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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강해 19.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2022-04-13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13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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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3 수요 성경 강해 ----------------------------- 민수기 16:36~17:13,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 ​ * 설교 음성파일 : 첨부된 파일을 다운로드 하시면 음성으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첨부파일 num19 .mp3 파일 다운로드 ​ ​ ■ 오늘 우리가 읽은 부분은, 민수기 16장 36절부터 17장 마지막 절까지인데요, 우리말 성경으로는 16장이지만, 사실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오늘 읽은 16장 36절이 17장 1절로 되어 있습니다. 16장 후반부가 17장 속에 들어가 있는 건데요, 그만큼 16장 후반부와 17장이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일 겁니다. 그래서 오늘 함께 이 본문을 다루게 됐는데요, … 오늘 본문의 내용은, 우리가 지난 시간에 함께 나눴던, 이른바 고라의 반역 사건, 그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 오래 돼서 그 사건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분도 계실 텐데요, 간단하게 정리하면서 넘어가겠습니다. 고라는 레위인이었지요? 제사장과 성막을 섬기는 레위인이었고, 레위 지파 중에서도 특별히 고핫의 자손입니다. 그러니까 성막의 거룩한 물건들을 맡아서 관리하는 레위 족속의 후손이었지요. 그런데 이 ‘고라’라는 이름의 레위인이,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혼자서 그 일을 벌인 것은 아니고, 비슷한 자기연민에 빠진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과 합세했고, 또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택함 받은 250명의 지휘관들이 가세합니다. 출애굽 이후 일어난 가장 대규모 반역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들의 주장은 간단했습니다. ‘모세와 아론, 너희만 거룩하냐, 우리도 거룩하다. 하나님이 우리와도 함께 계시거늘, 왜 너희만 지도자요, 제사장이냐? 왜 너희만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일을 독점하고, 그걸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느냐?’ 하는 주장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인 고유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또 거기에 만족하지 못한 안타까운 결과였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그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되지요. 과연 하나님이 누구의 주장을 인정해주시는가, 하나님의 판단을 직접 받아보자는 겁니다. 그래서 향로를 다 하나씩 만들어오라고 했지요. 반역을 꾀한 250명의 지휘관을 비롯하여, 반역을 주도한 고라는 물론, 아론도 다 자신의 향로를 만들어서, 그 안에 향과 불을 넣어 성막 앞으로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택하신 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자, 하나님이 누구의 향로에 어떻게 반응하시는지 확인해보자는 겁니다. 하나님께 분향하는 향로는 본래 제사장만이 다루도록 되어 있지요. 그걸 잘못 다루거나 다른 방법으로 향을 피워도 반드시 죽게 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지요. 그러니 겁나지 않으면 한 번 해봐라, 모세가 제안한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반역을 주도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을 향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향로를 만들어 가지고 온 250명의 지휘관들을 향해서입니다. … 먼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어떻게 됐습니까? 네, 그들이 있던 땅바닥이 갈라져서 땅이 그들의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31절 이하). 지진이지요? 땅이 갈라져 그들의 모든 것을 삼켰다, … 저는 여기서, 문득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던 사람들이, 그 땅을 악평하며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어떻게 하는 땅이라고 했지요? 네, 그들을 삼키는 땅이다(13:32), 그렇게 원망하며 말했습니다. 오늘 다단과 아비람도 그걸로 모세를 원망한 바 있었지요. 마치 그런 그들의 악평을 하나님이 분명히 들으셨고 기억하신다는 듯이, 하나님은 오늘, 과연 어떤 땅이 사람을 삼키는 땅인가, 누가 땅에 의해 삼킴을 당하는가, 왜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하고, 그 땅에 삼켜짐을 당하는가,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허락하신 기업과 또 맡기신 부르심과 사명을, 감사함으로 누리지 못하고, 불평하고 악평하고, … 또 다른 이들과 자신의 기업을 비교하며, 결국 하나님을 원망하여 대적하는 이들의 삶이 어떠할 것인가,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확인시켜 주십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고 사는 우리 인생 속에서, 무엇보다 먼저, 주님이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일과 기업과 또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부르심 앞에, 감사하는 마음, 그래서 감사로 충성하는 마음을 꼭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너무나 귀하게 여기시고, 여러분의 모든 조건을 다 헤아리셔서, 우리 각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허락해 주셨다는 것을 믿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시기하지도 말고, 주신 것을 악평하지도 말고, 오직 맡겨진 기업과 부르심 앞에, 감사와 충성으로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감사와 또 원망과 불평을 다 들으시고, 우리 입술의 고백 그대로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곳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일과 사람과 모든 조건이, 다름 아닌 우리의 가나안 땅이고, 하나님은 거기서 우리가 부족함 없이 생명의 충만함을 누리게 하시고, 우리를 존귀하게 세워 가신다는 것을, 여러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이번 사건에 대한 또 다른 하나님의 심판은, 각자의 향로를 만들어 가지고 온 250명의 지휘관들을 향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불이 그들을 불살랐다고 앞의 35절에서 말씀했지요.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가지고 분향했다가 죽임당한 나답과 아비후 생각도 납니다. 