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2)' 2017년 8월 13일 주일 설교
2017-08-13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15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70813 오순절 후 열 번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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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장 12~24절,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2)
* 설교 음성파일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7081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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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9절의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를, 지난주에 이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의 제목으로 삼습니다. 이 말씀의 가르침이 우리 모두의 삶의 고백,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지난주 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유대인’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 이야기를 잠깐 했습니다. 여러분 기억나시지요? 유대인, ‘유다이오스’의 의미가 무엇이었습니까? 네, 칭찬, 찬송, 그랬습니다. 영어에 praise라는 단어와 거의 같은 의미라고 했었지요. 그러니까 유대인, 그러면 ‘칭찬 받는 자들’, 이런 뜻이 됩니다.
오늘 본문 29절이 그런 배경 속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그러니까 속사람이 유대인이어야 진짜) 유대인이며 할례는 (몸이 아니라) 마음에 해야 하는 것인데, ‘칭찬받는 자들’이라고 할 때의 그 칭찬은,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결국 지금의 유대인이라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이름만 ‘유다이오스’일 뿐, 실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하는, 진정한 ‘유다이오스’가 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율법, 토라와 그들의 몸에 새겨진 할례인데, 그것으로는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없다는 것,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자 한다면, 율법을 가지고 있고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행해야 하고, 할례는 몸이 아니라, 마음의 가죽에 행하는 회개로 나타나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칭찬 받는 참된 ‘유다이오스’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은 진짜로 하나님께 칭찬 받고 싶으신가요? (*) “규복아, 너 참 잘했다, 너 너무 멋지다. 네가 내 아들이어서 정말 기쁘고 자랑스러워. 너 때문에 내가 너~무 행복해!” 이런 말 듣고 싶으신가요? 그냥 그런 칭찬 받으면 좋고, 아니면 뭐, 어쩔 수 없고, 이 정도 아닌가요? 그게 진짜 우리 마음이 아닌지요?
그런데요 여러분, 오늘 본문은, 그 칭찬이 ‘다만 하나님에게서’일 때, 그게 진정한 ‘유다이오스’라고 말씀합니다. ‘다만’ 하나님에게서, 말입니다. ‘다만’, 이 말이 중요한 겁니다. 하나님에게서 칭찬 듣는 것, 그것을 유일한 칭찬의 소망으로 삼는 그것, 거기가 우리 신앙의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겁니다.
사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다만’ 때문에 참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에게서도 칭찬을 듣고 싶거든요. 물론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제 속사람은 너무 너무 사람들 칭찬에 목말라한다는 걸 자주 경험하곤 합니다.
제가 지난주에 휴가지에서 음성으로 설교를 보내드렸고 그걸로 여러분이 예배를 드렸는데요, 사실 제 안에 참 부담이 많았습니다. 휴가가 시작되기 전에 말씀을 미리 다 준비하고 녹음도 마치고 후련하게 쉬려고 했다가 그게 여러 사정으로 잘 안 돼서, 결국 지난 주중에 휴가지에서 설교를 녹음하게 됐습니다. 어느 호텔 화장실에서 녹음을 했는데요, 여러분 제 음성에 이상한 냄새가 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녹음을 하는 과정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는데요, 어찌어찌 녹음을 다 하고 나니까, 제 마음에 후련함보다는 아쉬움과 죄송함, 그리고 허무함이 참 컸습니다. 아무래도 제 마음에 다 차지가 않는 겁니다. 뭔가 부족해 보이고 정성이 없어 보이고, 그랬습니다. 