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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강해 13. 유출병과 산모의 정결
2021-05-12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16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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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2 수요 성경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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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2:1~8, 15:1~33, 부정하고 정한 것(3) 유출병과 산모의 정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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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시간 먹을 수 있는 정결한 짐승과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짐승에 대한 구별에 이어서, 오늘은 정결법 규례에 관한 두 번째 내용으로, 12장에 나오는 산모의 정결 규정과 또 15장의 남녀의 유출에 관한 규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의 순서와는 거꾸로 먼저 15장부터 살펴보겠는데요, 12장 2절에 보면, 아들을 낳은 여인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어서, 월경을 포함한 유출의 문제를 먼저 다루는 것이, 이해하기 더 수월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5장을 보게 되면, 본문이 단순히 여성의 유출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5장 전반부에는 남성의 유출에 대한 문제부터 언급되고 있고, 19절 이하에서 월경을 비롯한 여성의 유출을 다루고 있습니다. 순서대로 살펴보면, 먼저 부정을 가져오는 남성의 유출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질병으로 인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관계를 통한 것입니다. 질병의 경우, 그러니까 남성의 이 유출병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로 말하면 남성의 비뇨기 질환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남성의 생식기에서 계속해서 피나 고름, 혹은 다른 이물질이 ‘흘러나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본래 ‘유출’이라고 하는 히브리어 ‘주브’의 기본 의미가, ‘흐르다,’ ‘나오다’라는 뜻인데요, 사전을 찾아보면, 그 다음 의미로, ‘죽다,’ ‘소멸하다’라는 뜻이 있다고 나옵니다. 사람의 몸에서 피나 체액이 밖으로 계속 흘러나오게 되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인데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이러 비뇨기 관련 질병이 그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이유도 그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난번 부정한 짐승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말씀드린 것처럼, 제의적 부정이란, 결국 죽음과 연관되어 있을 때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는 피나 분비물이 생식기를 통해 계속 몸에서 빠져나가는 상황은, 그런 측면에서 뭔가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예외적이고 또 위험한 상태라고, 율법은 간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의적 부정은, 단순히 위생상의 문제나 또 도덕적 흠결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난 시간에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제의적 부정이지요. 다시 말해서 창조와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그들 가운데 임재 하여 계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서,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성소로 들어가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이 바로 제의적 정결이라 했습니다. 만약 성소가 세워지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제의적 규례는 크게 필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성소가 세워졌고, 하나님이 거기 임하여 계시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거룩의 경계, 정결의 경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런 영적인 분별과 지각을 바탕으로, 그들의 삶에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나타나는 그런 삶을 살도록, 그래서 세상과 구별된 백성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원하셔서, 이러한 제의적 정결에 관한 규례들을 명령하시고 또 지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제의적으로는 부정해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도덕적 흠결이나 죄의 문제가 아닌 이상, 이 부정함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정결함을 회복하게 됩니다. 따로 제사를 드린다거나 할 필요가 없고, 여성의 월경 같은 경우에는, 심지어 정결해지기 위해 몸을 씻을 필요도 없지요. 부정을 가져오는 어떤 질병에 걸린 경우가 아니라면, 별도의 조치 없이도, 시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정결함을 회복하는 것으로, 율법은 규정합니다. 다만 오늘 이런 유출병처럼, 그 부정함이 일정 기간 지속되는 경우에는, 그 유출이 멈추고 일정 기간이 지났을 때, 성소에 가서 제사를 드림으로써, 이제 자신의 부정이 끝났으니 공동체 안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공적으로 알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 가서, 한 마리로는 속죄제를 드려서 나의 더렵혀진 것들이 다 제거되었음을 확증하고, 또 다른 한 마리로는 번제를 드림으로써, 내가 이제 하나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졌음을 확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제사는 일종의 정결한 삶의 ‘reset’ 버튼과 같았겠다, 싶습니다. 다시 정결한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지요.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명확한 선을 그어주는 이런 제사는, 분명 하나님의 백성에게 큰 위로와 은혜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뭔가를 다시 시작해보고자 하고, 뭔가 과거와는 단절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해도, 뭔가 특별한 계기가 없어서, 그런 결단이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정결을 회복하는 이러한 제사는 그런 면에서 말씀드린 리셋 버튼 혹은 리부팅 버튼 역할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주일에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누려야 할 경험도 그런 걸 겁니다. 완전한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고, 또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 깨닫고, 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거룩함을 덧입는 그런 예배야말로,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새롭게 만드는 영적인 리셋 버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가 꼭 그런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남성의 유출과 관련된 두 번째 문제는, 성관계에서 발생하는 유출, 즉 남성의 정액이 몸 밖으로 나오는 설정(泄精)의 경우에 발생합니다. 남성의 정액 역시 피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상징하고, 이러한 생명의 상실은 언젠가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부정함으로 인식되는 것이지요. 남녀가 동침하여 설정했을 경우, 두 사람 다 물로 몸을 씻어야 하고, 저녁까지 부정한 상태가 된다고 율법은 규정합니다. 아니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것이 뭐가 부정한 것인가, 이렇게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지요. 그런 행위가 부정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한 유출이, 일시적의로 제의적 부정의 상태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뿐입니다.
