘어가게 된 겁니다(단 8:12). 그게 세상 끝입니다. 그만큼 상번제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중요한 신앙적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번제가 아침과 저녁으로, 두 번 드려지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 꼭 예배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지금처럼 말씀을 묵상하고, 또 주셨던 말씀들을 한 번 더 기억하면서 보내는 것, 아마 그것이 상번제를 오늘의 우리가 살아내는 일일 겁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우리와는 시간 개념, 하루 개념이 조금 다르지요? 우리는 해가 뜰 때, 아침에 하루가 시작된다고 생각하지만, 유대인들은 반대에요. 해가 질 때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큰 차이지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실 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것이 몇째 날이다.”와 같은 표현이 계속 반복되지요? 아침부터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저녁부터 하루가 시작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안식일도 토요일 아침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금요일 일몰부터 시작돼서, 토요일 일몰에 끝납니다. 일몰은 주로 저녁 6시 정도 되는데요, 그게 하루의 기준입니다. 한 해도 사실 비슷한데요, 오늘 본문에도 나오지만, 고대 이스라엘의 달력은, 일곱 번째 달, 7월에 새해가 시작됩니다. 모든 중요한 절기가 그 7월에 집중되어 있지요. 한 해의 절반이 지났다고 생각되는 그때가 실은 한 해의 시작입니다. 구약과 히브리인들의 아주 독특한 시간 개념입니다.
반면 태양신을 섬긴 로마의 영향을 받은 서구 문명(헬레니즘)은, 태양이 뜨는 아침을 하루의 시작으로 여깁니다. 하루의 개념도, 자정에서부터 자정까지, 이게 하루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성경은 아니에요. 지금이 딱 해가 지고 있는데요, 지금부터 하루가 시작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성경의 하루는, 쉼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게 대단히 중요한 점이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일을, 노동을 시작하면서 하루가 시작되는 게 아닙니다. 모든 노동을 마치고 쉼으로 들어가면서, 하루가 마감되고 동시에 새로운 하루가 시작이 됩니다. 우리도 한 주의 시작을 주일로 잡잖아요? 사실 다들 월요일이 한 주의 시작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달력을 보면 모든 달력들이 다 일요일, 주일이 맨 앞에 있습니다. 월요일이 한 주의 시작이 아니라, 실은 일요일이 한 주의 시작이에요. … 유대인들은 그걸 하루의 시간에도 똑같이 적용합니다. 해가 지고 쉼을 시작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겁니다.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렇게 쉼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이, 하루의 시작이라고 본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유독 고난에 강한 이유도 여기 있다고 말하지요. 인생이 밝음에서 시작해서 어둠으로 가는 게 아니라, 어둠에서 시작해서 점차 밝음으로 간다는 거예요. 비록 시작은 미약하고 어둡지만, 점점 더 밝아지고 좋아진다, 이런 시간 개념으로, 세계관으로 사는 민족이라는 겁니다.)
성경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사는 우리도, 한 번쯤은 깊이 되새겨볼만한 세계관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루의 시작으로 삼는 자정이라는 시간은, 보통 우리가 잠들어 있는 시간이잖아요? 우리 의식 밖에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하루는, 잠에서 시작해서 잠으로 끝나는 셈입니다. 아침도 마찬가지지요. 아침에 너무 분주해서 사실 정신이 없습니다. 하루의 시작이긴 한데, 뭔가 ‘깨어 있음’과는 거리가 멉니다. …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게 아니라, 하루 일과를 마친 그 쉼의 시간으로부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부터 하루가 시작해서, 아침에 반환점을 돌고, 다시 일몰에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상대적으로 어떤 ‘깨어 있는 삶’, 뭔가 의식을 가지고 삶을 깊이 성찰하고, 또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돌아본다는 의미가 그 시간 개념 안에 이미 각인되어 있습니다. … 물론 주로 아침에 다 출근하고, 생업을 시작하는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낯선 개념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하루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조율해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이건 나중에 다시 마지막 부분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다음으로 본문에 나오는 제사는 안식일의 번제입니다. 드려지는 제물의 종류는 상번제와 동일한데, 그 양만 두 배가 됩니다. 상번제는 상번제대로 드리고 안식일 번제도 드리니까, 실제 제물의 양은 평소의 세 배가 되는 셈입니다. 안식일은 특별히 더 중요하다, 하는 거지요? 안식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이미 다 설명을 드렸으니까 반복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요,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서 참된 자유와 쉼을 누린다,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은 다시 상번제의 메시지와도 연결이 되지요.