녹음을 다 끝내고, ‘하나님, 제가 조금 더 잘 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제 안에 그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고 목사, 애쓴다. 너 수고했다. 잘 했어!’ 하지만 그런데도 제 마음이 쉽게 편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그 무거운 마음이 일거에 다 녹아 없어지게 됐습니다. 우리 한 지체에게 카톡으로 연락을 하나 받은 겁니다.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뭐 하지만, 휴가 중인데 말씀 준비해주셔서 감사하다, 그리고 말씀에 많이 위로되었다, 하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런데요, 정말 제 무거운 마음이, 솜털처럼 가벼워지고, 제 근심도 눈 녹듯이 사라져버리는 겁니다. 지체가 보내준 그 메시지 하나에 제 마음이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뭔가 제 수고가 보상을 받은 것 같고, 누군가 그걸 인정해준 것 같아서, 그게 그렇게도 좋은 겁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제 마음에 수고했다, 잘했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도, 그건 별로 위로가 안됐습니다. 사람이 표현해주고, 인정해줘야 그게 진짜 칭찬으로 들리는 겁니다. 물론 그 지체의 말이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하겠지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부분에서만 제가 반응을 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은 언제나 사람의 칭찬 그 다음, 또는 그 나머지가 된다는 것을 저는 이번에도 또 느끼게 됐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혹시 그러시지 않나요? 사람이 주는 칭찬이 하나님의 칭찬보다 훨씬 더 기분 좋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매겨준 가치보다 사람들이 나를 평가해준 그 가치가 훨씬 더 우리 인생에 중요한 기준이 아닌지요? 나를 향한 하나님의 판단보다도 사람들의 평가가 훨씬 더 두렵게 여겨지지 않으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 역시 아직 진정한 ‘유다이오스’인 것은 아닙니다. 그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그것이 곧 마음의 할례의 시작이라고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어릴 때 공부하다 보면, 어느 과목이 성적이 좋습니까? 물론 적성과 소질이 중요하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좋고 그래서 꼭 칭찬을 듣고 싶은 마음이 있는 과목의 성적도 좋지 않습니까? 아마 그런 경험이 다 있으실 겁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칭찬을 듣고 싶은 그 방향으로 우리의 신앙이 자라게 되어 있고, 그 방향으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다만 하나님의 칭찬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삶에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의 칭찬을 듣기 위해 뭔가를 계획하고 시도하시는 일이 있으신지요? 여러분이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그 일들, 계획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칭찬과 무슨 상관이 있으신지요? 에베소서 5장 10절에 유명한 말씀이 있지요.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고민해보고, 또 실제로 try해보고, 여러분, 그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시도와 노력을 하고 계신지요?
여러분 혹시 하나님의 칭찬을 들은 것이 언제였습니까? 가장 최근에 하나님의 칭찬 받으신 게 언제 무슨 일로였는지 기억나시는지요? (*) 제가 이렇게 여쭤보면 아마 어떤 분은, 하나님이 진짜 칭찬을 해 주시나요, 어떻게 해 주시나요, 하늘에서 소리가 나나요, 아니면 갑자기 상을 주시나요, 질문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떻게 칭찬하실까요? 지금 당장은 하지 않으시다가 나중에 생명 다해 주님 앞에 갔을 때 그때 몰아서 해 주실까요?
오늘 29절 말씀, 칭찬이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이 문장의 시제가 미래형일까요, 현재형일까요? 네 맞습니다. 현재형입니다. 하나님의 칭찬은 현재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반드시 하나님은 그 순간, 혹은 잠시 동안의 인내의 시간이 지난 후에라도 곧 칭찬하십니다. 하나님의 책망과는 비교할 수 없이 하나님의 칭찬은 더 직접적이고 즉각적입니다. 우리가 칭찬에 목말라 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로 춤추시듯, 칭찬은 우리를 춤추게 한다는 것을 하나님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칭찬을 잘 느끼지 못할까요?
