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선악과의 진실" 2014년 3월 11일 새벽기도회 설교 (사순절6)
2014-03-11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7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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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된 설교 원문
20140311 화요일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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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1~7절, 사순절(6) 선악과의 진실
* 설교 음성 : http://www.4shared.com/mp3/Lu8hMxe1ba/20140311__6_.html(클릭)
사순절 여섯 번째 말씀으로, ‘선악과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시험에 관한 본문이 이어지며 사순절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오늘도 선악과 사건에 대해 좀 더 깊이 묵상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 초점을 두어 묵상하고자 하는 부분은, 사탄이 하와를 유혹하며 했던 말 가운데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이 구절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이 유혹이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사탄은 그 앞부분에서, 마치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의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처럼 일부러 꾸며,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그려내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결국 하나님에게 종속된 존재로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하나님처럼 되어야 함을 사탄은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에 있어서 오늘 사탄이 하와에게 제시하는 ‘하나님 됨’은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보통 선악과라 부르는 나무는 본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2:17)였습니다. 선악과라는 특정한 종이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나무의 특징이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여기 ‘선과 악’이라는 말은 오늘날과 같이 어떤 선하고 악한 본질을 말함이라기보다는, 히브리어에서 보통 ‘좋고 나쁜 모든 것’ 혹은 ‘어떤 존재의 실상, 실체’를 의미합니다. 이 선악과를 사탄은 인간을 하나님과 같이 모든 것을 알게 하는 열매라고 말하며 유혹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져 선과 악을 분별하게 된 것이 아니라, 불순종에 의해 깨어진 관계 속에 생긴 두려움에 휩싸여 수치를 느끼기에 급급할 따름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에게 어떤 지적 능력도 발생하지 않았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스스로 벌거벗을 줄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진정한 앎이 아닌, 하나님을 떠난 사람, 또 하나님과 대적의 관계에 있는 사람, 또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지 못한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두려움과 수치의 결과일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저 추측에 불과한 상상이지만, 어쩌면 선악과는 그 자체로는 다른 과실나무와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그저 평범한 나무였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사과나무여도 상관이 없고, 또 감나무여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택하여 그것을 선악과라 지칭하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먹지 말라고, 또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명령하시는 것으로 이미 그 나무는 우리에게 선악을 알게 합니다. 먹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선한 것이요, 먹는 것이 악한 것임을, 다시 말해 하나님의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선이요, 불순종이 악임을 그 나무에 담긴 하나님의 명령을 통해 우리가 이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무 그 자체에 담긴 기능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고 아담과 하와는 두려움과 수치에 떨어야 했습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대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기에 급급해야 했습니다. 온전한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는 요한 사도의 말과 정반대의 상태로 전락했습니다. 두려움이 그들을 사로잡았고, 하나님으로부터 스스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두려움이 생긴 것이 아니라, 인간 서로 간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담은 하와의 탓을 하고, 하와는 다시 하나님 탓을 합니다. 아담에게 하와는 이제 더 이상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를 부끄럽게 하는 두려운 존재일 뿐이었지요. 내 살을 내 뼈를 누가 두려워하며, 그 앞에서 누가 부끄러워 하겠습니까? 더는 내 살이 아니요, 내 뼈가 아니라 느끼기에, 다시 말해 이제 하와는 두려움과 수치를 일으키는 진정한 타자이기에 거기 부끄러움이 생긴 것입니다. 벌거벗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 즉 두려움과 수치로 인해 온전한 사랑 가운데 거하지 못하게 된 것이 고작 사탄이 말한 ‘눈이 밝아진 것’ 그래서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의 실체였을 따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선악과가 정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되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것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입니다. “먹지 말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자체로 인간은 순종이 곧 선이며, 불순종이 곧 악임을 깨닫고 또 인정하게 됩니다. 말 그대로 선악과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먹게 되면 이제 그 선악과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좋은 열매가 아니라,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지 못함으로 인해 생긴 피조물의 한없는 두려움의 근원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주신 바 모든 계명이 다 선악과입니다. 경외하고 순종하면 그 자체로 우리에게 선과 악이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그러나 범하고 불순종하면, 그러한 좋은 역할은 더 이상 불가능해집니다. 선악을 알게 되기는커녕 두려움과 수치가 뒤따를 뿐이지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을 때, 우리가 범죄 했을 때 느끼는 수치와 두려움이 바로 모든 선악과가 가져다주는 부정적인 효능입니다.
사탄이 말한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되어 선악을 알게 되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사랑 안에 거할 때 가능해집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했습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그것을 보게 하는 능력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우리로 선악을 보게 합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실상을 목도하게 됩니다.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게 되고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사랑 안에 온전히 거하지 못하고 아담과 하와는 결국 선악의 실상이 아닌, 자기 자신의 죄악 된 실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선악과를 선악과로 내버려 두십시오. 말씀에 순종하고 지키면 우리를 유익하게 합니다. 내가 누구이며, 누구로부터 와서 누구에게로 가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늘 말씀해 주십니다. 내 육체가 이끄는 대로가 아니라, 그 육체의 소원을 말씀 앞에 굴복시키면 우리는 늘 자유하며 담대합니다. 먹어야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먹지 않아야 하나님처럼 됩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우리 안의 성령께서 우리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참된 평화가 나오며, 성령의 권능과 담대함이 나옵니다.
반대로 내가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할 때 우리는 가장 비참한 우리 자신을 발견할 뿐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지만, 결국 바벨탑의 결말과 같이 그 교만의 끝은 항상 무질서와 혼돈과 서로를 향한 두려움의 폭력 그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여러분인 것처럼 살지 마십시오.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나의 삶’이라 여기지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죄의 노리개가 되어 삶이 혼란과 후회로 뒤덮이게 될 뿐, 거기 여러분의 주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순종하면 그 주권이 다시 여러분에게로 옵니다. 아담이 불순종하기 전에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주권을 그에게 허락하셨습니다. 동물들의 이름을 짓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동산의 모든 것들을 누리고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내 삶의 참된 주인이 되는 길, 그것은 하나님처럼 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때, 하나님은 우리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오늘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이며, 재앙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렘29:11)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나님은 변함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믿고 그 사랑 안에 거하십시다.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다시 진심으로 고백하며 그 하나님을 우리의 삶 가운데 주인으로 다시 모십시다. 삶의 어느 한 부분도 우리 자의로 따먹지 마십시다. 끝까지 순종합시다. 선악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눈을 밝혀 우리의 참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더 온전한 눈으로 이 사순절 기간에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높아지지 말고,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온전히 고백하며(고전15:10) 겸손히 주님을 높여드립시다. 그러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오늘 하루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