다음으로 기록된 제사는 매월 초하루에 드리는 제사인데요, 월삭이라고 하지요, 이때도 상번제 외에 별도의 제사를 드립니다. 제물의 양도 훨씬 많아지는데요,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 그리고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숫양 일곱 마리로 번제를 드리고, 소제와 전제도 함께 드립니다. 아울러 여기서는 한 가지 제사가 더 추가되는데요, 그것은 속죄제사입니다. 숫염소 한 마리로 속죄의 제사를 드림으로써, 죄를 씻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서, 새로운 한 달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제사들은 모두 절기에 드려지는 제사인데요, 유월절이 그 시작입니다. 첫째 달 14일, 고대 유대인 달력으로 1월 14일이 유월절이고, 다음날인 15일부터 일주일 동안 무교절이 이어집니다. 죽음의 사자가 애굽의 장자들을 죽일 때, 어린양의 피를 보고 넘어가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꺼내주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지요. 이때도 상번제 외에 별도의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드리는데요, 그 제물의 양은 앞서 월삭 때와 동일하고, 속죄제로 염소를 드리는 것도 똑같은데,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무교절에는 일주일 동안 매일 이렇게 반복해서 드려야한다는 점이 다르고, 또 첫 날과 마지막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모여서 다 같이 예배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무교절과 칠칠절, 또 속죄일과 초막절 등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공동체 전체가 이렇게 예배로 모인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뜻이겠지요? 바쁜 농사일을 다 멈추고, 또 전쟁의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과 함께 머물면서, 다시 ‘보냄 받음’을 준비하게 됩니다.
다음에 나오는 건 칠칠절인데요, 무교절이 끝난 후 7일이 일곱 번 지났다고 해서 ‘칠칠절’입니다. 7X7, 49일이 지나 50일 째 되는 날이라고 해서 오순절이라고도 하지요. … 26절에, ‘새 소제를 드릴 때’라고 표현한 것처럼, ‘새로운 소제’, 그러니까 이때 처음 추수를 시작하고, 그 첫 번째 수확한 곡식단을 가져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 ‘초실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때의 번제와 속죄제는 앞서 월삭이나 유월절과 동일하고요, 이때도 일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성회로 모입니다.
29장으로 넘어가면, 유대인들 달력으로 7월에 포함된 여러 절기들이 나옵니다. 29장 1절이 ‘일곱째 달에 이르러는’이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지요. 29장은 전부 다 이 일곱째 달에 속한 절기입니다. 유대인의 7월은, 말씀드린 것처럼 한 해를 시작하는 아주 중요한 달인데요, 그래서 7월 첫 날, 나팔을 부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이제 중요한 한 달이 시작되니, 한 해가 새롭게 시작하니, 깨어나라, 하는 겁니다. … 우리로 치면 설 연휴가 바로 유대인들의 나팔절인데요, 일곱 번째 달 1일이 새해 첫 날입니다. 당연히 이 날도 일하지 않고 쉬면서 성회로 모이고 번제를 드립니다. 사실 이 때는 농사의 차원에서만 보면, 모든 추수를 다 끝내고 새로운 파종을 준비하는 시기여서, 농한기에 해당됩니다. 새로운 한 해 역시, 쉼을 통해, 안식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머무는 시간을 통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7월에는 중요한 절기들이 다 몰려 있는데요, 7월 10일이 유명한 속죄일, 대속죄일입니다. 죄로 인해서 오염된 모든 것을 속죄하는 날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론, 모든 제사장들, 또 성소와 그 안에 있는 성물까지도, 다 정결을 회복하는 국가적인 속죄일입니다. 대제사장이 1년에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이기도 하지요. 속죄하러 들어갑니다. 이것이 속죄의 절기이기 때문에 이날은 금식합니다. 본문에는 “너희의 심령을 괴롭게 하며”라고 되어 있는데, 유대인들은 이 날,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전체가 다 금식합니다. 이때 드려지는 번제, 소제, 전제, 속죄제의 제물은, 모두 다 앞서 나팔절에 드린 것과 동일합니다.
