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그리스도의 심판대 (2021년 7월 25일 주일 설교)

2021-07-25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16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 오순절 후 아홉 번째 주일 메시지 ----------------------------------- 고린도후서 5:1~10, 그리스도의 심판대 ​ ​ * 설교 음성파일 : 첨부된 파일을 다운로드 하시면 음성으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 첨부파일 cor(2)10 .mp3 파일 다운로드 ​ ​ (고린도후서 강해 10) 본문 10절의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오늘 말씀의 제목으로 삼습니다. 이 말씀이 곧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또 축복합니다. ​ 오늘 본문은 부활에 대한 바울의 갈망으로 시작됩니다. 지난주 말씀이었죠,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 우리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는 영원한 생명에 주목한다고 했던 그 말씀과 같은 맥락일 겁니다. 바울은 우리의 보이는 이 육체를 장막 집이라고 표현합니다. 제대로 지은 집이 아니라, 임시로 잠깐 살기 위해 천막으로 지은 집입니다. 유대인들이 출애굽 광야 시절을 회고하기 위해 일부러 장막을 짓고 거기서 일주일을 지내는 절기가 초막절, 장막절이라고 했는데요, 바울은 지금 우리의 몸이, 부활의 몸에 이르기 전에 잠깐 머무는 집, 오늘로 말하면 임시 가건물 같은 그런 집이고, 진짜 들어가 살 집, 온전한 집은 부활의 몸이라 말합니다. … 지금 입고 있는 이 육체의 장막은, 마치 무거운 짐을 진 것과 같다고도 바울은 4절에서 이야기하는데요, 그래서 그는 탄식하며 부활을 갈망합니다. 평생 질병과 고난으로 인해 많은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던 바울이기에, 그 마음이 더욱 간절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 제가 엊그제 안경 렌즈를 교체하러 안경점에 갔었는데요, 조금 검사를 하더니 직원이 저더러 가까운 게 잘 안 보이니까 다초점 렌즈를 쓰라고 꽤 공들여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어르신들이 쓰시는 건 줄 알았는데, 제가 벌써 그런 말을 듣게 되다니 …, 괜찮다고, 그냥 일반으로 하겠다고 해서 맞추고 나왔습니다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낡아가져는 장막과 지어져가는 좋은 집도 잠시 생각해봤지요.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부활의 몸이 기다려지시는지요? ​ 그런데 부활에 대한 바울의 이런 갈망의 근본적인 이유는 실은 다른 데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본문 후반부에서 확인하게 되지요. 단지 지금의 몸이 불완전하고, 그 삶이 힘들어서가 아니라고 하지요. 저처럼 더 온전한 몸에 대한 갈망만은 아닌 겁니다. … 그렇다면 여러분, 바울이 이 몸을 될 수 있으면 빨리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네, 그건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해서입니다. 8절 말씀이지요.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바울은 주님과 함께 있는 몸을 원하는 겁니다. 직접 주님을 보고 싶고, 또 만지고 싶어 하는 거지요. 연인이나 부부가 멀리 떨어진 채 서로를 그리워하는 그런 마음 같은 거예요. 비록 목소리도 들을 수 있고, 화상통화도 하고 그렇지만, 그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게 있지요.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요즘엔 메타버스 이야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직접 곁에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우리는 주님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지만, 주님과 몸으로 함께 있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을 원하고, 그래서 천국에 가려고 합니다. … 천국이 좋아서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예수가 좋아서 천국에 가려는 거지요. 천국에 가면 좋은 게 있는 게 아니라, 예수가 있는 곳이 천국이고, 예수 안에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자유와 만족이 있어서, 바울은 예수님을 갈망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바울과 같은 마음이신지요? ​ 물론 처음부터 우리의 신앙이, 이렇게 주님 자체를 사랑하고 또 원하는, 그런 모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을 사랑할 때도 그렇듯이, 하나님과의 관계도, 처음엔 하나님 자체보다는, 하나님을 통해 얻는 유익에 우리의 마음이 먼저 향하게 됩니다. 그러다 조금씩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또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그 구원이라는 게 정말 어떤 것인지, 깨닫고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 자체를 사랑하게 되는 믿음까지 이르게 되지요. 당연히 이러한 믿음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겨나지 않습니다. 서로가 함께 마주보고 지낸 물리적인 시간만이 해결해줄 수 있는, 그런 관계의 어떤 측면이라는 게 있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랜 시간, 진지하게,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해 매진해 왔느냐,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의 교제 그 자체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느냐, 거기에 달린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세월이 흐를수록 그렇게 주님을 더 깊이 알고 또 사랑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이렇게 우리가 주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누리게 됐을 때,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생기는 욕망이 하나 더 있다고 오늘 바울은 계속해서 이야기하는데요, 그것은 주님이 기뻐하시기를 원하는 마음,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누군가를 향해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우리가 그 대상을 정말 사랑한다는 뜻이지요. 누군가의 기쁨을 순수하게 원하는 관계, 특별히 나로 인해서 그가 만족하고, 즐거워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게 다름 아닌 사랑일 겁니다. … 그러고 보면 사실 오늘 본문은 주님을 향한 바울의 사랑 고백입니다. “나는 주님과 함께 있고 싶다. 나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고 싶다. 