다만 이렇게 성관계로 인한 부정의 문제는, 당시 고대 근동의 종교 문화, 제사 문화 속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아시는 것처럼 근동의 종교들은, 이러한 성의 문제가 제의적인 요소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신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성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이, 그들의 신과 하나가 되는 초월적 경험이 된다고 여겼습니다. 또 그런 신전에서의 음란한 제사를 통해서 신을 흥분시키면, 땅에 더 많은 비가 내리게 되고, 그래서 결국 풍요를 가져오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상 신전과 사원마다 그 일을 직업적으로 담당하는 여성 사제들이 존재했다고 했지요. 사실 고대에는 이러한 모습이 매우 일반적인 종교의 양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정결에 관한 규례는 어떻습니까? 바로 그 성적인 부분들을 신앙의 영역에서, 예배와 제사의 영역에서, 완전히 분리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지요. 성소 안에서는커녕, 남녀가 관계를 맺은 것만으로도 그들은 일시적으로 부정해져서, 아예 성소에 들어올 수조차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일체의 성적인 요소가 신앙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입니다. 출산과 풍요는 오직 은혜를 통해서 주시는 것이지, 어떤 예배나 제사의 미신적인 힘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에는, 그러한 육체적인 일들을 최대한 절제하고 조심하도록 율법은 규정합니다. 결국 이러한 모습은 당시 이스라엘을 어떻게 만들었겠습니까? 그들을 둘러싼 많은 다른 민족들로부터 그들을 분명하게 구별시켜주는, 아주 중요한 모습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15장 후반부에는 여성의 유출 문제가 언급되어 있는데요, 여성의 경우에도, 일상적인 유출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의 월경과, 또 그것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유출이 일어나는 질병으로서의 유출에 대해 나눠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정상적인 월경의 경우가 왜 7일 동안 부정한가 하는 것은, 앞에서 드린 설명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정상적이긴 하지만, 그것이 피의 유출이기 때문이지요. …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이 부분을 다루고 있는 본문 19절부터 24절을 보면, 정작 월경 중에 있는 그 여성 자체를 향해서는 ‘부정하다’고 명시하는 표현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신 ‘불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요, … 여러분 25절을 보면, ‘불결기’라는 표현에 ‘주석 1)’이 달려 있고, 그 아래 설명에는, ‘또는 생리 기간’이라고 나오지요. 그러니까 본문에 ‘불결’이라고 나온 이 표현의 원래 의미는, 어떤 부정이나 불결의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생리 기간에 있는’이라는 뜻인 겁니다. 월경으로 인해 정상적인 유출을 겪고 있는 여성, 그래서 일시적으로 부정한 상태에 놓인 여성을 결코 비하하거나 문제 삼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하여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물론 제의적으로 보면 부정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를 만지거나 그가 만지는 대상은 부정해지지요. 하지만 그것이 오늘 우리의 생각처럼, 여성에 대한 어떤 성적 차별이나 억압의 도구가 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 월경 중인 여성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정결하게 되기 위해, 따로 몸을 씻거나 옷을 빨도록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당연히 제사를 드릴 필요도 없지요. 그냥 시간이 지나면 부정함이 사라집니다. 월경이라는 상태 자체를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고, … 오히려 이걸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러한 율법의 조치들은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이 있었겠습니까? 네, 월경 중에 있는 여성이 일상의 노동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게 했고, 또 그러기 위해 가족들의 배려를 당연하게 받을 수 있는 그런 조건을 만들었습니다. 월경을 여성 혼자 알면서, 그걸 감추고 또 힘들게 홀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드러내게 하고, 그러면서도 그녀를 그 일상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여, 충분한 쉼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된 것입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억압을 당연하게 여겼던 고대 사회임을 감안한다면, 참 놀라운 모습입니다.