7월에 속한 또 다른 중요한 절기는, 7월 15일부터 시작되는 초막절(장막절)입니다. 본문에는 ‘초막’이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습니다만, 레위기에 보면 그 이름이 정확히 나오지요. ‘초막’이라는 히브리 단어가 ‘숙곳’인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고 처음 광야에서 머물렀던 곳의 지명, ‘숙곳’에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 생활 하는 동안, 초막 짓고 생활하는 동안, 그 모든 삶을 지켜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절기에요. … 아울러 초막절의 다른 이름이, 수장절인데요, 추수한 곡식을 저장한다는 의미입니다. 앞서 추수가 다 끝난 상황이라고 했지요? 그걸 창고에 저장하는, 일종의 추수감사절 의미도 있는데요, 그래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도 가장 많고 풍성합니다.
앞서 무교절처럼 초막절도 8일 동안 이어지는데요, 그때와 다른 점은, 매일 드려지는 제물의 양이 동일하지 않고, 다 다릅니다. 첫날 열세 마리의 송아지와 숫양 둘, 또 일 년 된 어린양 열네 마리를 번제로 드리기 시작으로 해서, 매일 한 마리씩 송아지 양이 줄어들게 되지요. 그리고 마지막 8일째에는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와 어린 수양 일곱을 번제로 드립니다. 총 70마리의 송아지를 번제로 드리는 셈이니까, 아주 양이 많습니다. … 첫날과 마지막 날은 일하지 않고 성회로 모이고, 특히 마지막 여덟 번째 날에는 ‘장엄한 대회’로 모이라고 35절에 나오는데요, 그만큼 국가적인 큰 집회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풍성한 절기, 그게 바로 초막절입니다. 광야 생활을 기억하는데, 가장 풍성해요. 아주 아이러니하지요? …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초막절을 지키시면서 그 장엄한 대회로 모였을 때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38) 나중에 주실 성령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인데요, 그만큼 초막절에 담긴 풍성함과 충만함으로 성령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든 절기와 제사의 내용입니다. 이 모든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면서, 마지막 29장 3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이 절기를 당하거든 여호와께 이같이 드릴지니, 이는 너희의 서원제나 낙헌제로 드리는 번제, 소제, 전제, 화목제 외에 드릴 것이니라.” … 서원제나 낙헌제는 다 사람이 원해서, 자발적으로 드리는 제사지요? 그런데 이건 다르다는 겁니다. 사람이 원해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그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원하셔서 드리는 제사, 반드시 지켜서 드려야 하는 제사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드려도 되고 안 드려도 되는 게 아니라,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무조건 드려야 하는 제사가 이렇게 되는 겁니다.
사실 그 기간이나, 드려지는 제물의 양으로 보면, 이러한 절기와 제사는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는 분량입니다. 1년에 최소한 한 달 가량은 하나님 앞에서 특별하게 모여서 예배드리는 시간으로 지내게 되고, 거기서 드려지는 제물도, 무척 많습니다. 양과 소, 염소까지 천 마리가 훨씬 넘고, 소제에 사용되는 밀가루도 1톤 이상, 또 전제로 드려지는 포도주나 소제의 기름, 올리브유도 상당한 양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스라엘 전체가 드리는 것이니까 큰 부담이라고까지 말하긴 어렵겠습니다만,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제사이고 반드시 드려져야만 하는 것이니까요, 결코 가볍지 만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든 절기와 제사를 바로 이 결정적인 순간에, 모세를 통해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가나안 땅을 향한 전진에 앞서서, 또 마지막으로 모세를 통해 하실 말씀의 첫머리에, 하나님이 마땅히 받으셔야 할 제사와 절기를 얘기하십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이 다름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승리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게 끝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배하는 자로 그 땅에 존재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조상을 택하여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제사장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고 지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 이스라엘의 모든 삶은 그 목적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 목적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그게 이루어져야만 그들은 세상의 복이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속에서 모든 시간을 시작할 수 있어야, 그 보내진 세상에서 복으로 살 수 있습니다. 매일 두 번의 번제로, 한 주간에 한 번의 번제로, 한 달의 시작을 또 번제로, 한 해의 시작도 번제로, 이렇게 인간의 모든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억하는 일을 중심에 두라고, 그것이 너희를 택한 목적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당연히 그 예배를 위해서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풍요롭게 하시고, 안전하게 하실 겁니다. 실은 그런 약속이 이 율법 속에 담겨 있는 거지요. 상번제를 드리고, 안식일과 월삭과 나팔절을 지키고, 때마다 절기를 다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들을 지키시고 또 풍요롭게 하신다는 겁니다. … 배부르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제사 드리는 게 아닙니다. 예배를 드려야 되기 때문에 풍요롭게 하시고, 예배자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지켜주십니다. 