겁 없이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섰던 그들은, 결국 그렇게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을 받게 됩니다. …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 다음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명령시기를, 그 지휘관들이 가져 온 250개의 향로를 다 해체하고 두들겨서, 그걸로 얇은 철판을 만들라고 하시고, (물론 실제로는 청동으로 된 금속판이었겠지요) 그 철판으로 번제단을 싸는 일종의 번제단 가리개로 만들라고 하십니다. 어떤 실용적인 목적이 아니지요. 보고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러 올 때마다 그 철판을 보면서, 오늘 이 사건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섬기라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심판과 말씀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두려운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그 삶을 돌이킨 것이 아니었지요.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든 말든, 조금도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엘르아살이 제단 가리개를 만든 바로 그 다음날, 이스라엘 온 회중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거세게 몰아붙입니다. 모세와 아론, 너희가 백성을 다 죽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모세와 아론을 쳤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반복된 불순종으로 인해서, 이미 그 마음이 너무 완악해진 거지요? 하나님과 모세를 대적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습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납니다. 위기에 처한 모세와 아론을 보호하시고, 백성들 가운데는 전염병이 돌아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때 모세가 아론에게 얘기합니다. 너의 그 향로를 가져다가 번제단의 불을 담아라. 그리고 향을 피워서, 그걸 회중 앞으로 가지고 가라. 가서 그걸로 하나님 앞에 속죄를 드려라. … 그러자 아론이 즉시 그 명령 그대로 준비하여, 백성들에게로 급히 달려갑니다. 전염병으로 이미 죽어 있는 자들과 아직 살아있는 자들 사이에, 그 향로를 들고 선 것입니다. 더는 하나님의 심판이 퍼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진노 앞에 속죄의 향을 피워서 막아선 것입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전염병이 그쳤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전염병은 그쳤고, 그것을 확인한 아론은 다시 회막으로 돌아오지요. 사실 이러한 조치는, 모세의 단독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음을 오늘 본문은 암시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모세가 스스로 판단하고, 아론에게 지시한 것으로 나오지요. 그래서 이것은 더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그런 판단을 했다는 것도 그렇고, 거기에 아론이 즉시 순종했다는 것도 놀라운 얘깁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 아론은 오직 성막 안에서만 일하도록, 성막에서만 백성들의 중보자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막을 떠나 백성들이 있는 부정한 진중으로 아론이 들어간 것은 오늘 이 사건이 처음입니다. 그것도 전염병이 퍼진 곳에 들어갔지요.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거룩한 향로를 가지고 그런 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기존의 어떤 레위기의 상식, 율법의 상식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건 단순히 전염병이 그치기를 모세가 기도한다거나, 아니면 아론이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지요. 아마 아론 역시도, 죽음을 각오한 일이었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아론이 향로를 들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 바로 그때 하나님의 심판이 멈추게 됐다는 것은, 이제 전혀 새로운 차원의 대제사장적 중보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론의 역할이 달라진 것이지요. 단지 성막 안에만 고정되어 있는 그런 부르심이 아니라, 백성들이 머물고 생활하는 곳까지도, 그의 중보가 영향력을 끼친다는 뜻입니다. 아론 역시 그러한 자신의 부르심에 대해 다시 한 번 새롭게 눈을 뜨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제사장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 이해가 점점 더 깊어지고 더 넓어져서, 정말로 하나님이 아론에게 바라시는 온전한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아론의 중보적 행위가, 예수님을 통해,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온전히 이루어졌음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앞에 예수님이 서 계심으로 인해서,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서 있음으로 인해서, 우리를 위한 속죄가 이루어졌고,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습니다. …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라고 하는 오늘 본문 48절의 표현은, 사도신경에도 그대로 나오지요. “…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주님이 다시 서게 되실 때, 우리는 어린양의 궁극적인 심판을 보게 될 것이고, 그 전까지는 우리 또한 주님의 보냄 받은 자로서, 주님을 대신하여 세상의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서도록 보내어집니다. 그 일을 감당하라고 성령의 기름을 부어 왕 같은 제사장으로 우리를 세우신 것이지요. 성전이 아닌 세상으로 나가서, 그곳의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서서, 그들에게 예수를 증언하고, 또한 그들을 위해 중보하는 자로 서 있으라는 주님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비록 우리 또한 죄인이고, 연약하고, 아론이 그랬듯이, 누굴 위해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운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셔서, 우리를 세상 가운데 서게 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날마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로 보내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아침마다 무심하게 향하는 그곳을, 하나님은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라고 말씀합니다. 아론이 그랬던 것처럼, 거룩한 향로를 들고, 성령의 불을 충만히 담아, 세상 가운데 서라고 하시지요. 성막이나 교회에서가 아닙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세상 속에 서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그곳에 서 있음으로 해서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치유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거기 서 있음으로 인해, 거기서 그들을 축복하고 섬김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그치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회복되기 시작할 거라고, 그러니 그곳에 담대히 서라고, 하나님은 우리를 날마다 보내고 계신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는 이것이 하나의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약육강식의 일터가 어떻게 나라는 존재만으로 그 운명이 뒤바뀔 수 있는가, 나로 인해 그들이 살고 죽고 하는 게 아니라, 내 생명이 그들의 손아귀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내가 뭐라고 그들 앞에 설 수 있고, 또 그들을 축복할 수 있단 말인가, 의심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아론도 그랬겠지요. 