주님이 나로 인해 만족하고 즐거워하셨으면 좋겠다. 내가 여기서 주님과 떨어져 있거나, 아니면 나중에 주님과 함께 있거나, 어느 때나 내겐 같은 하나의 목적만 있는데, 그건 주님이 나로 인해 기뻐하시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 나는 오늘도 여기서 힘써 노력하고 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 어떻습니까, 여러분, 우리에게도 그런 소망이 있는지요? 바쁜 일상 속에서 잊어버리기 쉬운 마음인데요, 여러분 그 마음이 다시 우리 안에 새로워지기를 소망합니다. ​ 이야기가 나왔으니 계속 조금 더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여러분,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혹시 생각나는 것 있으십니까? (음 소거를 해제하고 생각나시는 대로 한 번 말씀해보시지요.) 물론 지금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도 하나님께는 큰 기쁨이겠지요? 수요일마다 레위기를 통해서 배우고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참 좋아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그것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빗대어 표현하는데요, 하나님께는 마치 좋은 향기처럼 우리의 예배가 그렇게 기쁨이 된다고 하십니다. 예배 자체가 오직 하나님을 목적으로, 하나님의 기쁨을 그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행위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의 마음도 그래야 되겠지만 말입니다. ​ 예배 외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게 참 많이 있는데요, 또 뭐가 있을까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알고 깨닫는 것,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자주 나옵니다(예컨대 렘 9:24). 사람도 그렇지요. 내가 누군지, 내 가치관이 어떠한지, 내가 뭘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걸 상대방이 알고자 노력하고, 또 실제로 잘 헤아리고 있다면, 그것만큼 고마운 게 없습니다. 하나님도 그렇다고 말씀하시지요. 하나님을 온전히 알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주님이 기뻐하실만한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뭔지 아는 것, 그게 주님을 사랑하는 일의 시작일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 주목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직접 “나, 이거 좋아해! 이렇게 하면 내가 기뻐!” 말씀하신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당연히 그 말씀에 순종까지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어쨌든 그 시작은 주님을 온전히 아는 것입니다. (말씀을 늘 가까이 함으로 주님을 더 깊이 알고, 삶으로 주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 또 뭐가 있을까요, 여러분? 우리의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성경이 말씀했습니까? …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고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서, 그게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다른 것들과는 결이 좀 다른 문제라는 걸 알 수 있지요? 이게 없으면 다른 게 다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그토록 ‘믿음’, ‘믿음’ 하는 거지요. ​ 그렇다면 어떤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말씀합니까? 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는 믿음, 그리고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 여러분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믿어지세요? 사실 최초의 그리스도인들, 초대교회 성도들은, 당시 로마인들로부터 무신론자로 여겨졌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도, 그런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도 그들 눈에는 이해가 안 됐던 겁니다. 그들이 섬기는 신은 다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존재하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믿고 경험합니다. … 성경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하는 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활동하시며, 움직이신다, 일하신다, 하는 뜻입니다. 인간이 만든 우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오직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살아계셔서, 계속하여 우리의 생명을 붙드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하나님만이 생명의 주가 되심은 믿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 하지만, 우리는 생명에 관해 거의 무지하다 할 만큼 아는 것이 일천하다는 것을 절감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오직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생각과 지식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붙들고 계시며, 그 생명을 완성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 그래서 내 눈에 보이는 것, 내가 아는 것이 생명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인해 일희일비 하지 않는 그것이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일입니다. 일평생 그 생명의 하나님을 믿고, 바라고,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믿음의 내용이 하나 더 있지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네, 그것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그런 분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살아계심을 믿는 것이 창조의 하나님을 믿는 거라면, 이것은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신다, … 여기 하나님을 찾는다는 이 동사[에크제테오]는 아주 열심히, 부지런히 찾는 걸 의미합니다. 