우상은 풍요가 목적이지만, 신앙은 반대지요. 이미 풍요를 주셨기 때문에 예배하고, 이미 복을 약속으로 받았기에, 쉴 수 있는 겁니다. 상번제를 다루면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을 정말로 신뢰하는 사람만이 쉼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거지요. 우리가 한 모든 어제의 일들을 하나님이 이미 기쁘게 받으셨고, 우리가 쉬고 자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일하실 것임을 믿고, 성도는 쉼과 묵상으로 하루를 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편 말씀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2) 사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잠을 잘 잔다, 뭐 많이 잔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그가 쉼을 누리는 동안에도 지켜주시고, 그가 깊은 쉼을 누릴 수 있도록 보호하신다, 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우리를 배불리신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했고, 새번역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쉬어야 할 이유, 우리가 멈춰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쉼과 예배가 우리를 창조하신 본래의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이고, 우리가 쉬는 그 동안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위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의 시간표가 아니라, 자연의 시간표가 아니라, 말씀의 시간표대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욕망의 리듬이 아니라, 하나님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라는 거지요. 하나님의 리듬은 쉼이 시작이고, 예배가 목적입니다. 우리는 쉼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지 일을 위해 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 물론 잘 쉬어야 일도 더 잘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일을 하기 위해 쉬냐, 쉼이 노동의 수단이냐, 그건 좀 생각해봐야 합니다. …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돈 벌고, 그래서 결국 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 안에서 깊이 쉬고 자유를 누리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창조는, 그 본질상 쉬기 위해 일하고, 예배하기 위해 일합니다. 그걸 날마다의 일상에서도 기억하고 살아내는 것, 그 리듬에 맞춰 내 삶을 조율해 가는 것이 바로 이 절기와 제사에 담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쉼이 목적이라고 하니까, 그냥 육체의 소욕을 좇아 맘대로 하는 그런 쉼을 지향하라는 게 아닙니다. 일몰과 함께 하나님을 기억하고, 오늘 이 저녁 예배처럼,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안에 머물면서,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라는 겁니다. … 하루를 시작할 때부터 술을 들이 붓고, ‘부어라 마셔라,’ 그렇게 하루를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시작’이란 그런 거잖아요? 항상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다뤄집니다. 하나님은 그 하루의 시작이 너무 분주하게, 너무 정신없이 흘려보내지기를 바라지 않으시는 겁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더라도, 최대한 여유 있게, 그러면서도 밀도 있게 하나님을 누리면서, 우리의 하루를, 한 주를, 한 달과 일 년을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예배가 삶을 감싸 안고, 쉼이 노동을 감싸 안도록,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며 살아라, 그런 삶이 가능하도록,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복 되게 하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실생활에서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닌 것처럼,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도, 막상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게 쉽지 않을 겁니다. 인간의 욕심과 경쟁에 짓눌려서, 이게 정말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 앞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이 정한 절기를 삼가 지켜라. 이것은 단지 더 많은 소출과 풍요로운 삶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 씨 뿌리고, 언제 수확해야 하는지, 그런 농사 짓는 절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리듬에, 하나님의 말씀에 맞춰서 시간을 조율하고, 우리의 삶의 방향을 예배와 쉼에 맞춰라, … 그저 많은 걸 수확해서 즐거워하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택함 받은 백성인가, 그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기 위한 규례, 그것이 바로 이 절기의 의미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과 삶의 주님 되시고, 우리의 쉼과 예배를 기뻐하시고, 그것을 위해 지금도 일하십니다. 모든 근심과 염려를 주께 맡기고, 하나님의 리듬에 여러분의 일상을 조율하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 오늘 이 수요성경강해를 통해서 새로운 하루, 7월 21일을 시작하신 우리 성도 여러분, 참으로 복 되십니다. 이제 주님이 일하실 테니까, 할 수 있다면 깊은 쉼으로 새 날을 시작하십시오. 진실로 그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복을 내려 주십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