모세의 지시를 따라 향로를 들고 달려가면서도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내가 뭐라고, 나도 죄인이고, 나도 모세를 대적했고, 나도 금송아지나 만들던 사람인데, 내가 뭐라고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여기서부터는 믿음의 문제일 것이고, 또한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거룩한 불을 잘 보존하고 있느냐의 문제일 겁니다. 순결한 올리브기름을 부어서 세운 아론이 그 정도의 역할이라면, 성령의 기름을 부어 세운 저와 여러분의 부르심은 어떠할지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과연 여러분에게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들고 갈 하나님의 거룩한 불꽃이, 지금도 활활 타오르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보셔야 할 겁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 어디서 어떤 일로 생계를 유지해가든, 여러분은 하나님의 보냄 받은 제사장이요, 성령의 거룩한 불로 채워진 하나님의 향로임을 항상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돈이 목적인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는 일들을 하나님은 지금도 이 땅에 행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을 잊고 살아가면 안 됩니다. 때론 우리 자신이 무기력해 보이고, 그저 세상의 한 조각처럼 여겨질지라도,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다시 일으키셔서,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게 하십니다. … 아론의 변화가 바로 그런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하나님 앞에 범죄했고, 실수와 부족함이 많았지만, 그를 세우신 하나님은 끊임없이 아론을, 그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으로 변화시켜 가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를 다시 새롭게 하시고, 그에게 권위와 권능을 허락하시고, 그를 대적하는 이들로부터 그를 지켜서, 그를 더 높이, 더 온전하게 세워주십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아론이 아론다워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주신 부르심을 잊지 않고, 늘 마음에 품고 사는 한,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지금은 금송아지나 만드는 그런 아론의 모습일지라도,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을 멈추게 하는 진정한 제사장의 모습으로 서게 하실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날마다 여러분의 삶으로 확증해나가셔야 합니다.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하고만 사는 게 아니라, 그러한 중보적인 삶을 날마다 연습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여러분이 늘 반복하는 하루하루의 그 일터에서, 주변 사람들을 축복하고, 그 일터를 거룩하게 보존하는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서야 합니다. … 비록 바쁘고 정신없는 삶이겠지만, 아침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라도, 잠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겁니다. ‘주님, 오늘도 저를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서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이 저를 보내셨으니, 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이곳에 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이곳에서부터 회복될 수 있도록, 주님의 거룩한 도구로 저를 사용하여 주십시오. 그 일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제가 성령의 불꽃을 소멸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저를 통해 오직 생명의 충만함이 이곳에 흘러넘치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그렇게 향로를 들고 선 아론의 모습으로, 날마다 세상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고자 애쓰는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은 반드시 온전하게 하시고, 또 존귀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론을 새롭게 하시고, 또 도전 받는 그의 권위를 더욱 더 견고하게 세워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사람이 여러분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여러분을 대적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여러분을 더 온전하게 하시고, 여러분의 생명을 누가 주관하고 있는지, 더욱 분명하게 확증해 주신다는 사실을, 여러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어지는 본문 17장은 그러한 확증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른바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사건입니다. 전염병이 다 그친 후에, 하나님이 다시 한 번 아론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장면인데요, (… 열두 지파의 지휘관들과 아론에게 명령하시지요. 각 지파마다 지팡이를 하나씩 가지고 와서, 거기에 가문의 지휘관 이름을 쓰고, 그 지팡이를 성막 안에 있는 증거궤 앞에 두라고, 그러면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 싹이 날 것이니, 이 문제에 대한 원망을 이것으로 그치게 하겠다,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이번의 이 혼란을 야기한 아론의 권위 문제를 완전하게 매듭 짓겠다는 하나님의 굳은 의지가 담긴 그런 조치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 주에 다시 새롭게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할까요? 네, 그렇게 하십시다. …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우리를 보내신 그 땅은 결코 우리를 삼키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요, 축복임을 믿고, 하나님의 보냄 받은 자요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라고, 또한 제사장으로서 아론이 가진 자의식이 날마다 조금씩 더 자라고 성장해가는 것처럼,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우리의 자의식도, 날마다 조금씩 자라가고 또 완성되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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