월경으로 인한 유출이 아닌, 비정상적인 유출, 질병으로 인한 유출에 대해서는, 앞서 남성의 유출병에서와 동일한 규례가 적용됩니다. 그 기간 동안에는 계속 부정하고, 유출이 멈추면, 일주일 후에 두 마리의 비둘기로 제사를 드립니다. … 신약에 보면 이와 관련하여, 열두 해 동안 혈루병을 앓고 있던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요. 지나가던 예수님의 옷을 만져, 그 유출의 근원이 마르게 된 것인데요, 주님은 그녀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 말씀대로 우리 성도들의 삶에도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 이 여인과의 접촉은 예수님을 부정하게 만들지 않았지요? 도리어 역으로 그녀가 나음을 입었고, 정결하게 됐습니다. 더구나 주님이 그녀를 고쳐주시는 어떤 특별한 행위나 말씀도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녀가 먼저 예수님을 만졌고, 그것만으로 그녀의 병이 나았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사건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은 능히 우리를 낫게 하시고, 정결하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여러분, 그 믿음 안에 굳게 서서, 더욱 주님을 가까이 붙잡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 또한 우리도, 그 거룩함의 능력을 덧입고, 그래서 우리를 만나고, 우리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능력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접촉하여 우리까지 부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신 능력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빛과 소금의 역할이지요. 거룩의 능력이지요.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부디 늘 깨어서, 믿음 안에 굳게 서고, 세상을 향하여 거룩한 제사장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펴볼 부분은 12장에 나오는 산모의 정결 규정입니다. 아이를 낳은 산모가 어째서 제의적으로 부정한가, 하는 부분은 앞서 설명했던 내용 그대로입니다. 출산을 통해서 흘린 많은 피, 이른바 ‘산혈’로 인한 부정 때문이지요. 그래서 본문에도 계속 ‘산혈’이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산모는 많은 피를 흘리게 되고, 그만큼 생명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입니다. … 당시 고대에는 이러한 출산의 과정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위험한 일이었지요. 아이를 낳는 일은, 정말 거의 죽음을 직면하는 그런 과정입니다. 자신의 생명과 새로운 생명을 맞바꾸는 것과 같은, 그런 희생의 과정이지요. 오늘날에도 산모들은 상당한 기간 동안 전문적인 산후 조리를 하면서 일상을 회복하지 않습니까? 아마도 당시 이스라엘의 산모들은, 율법이 정한 이 정결 규정에 따라, 40일 혹은 80일 동안, 부정함이라는 합법적인 근거 아래 산후 조리를 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외부 활동이나 노동과 완전히 격리돼서, 온전히 몸을 회복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가집니다. … 과거 세종대왕이 그런 법을 만들었다고 하지요. 당시 노비에게도 100일간의 출산휴가를 주게 했다고 하고, 또 그 남편도 30일의 휴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잘 지켜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출산휴가를 내기 참 어려운, 우리의 노동 현실을 생각해보면, 참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만이라도, 그런 배려와 섬김이 필요해 보입니다.
다만 한 가지 본문에서 우리가 풀기 어려운 숙제가 하나 있다면, 산모가 아들을 낳았을 때와 딸을 낳았을 때, 그 부정이 사라지는 기간이 다르다는 것인데요, 아들을 낳으면 7일간 부정하고, 이후 33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해져서, 총 40일의 시간이 필요한데 반해서, 딸을 낳으면, 모든 게 두 배입니다. 14일 동안 부정하고, 66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해져서, 총 80일이 필요한 건데요, 왜 이러한 차이가 나는지, 성경은 명확히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 출산의 고통이 선악과 사건으로 인한 하와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고, 또 단순히 남녀 차별이 반영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정확한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혹자는 그런 설명도 합니다. 남존여비의 가치관이 있던 시대에, 딸을 낳은 산모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더 지치고 힘든 상황이 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긴 회복의 시간을 준 거라고 말입니다. 뭐, 흥미로운 얘기긴 하지만 설득력은 부족해 보입니다.