학자들이 진리를 탐구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가리킬 때 이 동사를 사용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반드시 상을 주신다, 그걸 믿으면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 그 자체를 하나님이 그토록 기뻐하신다는 뜻이고,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하나님이 참으로 우리에게 은혜로우신 분이다, 정말 후하신 분이시다, 하는 그 믿음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 여러분, 상은 보통 언제 받습니까? 정말 잘 해야, 남보다 뛰어나야 받습니다. 남과 비슷해서는 받을 수 없습니다. 상을 받을만한 어떤 특별한 일을 해야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르게 말씀합니다. 그냥 하나님을 찾았을 뿐인데, 상을 주십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런 하나님을 믿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기쁨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하시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어떤 대단한 일을 하고, 엄청난 희생을 한다고 해도,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은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십니다. 우리처럼 남을 칭찬하고 상을 주고 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으십니다. 어떻게든 상을 주기 위해 애쓰시고, 이왕이면 더 많이 더 크게 상 주려고 하시지, 뭐라도 작은 흠을 찾아내서 점수를 깎거나 창피를 주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조금이라도 더 주시려 하시고, 우리가 한 작은 일마저도 어마무시하게 뻥튀기를 해서 갚아주시려 하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안겨 주신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그런 하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사람은 그렇지 않지요. 남을 높여주는 일에 참 인색합니다. 이것도 잘 하고, 저것도 잘 하고, 온통 잘 하는 것투성이인데, 부족한 것 하나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는 게 세상입니다. … 여러분 누군가를 칭찬해보신 적이 언제입니까? 친구들과 함께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칭찬하고 서로 맞장구를 치며 그를 세워주신 기억이 있으십니까? 잘 하는 게 참 많아도 꼭 못하는 것 한두 가지를 꼬집어 이야기하는 걸 우리는 좋아합니다. 정치인을 향해서도, 운동선수를 향해서도, 심지어 우리 가족과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하는 아홉 가지는 잊어버리고, 부족한 하나를 꼬집어 내고, 그것이 우리의 실력인 줄로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아주 많습니다. 없는 상이라도 만들어서 주실 작정이십니다. 오죽하면 하나님을 찾기만 해도 상을 주시고, 그런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고 하시겠습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 하나님을 믿고 누리며 닮아가는 것, 그게 우리 신앙의 푯대이며, 우리의 실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부족한 점이 많아도 하나 잘 하는 게 있으면 그걸로 그를 세워주고, 칭찬해주고, 인정해주십시오. 여러분, 그게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잘하는 것, 괜찮은 것, 거기에 자꾸 눈을 돌리고 그렇게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관점이고, 사람은 본래 그래야 더 온전해지기 때문입니다. … 본문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주님은 거기서,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보이시고,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영광을, 상을 주실 겁니다. 우리는 기억도 못하는 아주 작은 것까지 찾고 또 찾아내셔서, 가장 후한 값으로 우리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분이 지금 그 심판석 중앙에 앉아 계십니다. 또한 필요할 땐 그분이 직접 우리의 변호사를 자처하여 변호인의 자리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 주님의 사랑에서 시작된 이 구원 이야기의 끝을, 여러분 우리는 다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겁니다. 세상의 기준, 사람의 기준에서 부족했고, 실패였다고 여겨진 수많은 삶의 모습들이, 주님 앞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영광으로 드러나게 될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지, 생각할 때, 우리가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이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런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모든 것의 주 되시며, 어떤 것도 더 필요한 것이 없는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우리로 인하여 기뻐하신다 말씀합니다. 이것을 믿는 것부터가 우리에겐 가장 어렵고 또 가장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 당연히 하나님은 우리가 뭔가를 더 잘 하고, 더 많이 해서 우리를 기뻐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냥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미 하나님께는 기쁨이지요.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시편의 말씀입니다(시 16:3).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스바냐에 있는 말씀입니다(습 3:17).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이사야 62장 5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 자신임을,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기억하고 또한 분명하게 믿어야 합니다. ​ 그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을 꿈꾸게 만듭니다. 