여러분 이것이 정말 중요하고 가장 어려운 부분인데요, 하나님의 칭찬을 느끼려면 하나님의 칭찬을 소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다고 다 그 칭찬을 느끼는 게 아니라, 그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칭찬 받은 것이 느껴지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내가 하나님의 칭찬을 의식적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그 칭찬을 받기 위해 노력한 적이 거의 없거나, 있었어도 그것이 사람의 칭찬에 뒤따르는 부산물 정도의 가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하게 되었을까요? 그 칭찬을 소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고 나름 하나님 앞에 순종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칭찬을 맛볼 수가 없었던 겁니다. 율법대로 지키는 그것이 왜 잘못이고 부족함이겠습니까, 그 자체로 충분히 칭찬받을 수 있는 일입니다. 형식적으로라도 순종하려고 하는 모습이 아예 모르고 안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 아닙니까? 오죽하면 ‘하는 척이라도 좀 해라’와 같은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유대인들을 향한 성경의 판단은 날카롭기만 합니다. 왜요? 그들이 그러한 신앙과 행위를 통해 결국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칭찬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의 인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칭찬을 분별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칭찬을 들었습니까? 늘 책망만 들은 겁니까? 아닙니다. 칭찬하시고 영광을 주셨어요. 그럼에도 그들은 그 영광을 깨닫지도 못했고, 결국 마셔도 마셔도 그 갈증이 해갈되지 않는 인간의 인정과 칭찬을 갈구하게 된 것이지요.
여러분 요한복음 5장을 잠깐 보시겠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기적을 행하여도 사람들이 믿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박해하는 일이 계속되자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37절부터 “37.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38.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45.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여기서 주님은,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없음을 알았다고 하시면서, 그 근거로, 44절이지요,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과 칭찬을 구하지 않는 한 예수님은 당신을 믿을 수도 없다고 하십니다. 왜요, 예수님이 실은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칭찬이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말씀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의 영광과 칭찬을 사람에게서 오는 칭찬과 구별하고, 하나님의 칭찬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예수를 발견할 수도, 믿을 수도, 따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41절에서,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선언하십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이 추구한 목적과 가치는 오직 하나님에게서 오는 영광, 하나님에게서 오는 칭찬이었다고 분명하게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늘 하나님의 칭찬과 영광을 받고 누리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사모하는 것과 그 칭찬을 누리는 게 하나님 앞에서는 같은 말인 겁니다.
여러분, 바울 서신을 읽다 보면 우리는 바울과 또 신실한 성도들이 그때 정말 하나님에게만 칭찬을 듣고자 애썼다는 것을 알고 놀라게 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1:10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하나님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아멘. 놀라운 고백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위해, 그들이 내게 주는 인정과 칭찬을 위해 살아왔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아주 강한 확신의 표현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이 고백이 바울 혼자가 아닌 복수의 고백으로 등장합니다. 2장 6절에 보면,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이야기합니다. 바울과 그 동역자들은 살면서 늘 이 문제를 마음에 새기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고백 그대로, 사람이 아닌 ‘다만 하나님의 칭찬과 영광’을 사모하고, 바라보고, 시험해보고, 그렇게 신앙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 믿으시고, 역시 그 길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분별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저 속으로 ‘그래, 하나님께 칭찬듣기 위해 살아야겠다!’ 이런 결심으로는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드렸던 대로, 그것을 의식적으로 마음먹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분별하고 시도하고 시험해보는 노력이 우리의 삶에 실제로 수반되어야만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살아지는 대로 살면 결코 살아낼 수 없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칭찬을 구하는 삶입니다.
다 아시는 대로 인간의 칭찬은 결국 우리를 더욱 목마르게 하고 가난하게 만듭니다. 거기에는 진정한 자유가 없고, 진정한 기쁨도 없습니다. 먼 훗날 하나님 앞에 가서 빈 깡통임이 드러나게 되는 것은 둘째 치고, 이 땅에서도 진정 행복하고 평안한 쉼이 없는 삶이 됩니다. 모든 사람의 영광과 인정 가운데 살았던 솔로몬이 고백하지 않습니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인간은 인간에게서 오는 칭찬으로 자유하지 않습니다. 왜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존재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를 만드신 더 높은 이의 영광을 그리워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디 사람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의 칭찬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느껴지게 됩니까? 이것이 우리가 가진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질문이지요. 하나님의 칭찬을 사모하는 이에게만 주신다는 그 하나님의 칭찬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주어지고 드러나게 되는지, 여러분, 그게 궁금하시지요? 그 답을 여러분이 직접 간절히 사모해서 알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제가 여기서 일단 그 답을 말씀드리고 알고 나신 후에 그것을 맛보아 알기 원하시는지요? (*)
좋습니다, 여러분이 참된 유다이오스로 살겠노라 결단하신다는 조건으로, 제가 먼저 그 내용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더 들어보십시다. 요한복음 8장 28~29절입니다. “28.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아멘.