우리는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따로 읽어볼 기회가 없는 구약의 외경 중에, ‘희년서’(주전 2세기, 쿰란 공동체에 의해 기록)라는 책이 있습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을 풀어서 설명한 책이고, 그래서 유대인들은 ‘작은 창세기’라고 부르는데요, … 거기에 보면 이와 관련된 내용이 이렇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첫 주에 아담을 만드시고, 둘째 주에 하와를 만드셨다. 그리고 40일이 되었을 때 아담을 에덴동산으로 데려오셨고, 80일이 되었을 때 하와를 에덴동산에 데려오셨다.”(희년서 3:8~9) … 그러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에덴동산이 지극히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곧바로 아담과 하와가 거기 들어와 머물 수가 없었고, 아담은 40일, 하와는 80일이 지난 후에 비로소 거기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창조의 섭리를 따라, 남자를 낳은 어머니는 40일간 성소로부터 분리되어 있게 되고, 여자를 낳은 어머니는 80일간 분리되어야 한다는 규례가 생겼다고, 희년서는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것도 하나의 가설일 뿐인데요, … 어쨌든 산모는 일정 기간 부정하고, 그래서 그 기간 동안 일상의 활동과 거리를 둔 채, 나름의 충분한 회복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기간이 지나면, 산모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리게 되는데요, 이때는 번제를 위해 1년 된 어린 양과 속죄제를 위해 비둘기 한 마리를 가져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들이냐 딸이냐 그것과 상관없이 제물은 동일하고, 만약 형편이 어려우면, 번제를 위한 양은 비둘기로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몸의 유출과 관련된 정결법에 대해 모두 살펴봤는데요, 사실 어찌 보면 이런 문제들은 가장 사적이고, 가장 은밀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부분들까지도 정결과 거룩의 문제로 다루고 계시지요. 성적인 부분, 또 월경이나 출산, 성적 질병, 이 모두 다 너무나 개인적인 영역이지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러한 부분 역시 정결함의 대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백성에게 있어서 어떤 사적인 영역, 하나님과 무관한 영역은 없다고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모든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세상과 구별되어야 했음을 오늘 우리도 기억해야 합니다. … 아울러 하나님은 이런 제의적 규례를 통해, 결과적으로는 연약해진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회복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보장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구약의 말씀을, 어떤 차별이나 억압의 근거로 보는 그런 오류를 범하면 안되겠습니다. 오히려 이 율법 안에 담긴 생명 존중의 정신을 잘 살려서, 생명을 귀히 여기고, 또 병약해진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더 깊이 체휼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말씀을 정리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본문과 관련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지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 15:11)는 말씀인데요, …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몸에서의 어떤 유출로 인한 부정해지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 말씀처럼,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인해서, 어떤 더럽고 악한 말로 인해서 우리 자신이 더러워집니다.
예전에 ‘미라클 프롬 헤븐’이라는 영화를 본 적 있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요, 신앙이 좋은 한 가정이 있는데, 부부와 세 명의 딸이 함께 사는 아주 평범한 가정입니다. 그런데 둘째 딸 애나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립니다. 위장이 기능을 하지 않아서 음식물이 몸 안에 들어오면 소화가 되질 않고, 그냥 그 속에서 다 썩게 되는, 아주 무서운 질병입니다. 여러 병원을 찾아가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서, 결국 어렵게 추천받은 의사를 찾아, 멀리 보스턴까지 가게 됩니다. 그 분야에 있어 세계적 권위를 가진 소아과 의사였는데, 결국 거기서도 특별한 해결책을 찾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이 가정이, 그들이 다니는 교회를 통해서 또 다른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 것입니다. 교회의 일부 성도들이 이 부부를 찾아와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요. 딸이 아픈데, 혹시 하나님 앞에 당신들이 범한 죄가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 이런 말을 하기가 참 그렇긴 하지만, 상황이 이러니 한 번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심지어는 아픈 아이에게도 한 번 잘 물어보라고 말합니다. 혹시 아이가 무슨 죄가 지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결국 신실했던 애나의 엄마가 실족하게 되고, 더 이상 교회를 나가지 않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담임목사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있는데요, 다행히 이 목사님은 좀 상식이 있는 분이셔서, 너무나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하면서, 앞으로 교회에 등록하는 분들은 다 ‘영적 IQ 테스트’를 좀 해보고 등록을 받던지 하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제야 그녀의 마음도 조금 풀리게 되는데요,
여러분,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결국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을 부정하게도 만들고, 거룩하게도 만들지요. 예수님은 거기에 대해 강조하십니다. 우리 입으로 뱉어내는 말, 그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았느냐, 그것이 얼마나 십자가 사랑을 닮았느냐, 그게 우리가 노력해야 할 정결함이라고 하십니다. … 결국 그 영화 속 애나는 신비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고 고침을 받는데요, 그런데 영화가 말하려는 진짜 메시지는 단순히 그런 신비한 기적이 아니라, 그 기적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들을 도와줬던 많은 사람들의 작은 호의와 사랑이 또 다른 중요한 기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다 그렇지요. 때로는 우리의 말 한 마디가 기적의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은 본래 말씀이셨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엇이냐가 바로 우리 자신의 신앙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거룩함이 가장 온전히 드러나는 곳이, 다름 아닌 우리의 말임을 기억하고, 늘 언행에 조심하고 주의하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다.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리스도의 사랑이요, 예수님의 인격이 될 수 있도록, … 우리의 언어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그런 제사장이 될 수 있도록,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깨어 살아가십시다. … 삶의 모든 부분에서 정결함을 지켜내고, 거룩함을 덧입어, … 우리를 만나고 교제하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하고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