내가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것을 온전히 믿을 때, 하나님이 나로 인하여 기뻐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꿈꿀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관계가 온전하지 않은데, 그가 나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누군가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 우리에게 생기겠습니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큰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더 큰 기쁨을 주고자 애쓰게 됩니다. …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겠다, 비록 그런 마음은 정말 귀하고 좋은 신앙의 태도지만, 그 전에 우리는 이 관계의 본질을 놓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의 어떤 모습이나 조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를 향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에서부터 이 관계가 시작됐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항상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기뻐하시는가, 얼마나 나를 원하시는가,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인가, 그것을 잊지 않는 것에서부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이 시작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여러분, 그게 언제였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들을 많이 행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입니까?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시고 말씀으로 가르치셨을 때입니까? 아닙니다. 그저 주님이 세상으로 나오셨을 때, 주님이 비로소 이제 아버지의 일을 막 시작하려 하실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감당하려 하실 때, 그때 들으신 말씀이지요. 그 음성을 듣고, 아들은 아버지를 기쁘게 하실 일을 향해 힘껏 전진했습니다.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의 순서가 그런 것입니다. 내가 이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존재요, 의로운 존재임을 온전히 믿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러면 내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거면 족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을 맡겨주실 것입니다. ​ 본문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이 땅에서 우리의 몸으로 행한 것들을 판단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결과나 행위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님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 행위 안에 감춰진 보이지 않는 믿음과 동기와 목적에 대해 분별하는 자리입니다. 드러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감춰진 것이 정체를 드러낼 것이고,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이 판단될 것입니다(롬 2:16). 그 중요한 기준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우리의 마음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했던 우리의 모든 순수한 열정과 열심을 찾아내시고, 그에 대해 하나님의 칭찬과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 성경에서 ‘심판하다’라고 번역된 단어[도키마조]는, 본래 어떤 것의 진위나 진가를 테스트하는 것, 시험하고 분별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컨대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도키마조](분별하다. 증명하다) 보라.”(엡 5:10)에서, ‘시험하다’라는 말이 바로 심판이라는 단어와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지 자꾸만 이것저것 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안 해보면 모르는 거지요. 주님 기쁘시게 할 일이 무엇일지, 자꾸 스스로 시험해보는 것, 아마 그게 가장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겁니다. 작은 일이라도 여러분 꼭 시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는 말씀의 ‘시험하다’ 역시 ‘심판하다’라는 단어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가기 전에, 스스로 자신을 테스트해보는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일지 스스로 고민해보고, 분별해보는 것, 그 자체가 종말의 심판을 오늘 여기서 살아내는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과연 내 행위와 선택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믿음 안에서 시작된 것인지, 지금 내 삶의 방향이 그 푯대를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나는 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고 있는지, 지금 여기서 스스로 심판대 위에 올라가 열심히 시험해보는 겁니다. 마치 학생들이 치르는 모의고사처럼, 그렇게 충분히 스스로를 시험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분명 실제 시험장에서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 그렇게 스스로를 확인해 가다보면,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에게 필요한 신앙이 무엇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 … 만약 여러분 안에 주님을 기쁘시게 할 마음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신다면, 나중에 오늘 본문과 설교를 다시 한 번 천천히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더 온전히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을 구해보십시오.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그 자리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 만약 지금 여러분의 삶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믿음으로 시작되었고,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게 확인되신다면, 여러분, 계속 그 길로 힘껏 전진해 가시기 바랍니다. 비록 그것이 영적인 일이 아닌 것 같고 하나님나라와 무관해보여도, 또 때론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일처럼 느껴질지라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푯대로 삼고, 그 일상의 일들을 충성되게 감당하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을 당신의 기쁨 되도록, 친히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아멘. 기도합시다. ​
↑ 설교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