29절에 보면,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말씀하지요. 하나님의 칭찬이 무엇으로 드러난다고 하십니까? 네, 혼자 두지 아니하시는 삶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고, 친히 인도하시고 위로하시는 그 임마누엘의 능력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혹 별로, 에게~)
놀라운 것은 이 말씀을 하셨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30절인데요, 다함께 읽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아멘. 내가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니까, 그때 그것을 사람들이 믿더라, 하는 겁니다. 왜요?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예수님을 하나님이 혼자 두신 적이 없었다는 것을, 예수님이 늘 그런 충만함을 누리고 계셨다는 것을, 그들도 보고 경험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칭찬은 은밀하지만 또한 은밀하지 않습니다. 그 칭찬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또한 눈에 보입니다. 우리에게 마음에, 생각에, 감동과 믿음으로 다가오지만, 그것은 결코 추상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나를 통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드러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해 가십니다. ‘그래 당신의 삶을 보니 하나님이 당신과 동행하심을 알겠소, 믿겠소!’ 인정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시고, 칭찬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초점이 흐려지면 안 됩니다. 내가 보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될 것 같은, 그런 세상의 복을 먼저 구하고, 거기에 우선순위를 빼앗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의 영광으로 내 자신이 바꿔버리면 안 됩니다. 내가 잘 돼서,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장 구해서, 돈 많이 벌어서 사람들이 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해야지, 이 마음의 방향이면 안 됩니다. 그건 칭찬의 한 부분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본질이자, 처음 시작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찾고 시험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듣고자 내 속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먼저 있고 하나님의 칭찬이 있고 그리고 세상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겁니다. 이 과정을 지켜낼 수 있어야 우리가 비로소 참된 유다이오스로 이 땅에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때로 사람들의 무시와 멸시를 경험하게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칭찬받기 위해 사람들의 욕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거의 그렇게 됩니다. 그 길은 인간적으로는 고독하고 괴롭습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눅6:26) 주님 말씀합니다. “Only He knows.”(오직 주가 아시나니) 속울음을 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사람들의 칭찬과 영광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인도하심이, 하나님의 칭찬과 영광이 드러나 보여지게 되는 때가 옵니다.
바울이 로마서 14장 18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결국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고독과 하나님과의 힘겨운 씨름의 시간이 있지만, 결국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에게 상을 베푸시고, 존귀함의 기름을 부으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날, 모든 성도들은 주님 앞에서 자신이 행한 것들에 대한, 특별히 헌신하고 수고한 일들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받습니다. 성경 고린도전서는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12.이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다가 어떤 사람은 금으로, 어떤 사람은 은으로, 어떤 사람은 보석으로, 어떤 사람은 나무로, 어떤 사람은 마른 풀로, 어떤 사람은 짚으로 집을 짓는다고 합시다. 13.이제 심판의 날이 오면 모든 것이 드러나서 각자가 한 일이 명백하게 될 것입니다. 심판의 날은 불을 몰고 오겠고 그 불은 각자의 업적을 시험하여 그 진가를 가려줄 것입니다. 14.만일 그 기초 위에 세운 집이 그 불을 견디어내면 그 집을 지은 사람은 상을 받고 15.만일 그 집이 불에 타버리면 그는 낭패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불 속에서 살아 나오는 사람같이, [간신히] 구원을 받습니다.”(3:12~15, 공동번역)
우리가 이 땅에서 노력한 일들이 다 우리의 영원한 영광과 칭찬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정말 하나님의 칭찬을 위해 행한 경건한 열매인지, 아니면 인간의 영광을 구한 교만의 열매인지, 주님 앞에 서면 낱낱이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고백교회 성도 여러분, 부디 하나님께 칭찬 받는 거룩한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사모하고, 분별하고, 시험하셔서, 임마누엘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는 우리의 질긴 갈증을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으로 바꾸어내시기를, 그래서 여러분을 통해 세상이 임마누엘 하나님을 믿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